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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말자. 미래는 우리 것이 아니다.(김대원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30
조회
230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느덧 1년여 시간이 지난 일본생활, 지진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지난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반경, 70 넘은 어르신들도 처음이라는 정도의 강진을 직접 겪었다. 100여년 된 낡은 목조건물 2층인 사무실에서 경험한 ‘동일본대지진’은 공포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똑바로 서있기조차 힘든 흔들림에 어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 배운대로 책상 밑으로 들어갔으나, 책장의 책과 천정 내장재가 떨어지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무작정 뛰쳐나왔다. 어찌나 놀랐는지 팔다리가 떨렸다.

진도 9.0, 최고 높이 23.6m의 쓰나미.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웠던 동북지역의 피해상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한동안 복구는커녕 피해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동경은 피해지역으로부터 24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진도 5.0이상의 여진만도 그날 이후 열흘 동안에 300회 이상 발생했다고 한다. 지금도 잠시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위험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무엇 하나 어찌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까지 발생.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4호기가 폭발하고 도쿄 수돗물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물질이 검출되었다. 이에 대한 공포로 많은 외국인들이 귀국했으며, 대부분의 학교는 여진에 대한 우려와 전력난에 따라 일시 휴업뒤 졸업식 및 입학식을 포함한 모든 공식행사를 취소하고 신학기 수업개시를 1개월 연기하는 등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지금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하나가 되자. 일본’이라는 광고가 수시로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발표한 적 없고, 그저 이미 드러난 사실들에 대해서 해명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정부가 뒤늦게나마 언제 터질지 모를 국민들의 불만을 애국심에 호소하는 뻔 한 의도인데, 어이없는 것은 누구도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가 지진이나 쓰나미 때문이 아니라, 인간문명의 이기인 원전 때문이며, 더구나 자본의 손익계산으로 초기대응의 실패로 위험이 더욱 커졌음이 자명한데도 어디에서도 분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은 일본이 지진대비에 완벽할 것이라는 일반적 기대와 달리 설계단계부터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철저히 무시되었다고 한다. 가동기한 역시 무시된 채 연장가동 중이었으며, 정상 보관량의 3배 이상의 폐연료봉을 차폐용기 없이 수조에 보관해 위험을 더 키웠다고도 한다. 또한 사고 이후 초기대응 과정에서도 원자로를 계속 사용하고자 하는 전력회사 측의 욕심 때문에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고 한다.

원자로 건물이 폭발하여 철골이 앙상한 상황 앞에서도, 자위대까지 동원하여 헬기와 소방차로 바닷물을 퍼부으면서도, 원전근무 직원들 대부분이 대피한 상황에서도, 바닷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보도하면서도, 원전 인근지역 재배 야채출하를 금지시키면서도, 동경 수돗물에서 기준치 이상의 요오드가 검출된 지경에 이르러서도, 일본정부는 인체에 직접적인 피해가 있을 정도는 아니라며 외국 매스컴의 호들갑을 원망했다.

최첨단 시설인 원자로의 열을 낮추기 위한 방법이 기껏 헬기와 소방차를 이용해 바닷물 퍼붓기라니... 도무지 난 우스워 죽겠는데 매스컴은 너무도 태연하고 진지하게 보도한다. 아프리카 사막 한 가운데도 아니고 세계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사고 열흘이 지나서야 외부에서 전선을 끌어 전력을 복구했다며 만세를 부르는 데에는 아연실색하여 웃지도 못했다. 모든 시민이 2리터짜리 생수 한 병을 사기 위해 수퍼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동경 시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수돗물을 마시는 보도를 보고는 구토를 억눌러야 했을 정도다. 정말 수돗물이었을까 의심하면서.

우리는 지금 큰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핵의 평화적인 사용? 정말 가능한 일이었을까? 사고만 나지 않으면 안전하다? 사고가 나면? 기존 원전에 대한 관리도 의문투성이인데 원전을 폐쇄한 뒤에는? 몇 년을 보관해야 안전해지는지 모를 핵폐기물은? 사람보다 돈을 우선하는 기업에 우리 생명을 저당잡힌채 신뢰 운운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다.

지금까지 원전관련 사고는 다른 나라도 아닌 과학과 기술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소련에서 일어났다. 지금도 원전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미 신화는 거짓임이 드러났는데, 그래도 우리만은 안전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으로 살아가도 괜찮은 것일까?

나는 지금 자본주의 대국 일본에서, 사기업화 되어버린 전력회사의 이익추구 앞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자본과 몰염치한 권력 앞에서, 대자연의 재앙보다 더 큰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실은 인류사회 전체가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해 온 결과이기에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것도 아닌 미래를 이렇게 저당잡힌채 탕진할 수만은 없는 일. 더 늦기 전에 덜 풍요하더라도 이런 공포와 불안을 안은 채 살아가지 않아도 될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 성서에는 예수를 만나 눈을 뜨게 되는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애초 눈을 뜨리라는 희망은 가져본 적도 없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살고 있던 그가, 예수를 만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로 보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바로 눈을 뜨고 있는 시각장애인이 아닐까? 눈앞에 놓인 현실을 보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드러난 것까지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무력함을 처절하게 깨닫게 해 준 자연의 재앙이지만, 바로 이 재앙이 우리에게 눈 뜰 것을 요구한다.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타산지석 운운하며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당장의 편안한 삶을 위해 후손들의 목숨을 저당 잡은 채 살아서는 안 될 일이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신부로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