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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남다른 정권(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3-07 17:10
조회
369

오인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역사 세계에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이를테면, 천 년 넘게 천동설이 지배해 온 세상에서 지동설을 본 코페르니쿠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에서 중력의 존재를 본 뉴턴(사실, 사과나무 이야기는 볼테르가 지어낸 허구지만 수사학적으로 쓰자면), 우연과 참화와 살육으로 가득 찬 역사에서 자유의 필연적 확대를 본 헤겔, 암흑 같은 일제 강점 하에서도 광복의 빛과 희망을 본 애국지사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조적 신앙의 도그마, 오래되었지만 그릇된 통념, 이상을 압도하는 현실의 힘, 내 한 몸의 안위 따위에 갇혀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과학적 진리나 진실, 자유 정신의 힘, 역사의 미래를 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다른 역사적 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나 모방의 전범(典範)으로 ‘추앙’을 받는다. 이런 경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남다름이란 비범함의 동의어이자 위대함의 유의어가 된다.


 


출처 - 경향신문


 

현실 세계에는 남들이 보는 것조차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한사코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수천 년이나 된 인류문명의 발상지임을 보지 못하고(/않고) 그곳에 무차별폭격을 명하는 사람, “밥과 자유의 선택은 굶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잔인한 퀴즈”(고(故) 정운영 선생의 표현)임을 보지 못하고(/않고) 파업노동자들에게 무조건 해고와 강제진압을 명하는 사람,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과거타령’이니 ‘친북좌파’니 하며 폄하하고 호도하는 극우들이 그렇다.


 

이들은 자국 이기주의, 이기적 탐욕과 왜곡된 인식, 착란적 사고방식에 빠져서 남의 나라에도 문명이 있고 사람이 살고 있음을, 생존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의 자유란 강자의 자유에 불과한 것임을, 자주독립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고투(苦鬪)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 이들은 몰역사적인 수구적 인물들로 경멸의 대상이나 반면교사로 취급된다. 이들의 남다름이란 비단 저열함의 동의어일 뿐만 아니라 위험함의 유의어가 된다.


 


출처 - 강원신문


 

남다르기로는 이번 정권도 빠지지 않는다. 불의한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던 검찰이 권력 그 자체가 된 것도 남다르지만,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는 “‘검폭’들의 전성시대”(한겨레신문, 정의길 기자의 표현)도 우리 역사에 일찍이 없었다. 어지간한 핵심 권좌는 죄다 검사가 꿰차고 앉았고, 검사 일가붙이는 죄가 있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시중에는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는 말이 떠돈다고 한다.


 

출처 - 경향신문


 

하긴, 검사의 아들은 젊은 나이에 퇴직금 50억 원을 받아도 무탈하고, 검사의 아내는 형사사건의 무마를 대가로 협찬을 받았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소환조사 한번 없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또 어떤 검사는 검찰 인권감독관이었던 시절에 자기 아들이 가해자였던 학교폭력에서 끝장 소송을 제기하여 피해자들 괴롭혀서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검사 출신 대통령에 의해 공직에 임명되기도 한다. 반면에 검찰에 찍힌 사람은 무고한 일가붙이까지 죄다 조리돌림을 당한다.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제거할 목적으로 수백 번의 압수수색과 망신주기용 소환, 쪼개기 영장 청구를 남발한다.


 

나라 밖의 일을 다루는 것도, 나라 안의 일 처리만큼이나 남다르다.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놀랍게도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삼일절 기념식에서 내뱉은 말이란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세계적 대세에 순응하기 위한 유일한 활로”라고 외친 남다른 매국노 이완용이 되살아난 걸까?


 

설상가상으로 6일에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재원을, 일본 기업은 쏙 뺀 채 국내 기업들의 자발적(?) 출연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망발도 이런 망발이 없고,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이건 “순전히 한국 기업의 돈으로 소송에서 진 일본 기업의 채무를 면책시켜주는 안”(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의 말)이고, “대한민국 행정부가 대한민국 사법부 판결을 무력화시킨 ‘사법주권의 포기’이자, 자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제2의 을사늑약’”(<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다. 게다가 일본의 수출규제가 해제되기도 전에 WTO 분쟁해결절차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억을 2018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9월 대법원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아베 정부는 2019년 7월, 불화수소를 비롯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의 한국 수출을 막았다. 그리고 그다음 달에는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에 당시 문재인 정부는 9월 세계무역기구에 일본을 제소했고, 아직도 일본은 수출규제조치를 해소하겠다는 의사나 일정을 내비친 적도 없다.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는데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먼저 용서를 비는 형국이다. 이달 중에 열린다고 하는 기시다-윤석열 회담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NMIA, 지소미아)도 정상화될 거라는 소리도 들린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고, 얼빠져도 이렇게 얼이 빠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민다. 이 정권의 남다름은 비범함-위대함이 아니라 저열함-위험함에 가깝다. 가깝다니, 위험함 그 자체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평가에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는 근본적 선(the Good)의 문제가 담겨 있다. 노예제도는 악이므로 노예 문제는 이렇게 봐도 되고 저렇게 봐도 무방한 가치중립적 판단이 허용되지 않듯이, 한 나라의 백성 전체를 식민지 노예로 삼아서 부린 식민 지배에는 역사적 평가의 다양성이 있을 수 없다. 악을 선이라고 포장하는 정권은 위험하다. 역사 세계에서도, 현실 세계에서도 지금처럼 빈약한 역사의식을 지닌 ‘검폭’에게 너무 큰 권한이 위임된 상황은 없었다. 근본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던, 남다른 매국노 이완용이 기를 쓰고 추종했던 대세의 끝은 망국이었다. 권력자의 편향된 생각과 뒤틀린 오만은 개인의 망발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생존과 안녕, 국가의 존립과 위신에 심각한 위험요인이 된다. 참으로 남다른 정권을 개탄하는 이유다. (물론, 왕조 국가가 아닌 민주국가에서는 줏대 있는 주권자들에 의한 권력 위임 철회-정권 몰락의 촉발요인도 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