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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9·19군사합의와 잠꾸러기 국방부(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1-07 18:54
조회
199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9·19 남북군사합의가 5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정부에선 틈날 때마다 군사합의 때문에 안보위협이 심각하다고 한다. 특히 국방부는 군사합의에서 규정한 비행금지구역 탓에 우리 군의 대북 감시·정찰에 구멍이 생겼고, 도발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출처: 뉴시스


9·19 합의에 따라 남북은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고정익항공기는 동부와 서부 각각 40㎞와 20㎞, , 무인기는 동부와 서부 지역 각각 15㎞와 10㎞, 회전익항공기는 10㎞, 기구는 25㎞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이를 문제삼는 이들은 유사시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300여문의 조선인민군 장사정포가 최대 위협인데 이를 감시정찰하는데 제한이 되는 바람에 임박한 도발 징후를 포착하기 어려워 선제 타격이 여의치 않다는 논리를 편다. 


가장 앞장서서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주장하는 신원식(국방부 장관) 말을 들어보자. 그는 지난 10월 11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대화력전수행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9·19 군사합의로 인해 대북 우위의 감시정찰 능력이 크게 제한됐고, 국가와 국민의 자위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9월 25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낸 답변서에서도 “9·19 군사합의로 인한 군사적 취약성이 매우 많다”면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대북 감시정찰 능력 저하 및 근접정밀타격 제한’을 첫 번째 근거로 꼽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심각한 안보위협이라면 2018년 군사합의 체결 당시는 물론이고 그 뒤 몇 년 동안 대한민국 국방부와 국군은 도대체 뭘 했다는 말인가. 전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대한민국 국군이 설마 지난 정부에선 잠만 자다가 정권교체되자마자 ‘에구머니나’ 하며 일을 열심히 하려고 봤더니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걸 알게 됐다는 의미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군사합의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정경두(전 국방부 장관)는 “정찰기 띄워서 눈으로 적군을 살피던 시대라면 비행금지구역이 큰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은 21세기”라면서 “우리 군과 주한미군은 비행금지구역을 무시해도 될 수준의 최첨단 감시정찰자산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 자체는 군사합의 이전부터 존재했다. 유엔사에서는 군사분계선 남쪽 5마일을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운영해왔다”고 덧붙였다. 현직 군 관계자에게도 물어봤다. 그는 “현재 군에서 보유한 공중정찰자산은 충청남도 상공에서도 북한 전역의 항공기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됐다. 대한민국 국군은 잠자는 숲 속 공주는 아녔나 보다. 


신원식의 주장 자체가 ‘육군 중심 사고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비행금지구역에 초점을 맞추는 건 전형적인 육군, 그것도 20세기 육군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으로 인해 감시정찰에 영향을 받는 건 사실상 육군에서 운영하는 무인기 ‘송골매’ 정도밖에 없다. 송골매는 정찰 가능 거리가 5㎞가 채 안된다”면서 “군사합의 이전에도 송골매는 감시정찰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한강하구부터 백령도에 이르는 지역은 적용대상이 아니다”면서 “그 지역은 공중정찰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군사합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육군 무인기 송골매> 출처: 머니투데이


비행금지구역 문제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어떻게 보는지도 중요하다. 2018년 군사합의 당시 국방일보는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판문점 선언 이후 9·19 군사합의 체결을 위한 남북장성급(실무)회담 개최 전후 유엔사 및 주한미군 측과 수십 차례에 걸쳐 고위급 및 실무급 차원의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면서 “특히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포함한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관련 내용은 남북 간 최초 논의단계부터 유엔사 측에 정보공유 및 의견수렴 과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다행이다. 주한미군 역시 잠만 자고 있진 않았다. 역시 한미동맹은 철통같다. 


출처: 동아일보


9·19 군사합의는 NLL이나 휴전선 등에서 남북 간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군사합의를 효력정지시키면 어떻게 우발적 충돌을 관리한다는 것일까. 정부가 생각하는 대안은 뭘까. 없다.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도발에는 응징이 있을 뿐이다. 압도적 화력으로 확실히 응징하고 끝까지 응징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응징하면 북한도 더 강하게 나오고, 그럼 진짜 전쟁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국방부와 국군은 그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없기 때문이다. 권한이 없으면 책임도 없는 법이다. 


권한이 없으면 책임도 없는 법이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