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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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오인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일 1논란’이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언행(言行)이 문제인 사람이 있다.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리는 행동은 버릇이거니 하고 넘어간다고 척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는 그냥 봐주기 어렵다.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쩍벌남’ 자세 그대로다. 국민의 선택(/심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공중 앞에서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나 행동거지를 조심할 법도 한데, 내 사전에 그런 법 따위는 없다는 식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민폐가 될 수 있는 행동을 공개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안하무인. 사석에서 우연히라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언행 가운데 볼썽사납기로는 ‘언(言)’이 더하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도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등, 그가 내뱉은 해괴한 주장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가 9월 13일 경상북도 소재 국립안동대에서 대학생들을 만나서 했다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천학비재(淺學菲材)이지만 그래도 근 30년 인문학 서당에서 풍월을 읊으며 살아온 처지에서 ‘인문학 부수론’을 그냥 실언이나 망언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일단 발언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려고 당시 영상을 찾아봤다.  문제의 발언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실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라는 주장 다음에 나온다. “인문학의 중요성이라는 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립서비스’(왜냐면,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까!)를 한 뒤 “그러나 인문학을, 여러분이 무슨 지금 세상에서는 공학이라든가 이런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고 일자리를 찾는 데 굉장히 필요한데, 기업이 그걸 원하니까, 그러면 인문학이라는 거는, 그런 걸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학생을 갖다가, 4년 뭐 대학원 과정까지 그렇게, 그건 소수면 되는 거지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느냐, 그래서 그런, 기업 필요에 따라서 학과의 재조정도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교육 당국이 추진하려고 그러면 반발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생각의 두서도, 마침표도 없는 그의 말을 분절하면 이렇다. 1) 대학의 역할은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 유용한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다. 2) 기업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3) 인문학은 취업에 유용한 공부를 하다가 짬이 날 때 부차적으로 하면 된다. 4) 그러므로 인문학 공부라는 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할 필요가 없다. 5) 인문학은 소수의 전공자만으로도 충분하다. 6) 기존의 인문 분야 학과들은 기업의 요구에 맞춰 통폐합해야 한다. 7) 그러나 내부 반발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 아, 이렇게 쪼개놓고 보니 그의 ‘인문학 부수론’ 발언을 접했을 때의 찜찜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겠다. 그가 인문학을 슬렁슬렁해도 되는 취미-교양이나 어쩌다 짬 나면 접하는 특강쯤으로 경시하는 이유는,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라고 영역하고도 무탈하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가까이서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9년 동안 인문학 관련 책 따위와는 아예 담을 쌓고 고시 낭인으로 지낸 세월 때문도 아니었겠다. 인문학을 오로지 경제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단 인문학만이 아니다. 대학과 학문 일반의 존재 이유까지도 “기업의 필요”에서 찾는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려주면 그네들 생각이 바뀔까? 인문학(Humanities)은 종교,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고고학, 고전학, 인류학 등의 분야로 구성된다.(법학도 광의의 인문학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이토록 광활한 인문학의 세계를 많은 사람이 따로,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것은 인문학에 무지한 사람의 생각인 동시에 편견을 지닌 사람의 생각이다. 무지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범하기 쉽다. 자기기만과 편견은 아예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마녀사냥은 마녀로 인해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 마녀를 식별할 줄 안다고 과신한 자들이 저지른 범죄였다.  기만이나 착각과 같은 잘못된 생각-앎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 대표적인 인문학의 철인(哲人)이 ‘테스 형’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없는 지식 채우기’가 아니라 ‘잘못된 지식 비우기’였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실제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칠 때, 비로소 거짓된 앎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도록 도왔다. 