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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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탄핵 촛불항쟁이 한창일 무렵, 경남 창원에서 열린 소규모 집회를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자신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소개한 청년이 연단에 올라 청중에게 물었다. 박근혜가 탄핵당하면 나의 삶은 나아지는 거냐고, 최저임금에 고용마저 불안한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거냐고. 나는 그가 면전에서 묻는 것처럼 느껴져 마땅한 답을 찾느라 허둥거렸다.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는 냉정한 비관도 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나는 이내 침울해졌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촛불항쟁의 보수적 성격  청년의 낮은 절규는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의제와 열망에 묻혀버렸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청년의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 학력의 서열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노동의 서열화는 총자본의 요구가 한국 사회에 관철된 결과다. 노동자끼리의 경쟁과 차별이 촘촘해질수록 자본의 지배는 용이해진다. 경쟁과 차별을 내면화한 노동자들은 선망의 눈으로 위를 보며 경멸의 눈으로 아래를 본다. ‘노오력’도 없이 정규직이 되려는 자들은 염치없는 불한당이 되었고, 앉아서 불로소득을 챙기는 건물주는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는 더욱 빠르게 보수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쟁과 능력을 숭상하는 신자유주의 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폐세포 깊숙이 퍼져 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2016년의 촛불 광장에서도 보수적인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촛불의 도화선이었다고 평가받는 이화여대생들의 평생교육원 반대 투쟁은 이대 졸업장의 희귀성과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류적이며 보수적인 저항이었다. 이때 맹아를 보였던 2030의 보수성은 몇 년 뒤 이른바 ‘인국공 사태’ 같은 계기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분출한다.  촛불의 최대공약수였던 대통령 탄핵도 다분히 보수적인 의제였다고 나는 평가한다. 경쟁과 차별을 강요하는 체제의 작동 원리를 그대로 둔 채 지배그룹의 얼굴을 바꾸자는 요구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 부패와 억지에 지친 국민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따뜻하고 성실한 대통령을 원했다. 시대가 문재인을 택한 것은 그가 박근혜의 반대 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선하고 정직하지만 보수적인 사람이다. 선도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앞장서 해결하기보다는 대중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답답하다. 과감한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사퇴를 제안했다가 호된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원했던 건 강력한 개혁이 아니라 따뜻한 포옹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촛불항쟁은 경제적 불만이 쌓여 체제 변혁을 요구한 혁명이 아니었다. 백낙청 교수의 제안대로 혁명이라 부른다 해도, 좀 더 인간적인 얼굴로 지배그룹을 바꾼 명예혁명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이 최전선이 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재인 정부가 좀 더 선명하기를 바랐다. 촛불정부라는 강력한 상징성과 지지를 바탕으로 좀 더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폐청산에 치우쳐 개혁은 뒷전이었다. 반대의 여지가 있는 개혁은 시도하지 않았다. 70%가 마지노선이라는 듯 지지율에 집착했다. 출범 첫해부터 부동산이 들썩거렸다. 대통령이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주자 시장은 미친 듯이 반응했다.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라는 탄성이 흘러넘쳤다. 따뜻한 포옹이 가져다준 안도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교조 재합법화, ILO 핵심협약 비준, 차별금지법 제정 등 주요 진보적 이슈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보수적 태도로 일관했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공정거래위 전속고발권 폐지 방침 철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도 큰 틀에서 같은 흐름에 있다. 이런 보수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촛불항쟁 과정에서 이미 잉태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이라고 할 만한 정책을 추진한 게 있는지 애써 떠올려 본다. 4대강 복원을 위해 몇 개(!)의 보를 열었고, 오랜 주저함 끝에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으며, 탈원전 공약을 실행에 옮겼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논점이 너무 많아 생략한다) 탈원전 공약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와 검찰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지만, 나라를 흔들어 놓을 정도로 강력하진 않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있어서만은 사생결단의 전선이 형성돼 있다. 이게 단지 문재인 대통령과 지지 세력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만)일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선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공방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검찰개혁이 최전선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 상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다른 분야와 달리) 개혁 의지를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리버럴 정부의 딜레마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과의 싸움이란 명분이 검찰의 방패가 되어줄 거란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정권 핵심부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수구세력은 리버럴 정부의 약한 고리가 된 검찰개혁 전선에 총집결해 있다. 특권이 특권인 줄도 모르는 괴물이 된 윤석열은 그 대표선수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남은 개혁 전선이라는 지적은 맞지만, 집권세력의 의지만으로 형성된 전선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엘리트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엘리트 카르텔 깨기다  최근 한 사회비평가가 검찰개혁을 주류 엘리트끼리의 싸움이라고 비하하는 글을 봤다. 이 비평가 말고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이들은 대체로 노동문제를 비롯해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불평등 문제에 별 관심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보수적인 경우도 있어서 불만이 많은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엘리트들끼리(보수엘리트 : 진보엘리트)의 싸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검찰의 특권과 반칙과 내로남불을 없애는 게 엘리트끼리의 싸움(일뿐)인가.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으로 앉혀 노골적으로 검찰을 장악하는 권위주의 정부에선 충직한 개가 되었다가,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의 중립을 보장해주는 리버럴 정부가 되면 정부를 물어뜯는 불공정성을 고치자는 게 주류 지향인가.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들은 변호사 수임도 하지 않고 전화 한 통에 몇 억씩 챙긴다. 검찰이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진짜 이유가 여기 있다. 진실을 덮어 이익을 취하는 이 편법적 비리를 근절하자는 게 엘리트끼리의 싸움인가. 오히려 제대로 된 검찰개혁을 이뤄내야만 엘리트 카르텔을 깰 수 있으며,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법치주의에 이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류가 교체되었다는 헛소리  나에게 올해 최고의 헛소리를 꼽으라면 박성민이라는 정치평론가의 4·15 총선에 대한 촌평을 들겠다. 