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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으로 간 인도 면직물(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2-26 14:26
조회
265
염운옥 / 인권연대 운영위원



 런던 사우스켄싱턴에 있는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은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두 박물관 사이를 가르는 도로명은 익시비션로드(Exhibition Road). 19세기 중반에는 런던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던 사우스켄싱턴에 박물관들이 건립되면서 생긴 거리 이름이다. 2017년 새로 만들어진 새클러 코트야드(Sackler Courtyard)는 익시비션로드와 연결되어 출입구와 공공 광장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 사진: 염운옥


<익시비션로드 새클러 코트야드> 사진: 염운옥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디자인과 장식예술 전문박물관으로 전시가 색다르다. 보통 박물관에서는 진본성(authenticity)이 중시된다. 유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여부가 전시실에 놓일 자격을 따지는 최우선 요건이다. 하지만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은 다르다. 전통적인 박물관처럼 진본도 소장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박물관에 놓이지 않는 복제품(replica)이 놓여있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답게 창조를 위한 모방에 걸작을 활용한다. 가구 전시 갤러리에는 의자를 잘라 단면을 보여주며 어떤 재료가 쓰였으며, 재료의 질감은 어떻게 다른지 느낄 수 있도록 관람자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는 전시도 마련하고 있다.


 디자인 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은 기원과 관련된다.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은 1815년 세계 최초로 열린 박람회 ‘대박람회(the Great Exhibition)’에서 유래했다.1) 성공적으로 끝난 대박람회 수익으로 정부는 사우스켄싱턴에 장식예술과 산업을 위한 박물관을 건립했다. 1857년 개관 당시 명칭은 사우스켄싱턴박물관(South Kensington Museum)으로 뒤떨어진 영국 제조업의 디자인을 개혁하고 소비자 대중의 취향을 교육한다는 목적을 내걸었다. 19세기 말 현재 명칭이 바뀌었다.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은 인도 유물이 많기로 유명한 박물관이다. 사우스켄싱턴박물관으로 개관할 때 인도박물관(India Museum) 컬렉션을 대부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인도 유물의 수집 주체는 동인도회사였다. 1600년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아시아에서 영제국 팽창의 주역으로 기능하면서 제국의 유물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권이 벵골만 콜카타에서 마드라스, 실론, 봄베이를 거쳐 인도 아대륙 전체로 넓어지면서 수집 지역도 점차 더 확대되어 갔다. 동인도회사가 수집하는 지역은 지배권이 확고한 인도를 넘어 동쪽으로는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자바까지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만 지역까지를 포괄했다. 동인도회사의 유물 수입 경로는 군사작전과 교역, 행정조사가 결합된 체계적인 프로젝트였다. 현지에서 표본과 보고서가 도착하면, 이를 과학적 자료로 목록화했고, 각 분과학문과 학회의 연구용 자료, 그리고 새로운 수집 프로젝트 수립을 위한 토대로 활용했다. 동인도회사는 과학 실천에 필수적인 정보와 소통의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컬렉션 기반의 분과학문 성립과 발전에 기여했다.2)


 영국의 해상무역 종사 상선 선원과 동인도회사 관리, 영국 육군, 영국 해군은 해외로부터 꾸준히 수집을 수행했다. 동인도회사 관리는 아마도 선박에 소량의 개인화물을 실을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제한된 규모로 사적인 거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기심의 방이 유행하면서 외국산 그림, 진귀품, 자연사 표본 등의 상업 거래 시장이 유럽에 활성화되어 있었음을 떠올리면, 동인도회사 관리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인도에 체류한 유럽인들의 많은 개인 수집품은 영국으로 보내져 가문의 재산으로 상속되었다.3)


 인도에서 제국의 중심 런던으로 들어온 영국 동인도회사의 수집품은 처음에는 회사 관리와 회사 관련 유력자들의 개인 소장품이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런던탑에는 무기와 갑옷이 전시, 린네학회는 자연사 표본을 소장했다. 하지만 가장 대규모로 인도 유물을 수집, 소장했던 곳은 인도박물관이었다. 인도박물관은 1801년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는 런던 리든홀스트리트(Leadenhall Street) 동인도하우스(East India House)에 문을 열었다. 동인도하우스는 기업의 본부인 동시에 물질문화의 전시장이었다. 인도박물관은 런던으로 사물과 정보가 집중, 축적되는 과정의 일부였다. 인도박물관의 설립은 개인적, 비공식적이었던 수집을 탈개인화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동인도회사 이사회(the Court of Directors)4)가 수집에 관여, 개입, 관리하기 시작함으로써 관리 방식을 중앙집중화, 체계화했다.5)


