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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 없는 우스운 얘기(황미선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1:01
조회
225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후배가 근무하는 송파구 잠실소재 모 초등학교에서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연간 정해진 횟수의 연수를 실시하게 되어있는데 그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연수물을 만들어 배부하기도 하고 예산을 들여 강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그날 후배 학교에서는 강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들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강사는 교장과의 친분(?)을 밑거름으로 본인이 저자인 책을 사줄 것을 부탁하였고 학교장은 어떠한 논의과정도 없이 학교예산을 사용하여 교사 연수를 위한 명목으로 몇 십 권의 책을 구입해 주었다. 강사가 가고 난 후 책을 교사들에게 배부하였고 그 책을 접한 교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책의 겉표지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나오는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고, 제목은 ‘선생님이 웃어야 아이들이 웃지요’로 창의력을 키우는 유머 모음집이라는 부제를 붙여 그 내용을 짐짓 짐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기대한 것과는 달리 곳곳에 문제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성을 도구화하여 쓴 음담패설이 유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성차별과 여성 비하,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일상 생활인양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 부인 생일 선물을 사러 가서……………………(기타)

조 선생님은 능글맞은 데가 있다. 부인 생일이 다가오자 부인에게 장갑을 사 주려고 가게에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장갑을 사려니 사이즈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머뭇거리자 예쁜 아가씨 점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손을 한 번 만져보실래요.”
남자는 아가씨의 손을 만져보고는 장갑을 하나 골랐다.
물건을 사가지고 나가던 조 선생님은 다시 가게로 돌아와 말했다.
“이왕 사는 김에 브래지어와 팬티도 하나씩 살까 하는데요.”

⊙ 호박잎……………………(유연성)

노처녀인 변 선생님이 길을 가다가 바람에 스카프가 날아갔다. 마침 옆에 지나가던 남자가 스카프를 주워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호박잎이 떨어졌네요.”

⊙ 밤 12시 집안 풍경 4제……………………(재구성력)

ㆍ되는 집안 - “공부 그만 좀 하고 자거라.”
ㆍ안 되는 집안 - “이 녀석이 몇 신데 아직 안 들어와.”
ㆍ막 가는 집안 - “아버지 또 안 들어와.”
ㆍ콩가루 집안 - “이놈의 마누라가 아직도 안 들어와.”

이런 종류의 글들이 서점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저자는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교육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교총 전 회장이다. 그의 경력(2007~ 열린 좋은교육바른정책포럼 공동대표/ 2006 ~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2004 ~ 제32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1981 ~ 1982 중앙교육연수원 조교수 겸 교육정책과정 실장 / 1981 ~ 1981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 1973 ~ 1978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반인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다. 그런 빵빵한(?) 경력으로 후배가 근무하는 학교처럼 교사 대상의 강의도 다니고 죽천(竹天)이라는 필명을 빌어 쓴 책을 구입하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관련 음담패설에 선생님을 주어로 하여 글을 쓴 것도 그렇고 이 책을 통해 유창성, 유연성, 재구성력, 정교성, 독창성 등의 훈련이 필요하다며 창의력 개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 그의 인식론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그의 뇌구조가 의심스럽다.

실명확인을 위해 이 책을 출판한 원미사에 확인을 하여보니 현재 후배학교 교사들에게 배부하였던 그 책을 다시 회수하기로 했다고 한다. 담당자는 출판한지 오래된 것도 아닌 올해 7월에 출판된 책이라며 저렴하게 서점가로 주문하였고 학교로 들어가는 것이니 서류도 다 갖추었는데 반납한다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구입의 의사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 나에게 친절하게도 이런 일도 있으니 구입하려면 내용을 살피고 결정하라는 조언까지 해 주었다. 저자의 약력이 무엇이든 정당한 과정을 밟아 누구든지 출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단체의 수장을 지낸 사람이 이런 책을 썼다는 것과 이런 내용이 창의력을 키운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인식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2010년 발생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이 1,012건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평균 2,8건의 아동성폭력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조두순 사건이나 김길태 사건, 그리고 최근 도가니 영화를 통해 알려지게 된 장애아동 대상 성폭력사건 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법들이 사건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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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사람들의 기억이나 관심, 즉 여론에 따라 일관성이 없이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여러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 그리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성으로 인한 불평등... 이런 것들은 앞으로 타파되어야할 사회의 암적 요소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사건들과 연관시키는 것이 과도하다 여겨질 수 있으나 사회 구성원들이 가진 사람들의 인식은 사건 발생과 연관이 깊은 것이고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들의 인식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가지는 인식은 매우 중요한 교육적 요소이다. 올바른 교사의 인식은 아이들의 올바른 인식을 기대하게 한다. 최대 교육단체의 수장이었던 강사가 가진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그가 교사들을 연수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또한 그런 사람을 강사로 초청한 학교 책임자, 또한 학교의 예산을 개인 돈처럼 어떠한 논의과정 없이 사용하는 학교장의 태도, 책의 내용 확인도 없이 교사들에게 배부한 학교 당국의 처사 등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