총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패배할 거라고 예측하던 그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으로 대한민국의 주류가 교체됐다고 말풍선을 부풀렸다.(이런 사람이 여전히 언론의 주요 코멘테이터이자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게 지금 우리 언론의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주류가 교체되었다는 주장은 눈뜨고 하는 잠꼬대에 불과하다. 교체된 건 4년짜리 의회와 5년짜리 청와대 등 일부 선출권력뿐이다. 교체되지 않는 권력(재벌·언론·관료 등)은 여전히 강고한 수구의 아성이다. 살아있는 권력은 임기가 정해진 선출권력만이 아니다. 검찰과 삼성, 조선일보야말로 우리 사회의 딥스테이트가 아닌가. 정부가 검찰개혁을 제외한 다른 사회경제 개혁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 건 온당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라고 해서 주류 지향이라고 폄하하거나 비아냥대는 행위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수구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검찰개혁을 비판한다고 창원의 청년이 바라는 세상이 빨리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영혼을 휘감고 있는 사유재산에 대한 맹신과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부수고, 노동자들끼리의 경멸과 질시를 포용과 연대의 정신으로 압도할 때 비로소 그가 바라던 세상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12-23 | hrights | 조회: 4556 | 추천: 51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느라기’. 웹툰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어 드라마로 방영 중이란다. 드라마는 즐기지 않고 웹툰보다 만화책이 친한 올드보이인 나는 며칠 전에야 이 드라마를 접했다. 이 드라마, 아주 불순하다. 그런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두 장면에 집중해보자. 장면① 제사를 앞두고 벌이는 신혼부부의 티키타카 남편 : “조금 일찍 가서 어머니 음식 하는 거 도와드려야하지 않을까?” 아내 :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남편 : “아참 ○○이네 돌잔치 있었지! 먼저 가 있어. 내가 돌잔치 들렀다 가서 도와줄게.” 아내 : “…… 돕는다구? 나를?” 남편 : “웅. 왜?” 아내 : “나는 느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남편 : “어, 음, 그런가……”  ‘도와줄게’. 나도 아내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장손이라 제사가 많은 우리집에서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 얼굴도 보지 못한 조부, 조모, 증조부, 증조모의 제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도왔다.’ 박하선 씨가 배역을 맡고 있는 민사선의 말은 지당해서 사실 토를 달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을 때 말을 하지 않는 남편 구영이의 태도가 좋아 보였다. 희망이 있다. 이 친구, 살아남아 사랑받을 거 같다. 장면② 추석 전날 큰아들 내외가 왔다. 마루에는 시아버지와 시작은아버지, 두 아버님을 위한 술상이 놓여 있고. 시어머니 : “오느라 수고했다. 구일이는 이거 마시고 좀 들어가서 쉬어라.” 남편 : “괜찮아요. 번갈아 운전해서.” ( A ) : “편한 옷 가져왔니? 갈아입고 일 시작하자. 준비는 다 해놨어.” ( B ) : “네?” 시누이 : “다녀오겠습니다.” 시아버지 : “너는 오늘 같은 날 엄마나 새언니 도와주지 않고 어딜 그렇게 나가!” 시어머니 : “시집가면 질리게 할 텐데 그냥 둬요!” ( C ) : “작은오빠도 나가는데 나만 갖고 그래.”시어머니 : “너무 늦지 마라.” 시동생과 시누이 : “다녀오겠습니다.” 며느리 : “잠깐만요!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 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이랑 작은아버님은 술 드시구, 구영 씨랑 미영 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구,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 다들 너무했다!” 시어머니 : “난 괜찮다!” 며느리 :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니랑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며느리 : (남편 구일이를 보면서) “어때? 내 예상이 맞았지?” 며느리 : “어머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장면②에는 퀴즈가 있다. 어렵지도 않다. 괄호에 들어갈 화자(話者)는 누구인가? 정답은 이 글 끝에 있다.  이 장면 역시 데자뷰가 없을 수 없다. 우리집의 추석 준비 세팅은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내도 남편을 비교적 잘 간택했고, 아이들도 나를 닮지 않아서 배려심이 있는 편이라 협력도가 높았다. 나는 술상을 차려놓더라도 전은 부치면서 한 잔하는 쪽이었다. 사람이 최소한의 눈치는 있어야 한다.  드라마의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저렇게 기개 있는 며느리는 리얼리티가 좀 떨어진다. 근데 이 부부도 미리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 걸 보면 희망이 있다. 이 남편 역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카카오tv  세상은 변한다. 변하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 거기서 생기는 갈등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역사학도의 관점에서 제사, 추석이나 설날의 차례, 시가와 본가(친정)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을 이해하는 몇 가지 가설과 그에 따른 실천이 있다.  먼저 제사. 예전에 친척들은 모두 동네 근처에 살고 내일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시(子時 밤12시)에 지냈고, 옆집 상철이 엄마, 완구 엄마가 도와주니까 제사상도 수월하게 차릴 수 있었다.  2020년을 사는 나는 인천이 집이고 직장이 전주이며 선산은 충남 성환에 있다. 날짜가 맞지 않으면 제수를 준비하는 아내를 ‘도와줄’ 수도 없다. 그래서 성묘와 집제사를 형편에 맞게 운용한다. 술은 화이트 와인이나 사께 등 맛있는 술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술이다. 조상님도 좋아하실 거라 믿는다. 음식은 제철 과일을 중심으로 차린다. 동태전과 호박전 그리고 삼색나물(시금치, 숙주나물, 고사리)은 아내가 힘들지 않다며 계속 유지하는데, 큰아이가 그걸로 비빔밥 만들어먹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아예 작은아버지, 고모들과 교통 편한 음식점에서 기일이 들어 있는 주말에 점심을 같이 하며 추모 예배를 보는 방법을 택하였다. 다들 좋아하신다. 맛있는 것도 먹고 얼굴도 보니까. 아이들에게도 내가 죽은 뒤 제사 지내지 말고 너희들끼리 밥을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후손들 힘들게 하는 건 조상님 귀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제사라고 부르든, 예배라고 부르든, 예불이라고 부르든 그 뜻은 하나이다.  음식 준비 같은 집안일에 대한 전래 방식의 분업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전쟁과 농사에 근력이 필요해서 집안 안팎의 노동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전쟁이나 직업이나 근력 위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대든 일반 회사든 여성이 얼마든지 남성에 뒤지지 않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전반이 그럴진대 집안일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건 교양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 변화의 결과이다. 이제 집안 안팎에서 노동을 분담하지 않으면 남편으로 간택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자연선택이 저 푸른 자연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순정품은 자동차 부품 광고에나 있는 것이지 인간 세상에 순정품은 없다.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관점이 섞여서 굴러가는 게 인간 세상이다. 불순한 게 정상이다. 아니 불순하게 보이면 정상이다. 앞서 소개한 ‘며느라기’ 장면②는 시가-체제를 거부하는 불순한 며느라기의 행동을 중심으로 포착했지만, 기실 이미 모두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체제였다. 하여 그 불순함은 불편함을 넘어설 계기를 담고 있다. 이런 불순함은 받아들이는 게 몸에 좋다.  정답 : A-시어머니, B-며느리, C-시누이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12-16 | hrights | 조회: 1635 | 추천: 19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오랫동안 인문학 분야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다가 십여 년 전부터 사회과학 언저리에 기웃거려왔다. 