그렇다! 올바른 생각(앎-지식)은 ‘깨달은 사람’이 안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철부지(哲不知)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교습(敎習)하는 게 인문학인데, 이런 게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다가 잠시 들려서 엿본다고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 경제적 효용가치로 보면 인문학은 정치적 출세, 경제적 성공,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은 바로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고(故) 김현 선생의 사유에 기생하여 말하자면, 통속적으로 유용한 것들-돈, 권력, 힘 등은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세계에는 인간을 억누르는 것이 있고, 그것들은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적 유용성의 눈으로만 사람과 사물과 세계를 재단할 때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물화(物化)된 의식에 사로잡힌 시장 전체주의자(market totalitarian)의 무지와 편견을 깨닫게 해준다. 남이야 피눈물을 흘리건 말건 끝없이 권세와 부를 쫓는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21-09-29 | hrights | 조회: 997 | 추천: 5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바야흐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대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었다. 집권 여당의 과반수 의석 달성이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하마터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뻔했다며 못내 그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지금도 부지기수다. 아마도 당시의 여당이 소위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국회에서 쉽게 폐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였기 때문이리라. 국가보안법이 작동하는 분단 냉전체제의 한국 사회의 현실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강고한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 나머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고 싶은 열망이 낳은 착각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는 민주화가 되었고 북보다 우월한 체제를 가진 체제 우위의 사회이며 이제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일부 친북세력이 존재하지만 더 이상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위협받을 일이 없다며 포용력을 발휘하여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아마도 과거의 한국 사회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야만적 파시즘 사회였을지라도 정권교체를 겪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국가보안법에 무방비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강고한 국가보안법 지배체제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 나머지 국가보안법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기를 회피하며 자기합리화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된 법이고 국회의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쉽게 폐지할 수 있는 법이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지금도 부지기수다.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국가보안법은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의 주된 장애물이기에 국가보안법 폐지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할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금기와 억압 아래 숨죽이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래 국가보안법에 맞선 민중의 거세찬 저항이 야만적 국가폭력에 의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탄압당하며 민중의 저항력은 철저히 거세당한 야만적 파시즘 사회로 전락하였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하던 중앙정보부가 사라지고 국가정보원이 합신센터에서 감금 상태의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1950년대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간첩 조작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통한의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총선에서 13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원내 3당인 통합진보당이 단지 통일을 지향하며 외세의 내정간섭에 반대하고 반미를 주장하며 연공 연북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종북몰이를 당하며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고,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이석기 의원은 8년째 감옥에 있다.  