 인도박물관은 군사작전으로 획득한 약탈품의 공식적 저장소였다. 동인도회사의 영토 팽창에 따라 방대한 수고본, 회화, 보물, 진귀품 등이 수집 축적되었고 대중에게 전시됐다. 1820년 인도박물관 가이드북에 따르면, 무기, 갑옷, 왕관, 보석, 그리고 ‘티푸의 호랑이(Tipu’s Tiger)’가 관람객에게 인기를 끌었다. ‘티푸의 호랑이’는 남인도 지배자 티푸 술탄이 소장했던 소형 자동기계 오르간이다. 호랑이가 영국 병사의 목을 물어뜯는 모습을 하고 있다. 뚜껑을 열면 병사의 비명소리와 호랑이 울음소리가 난다. 이 유물은 원래 영국의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과 승리의 상징으로 제작되었으나 영국이 이 지역을 점령 지배하게 되면서 전리품으로 손에 넣은 것이다.


 1858년 동인도회사의 인도 지배가 종식되면서 인도박물관은 화이트홀 인도성의 한 부서로 편입되었다. 1875년에는 사우스켄싱턴의 한 건물로 이전되었다가 1879년 인도박물관이 폐관하면서, 일부를 제외한 컬렉션 대부분은 사우스켄싱턴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아마라바티(Amaravati) 조각과 수서본 등은 영국박물관으로, 자연사 표본은 자연사박물관과 큐가든 왕립식물원으로 이전되었다. 인도박물관이 폐관한 후 인도성 지하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유물들이 사우스켄싱턴으로 옮겨왔을 때, 초대 관장 헨리 콜(Henry Cole)은 감격에 겨워 “인도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데 사우스켄싱턴박물관 만한 곳은 없을 것이다”6)라고 말했다.


 현재 1층 전시실에서 인도관은 중국관, 일본관과 함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인도의 여러 신들을 표현한 석상, 불상, 스투파(탑)은 거대한 규모 때문에 관람자를 압도한다. 하지만 거대한 유물보다는 작은 유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관람자라면 인도산 수직물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대박람회 개최장이었던 수정궁(Crystal Palace) 축소모형이 놓여있는 1851년 대박람회 갤러리에는 인도산 직물이 있다. 지금 당장 유리 케이스에서 꺼내 둘러 입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문양과 질감이 아름답고 세련됐다.


<1851년 대박람회 전시실과 수정궁모형> 사진: 염운옥


<1851년 대박람회 전시실 인도산 직물> 사진:염운옥





 이 아름다운 인도산 직물은 대박람회에 전시되었던 것으로 이후 사우스켄싱턴박물관의 중요한 소장품이 되었다. 대박람회는 메트로폴리스와 주변부, 식민본국과 식민지, 영국과 인도의 차이를 가시화하는 장치였다. 영국은 인도라는 이해하기 어렵고 상대하기 벅찬 동양의 보물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인도는 영국이 지배하기에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문명의 발상지이며 영국보다 더 오래된 문명의 역사를 간직한 인도. 이를 대하는 영국의 시선은 매혹당하면서 동시에 경멸하고, 찬양하면서 또한 폄훼하는 모순적인 것이었다.


