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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을 가장한 폭력을 이기는 법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1:46
조회
556
가슴이 울렁거린다.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처럼 별로 없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평택 대추분교 정문 앞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법원의 강제집행의 현장에서 몸서리치도록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전개되는 합법을 가장한 폭력! 빼앗는 자들의 거대한 음모와 횡포가 평택 주민들의 파란과 곡절 많은 삶의 한복판을 뒤덮고 있었다.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떠올린다. 눈길을 멀리 돌린다. 온통 들로 가득한 평화의 땅 평택. 그 평택의 수평선을 넘어 침략의 기지가 들이닥치고 있다. 조상들이 두고두고 피땀으로 싸워 일구어 놓은 생명의 땅 평택은 지금 홀로 반제 반침략의 역사와 대면하고 있다.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미군기지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온 몸을 던져 막아 나서는 거기에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분단 현실의 총체적 모순구조가 녹아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세계평화의 걸림돌이요, 세계 제1의 악의 축 국가의 음흉한 촉수가 평화의 땅, 생명의 땅, 투쟁의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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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에서 국방부가 팽택지원 집달관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해 학교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을 강제로 내보내려고 절단기로 학교 철망과 쇠사슬을 자르자 문정현 신부(왼쪽)와 인권단체 회원이 기둥을 부둥켜안고 막고 있다.  -사진출처 : 한겨레

 

필사즉생의 각오가 애달프다. 연약한 촌로들의 외침이 그대로 무겁게 전해진다. 태엽에 감겨 노는 장난감마냥 그저 얌전히들 제국의 역사가 달려온 그 방향대로 그 장대한 침묵의 시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투항하면 그만인 것을 주름살 핀 일그러진 얼굴로 고난의 역사를 불러오고 극복되지 않을 비극의 역사를 찾아 세찬 바람 앞에 촛불을 들고 몸서리들 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비웃는 자들의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평택에 드리운 제국의 마수를 깨뜨리는 촛불의 힘, 제국의 손과 발이 되어 합법을 가장한 폭력을 휘두르는 친미사대 사이비 개혁 정권의 본질을 꿰뚫어 버리는 촌로들의 기상이 평택이 갖는 진정한 참모습이었다. 주한미군 철거가가 울려 퍼지고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판을 가르는 싸움터로 치달아가고 있는 역사의 땅이 바로 평택이었다.

고난의 현장에서 역사는 웅대한 투쟁의 삶을 부여하고 있다. 항쟁의 땅에서 반제자주, 반전평화의 정신은 그 폭이 넓어지고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미국의 군사 패권 전략을 실현하는 침략의 발진기지가 되어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동북아 신냉전을 초래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미군기지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피맺힌 진리를 되새기고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나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합법의 외피를 쓴 법 집행자들은 내게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고 있었다. 긴박한 호흡과 짧은 휴식으로 합법을 가장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평택의 투쟁 현장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변호사로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외피 삼아 법 집행자들에 맞서 본들 그들이 강요하는 육중한 침묵과 굴종을 견디어 낼 수 없다.

그렇다. 바로 그 때 내게 솟구쳐 오르는, 역사의 복판을 흘러가는, 모든 외피를 스스로 털어버리고 역사의 땅에서 항쟁의 동지들과 함께 역사와 대면하는 흥분과 설레임이 있었다. 그 눈물겨운 투쟁에서 전달되는 정서를 느끼며 나는 아름다운 참모습을 발견하였고 평택은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니라 승리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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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 정문에서 평택지원 집달관과 경찰 병력이 대추분교의 강제퇴거를 위해 시민단체 회원들이 막고 있는 정문을 뚫으려 하고 있다./ 신영근    -사진출처: 연합뉴스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 판치는 역사의 땅 평택에서 나는 모든 외피를 털어버리고 역사와 마주서 그 항쟁의 고귀한 땅을 껴안고 승리하는 역사의 전설을 모든 평택 지킴이들과 펼쳐 내보이고 싶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