국가보안법을 산생시킨 친미사대 동족 대결의 분단 냉전체제의 가공할 위력이 그대로 압도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빨갱이 사냥’, ‘색깔론’, ‘종북몰이’가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며 한국 사회를 숨죽이게 만드는 금기와 억압의 본질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 민중들은 극심한 반북 대결에 내몰리며 1950년 한국전쟁 이래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인하여 괴뢰의 적화 무력통일로부터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지킬 수 있었다는 허구적 인식에 세뇌당해 왔고 여전히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군사적,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악마와 같은 사회주의 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졌고, 굶주림과 1인 독재의 지옥 같은 북한체제가 아닌 자유와 인권이 넘치고 경제적으로도 세계 7대 선진국으로 성장한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허구의 체제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과 같은 주장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괴뢰의 적화통일 야욕을 숨긴 공산주의자들의 위장 평화공세에 불과하고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그 어떠한 개인과 단체도 한국 사회에서 죽임을 당해왔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생매장될 수 있다.  야만적 공포사회다. 국가보안법에 무방비 사회다. 친미반북 사고로 세뇌당한 한국 사회. 국가보안법에 맞서 국가보안법의 만행을 제압할 민중의 힘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한국 민중 스스로 반미연북을 금기하고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에 맞서 거세된 저항력을 회복하고 단결해 싸울 때 국가보안법은 한반도 분단 냉전체제의 청산과정에서 폐지될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투쟁이고, 미국의 패권과 내정간섭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협정을 쟁취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는 반전 평화투쟁이다.  현재 국회를 향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촉구 운동은 한국 민중의 분단 냉전체제 청산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과정의 한 국면에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하며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시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연대투쟁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핵심 투쟁이다.  한국 민중은 국가보안법에 무방비로 병들어 신음하는 야만적 파시즘 사회의 본질을 직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간첩 소동과 종북몰이에 맞서 그 근간이 되는 국가보안법 체제를 완전히 허무는 그날까지 중도반단 없는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단결된 힘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1-09-15 | hrights | 조회: 1409 | 추천: 2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몇 년 전 학생들과 대만 답사를 갔다. 고궁박물관도 가고 국립정치대에서 강의도 들었는데, 한 학생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학생은 수업시간에 너무 조용하고 간단하게 묻는 말에도 대답을 못 해서 어디가 아픈지 의심될 정도로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답사에서 그가 벗들 사이에서 웃고 이야기 나누면서 참으로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보았던 느낌과 너무 달랐다. 그 학생이 늦게 일어난 친구들의 아침밥을 자상하게 챙겨주는 모습도 보았다.  역시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또는 나와 같이 있는 상황은 그의 자상한 행동이나 따뜻한 눈길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하지 못했던 셈이다. 내 수업이 그의 활기를 드러내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 사태를 역사학도답게 접근해보자. 1.  어떤 관계냐에 따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은 다르다. 이런 현상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는 건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건 사회의 산물이고 역사적이라는 뜻이다. 흔히 누구더러 왜 앞뒤가 다르냐는 핀잔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앞뒤가 다른 것이 꼭 인간성 문제, 도덕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선생님이나 교수, 군대 상관이나 상급자에게 행동을 조심하려고 애를 썼고, 말도 조절하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네가? 행여!’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이다. 누구나 행동 특히 말씨에는 관계의 압박이 배게 마련이다. 쭈삣거림에서 존경심까지 질적 편차는 크겠지만, 압박과 조절은 상존한다. “연기(演技)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자발적인 예의와 강요된 연기를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이다. 학생들이 선물로 준 롤페이퍼. 이 말을 다 믿어도 될까^^ 사진 출처 - 필자  어떤 학자는 앞에서 드러나게 하는 행동을 공개된 대본(臺本), 드러나지 않는 속내를 숨겨진 대본이라고 부른다. 회식자리에서 사장에게 술 따르며 사원이 한 말과, 자기들끼리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 사이의 괴리, 그것이다. 통상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권력 차이가 크면 클수록, 또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수록 피해자 집단의 공개 대본은 정형화되고 의례화된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권력이 위협적일수록 가면은 두꺼워지고 연기는 빛을 발한다. 1.  ①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십수 년 동안에 가뭄과 장마의 피해와 바람과 벼락, 그리고 서리와 우박의 재앙과 별들의 이변과 기후의 이상과 요사스러운 인물들이 해마다 겹쳐서 나타나 천이나 백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그러한 이변을 당할 때마다 성상은 놀라셔서 죄책하고 직언을 구하셨으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시는 말씀을 한해에도 여러 차례 내리셨으니, 이미 두려워하시는 뜻과 애통해하시는 말씀이 지극하였습니다.  ② 옛말에 ‘사람은 속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만, 신은 ‘하늘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도 속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근래 애절한 하교가 내렸을 적에 안팎에서 이를 예사롭게 보고 반응이 없는 것은 전하에게 애당초 성심(誠心)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뜻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말과 글로 하늘에 대응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하지 마시고, 근본의 절실한 처지에 깊이 유념하십시오.(숙종실록 12년 9월 13일)  ①은 숙종 초반에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무척 많았는데, 숙종이 늘 자책하면서 반성하는 태도가 지극하였다고 짐짓 치켜 주는 말을 하였다. 반면 ②는 숙종의 하교, 즉 신하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성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늘이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이 감동하지 않았으니 사람이 감동하겠냐고 거의 면박을 주고 있다.  만일 ①과 ②가 별개의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나는 쉽게 ①은 공개 대본, ②는 숨겨진 대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①과 ②는 같은 사람이 같은 상소에서 한 말이었다. 요즘 감사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사헌부 장관을 맡고 있던 김창협(金昌協)의 상소였다. ①은 ②를 위해 한 말이다. 그는 아예 숨겨진 대본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사이다 발언은 듣는 사람들에게 시원하지만, 공포를 내재하는 경우가 많다. 김창엽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공포를 넘어서며 의연함을 보여준다. 1.  왕정이란, 이렇게 한 나라의 조정을 무대로 펼쳐지는 정치제도이다. 한편 권력의 세습이란 점에서 가족이 왕정이고, 요즘 한국엔 재벌이 왕정을 구현하고 있다. 왕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봐야(의식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 절대성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부모에 비견된다. 부모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내 부모는 평생 죽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뒤로 없던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국왕이 백성의 어버이로 비유되는 건 웃을 일이 아니다.  또한 국왕은 권력과 기득권에서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다. 그가 10년을 재위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장년의 국왕은 거의 절대자가 된다. 2, 30년이 지나면 새로 들어온 신하는 다 아들 같다. 숙종이나 영조처럼 4, 50년을 재위하면 손자뻘이 된다. 그래서 임금이자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란 말이 생긴다. 사상과 정치권력을 한꺼번에 잡는 것. 내가 ‘학자 군주 정조’를 위험하게 보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내며 가르쳤다. 그렇지 않아도 군주 앞에서 떨고 있는 유생들에게 지적 우위까지 과시하면서. 1.  김창협이 상소를 올렸던 숙종 12년(1686) 9월, 숙종은 연인 장씨(후일의 장희빈)를 위해 몰래 별당을 지어주었다. 사헌부에서 중지할 것을 청했지만, 숙종은 잘못 전해 들은 것이라고 둘러대며 공사를 중지하지 않았다. 이어 12월에는 장씨를 종4품 숙원(淑媛)으로 삼았다. 궁녀로 들어와 왕자나 공주를 낳지도 않은 사람이 숙원이 되는 것은 특별한 조치였다. 또 며칠 뒤 장씨의 궁방인 숙원방(淑媛房)에 노비 100명을 내려주었다. 위법이었다.  숙종의 행동은 스스로 했던 말과 달랐다. 이럴 수 있는 게 왕정이다. 연인에 대한 숙종의 과도한 집착을 둘러싸고 신하들과 숙종 사이에 긴장이 흐르기 시작한 초엽, 대사헌에서 성균관 대사성으로 옮겼던 김창협이 말했다.  신은 근래 실제로 별당을 지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만 하시고는 안으로 급하지 않은 공사를 일으키고 밖으로 신하의 말을 막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또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숙종실록 12년 12월 10일)  그의 발언은 국왕 숙종을 흔들었을 것이다. 숙종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냥 ‘억측이 지나치다’고만 답변했다. 실록에서 김창협의 말을 읽었을 때, 이 ‘숨겨진 대본’이 햇볕으로 나오는 통쾌한 순간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런 말을 위언(危言)이라고 한다. 위험한 말이라는 뜻인데, 어떤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비판을 말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나라에 도리나 상식이 통하면 말과 행실을 높게 하고, 나라에 도리가 도리나 상식이 없을 때에는 행실은 높게 하되 말은 겸손하게 하여야 한다[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라고 한 데서 나왔다.  자존심은 강하나 성숙하지 못하여 꽁했던 숙종의 화는 3년 뒤에 터졌다. 장희빈의 아들을 책봉하면서 인현왕후를 폐위한 뒤, 김수항 등을 유배 보내 사사하고 숱한 인재를 귀양 보내거나 고문해서 죽였던 기사사화(1689)였다.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영돈녕부사 김수항이 사약을 받고 죽은 것을 두고 혹자는 그의 아들 김창협의 직언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창협이 상소를 올려 후궁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매우 절실하였다. 이 때문에 임금의 마음에 불평이 생겨 그의 아비에게 화풀이하게 된 것이라고, 숨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  숨어서 말하는 말, ’숨겨진 대본‘이다. 숨겨진 대본이 없을 수 없으나 가능한 적은 게 열린사회, 편안한 관계일 것이다. 나는 다행히 대단한 권력을 가지지 않았으니 불편할 일은 적다. 