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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창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1:41
조회
453
‘최근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살인 범죄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성범죄자들에게 전자팔찌나 신상공개 등의 처벌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 분이 신문사 여기자의 가슴을 만진 사건이 폭로되었고, 그는 지금 국회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들과 정치권의 압력을 받고 있다.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성폭력의 의미는 성기 삽입에 의한 강제적인 성관계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성기나 유방, 엉덩이나 배 등 신체를 강제로 만지는 것도 성폭력이며, 행동으로 하지 않더라도 신체 부위나 성행위에 대한 말로 기분 나쁜 농담을 하거나 놀리는 것도 성폭력이라고 한다.

성폭력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성기 삽입에 의한 강간만을 엄격한 의미의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신체 접촉은 성추행이라고 구분해서 보는 현재의 법률과 언론의 시각을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여론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 국회의원은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고, 같은 당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성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는 법안의 첫째 번 ‘수혜자’는 그 국회의원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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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최연희 의원
사진출처: 노컷뉴스


 많은 국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 딸을 가지고 있거나 여성, 또는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요즈음 신문을 장식하는 이런 일들에 크게 분개하고 있다. 그래서 성범죄자에 대한 대책으로 거론되는 전자팔찌 등의 부가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어느 때보다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범죄자 대책에 대해 인권적인 측면에서 반대의사를 밝힌 인권 단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일부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새로운 모습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범죄자의 인권만이 있고,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없느냐고 항변을 한다.

인권은 적극적인 의미의 인권과 소극적인 의미의 인권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에는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돈이 없어도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면, 후자에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권리, 설혹 범죄자로 확정 판결을 받아서 수형 생활을 하더라도 개, 돼지 같이 취급받지 않을 권리 등이 속한다고 본다.

성범죄 피해자의 적극적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성범죄자의 소극적인 인권을 어디까지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 이번 논란의 요체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인권이란 한 사람의 가치에 관한 판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극적인 인권이, 주로 국가권력과 같은 권력에 의해 어느 개인의 생각, 신체가 구속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면, 성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신구속은 다른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신구속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불특정 다수 국민들에 대한 인신구속으로 번질 수 있다.

성범죄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지운다는 점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팔찌 착용을 옹호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관점이라면,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는 범죄도 피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며, 살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왕따를 시킨 학생들, 여러 유형의 살인범들에게도 전자팔찌는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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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노컷뉴스


 위중한 범죄를 저질렀던 기결수들을 다시 인신구속하는 보호감호제도가 이중처벌의 위헌적 요소를 지녔던 것처럼, 전자팔찌 같은 제도는 이미 법률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계속되는 인신구속을 부과하는 것이다. 더구나 신체에 개, 돼지 같은 속박을 가하는 전자팔찌를 한 채로 여름에 반팔 옷을 입거나, 공중목욕탕이나 수영장 같은 곳에 갈 수 없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재 지나치게 관대하게 적용되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보다 엄격하게 가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보인다. 누구나 그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으면서까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을 서둘러 사회에 돌려보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묻고 싶다.

아울러, 성범죄 예방교육의 강화, 성폭력범죄의 비친고죄로의 전환, 성범죄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대책 등을 우선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어느 네티즌의 의견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관행에 남성중심적인 잘못이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여, 피해자들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의식의 근저에 "살인범보다 강간범이 더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강간피해자에게 더 혹독한 사회"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한 성찰이 함께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느 네티즌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