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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보한다는 믿음?(정범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8-16 09:44
조회
1034

정범구 /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 때 현실정치에 몸 담았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게 2000년이었으니 벌써 23년이 지났다. 당시 상황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판에 휩쓸리게 되었다. 보람보다는 회의와 좌절을 더 많이 경험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정치도 하나의 직업으로, 사회 분업상 누군가는 맡아야 한다는 생각, “공익근무”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울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대접 받는” 재미에 살짝 익숙해져 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나를 짓누르는 생각은 “이게 과연 가성비 있는 직업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지역구(경기도 일산) 관리와 상임위 활동, 또 당직을 맡아 당의 일 까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움직이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회의는 “과연 나의 노력으로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출처 - KBS뉴스


정치는 비용도 많이 드는 것이어서 나는 당시 하루에도 3개의 사무실(국회의원 회관, 지구당 사무실, 당사 사무실)을 전전하며 뭐라도 하는 것처럼 바삐 지냈다. 일상은 번잡하고, 세상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큰 틀에서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았고, 기득권과 관습은 완고하였다. 직장이랍시고 출근해야 하는 국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시 전쟁터”였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상임위는 문화관광위였는데 방송을 관할하는 위원회였기 때문에 방송 주도권 장악을 위한 여야간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트집잡기도 지겨웠지만 여당 “친위대”의 날선 대응도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전쟁터인 곳을 직장삼아 출근하는 심정은 무거웠다.


출처 - 경향신문


정치인으로서 나의 회의가 극한에 다다랐던 것은 2003년 초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대립이었다. 명색이 진보정부라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되던 이라크 파병은 명분상으로도, 실리상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었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후 곧바로 드러난 사실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후세인 정부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이 대량살상무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고서는 이미 유엔 안보리 조사단 보고를 통해 나와 있었고, 이 문제를 나와, 당시 국회에 결성되어 있던 “반전평화의원모임”이 주장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투부대 파병을 밀어부쳤다. 미국이라는 “큰 형님”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는 논조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18번이었는데 기대를 걸었던 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에서는 별 수가 없었다. 참고로 당시 슈뢰더 총리가 이끌던 독일 정부는 끝내 부시의 파병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NATO의 굳건한 동맹 당사자였고 독일에 아직도 수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부시의 침공 놀음에 응하기에는 명분이 약했을 것이다. 반면 노동당 출신 총리로 “부시의 푸들” 소리를 들어가면서 까지 영국군을 파견했던 토니 블레어는 이 전쟁 책임으로 내내 시달렸다. 그는 2015년 10월,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영국군은 179명의 전사자를 내고서야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의원들의 노력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전원위원회”까지 열며 이라크 파병을 막아보려 하였지만, 이미 정해진 각본 따라 진행되는 파병 계획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국회의원으로서 무력감이 밀려왔다.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현실정치에 참여했던 나의 지난 행적이 모두 무화되는 것 같았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의원이라는 ‘빳찌’를 달고서도 결국 아무 일도 못해 내는 것 아닌가?“,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내내 내게 던졌던 것 같다.


무기력감과 회의에 빠져 보내는 하루하루가 무척 힘들었다. 매일매일 닥쳐오는 정치인으로서의 일상을 감내하면서 이런 무기력증과도 싸워야 하니 힘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줄기 생각이 광명처럼 스쳐갔다. “어제 오늘만 보지 말고 좀 긴 호흡으로 과거를 돌아보자.” “그래도 역사는 꾸준히 앞으로 진보해 왔지 않는가? 20년 전(1980) 광주의 학살에 절망하고, 전두환 군부의 폭압에 좌절하던 그때를 돌아보면 세상은 그래도 얼마나 앞으로 나아 왔는가?” “군부정권이라는 노태우 정부에서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중국, 러시아와도 국교를 개설하지 않았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수평적 정권교체(1998)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등등의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제 오늘의 현실만 보면 답답하지만 그래도 5년 전, 10년 전을 생각해 보면 역사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요새 이런 믿음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공산당 언론”이라고 말하는 인사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히고, “극우 유튜버” 논란을 빚은 인물을 통일부 장관, 전직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공공연히 지칭한 인물을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이란 직책에 임명하는 윤석열 정부. 엄청난 사람들이 안전사고로 죽어가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나 전 정권 책임으로 돌리는 이런 전대미문의 뻔뻔한 정부, 어렵게 쌓아온 한반도 평화외교의 기조를 하루 아침에 뒤집어 버리고 대북강경발언만 뻥뻥 쳐대면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로 몰아가는 이 정부를 보면서 기가 막히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나훈아 말대로 정말 “세상이 왜 이래?”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게 위안거리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런 “반동”이 우리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에 호소하며, 집권 4년 동안 미국과 세계를 혼란 속에 몰아넣은, 그리고 미국 사상 초유의 의회난입사건을 부추긴 트럼프가 여전히 유력한 미국 차기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나치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독일에서 최근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집권당인 사민당(SPD), 녹색당 등을 제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제 2당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 등은 과연 그동안 역사가 꾸준히 진보해 왔던 것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 역시 겪을 것은 다 겪고 가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다. 한 때 민주화와 산업화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범국가, 촛불혁명이란 유례없는 비폭력혁명으로 정부를 바꾼 나라, 그 성공 스토리 이면에 자리잡은 허구들을 바로잡지 않고는 이런 “역진”, 이런 “반동”은 예고됐던 것이 아닌가? 산업화에는 성공했지만 재벌 중심, 투기세력 중심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정치적 민주화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의 많은 과제들은 아직 의제 설정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성장 일변도 사고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전세계적 기후위기는 새로운 성찰을 요구한다.



출처 - 위키백과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바스티유를 점령한 민중들에 의해 구체제(ancien regime)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 반동과 혁명의 반복이 있었다. 겪어야 할 것은 결국 다 겪어야 했던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에너지를 믿으며 내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본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