관련 공부도 좀 하고 강의도 해왔다. 특히 평화학에 관심을 가진 이후 정치학이나 사회학 같은 이른바 주류 사회과학의 맛을 살짝 보았다. 그중에서 좀 더 끌리던 학문은 사회학이었다. 정치학, 경제학, 법학 같은 학문은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다루는지 대강 와 닿았는데, 사회학은 이름만으로는 알 듯 말 듯 했다. 정치의 작동방식이나 행위 주체는 비교적 분명했고, 경제 같은 분야도 그런 편이었다. 그런데 사회학은 행위 주체를 딱히 규정하기 모호했고, 작동의 동력도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궁금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좀 더 알고 싶던 부분이 나름대로는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원천적 욕망이 복잡하게 표출되는 장소가 사회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부터였다.  국어사전에서는 사회를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이라고 간단히 규정하지만, 그런 사회라면 애당초 고민의 대상조차 못되었을 것이다.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등 넓은 의미에서 공동생활의 형태로 드러나는 인간 집단’이라고 좀 더 풀기도 하지만, 이런 정도의 규정은 ‘사회’라기보다는 소박한 의미의 ‘공동체’, 그것도 건조한 형식적 정리에 가깝다.  사회는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소박하거나 간단하지도 않다. 칸트는 사회(Gesellschaft)를 자유로운 인격적 존재자들이 외부적 자유의 원리에 기초해 인격적 영향을 주고받는 공동체(Gemeinschaft)라고 해설한 바 있다. 사회에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상위의 장치인 ‘법’도 있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적절히 통제하는 법이 작동하고 있기에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무덤덤한 형식적 정리이다. 현실에서의 사회는 법적 정신이나 원칙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격들이 서로 인격적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고 불편하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그 영향이나 효력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긍정적이었다면 굳이 사회의 본질을 살펴보려 애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교묘하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며 집단적 질서 안에 인격을 속박시킨다. 자유로운 주고받기는커녕 욕망이라는 발톱을 감춘 공격 행위일 때가 많다. 서로가 서로에게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러다 보니,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 긴장과 갈등은 계속된다. 몸과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현실에서의 사회는 철학자의 사전적 정의와는 달리 자유조차 상위의 통제장치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교묘하게 사용한다. 사회에는 법적 견제 장치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더 심층적 동력이 작동하고 있다.  제일 강력한 동력은 아무래도 자기 생존과 확장을 위한 욕망일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적 행위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성과 지향의 신자유주의 체제일수록 욕망은 더 노골화한다. 이런 자기 확대를 위한 욕망들이 얽히고설켜 집단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신자유주의가 성과의 축적을 찬양하는 경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성과를 산출하기 위한 욕망은 물건이든 돈이든 일종의 ‘자본’을 확장시키는 근본 동력이 된다. 이렇게 사회의 속살을 찾다 보다 보면 경제의 문제와 연결된다. 경제란 무엇이던가.  경제에 해당하는 영어 ‘에코노미(economy)’의 원뜻은 ‘집(eco)의 규칙(nom)’이다. 서로 교류하며 물건이나 화폐가 오가는 집안의 질서가 시원적 의미의 경제다. 그러다 개인이나 집안끼리 재화가 오가는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면서 그 영역이 대폭 확장되었다. 그 확장된 영역이 오늘 우리가 말하는 경제의 토대이자 영역이다. 이 경제의 덩치가 급속히 커지면서, 정치는 경제를 선도하기보다는 경제가 더 확장되도록 뒷받침하는 수단이 되었다. 사적 혹은 가정적 영역이었던 ‘에코노미들’이 중층적으로 뒤섞여 다차원적으로 뻗어가고 있는 유기체적 집단이 오늘의 ‘사회’인 것이다. 그 어떤 권력도 관리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는 자기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활용하며 사회에게 더 강하고 복잡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사회는 그렇게 끝없는 자기 변화와 확장을 계속한다. 그 근간은 경제이며, 전례 없던 새로운 농도의 경제 현상이 오늘날 사회라는 난제로 등장한 것이다. 사회는 구성원들의 욕망들이 얽히고설켜 자기 확장 중이고, 그 사회가 다시 욕망을 추동해 최후의 힘마저 내놓으라 닦달한다. 그러면서 사회는 자기 생명력을 강화해가고, 그만큼 인간은 탈진되어간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이때 인간이 100조 개 세포들의 집합체이면서도 그 세포들을 다시 관찰할 수 있는 자기 초월과 자기 대상화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의 근거다. 이것은 사회도 개인 욕망들의 합집합에 머물지 않고 거대한 욕망 덩어리를 돌파할 수 있는 심층의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개인이 개인을 대상화하고 개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를 개조하듯이, 사회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이런 가능성을 보지 못하면 아픔과 상처는 더 커지기만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희망을 놓치지 않아야 절망을 극복하게 되듯이, 사회적 자기 치유의 가능성을 견지해야 사회도 구성원의 통제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고서 어찌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하고, 사회를 개조하겠다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의 아픔에는 반드시 치유의 길이 있다. 어쩌면 한계에 도달한 사회가 파열음을 내며 스스로 길을 내보여줄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학이 무엇인지 모호한 채 있다가 사회학도 결국 인간을 치유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나로서도 다행이었다. 최근에 『사회는 왜 아픈가: 자발적 노예들의 시대』라는 졸저를 낸 것도 이런 가능성을 일부나마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나마 사회를 더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여전히 희망의 영역이지만, 인간이 사회에 종속되지 않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것도 인간이 인간을 살리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면 좋겠다. 그런 희망으로 졸저의 서문에 있는 내용을 일부 고쳐 써보았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12-09 | hrights | 조회: 1180 | 추천: 8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해 달라는 카페 주인의 요구에 난동을 피운 고객이 당진시 간부공무원으로 알려지면서 크게 이슈가 됐다. 전국적으로 비난이 쏟아지자 당진시는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직위를 해제했고, 행정안전부의 감찰이 시작됐다.  이른바 ‘턱스크’ 논란을 처음으로 보도한 <YTN>을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안을 다루며 해당 공무원의 신원을 익명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당진시대>는 편집국 논의 끝에 실명으로 보도했다. 지역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부서장급 간부공무원은 지역사회에서 그만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도가 나간 뒤 공무원노조에서 신문사를 찾아와 이번 사안에 대해 항의했다. 실과명까지만 나가도 될 텐데 굳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당진시대의 실명보도 때문에(?) 가족들까지 고통 받고 있다고 호소하며 실명보도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더불어 이번 사태 뿐만 아니라 그동안 당진시대에서 여러 지역 현안에 대해 보도하면서 공무원들의 이름이 기사에 들어가 불편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사진 출처 - freepik  익명으로 보도할 것인지, 실명으로 보도할 것인지는 각 언론사에서 판단할 문제이지만, 공익제보자나 취재원의 신분이 드러나 불이익이 예상될 때를 제외하고는 익명보도는 최소화돼야 한다. 