 인도 공예와 예술을 보는 상반된 시선은 자기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수정궁 인도 전시관에는 코이누르 다이아몬드와 자연자원뿐만 아니라 인도의 다양한 물산이 전시되었다. 특히 인도산 면직물과 견직물은 눈길을 끌었다. 대박람회에 출품된 인도산 직물은 극찬을 받았다. 정부는 박람회 전시품 구매 비용인 5000파운드 중에서 4분의 1을 인도 물품에, 다시 이 가운데 65%를 직물 구매에 지출할 정도로 인도산 직물에 관심을 보였다. 인도산 면직물 캘리코는 17세기 이래 유럽으로 들어온 인도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수직기로 짠 인도산 직물은 방직기계에서 대량생산하는 영국산 면직물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정교하고 섬세한 문양을 뽐냈다. 인도 직물 디자인은 영국산 혹은 어느 유럽산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으로서 영국의 위상을 과시하려던 박람회는 역설적이게도 영국산 제품 디자인이 식민지 인도보다도 뒤떨어진다는 쓰라린 패배를 드러내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실패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취했던 건축가와 예술가, 장식전문가들은 인도산 직물을 ‘올바른 원칙’에 입각한 ‘올바른 디자인의 전형’이며 영국 제조업자가 본받아야 할 ‘디자인 교과서’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수집과 전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재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은 세계 최대 인도직물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이 인도 직물 컬렉션은 원래 직물에서 필요한 크기만큼만을 오려 낸 ‘선택’과 ‘삭제’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잔존물들로서 침묵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인도 직물은 ‘상품’ 혹은 ‘인류학적 유물’에서 ‘미학적 감상 대상’이 되었다. ‘사물’(things)을 ‘유물’(objects)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떼어내기(detachment)와 탈맥락화(decontextualization)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의복이나 숄, 카펫에서 천 조각을 오려 내 견본을 제작하는 과정은 영국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 식민지 인도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지배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본래 용도가 있는 의복이나 숄, 카펫 등과 같은 직물에서 수집가의 선택에 따라 특정한 문양이 놓인 부분만을 오려 내는 수집 행위를 통해 직물은 박물관에 놓이는 ‘유물’이 된다. ‘장식예술박물관’이면서 동시에 동인도회사의 컬렉션을 이어받은 ‘식민박물관’이기도 했던 사우스켄싱턴박물관에 전시된 인도 예술은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의 광활한 대지와 인구, 다양한 종교와 문명이 공존하는 복잡성, 극단적이고 무절제해 보이는 풍습은 서구를 매혹시킨 동시에 서구로부터 배척당했다. 이제 좀 알게 되었다고 자신하는 순간, 인도는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다가왔다. 브라흐마(Brahma), 시바(Shiva), 비슈누(Vishnu), 락슈미(Laksmi) 같은 힌두 신들의 조각상만큼 서구인들에서 매혹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 인도 문화는 없었다.7) 인도양 지역에서 수집되어 인도박물관, 사우스켄싱턴박물관을 거쳐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에 안치된 인도의 유물은 지배했지만 완전히 지배할 수 없었던 인도라는 타자의 거울이었다.





1) 흔히 ‘만국박람회’로 알려진 대박람회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열리는 수많은 산업박람회의 기원이다. 1851년 런던 대박람회는 일찍이 산업화에 성공하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거느린 영제국의 번영을 과시하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공이 기획한 국가적 행사였다. 박람회장은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이 하이드파크에 지은 수정궁(Crystal Palace)이었다. 수정궁은 주철로 기둥을 세우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덮은 거대한 온실 같은 건물로서 축구장 18개 면적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팩스턴이 설계한 이 첨단 건축물은 이름 그대로 수정처럼 반짝이는 ‘빛의 궁전’이었다.
2) Jessica Ratcliff, “The East India Company, the Company’s Museum,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Natural History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Isis 107.3 (2016), p. 495.
3) Ibid., p. 502
4) 동인도회사의 운영은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실권을 갖는 구조였다. 이사회는 1773년 규제법(the Regulating Act of 1773)에 따라 설치된 것으로 실제적인 운영을 담당했다. 이사회 본부는 런던 리덴홀가 동인도회사 하우스에 있었다.
5) Jessica Ratcliff, “The East India Company,” p. 502
6) Bruce Robertson, “The South Kensington Museum in Context: An Alternative History,” Museum and Society 2-1 (2004), p. 5.
7) Partha Mitter, “The Imperial Collections: Indian Art,” Malcom Baker and Brenda Richardson, eds., A Grand Design: The Art of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New York: Harry N. Abrams, INC., Publishers, 1997, p. 222.


염운옥 위원은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