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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當代)를 산다는 것(정범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1-03 08:51
조회
581

정범구/인권연대 운영위원


출처: 경주시청


“역사를 돌아보면 정답은 뻔히 보이지만 당대는 늘 혼돈이고 집단적 착각이 난무한다. 얼마나 많은 주장들이 역사적 헛소리들인지, 당대를 규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디.” (조선희, “그리고 봄” 중에서)


인권연대로부터 발자국 통신 원고 청탁 문자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원고 마감이 1월 1일까지란다. 엄청 부담스럽다. 새해 첫날이니 좋은 덕담도 해야 하겠고, 새해를 전망해 보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해야 할텐데 지금 시국에 그게 가능하겠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낙망과 좌절, 우울한 나날들이 많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새해 첫날 좋은 이야기를 해야지, 왜 지나간 날들의 우울을 되씹는가 하는 항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새해라고 모든 것이 다 장밋빛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1년 반을 돌아보면 우리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급속도로 망가져 갈 수 있는가 하는 자괴감에,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해 놓았던 일들이 결국 이 정도였던가 하는 한탄, 어처구니 없는 사태 진전을 바라보면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무력감 등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나이를 먹었다고 더 지혜로워 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을 갈아엎는 꿈을 꾸기에는 이제 체력이 받쳐주지 못한다. 1200만 명이나 봤다는 “서울의 봄” 같은 영화를, 멀쩡한 정신으로 보기 어려워 아직도 엄두를 못내는 것도 따져보면 체력이 감당하지 못해서이다. 분노로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도 이제 총량에 한계가 오는 것 같다. 작가 조선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동안 쌓였던 분노와 스트레스의 에너지로 터빈을 돌렸다면 아마 온 집안이 쓰고도 남을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탱크와 중앙정보부, 보안사, 정보경찰 등을 겹겹으로 동원하여 촘촘히 자신의 장기독재를 위한 그물망을 짰던 박정희도 결국은 그의 심복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1979년 10.26은 18년 박정희 장기독재에 저항해 나선 그해 10월 부마항쟁의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시효를 다한 “유신 독재”는 이제 다가올 “서울의 봄”에 그 자리를 물려줬어야 했다. 그러나 그 “봄”은 12.12를 거쳐 저 통한의 5.18로 이어졌던 것 아닌가? 1979년 10월 25일, 하루 앞으로 다가온 박정희의 죽음을 예측한 “당대인(當代人”도 없었을 뿐 아니라, 10.26에서 12.12를 예견하고, 거기에서 이듬해 5.18을 가늠해 본 사람도 없었다. (44년이 지난 지금은 뻔한 역사적 현실로 되었고, 20대 젊은이들은 영화관에서 그 역사를 배우게 되었지만)


<1945년 12월 16~27일 모스크바 3상회의> 출처:울산저널


1945년 해방의 혼란기 속에서, 미소양국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 속에서, 남북분단을 피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오늘날에 와서 보건대, 이른바 모스크바 3상회의(1945. 12) 결과를 따르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전승국인 미.영.중.소 4개국이 후견하는 조선임시정부를 거쳐 5년 후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것이 골자인데,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강대국들이 그나마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미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통한 권력장악에 골몰한 이승만은 이 이슈를 찬탁 대 반탁의 구도로 몰고 가면서 미소공위를 결렬시키고, 끝내 분단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찬탁/반탁 대결구도에 순수한 민족주의적 열정만을 앞세웠던 백범 김구는 결과적으로 “행동대장”의 역할을 맡았을 뿐, 현실적으로 분단을 막아내는 데 실패하였다. 이후 남북협상을 위해 북행길에 오르지만 이 역시 결과적으로 북쪽의 분단정부를 추진하고 있던 김일성의 각본에 “놀아 난” 꼴이 되었다. 오늘날 시각에서 본다면 미소가 협력과 대립을 반복하는 당시적 상황에서, 여운형과 김규식 등 온건세력이 추진했던 좌우합작노선이 그나마 분단을 피할 수 있었던 합리적 방안으로 보이지만 역사는 그 쪽으로 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뻔한 일이 돼버린 일들이, 당대의 시각으로는 어느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중요하고, 당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흐름, 각 정파의 이해관계, 시대적 주역들의 역량, 이런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상황을 판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인데, 이런 전지적 시점을 갖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또 흐름, 대세와 관계없는 자신의 신념, 교조가 객관적인 정세 판단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인용하는 것이 적당하지는 않지만 백범 김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그것이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으냐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로 판단해야 한다.” 그는 이런 신념이 있었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조선을 병합하고 만주를 침탈한 뒤 중국까지 먹어들어 오는, 소위 일본이 천하대세인 시절에 일본군대의 만분의 일도 안되는 병력으로 광복군을 조직히고, 윤봉길, 이봉창의 항거를 조직하며 일본에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 독립이 유일하게 옳은 길이었기 때문에 풍찬노숙과 유랑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제 36년을 버텼다. 그러나 바로 이런 신념에 따른 정세인식으로 해방공간에서 반탁의 선봉에 서고, 결과적으로 정적인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 시나리오에 일조를 하게 된다. 뒤늦게 분단을 막고자 북행길에 오르지만 이미 대세는 냉전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남북의 분단세력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시속에 밝았던, 그래서 조국을 배반하게 된 인물들은 어땠을까? 매국 5적의 첫 대가리에 오르게 된 이완용은 당대 최고의 수재라고도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그가 이해한 당대는 어떤 것이었을까? 조선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지고 미개한 조선민중을 대일본제국의 충용한 신민으로 살게 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마찬가지 질문을 한때 “조선의 문호”라고도 불리웠던 춘원 이광수에게 던져 본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끌려나온 그에게 검찰관이 물었다. “왜 친일하였는가?” 이광수 왈, “나는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독립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소.” 이건 믿음, 소신의 문제일까? 아니면 당대를 인식하는 빈약하고 천박한 역사의식의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눈앞의 먹을 것을 탐하는 개돼지의 본능이었을까? 


당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1찍”이니 “2찍”이니 하는 상호를 향한 멸칭(蔑稱)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인식의 소산일 것이다.


현대가 담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세계 몇 번째로 3050 클럽(3만불 이상 소득, 5천만 이상 인구)에 들었다거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모범적으로 달성한 나라가 됐다거나 하며 한동안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착각에 푹 빠져 있다가 지난 1년반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독선, 파렴치함에 진저리 치다가도,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정권이 등장하게 된 함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달성했다고 믿었던 산업화, 민주화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었나 하는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저런 형편없는 정부를 갖게 된 현실에 분노하다가, 그걸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의 모습을 보면 더욱 열이 치솟는다. 두 정치세력의 모습은 마치 편도 2차선 국도를 가로막고 서로 추월 경쟁을 하는 거대한 탱크로리 같다. 그 탱크 안에 담긴 게 서로 다른 거라고 주장하지만 그것도 알 수 없다. 어느 차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두 개 차선을 꽉 막고 서로 도긴개긴의 추월경쟁을 하는 그 뒤로 많은 차량들이 정체해 있는 모습만이 암담하다.


이런 모습이 당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기희생 없는 정치, 독점의 정치, 앞을 보여주지 않는 정치, 이게 과연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은 100도가 되면 끓고, 가스는 덮어 놓으면 폭발한다. 한국 사회의 여전히 무한한 에너지를 가로막고 있는 이 과두독점 정치의 끝은 어디일까가 궁금해지는 새해 아침이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