뉴스에 대한 신뢰를 좌우하기 때문에 취재원과 정보 출처를 뉴스에서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에서 익명보도가 많은 건 사실이다. 지난해 4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신문과 방송>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KBS 9시 뉴스와 영국 BBC 10시 뉴스를 비교한 결과 KBS의 익명처리 비중은 28%였던 반면, BBC는 6%에 불과했다고 한다. 익명 인터뷰는 미성년자 또는 범죄 관련 보도에서 인용되는 일반시민과 범죄관계자만 해당됐고, 특히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등 유력자는 모두 실명으로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으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짊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공무원이 되고자 하면서 공무원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사회적 책임을 모르고 있고, 연말연시만 되면 승진을 두고 인사에 촉각을 기울이면서 자신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관심이 없어보였다.  신문사를 찾아온 공무원노조가 “지자체 간부공무원(5급 사무관)이라고 해봐야 정부 부처에서는 주무관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공무원의 책임을 이야기 하는 기자에게 “일개 직장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감을 넘어 좌절감을 느꼈다. 특정한 상황과 말 한마디로 일반화할 수는 없으므로 이 또한 모든 공무원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렵겠지만 이번 ‘턱스크’ 논란도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 책임에 대해 간과하고 있던 공무원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 사태와 공무원의 난동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 이번 사태가 내포하는 여러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익명보도와 실명보도를 두고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서도 말이다.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편집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12-02 | hrights | 조회: 1027 | 추천: 1
임아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떤 기억들은 몸에 새겨진 것처럼 생생하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으로 온 뒤 맞은 첫 평일이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기는 신생아실에 가 있고 혼자 방에 우두커니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산후우울증이었다.  아기를 낳은 직후의 내 상태는 두려움과 외로움의 교차 상태였다. 아기를 낳은 이전의 나와 너무 멀어지면 어떡하느냐는 두려움과 아기를 옆에 두고서도 자꾸 외로워졌던 마음.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그래서 보고 싶지가 않았다. 우울하고 두렵고 외로웠던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기묘해서 관련 영상을 추천 영상으로 띄워주고 말았다. 귀여운 신생아의 얼굴을 썸네일로 만든 영상을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나 십여 분의 영상을 끝까지 보게 된 것은 아마 산모의 표정 때문이었을 거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과 묘한 두려움이 섞인 표정. 그녀는 말했다.  “우리만 낯설고도 이상한 세계에 남겨져버렸다.”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이상한 세계는 어디인가. 아기가 내 품에 들려져 낯선 섬에 놓여진 기분. 너무나도 예쁘게 생긴 작은 아기가 내 인생을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 그 두려움의 정체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엄마는 그러는 거예요.”  처음 모유수유를 하면 피가 난다. 갓 태어난 아기가 빠는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아기는 살기 위해서 빨고 엄마는 아기를 먹이지 않으면 큰일날까봐 고통을 참는다. 그때의 내게 간호사 선생님은 말했다. 원래 엄마는 그런 것이라고. 평소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겠지만 하지 못했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거라고 나도 배웠으니까. 사진 출처 - tvn  엄마가 된 이후로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말들과 싸워왔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다른 대꾸를 찾지 못할 때 깨달았다. 내가 태어난 80년대 이후의 여성들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배웠지만 아기를 안고 어디든 가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아기를 안고는 뛸 수도 없는데.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에 대해서 국가가 처벌할 수 있다 말하는 2020년대, 조금쯤 진보한 줄 알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신생아를 키우던 시절, 너무 많이 우는 아이 앞에서 같이 울고 싶어질 때 친정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 잠 좀 자고 싶었는데...” 이 사적인 이야기들은 너무 사적이어서 사적인 관계들 안에서만 공유된다. 엄마를 사적 존재로 규정하고 엄마의 인내와 희생을 추앙하는 세상의 모순.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가 된 이후의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취감을 느낄 때는 언제냐고. 생뚱맞게도 ‘시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제가 일해서 제가 번 돈으로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게 소중한 것 같아요.” 모성의 신화로 거짓 추앙받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었다. 사적 존재가 되느라 공적 역할을 빼앗기지 않는 평범한 시민.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엄마를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그 사적 이야기들은 공적으로 유통되어야 한다. 이전의 논리를 깨는 방식으로. 그러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 쩔쩔매는 드라마 주인공 산모의 생생한 묘사에서 웃어버렸다.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시도해본 여성들은 알 것이다. 그동안 매체를 통해 묘사해온 수유 장면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햇빛이 내리쬐는 방에서 아름다운 산모가 평화로이 젖을 물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수유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하면 너무 서툴고 어렵다는 것을, 다른 여느 일처럼 고통을 먹잇감삼아 훈련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마 제목부터 신박하다. ‘산후조리원’이라니. 이 드라마를 통해 대중매체에서 출산과 모유수유의 신화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 한 발 나아간 점일 것이다.  여성 기자들이 늘어나면서 여성 기자의 관점으로 쓰는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현장에서는 왜 여성들은 페미니즘 기사를 주로 쓰느냐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런 질문을 하고 싶다면 돌아보라.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의 일이 얼마나 발화되는지를.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 기존의 신화를 깨는 방식으로. 임아영 위원은 현재 경향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11-25 | hrights | 조회: 920 | 추천: 5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귀책사유가 있는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당헌 조항을 개정하기로 했다. (중략)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헌에 따르면 두 곳의 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지만, 후보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며,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후략) - <당헌 고쳐 박원순·오거돈 후임 낸다는 민주당>, 한겨레, 2020. 10. 29. 