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고해성사 단상(서상덕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1:03
조회
216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밑 성탄절을 앞둔 시즌이 다가오면 특별히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도 뭐가 궁금해선지 마음이 동해 성당이나 교회를 기웃거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맘 때쯤 천주교나 성공회 성당을 들러본 이들이라면, 성당 한 켠에서 길게 줄을 지어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한 신자들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뇌를 자극한 줄은 바로 세간에 ‘고백성사’로 알려진 ‘고해성사’를 보기 위한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세례성사를 받은 이들이 세례 받은 이후에 지은 죄를 고백해 하느님께 용서 받고, 하느님과 이웃, 교회 공동체와 화해하는 성사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을지라도 세속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 은총을 상실하고 하느님과 친교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 인간이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느님 은총의 지위와 하느님과의 친교 관계를 회복시켜 줄 매개체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고해성사다. 죄를 범한 인간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떠나 살았던 삶에서 다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회개'의 삶, 하느님과의 친교 관계를 회복하는 '화해'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고해성사에서 방점은 ‘화해’에 놓여 있다. 세속의 온갖 죄에 노출돼 있는 인간에게 하느님과 이웃,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을 열어주는 게 바로 고해성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고해성사가 인간을 구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에게 진정으로 죄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성사이고, 다시금 새롭게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얻게 하는 성사라고 가르친다. 이런 까닭에 비신자들이 봤을 때는 의아해할 구석도 없진 않지만 많은 신자들이 죄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원의를 갖고 고해성사를 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죄에 대해 고해성사를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십계명을 거슬러 하느님을 배반한 큰 죄를 범한 경우에만 고해성사를 보도록 한다. 하느님 은총을 잃지 않을 정도의 소죄, 즉 용서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는 고해성사가 아니더라도 참회나 영성체로도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른 죄가 고백 때문에, 보속 때문에 사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고 용서하신다. 고백은 뉘우치는 마음의 한 가지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은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그렇게 이뤄진 고해성사 또한 대죄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죄가 용서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죄 때문에 아파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죄가 용서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다음 생에도 갚지 못하면 다시 또 태어나 그 다음 생에서라도 갚아야 한다. 따라서 가톨릭적 입장에서 보자면, 죄를 범한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 사랑과 은총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성사가 바로 고해성사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고해성사를 ‘통과의례’ 정도쯤으로만 여기는 흐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현상이 횡행하는 대표적인 곳이 정치판이다.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하고도 대국민 고백성사를 했다며 면죄부를 얻은 양 의기양양해하는 정치인 정도는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국민이 맡긴 곳간을 고스란히 다른 나라에 내주고도 자신은 하느님 앞에 떳떳하다고 밝히는 이들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교언영색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나라 곳곳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도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들먹이는 이들은 또 어떤가.

세속에서 더 이상 고해성사를 할 일이 없어질 때야말로 신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할 때는 정직한, 참된 고해성사만이 세상을 살리고 궁극에는 자신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죄만을 고해했다면, 이제는 자연을 파괴하고 창조질서를 어지럽힌 죄에 대해서도 고해성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가톨릭교회는 창조 질서와 관련해 이렇게 가르친다. "더 이상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분리해서 볼 수가 없다. … 나의 탐욕과 부주의로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는 것도 창조주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실제로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는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죄'이다."

한 해를 보내며,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만큼의 고해거리를 안고 살아왔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것이 이웃과, 세상과, 전 우주와 화해하는 시발점이다.

**팁 : 회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느님 은총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 그분 은총에 마음이 열려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하는 이는 참 생명도 누릴 수 없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