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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허윤진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25
조회
308

허윤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천주교 신부로 살다보면 혼자 사는 사람치고 결혼한 부부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무래도 신부라는 신분이 편해서인지, 말이 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어서인지,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결혼생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결혼생활의 기쁨보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하소연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갖가지 갈등과 이해상충, 경제문제에 따른 어려움과 자녀양육의 방법에 대한 이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신부님, 신부님은 혼자사시기 참 잘 하셨습니다. 결혼은요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게 됩니다.”하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연 결혼생활이 그토록 불행한 것인가? 혼자 사는 신부의 염장을 지르려고 하는 얘기는 아닐 테니, 결혼생활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음에 대한 넋두리이겠지요. 그런 넋두리를 듣다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부분 사랑받고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불만입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상투를 틀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얘기지요. 곧 자신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가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성숙한 어린아이에 불과하겠지요. 어린이는 무엇이든지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고, 교육과 배려를 받고, 생명 유지를 위한 음식 따위도 가깝게는 부모와 다른 이들에게서 받으며 살아갑니다. 어린이는 이 사랑과 이해, 배려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정신과 육체가 더욱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반면에 어른이란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는 것에서 탈피하여 나 아닌 다른 이에게서 받은 그 모든 사랑과 관심, 이해와 배려를 나누어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결혼한 부부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상대에게서 채워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채워주려 노력하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이해받지 못해 힘들고 배려 받지 못해 힘들고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어려움에 함께 하여 배우자의 삶의 무게를 줄여주고,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해 지혜를 다하는 사이가 부부입니다. 주려하기보다 받으려고만 한다면 후회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자의 기쁨 속에 나의 기쁨을 키워가고, 배우자의 행복한 모습에 보람을 느끼는 성숙한 자세가 ‘돈버는 기계’요 ‘밥순이’로 자신을 비하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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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 표현을 빌리자면 ‘부부는 둘이 한 몸이 되어 사는 관계’(창세기 2장 24절 참조)입니다. 사실 성장 배경과 성격과 배움과 등등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는 남녀가 사랑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신성하다고까지 표현되는 위대한 관계입니다. 우리 몸에서 보면, 왼손과 오른손이 있습니다. 명칭은 다르지만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어느 날 왼손이 무거운 물건을 잡아 끙끙 매고 있다고 해서 오른손이 왼손에게 “이런 바보 같은 왼손아! 어쩜 그리도 계획성이 없게 사냐? 너의 능력도 모르고 그렇게 무거운 것을 들어 다치기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하며 화를 내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어느새 왼손이 든 무거운 물건을 오른손이 받쳐 들고 함께 힘을 씁니다. 어느날 오른손이 뜨거운 물건을 잡다가 뎄습니다. 그러자 왼손이 “이런 바보 같은 오른손아! 너는 어쩜 그렇게 생각 없이 사냐? 넌 상식도 없냐? 그러다 상처가 곪아서 온몸이 아프게 되면 어쩌려고 뜨거운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고 그렇게 조심성이 없느냐?”며 나무라지 않습니다. 어느새 조금이라도 열기와 고통을 줄이려 왼손이 오른손을 부여잡습니다. 그렇게 해도 안 되면 입으로 후후 불며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려 애씁니다. 이것이 남편이라 불리고 아내라고 불리지만 부부라는 한 몸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기에는 서로 간에 어떠한 원망도 질책도 지적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혼은 이제 심각할 정도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 여성의 사회활동의 증대 등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그 저변에는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 결혼생활에서 자신을 내어 놓을 줄 아는 성숙함의 부족이 더 큰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욱이 다문화가정의 증가하는 이혼율 역시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받으려는 미성숙한 욕구의 충돌이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 됩니다. 부부 상호간 존중과 이해, 갈등적인 요소들을 해결하려는 상호간의 노력이 더욱 요청되는 때입니다.

이 모든 바람이 혼자 사는 신부의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로 치부되지 않고 세상 모든 부부들이 좀 더 자신을 내어 놓는 행복을 만끽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