사진 출처 - 한겨레  20대 중반에 잠깐 건설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건축목수의 일을 보조하는 잡부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곳저곳 현장을 오가다가 나중에는 미장 조공으로 일했습니다. 조공이라고 해봤자 미장일에 필요한 사모래를 물에 개어 작업장에 나르는 일, 일을 마치고 장비들을 정리하는 일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몸에 익힌 기술이 없으니 제가 어떤 분야의 현장 일을 하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미장 일 쪽으로 기운 것은 당시 현장에 있던 미장공의 묘한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미장공(다음부터는 영학이 형이라고 하겠습니다)은 한마디로 깔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에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현장에서 오직 그날 자신이 할 일만 마치면 간단한 저녁자리를 끝으로 조용히 귀가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경험해온 건설 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늘 무덤덤한 표정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가 일하는 모습은 한결같았습니다.  제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도 그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동료들이 가끔 짓궂은 농담을 던질 때도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만 지을 뿐 크게 웃거나, 대거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저 무심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나이 차가 네 살 정도였으니 저는 어렵지 않게 그를 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연립주택 공사현장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 작업이 끝나고 타일 쪽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한잔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끝난 현장 구석에서 타일공들이 사온 김치전과 막걸리로 조촐한 술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으나 역시 그는 별로 말이 없고 수다스러운 저와 타일 쪽 사람들이 주로 웃고 떠들기만 했습니다. 간단히 한잔하자던 술자리였지만 ‘한 잔만 더’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타일공이 영학이 형에게 물었습니다.  “그쪽 일하는 거 보니까 돈 좀 모았을 것 같은데 얼마나 모았습니까?”  누가 보아도 그저 친해져 보려는 타일공의 별 의미 없는 상투적인 말에 그때까지 그저 조용히 술잔을 비우며 슬쩍 웃기만 하던 영학이 형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타일공에게 삿대질을 하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서는 술판을 발로 걷어차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에 갑자기 돌변한 영학이 형에게 제가 정말 놀란 것은 그날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영학이 형은 평소와 같았습니다. 그저 예의 그 무덤덤한 표정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일만 했습니다. 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할 일만 계속하고 있으니 답답해진 제가 물었습니다.  “형, 어제 일 기억해?”  “응.”  그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을 계속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했다거나, 그때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학이 형은 ‘응’이라는 한마디 외에는 아무 말 없이 하던 일만 계속했습니다. 답답해진 저는 조금 화가 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제 그렇게 하고 간 거 쪽팔리지 않아?”  그 말에 영학이 형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무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랬냐? 술이 그랬지.”  그러고는 별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잠시 멈췄던 일을 계속 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흐트러짐 없는 그 자세였습니다.  내년 보궐선거 기사를 보다가 왜 영학이 형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국에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저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 제 탓입니까? 제가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건 수도권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 다 그렇지요. 부끄러움이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11-18 | hrights | 조회: 922 | 추천: 3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51초에 인구 1명씩, 1년에 60만명이 태어나는 대한민국은 어떤 느낌일까. 연간 신생아가 30만명 밑으로 떨어진 요즘에는 ‘60만명이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반응도 예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1983년 대한민국 위정자들은 ‘큰일이다.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자고 하자’는 반응을 보였다. 30여년전 대한민국은 그만큼이나 2020년과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흔히 1970~80년대 가족계획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정책 가운데 하나로 기억한다. 사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와 함께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저출산 시책은 너무 큰 성공을 거두긴 했다. 하지만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게 오로지 가족계획 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출산율 추이를 보면 사실 가족계획을 시작하기 전부터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었다. 의무교육 확대와 맞물린 교육열,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출산율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1970년대는 괜찮다. 진짜 문제는 1980년대였다. 이미 1980년대가 되면 출산율 하락은 너무나 명백하게 급격해지고 있었다. 사실 이 즈음해선 가족계획을 폐기하고 적절한 출산율 유도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로의존성’이란 언제나 무섭기만 하다. 당시 정부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며 가족계획 고삐를 더 죄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세우는 2005년이면 이미 한국은 학자들이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수준이 돼 버렸다.  옛 고사에 이런 게 있다. 신통하다고 소문난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사는 자신이, 모두 의사인 세 형제 가운데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말인즉슨, 큰 형은 사람이 아프기도 전에 미리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처방을 해주고, 둘째 형은 초기에 완치시키는 반면 막내인 자신은 병이 한참 진행된 뒤에나 겨우 치료한다는 것.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큰 형과 둘째 형이 훌륭한 의사라는 것을 깨닫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의사 형제들 얘기를 정부 정책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서둘러서 하면 졸속행정이요, 신중하게 하면 늦장행정이라고 욕먹는 게 일상다반사이긴 하지만 외국 가본 사람이라면 한국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한국 공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곤 한다. 확실히 한국 정부는 일은 잘한다. 하지만 상황에 대응하고 선두주자를 추격하고 앞선 제도를 도입하는 건 잘하는 반면, 미래를 대비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면은 확실히 약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소득주도성장을 외치고 나중엔 혁신성장을 외치더니 요즘은 한국판 뉴딜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외치는 뉴(NEW)딜이라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고, 어차피 하던 갖가지 개발사업에 이름표만 거창하게 붙여서 정이 안 간다. 