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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종말 ① - 대학으로 돈 버는 세상 끝내야(이찬수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42
조회
201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1. 한 세대 전만 해도 교육은 근대 문화로의 변화를 선도하는 계몽적 역할을 수행했다. 개인과 집안의 신분을 상승시켜 주기도 했고, 산업 현장과 연결되면서 한국 경제발전의 기초를 담당하기도 했다. 교육이라는 보이지 않는 투자를 통해 격변하는 시대를 경험하며 헤쳐 온 기성세대는, 교육으로 성공한 이든 교육의 기회를 놓쳐 안타까워하는 이든, 한결같이 교육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여준다. 그 정점에 대학이라는 것이 있다. 온 사회가 ‘올인’하다시피 하는 대학이란 무엇이며, 오늘의 우리의 대학은 어떤 형편에 처해있는 것일까.

2. 대학은 본래 교수 또는 학습자들의 모임 또는 조직이었으나, 일제 때 ‘사립학교령’을 설치해 일정 수준의 재산이 있어야 학교 설립이 가능하도록 한 뒤에는 설립자가 교수를 고용하고 학생을 선발하는 흐름이 생겼다. ‘불온한’ 이들의 대학 설립을 제한하려는 전략적 의도에서였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사립대학은 그 뒤 시설로서의 물적 요소와 단체로서의 인적 요소를 함께 가지게 되었다.

3. 국공립 대학(국가나 지자체 같은 공법인이 설립자가 되어 시설을 설치, 운영한다)과는 달리, 사립대학은 재산을 근거로 구성된 재단법인이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주체로 부각된다. 법인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학교의 운영 주체이자 소유자로 자리매김해가면서 교수를 고용하고 학생을 선발해 교육 사업을 벌이는 흐름이 커져간 것이다. 이 점만 놓고 보면 법인 이사 내지는 경영자가 교수나 학생에 대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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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 시민, 야당인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4. 하지만 대학은 그 의미와 속성상 ‘시설’만이 아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조직’이기도 하다. 대학은 교사와 학습자의 만남을 위한 조직적 중개자로서의 측면도 크다. ‘조직’이란 개별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을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결합시켜 능률과 합리화를 도모하는 활동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분명히 하나의 ‘조직’이다. 당연히 조직 구성원 전체가 대학의 주체이기도 하다. 시설 투자를 한 설립자가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도, 학문의 보급자인 전체 교수가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도, 시설 운영의 근간인 등록금을 내는 학생이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도 다 정당하다.

5. 때론 이 세 주체들이 충돌하곤 한다. 그러나 충돌이 있다는 것은 도리어 학교가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영자, 교수, 학생이 어떻든 주체의식,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학 교수들은 자신을 단순 피고용자로 여겨 자신을 선발한 경영자의 경영 방식이나 평가 기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때로는 비리도 눈감아주며 스스로 그에 종속되고 마는 경우가 더 많다. 그저 월급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냉소적인 회피가 주류를 이룬다. 학생도 별 주체의식 없이 졸업장이라는 자격증만 따면 그만이라는 식의 소극적 처신에 머문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특별히 사립대학의 온갖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사립대학의 문제는 대학 구성원이 자기 주장을 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으로 도피해 개인의 안일만을 보전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대학의 주체들이 교육의 공공성에 눈감으면서 소유 의식이 강한 설립자나 경영자의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 문제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이찬수 위원은 현재 한국종교교육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