하지만 나이도 그렇고 가르치는 처지에 있으면서 내가 조장한 숨겨진 대본은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운이 좋아 당신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받아주시던 어른들과 선생님들 밑에서 자라고 배웠거늘 말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1-09-01 | hrights | 조회: 1605 | 추천: 18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낳은 역사적 현상이다. 정치적 쟁점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과 사법부에 떠넘겨온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권력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라는 불행한 결말로 이어졌다. 레거시가 망해버린 보수세력은 정권교체 의지와 더불어 정치보복(이명박·박근혜처럼 문재인도 구속해달라!)의 염원을 담아 윤석열에 매달리고 있다. 각종 사회적 현안과 갈등 해결의 비전도 없고, 낡은 인식과 잦은 말실수에도 지지율이 버티는 배경이다. 윤석열 현상은 정치 불신과 혐오라는 반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고 퇴행적이다. 정치검사의 시대에서 검사정치의 시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밀어 올린 계기는 정치권력에 대한 두 번의 항명이었다. 언뜻 보기에 비슷한 사건인 듯하지만 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검찰 수뇌부가 방해한 것이 문제였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수사를 시작한 게 문제였다. 하나는 수사를 못 하게 방해한 것이고, 하나는 수사를 무리하게 착수한 것이다. 특히 조국 일가 수사는 국민의 선택권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검찰이 개입한 사건이다. 검찰이 수사를 무기로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권위주의 정부는 정치검사 전성시대였다. 정치권력은 검찰의 조직과 이익을 보호해주고 검찰은 정권이 원하는 수사만 했다. 윤석열 본인도 정치검사였다. 이명박의 비비케이(BBK) 관련 면죄부에 일조한 뒤 출세가도를 걸었다. 윤석열이 이명박 때가 제일 쿨했다고 한 것은 그래서다. 하지만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검사의 길을 거부했다.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검찰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윤석열의 항명은 검사정치 개막의 전주곡이었다. 윤석열의 편파적 정의감  물론 검찰출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군대가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자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야당에 입당함으로써 총장 임기 중 벌인 일련의 수사가 반정부적 활동의 일환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이를 우려한 검찰 안팎의 많은 인사가 반대했으나 그는 결국 자기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검찰은 윤석열이 당선돼도 문제, 안돼도 문제일 것이다. 윤석열이 당선된다면 정적을 처단하는 칼이 될 것이고(촛불항쟁 이후 국민적 염원이었던 적폐청산과 비교하지 마시길!), 당선되지 못한다면 수사-기소 분리는 물론이고, 해체에 가까운 대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정의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의감이 이기적이고 편파적으로 작동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세계는 피아로 나뉜다. 나를 기준으로 동심원을 넓히듯 내 식구, 내 조직(검찰), 내 계급(또는 진영)의 눈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윤석열의 이기주의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낡은 조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퇴행성과 잔혹성이 있다. 아무리 보수주의가 인간의 이기심에 터잡은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 윤석열처럼 역지사지가 통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는 이명박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편협한 자기확신으로 세상을 일도양단해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실행한 역사가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과 검찰의 이기주의  윤석열의 이기주의는 ‘제식구 봐주기’라고 비판받는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와 뿌리를 공유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은 검찰이라는 조직의 이기주의를 만들어온 핵심 당사자이자 수혜자로서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윤석열 자신이 책임자였을 때 언론에 보도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제식구 봐주기 사례만 해도 부지기수다. 한동훈의 검언유착 사건 감찰을 막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라임펀드 술접대 검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99만원 불기소 세트’, 스폰서 검사로 유명했던 김광준 검사에 대한 영장 반려 등 얼른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도 이 정도다. 유검무죄 무검유죄인 셈이다. 그중 백미는 동생처럼 아끼는 윤대진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 혐의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최근 <시사인>의 고제규 기자가 쓴 기사 ‘윤석열의 아킬레스건, 윤우진 전성시대’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358에 정리가 잘 돼 있다) 윤우진은 해외로 도피했다가 국내로 송환됐지만 검찰의 무혐의 처분 덕분에 명예롭게 공직을 마친 뒤 잘살고 있다. 내로남불은 검찰의 학습된 정체성  윤석열의 박애주의가 검찰 후배만이 아니라 후배의 식구한테까지 적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검찰 전관비리(예우)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식구끼리 서로 봐주고 챙겨주는 문화는 퇴직 이후에도 이어지며, 변호사로 변신한 선배가 수임한 사건은 내 식구의 사건이 된다. 