김영삼 정부 ‘세계화’, 김대중 정부 ‘벤처기업’, 노무현 정부 ‘일자리’, 이명박 정부 ‘녹색’, 박근혜 정부 ‘정부3.0’ 등 정부가 내세우는 시책에 따라 호박에 줄 긋는 행태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런 와중에도 봐줄만한 건 지역균형뉴딜을 활용해 광역경제권 구상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으로 몇해 전부터 주창하면서 조금씩 소문이 난 이 구상은 지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함을 반영할 뿐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 제기하는 의제가 국가의제로 확산된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지역개발구상과는 결을 달리한다. 물론 아직까지 국가전략 차원으로 확산된 건 아니지만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논의의 밑바탕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마당에 인구감소로 지역소멸까지 걱정할 정도로 위기에 몰려 있다는 현실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권역별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행정구역과 경제권을 통합하자는 논의로 분출하는 셈이다. 전국에서 수도권 면적은 11.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청년취업자와 사업체 모두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100억원 이상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161개 가운데 149개(92.5%)가 수도권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출처 - KBS  권역별 메가시티 구상은 작은 단위로 쪼개진 행정구역을 뛰어넘어 규모를 키우자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가령 부산·울산·경남 800만 인구를 뭉쳐 주민센터 등 행정체계는 물론 대중교통망과 교육시스템 등도 인구감소에 맞게 효율화하고, 산업정책도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 한 광역지자체 기획조정실장은 “어떤 면에선 구조조정 대상이 먼저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이해해 달라”면서 “중앙정부 지원만 바라보며 시․도간에 싸워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지 않겠느냐”고 표현하기도 했다.  행정구역 통․폐합은 사실 오랫동안 정부 차원에서 논의했던 주제다. 하지만 실제로는 1995년 지방자치선거 직전 도농통합을 했던 것을 빼고는 지지부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도했지만 2010년 경남 창원시, 2014년 충북 청주시 등을 빼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명박은 미워도, 행정구역 통합 구상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었다(물론 구체적인 추진과정은 엉망진창이었다).  메가시티와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사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가 ‘지방도시 살생부’라는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구상이다. 그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초광역권을 중심으로 한 균형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국토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맞짱’을 뜰 만한 지방 대도시들을 키워야 한다”면서 “17개 광역지자체를 7개 초광역 지자체로 통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 중심에 인구를 모으는 ‘압축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11-11 | hrights | 조회: 918 | 추천: 5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란이다. 그동안 주가조작이나 허위공시 같은 증권관련 소송에 적용되던 집단소송제를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입법예고했는데 언론보도도 그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잘못된 보도로 인해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5배까지 배상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경유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통해 집단소송제 확대 필요성은 제기돼 왔으나 언론보도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언론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부의 설명은 이렇다. ‘언론사도 상법상의 회사이니만큼 당연히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대상’이다. 이 제도가 주목하는 것은 악의적인 보도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칠 경우 언론사에 책임을 묻겠다는 점이다. 즉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도하거나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채 보도할 경우 중대과실이 발생한다면 법적인 책임을 언론사에 지울 수 있다.  이에 대한 찬반입장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언론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권력 감시와 기업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재갈을 물릴 수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도도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과 ‘현행 법체계만으론 언론보도 피해에 대한 구제나 예방이 충분치 않으니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명확한 가짜뉴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자’는 주장의 대립이다.  진영과는 무관하게 언론계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대부분 반대하고 우려한다. 기자협회 등을 중심으로 대응TF를 구성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하지만 언론계의 이런 우려는 사회의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도입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 보도 민사소송 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52%가 ‘찬성’, 23%는 ‘보완 입법 필요’, 18%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언론계의 우려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와 관련이 있다.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언론 신뢰도는 20%대로 꼴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조사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19’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뉴스 신뢰도는 22%로 38개국 가운데 맨 뒷자리를 기록했다. 한국 언론은 2016년 해당 조사에 처음 포함된 뒤부터 4년 연속 신뢰도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전 세계 180여개 나라 가운데 올해 42위를 기록했다(국경없는 기자회 발표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 한국은 2006년 31위까지 올라갔다가 한때 70위권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지만 완만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에선 1위이고 언론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45위)보다도 세 단계 높다.  한국 언론은 언론자유에 비해 거기에 걸맞은 신뢰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논의대상이 된다는 것은 현재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폐해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굳이 이런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사실을 왜곡하는 가짜기사와 선동하는 기사가 넘쳐나는 우리 언론의 민망한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2004년 언론단체에서 처음 제기됐던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서초동 촛불집회를 계기로 다시 화두로 떠올랐고, 한편에선 언론개혁의 상징처럼 주장되고 있다. 조국 사태 당시 언론보도를 상기해 보면, 검찰의 권력은 수사권과 기소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지원사격과 엄호 위에서 더 활개쳐왔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언론보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가 아님은 분명하다. '언론의 자유, 언론활동의 위축가능성‘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도입한다고 해서 가짜뉴스를 완전히 근절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논의가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인 언론의 책임, 신뢰도와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주요한 사명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언론자체도 이미 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언론이 권력 감시와 언론자유를 내세워 자신들에 대한 견제장치를 거부한다면 언론도 또 하나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바닥을 보이는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그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언론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책임의식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입장도 나와야 할 것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0-11-04 | hrights | 조회: 886 | 추천: 7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민주유공자예우법의 발의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발의자들은 ‘보상을 받으려고 민주화운동을 하였는가’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으니 보기에 안쓰럽다. 군인이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지 않듯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도 부와 보상을 바라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법안을 특권적 발상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치와 공직영역에서 정치사회적 보상을 받은 상황에서, 무명으로 활동하다가 피해를 입고 허명뿐인 민주화유공자로서 여전히 고생하는 옛 동지를 배려하는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공적인 희생을 한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법의 원칙이기 때문에 이 원칙에 입각해서 생각해보자.  필자 개인적으로는 고인이 된 장인어른이 남녘의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전두환 정권의 등장 이후 시국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다가 50대 초반 한창 나이에 해직되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울분의 세월을 보내셨다. 다행히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도입한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약소하게나마 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그 분은 해직사정을 빼곡하게 적어와 구제가능성이 있는지 물어오셨다. 당시 법적으로는 더 이상 방도가 없다고 해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 트라우마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강제해직자로서 그 분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 민주당 의원들이 제안한 민주유공자예우법은 민주화보상법을 전제로 한다. 민주화보상법상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명예가 인정된 사람은 민주화유공자예우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런데 민주화보상법은 외형적으로는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는 하였지만 실질적인 피해와 고통을 구제하는 데에는 상당히 미흡하였다. 이 법이 보상대상으로 고려한 사항은 제한적이었고 보상금은 기대수준에 미달하였다. 동시에 이 법은 보상금을 수령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봉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은 이 법이 위헌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마침내 2018년 헌법재판소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적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결정하였다(헌재 2018. 8. 30. 2014헌바180 등). 국가나 국회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민주화보상법을 개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민주당의원들은 민주유공자예우법을 대안으로 제안하였다.  이 법안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 최근의 논의양상을 참조하지 못했다. 필자는 2018년부터 1년 남짓 국가보훈처(당시 피우진 처장) 산하의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에서 보훈제도의 정책방향에 대한 논의에 관여하였다. 실제로 당시 위원들의 제안 가운데 일부는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제안의 상당부분은 아직 서랍 속에 있고 언젠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강의 골자는, 전몰상이군경 위주에서 벗어나 독립유공자, 민주유공자, 사회공헌자도 국가유공자로서 동등한 예우를 시행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경제적 보상수준은 국민의 정의감정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두 번째 원칙과 관련해서는 보상금이 전적으로 국민의 세금에 기초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겼다.  보훈법제들은 대체로 절박한 사정에 처한 사람들에게 부응할 만큼의 충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출현한다. 그러한 사정으로 인해 기본적인 경제적 보상은 미흡하다. 그런 까닭에 별도의 보완수단들이 얼기설기 덧대어진다. 이러한 방식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 보통 사람들은 길어져만 가는 노후의 시간을 국민연금법에 기대어 염려한다.  사실 전국민이 국민연금법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으며 이러한 방향은 지극히 타당하다. 국민연금을 통합적 기반으로 삼는다면 유공자들에 대해서는 그 공적과 희생을 감안한 보상을 일정률로 연금에 가산하거나 일회적인 또는 한시적인 보상금을 제공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통합적인 제도가 실현되기 전이라도 세금에 기초한 보훈제도는 좀 더 합리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보훈혁신위원회는 보훈법상의 보상제도에 과소나 과잉이 없어야 하고, 경직된 보상수단을 지양할 것을 제안하였다. 희생과 공헌에 부합하는 적절한 보상을 시행하고, 여전히 품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유공자들에게는 생활조정수당을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유연한 방식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월남참전군인들과 5.18민주화유공자들의 예우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취업가산점제도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유공자 본인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알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유공자 자녀의 취업에 가산점을 주는 경직된 방식은 지양하라고 권고하였다. 사진출처-MBC  실제로 오늘날 20-30대의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계급격차는 운명으로 수용하지만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개혁을 표방하는 세력들이 결과의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고 조건의 불평등도 제대로 시정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인식한다. 젊은이들은 지난 인천국제공항공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보듯이 기회의 평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냉소와 불신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젊은이들이 보수화되었거나 옹졸하게 군다고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상의 적확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기성세대의 안이함을 탓해야 할 것이다. 희생에 대해 보상을 시행하는 것은 옳다. 그럼에도 그 부담을,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젊은이들의 등에 올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국가유공자법의 취업가산점제도는 배가 지나가도 표가 안 나는 고도성장기(완전고용)에서나 어울릴법한 수단이다. 그 당시 국가의 재정적 여력이 지금보다 제대로 확충되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당시의 취업 가산점 제도는 비난할 사항도 아니다.  지금의 사정은 어떤가? 폭발적인 기술혁신 아래 노동의 종말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고용의 기회를 찾아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보상수단으로 삼는 계획을 불평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경제적 보상이 불충분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유공자 본인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민주유공자예우법은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반영해야 한다. 물정이 바뀌면 수단도 바뀌어야 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0-10-28 | hrights | 조회: 846 | 추천: 8