현직일 때 선배 사건을 잘 챙겨줘야 내가 퇴직했을 때 후배도 내 사건을 챙겨준다. 검찰은 대를 이어 먹고 사는 밥그릇 공동체다. 검찰의 내로남불은 오랜 기간 학습된 조직적 정체성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전근대적 규정 아래 강요된 조폭적 질서에서 윤석열처럼 내 식구를 보호하고 챙기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검사들이 조직의 인정을 받고 출세했다. 임은정 검사처럼 주류 논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애’ 취급받으며 왕따당하는 조직이 검찰이다. 그 주류 중의 주류가 윤석열이다.  검사의 수사와 기소 업무는 판사의 재판 업무와 달라서 일정한 양형 기준도 매뉴얼도 없다. 말 그대로 검사의 양심과 검찰조직의 상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대중이 보기에 명백히 죄가 있는데도 검찰이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 반박이 불가능하다. 죄에 비해 과도한 강제수사를 벌이거나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법무부가 제도를 바꾼다는 데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자의성이 쌓인 결과 지금 우리나라 검찰과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밑바닥이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범택시>와 <빈센조>에서 주인공이 검찰을 믿지 못하고, 직접 나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은 이런 국민의 인식을 반영하는 설정이다. 김건희 모녀의 패밀리 비즈니스에 관한 의혹  윤석열 처가와 관련한 의혹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에는 검찰을 비롯한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장모 최은순씨가 연루된 소송에서는 최씨가 모종의 특혜를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쌍방으로 송사가 붙으면 백전백승의 승률을 보였고, 공동범죄(ex: 요양병원 건강보험금 편취 사건)일 경우엔 혼자만 처벌을 면했다. 그 숱한 소송에도 불구하고 홀로 건재하던 최씨가 건강보험금 편취 사건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이후 법정구속 됐다. 그동안 누군가 최씨를 비호하고 있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대택씨를 비롯한 소송 당사자들은 양재택과 윤석열이라는 두 명의 검사가 뒷배 노릇을 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양재택 전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와 김건희씨의 특별한 관계는 가족이나 주변 친인척들의 육성으로 확인된다. 함께 해외여행을 간 것이나 양 검사 쪽에 큰돈이 건네진 사실도 확인된 상태다. 양 검사와 김씨의 불륜 의혹은 단순한 사생활이 아니라 검사의 권력형 비리 혐의와 관련이 있는 핵심 사안으로서 그 실체가 남김없이 밝혀져야 마땅하다. 공권력을 사적으로 부려 사익을 취했다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범죄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장차 퍼스트레이디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할 공적 의제라고 생각한다. 이기주의자 윤석열의 예상된 반응  <뉴스타파> http://newstapa.org/article/_qx4L와 <뉴스버스>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180 등의 취재에 따르면, 김건희씨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고(상대방은 이를 위증교사라고 주장한다) 증인에게 1억 원을 건네려고 하는 등 어머니의 사업에 꽤 깊은 관여를 했다고 한다. 이른바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에서도 김건희씨 이름이 등장한다. 그런데 역시 윤석열은 예상대로 아무것도 몰랐다는 태도다. 장모 관련 의혹들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내 식구 챙기기의 달인답다.  만약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전에 부인 정경심씨의 ‘회원유지(member Yuji)’ 논문이 발견됐다면, 이력서에서 한림성심대를 한림대로 표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민정수석 재직 시절 부인 소유의 회사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협찬을 했다면(코바나컨텐츠 협찬) 어떻게 됐을까? 주가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면(도이치모터스) 지금처럼 언론이 조용할까? 한동훈의 표현처럼 “일개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나는 이 거대한 침묵이 의아할 따름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08-26 | hrights | 조회: 2201 | 추천: 27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한민국 헌법에는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민주공화국’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두 표현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 1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다.”(전문, 4조) 전자는 한국의 정치적 정체성 규정이고, 후자는 그 정체성의 구현 자세이다. 이 둘은 대립하는 언어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주권자가 되어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자와 국민 모두 동일한 법적 통제를 받으며 국민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정치형태이다. 국민이든 선출된 정치인이든 원칙적으로 동일한 법적 통제 아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자유와 평등을 해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닌다. 그래서 독재에 의한 억압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선택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결합해 ‘자유민주주의’라는 복합어도 생겨났다.  