- 국가의 공유재 강탈 현장에 서서 -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칠 전 학회에서 ‘맹자의 여민동지(與民同之)의 역사적 성격’이라는 글을 발표 했다. 마침 인권연대에서 한재훈 선생님의 《맹자》 강의가 열린다고 한다. 내친 김에 나는 그날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맹자》의 다음 구절을 암송했다.  천하의 넓은 거처에서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간다. 뜻을 펼칠 수 있을 때는 인민들과 함께 실천하고, 뜻을 펼치지 못할 때는 자신의 길을 홀로 간다. 부귀가 마음을 흔들지 못하고, 빈천이 지조를 바꾸지 못하며, 위력이 굴복시키지 못하나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대장부라 하느니라[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  맹자는 왕도정치, 위민, 역성혁명의 사상가로서 대장부, 호연지기, 연목구어, 오십보백보, 측은지심처럼 귀에 익은 표현의 저작권자이기도 하다. 맹자의 행적과 사상을 담은 《맹자》는 일찍이 경전으로 자리 잡은 《논어》와 사뭇 다른 대우를 받았다. 송나라 때에 이르러 정이(程頤)가 사서(四書)에 포함시킨 뒤 주자(朱子)가 주석을 단 이후에야 경(經)의 반열에 올랐다.  조선과 명나라가 《맹자》를 받아들인 태도도 각기 달랐다.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이 80여 군데를 도려내 간행한 《맹자》를 과거의 교재로 삼았던 명나라와 달리, 조선에서는 삭제 없이 읽고 널리 인용하였다.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으나,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림으로서 정치와 사회를 주도하였고, 중국 지식인들은 환관들에게 짓눌려 생존에 급급했다. 여민락  조선 세종대 〈여민락(與民樂)〉이라는 곡명은 맹자의 ‘인민들과 함께 하는 삶[與民同之]’ 사상에서 유래하였다. 맹자에게 제나라 선왕(宣王)은 ‘무용(武勇)을 좋아한다’, ‘재물을 좋아한다[好貨]’, ‘여자를 좋아한다[好色]’ 하며, 자신의 인격적 약점을 상담하였다. 제 선왕은 그래도 반성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맹자는 ‘인민들과 함께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대답했다.  제 선왕은 ‘내게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라고 하여 취향의 편향성을 부덕함의 원인인 듯 말하였다. 허나 맹자의 눈은 달랐다. 제 선왕이 무용을 선호한 것은 전쟁을 수행하여 나타난 결과일 뿐이고, 재물을 좋아하는 것도 전쟁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때는 전쟁으로 남자들이 죽어나가 ‘짝을 잃고 원망하는 여자’들이 많아진 시대, 이른바 ‘맨날 싸우는 나라들[戰國]의 시대’였다. 더 중요한 쟁점이 있었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였지만, 풀 베고 나무 하는 사람들이나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람들이 갈 수 있어서, 백성들과 공동으로 이용하였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긴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신이 처음 제나라 국경에 도착하여 제나라에서 가장 금지하는 것을 물어본 뒤에 조심스럽게 들어왔습니다. 신이 듣건대 국경 관문 안에 동산이 사방 40리인데, 그곳에 있는 사슴들을 죽이는 자는 사람을 죽인 죄와 같이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방 40리 되는 함정을 나라 한가운데에 만들어놓은 것이니, 백성들이 너무 크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공유(共有)  대다수 백성이 농민이었던 시대의 대부분의 생업수단은 토지였다. 앞서 언급한 여민동지 가운데 경제 부문의 정원, 동산, 산림이 토지에 해당한다. 숲, 연못, 늪지, 강, 산림은 원래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었다. 누구나 그 땅을 사용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이제는 국가의 군주들이 이 공유지를 독점하려는 것이다. 인민들에게는 소나무, 참나무 같은 목재, 꿩, 토끼, 멧돼지 같은 동물, 머루, 딸기, 버섯 같은 식물……오랫동안 단백질, 땔감 같은 생계자원의 공급처이자 나들이와 놀이의 공간이었다. 로빈훗의 셔우드 숲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제 공유지의 사용, 수익, 처분을 놓고 긴 투쟁이 벌어질 터였다. 국가가 산림 곳곳을 파악하는 강제의 능력이 낮으면 공유지는 안전하게 ‘방치’, 즉 원주(原住) 농민의 입장에서는 현상유지라는 평화로운 길을 갈 것이다. 국가의 강제력이 발달하면 농민은 세금과 부역, 나아가 형벌이라는 함정에 대항하여 저항과 탈주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포악한 국가는 망했다는 사실 뿐이고, 맹자는 그 포악한 국가의 주권자에 대해 다소 시크하게 ‘왕이 아니라 한 사내[一夫]일 뿐’이라고 치부하였다. 인천공항의 사유화  바다나 갯벌, 숲과 하천에 철도나 공항을 놓고 이를 정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얼핏 ‘효율화’, ‘경영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가려진다. 인천공항, 한국철도, 한국전력의 민영화(=사유화) 논의가 바로 이런 사례들이다.  충남 서산엔 광대한 간척지가 있다. 1978년 이른바 ‘유조선 공법’이라고 알려진 폐유조선을 이용한 물막이 공사를 통해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는 농지가 만들어졌다. 이보다 앞서 서산의 공유지였던 갯벌을 농지로 바꾼 주인공들은 1961년 11월,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사회 명랑화 사업'을 내걸고 강제로 수용했던 '대한청소년개척단'이었다. 1966년 서산개척단이 해체된 뒤 운영권은 서산 군수에게 넘어갔고, 1975년에 정부는 가분배했던 땅을 모두 국유지로 몰수했다. 공유지가 국유지로 변하고 다시 현대그룹의 서산농장이 되었다.  갯벌, 산림, 강, 바다 같은 공유지를 법인이나 개인에게 줄 수 있는 권리를 정부가 갖는 조건이란 대체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 대해 아직까지 법률적인 차원은 물론 철학적 경제적 성찰은 아직 제기되지 않는 듯하다.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제16568호)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매립을 할 경우 해당 관청의 승인만 얻으면 매립이 가능하다. 매립 뒤 준공검사 확인증을 받으면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매립면허취득자가 매립지의 소유권을 가진다. 매각이나 양여 등 처분이 불가능했던 공유지가 처분 가능한 소유권의 대상이 된다. 국가(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처분 가능한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갯벌 등 간석지는 물론 전기, 철도(도로), 공항, 의료, 수도 같은 경우도 정부의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쉽게 민영화(=사유화)할 수 있는 길이 법적으로 열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적 이해를 가진 정권이 현행법 안에서 공공재를 침탈할 의도를 가질 경우 시민적 저항 방법이 부재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희망도 있다. 이런 심각성을 자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장차 전기, 철도, 공항, 수도, 의료 등 처분 가능한 사유화 추진을 저지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먼저 국가의 자의적 공유지 침탈에 대한 헌법적, 법률적, 철학적, 경제학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 정부(국가)가 어떤 권한과 근거로 감히 공유지를 ‘소유’, 처분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돌아가 물어야 한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10-28 | hrights | 조회: 1055 | 추천: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