자유민주주의라지만 개인의 자유가 무한히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북한식 사회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를 부각시키며 신자유주의적 자유 경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도 결국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을 국민에게 두면서, 국민주권을 위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적 통제 장치를 두고 있는 정치 체제이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방임이 아니고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다. 자유민주주의도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에 의해 제한되는 민주주의이다. 자유 지상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라고 해도 상관없을 그런 민주주의이다. (이효원, 『평화와 법』, 137-139)  이것 딱히 새로운 해석이나 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도자 백범 김구도 진작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국가 생활을 하는 인류에게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 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느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김구, 양윤모 옮김, 『백범일지』, 더스토리, 498쪽)  모든 국민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만,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제한적이나마 법적 통제 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도 민주공화적 질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둘은 순환 관계에 있는, 사실상 동의어다. 자유민주주의든 민주공화국이든 ‘민주’에서 만나 상호 순환하는 가치들이다. 이러한 공통의 민주 영역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구체화하는 근간이다.  그 공통 지점은 상생(相生) 적이어야 한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 방식은 민주주의라고 말하기 힘들다. 양자의 상위에 있으면서 양자를 살려주고 포섭하는 더 보편의 영역을 합의해가는 일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지속적인 대화로 양자 긍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상위의 가치를 합의해내야 한다.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다. 충돌하는 지점을 포섭하면서 공통의 가치로 상승시켜주는 상위 혹은 심층적 가치 지향적인 행위이다. 상위의 상생적 가치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지난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메타 정치’이다. 가능한 모두를 살리는 상위의 가치에 입각해 합의점을 확보할 줄 아는 행위가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역량을 보여준다.  백범은 1947년도에 이런 비유를 남긴 바 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애쓰는 자유가 아니다.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백범일지』, 505쪽) 사진 출처 - 구글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란 각자도생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전체 상생을 위한 자유다. 저만의 눈요기를 위해 꽃을 꺾지 않고 모두를 위해 꽃을 심을 자유이다. 더 큰 자유를 위한 자기 조절과 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그런 자유(여야 한)다. 헌법적 통제조차 각자도생의 자유 경쟁으로 내모는 협의의 자유가 아니다.  자기중심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충돌하는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갈등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서로의 입장을 긍정하며 대화에 임해야 한다. 이 대화는 고민 없는 무조건적인 승인이 아닌, 더 넓은 상생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지난한 가치 지향적 행위이다. 하위의 대립적 범주들을 포섭하는 상생적 가치를 합의해내고 그 길로 수렴시켜야 한다.  우파 민족주의자였던 백범이 좌파 민족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김원봉과도 손잡았던 것은 같은 민족의 이름으로 모든 이가 함께 사는 해방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것은 더 큰 자유를 위한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좌·우가 합작’하면서 비로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통합정부의 기초를 다졌다. 자기만을 위해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가 아니다. 자유는 스스로를 제한하면서 서로를 살리고자 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자유민주주라지만 사회민주주의와 대립해야 할 이유도 없다. 자유도 모두를 위해 꽃을 심는 그런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유 지상주의는 결국 자신의 자유도 침식시킨다. 심지어 법학을 공부했다면서 자유라는 말을 앞세워 더 큰 자유를 억압하며 결국 각자도생의 길로 내모는 얄팍한 정치인의 행동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1-07-28 | hrights | 조회: 1324 | 추천: 11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구 17만 명이 살고 있는 충남 당진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송전선로를 타고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로 보내진다. 이를 위한 고압송전탑이 526기가 설치돼 있고, 15만4000V(154kV), 34만5000(345kV), 76만5000(765kV) 등 고압의 전기를 전선을 통해 흘려보내는 송전선로의 길이가 무려 199km에 달한다.  세 가지 종류의 고압 송전선로가 모두 지나는 석문면 교로리에서는 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최근 30년 동안 암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해왔다. 대규모 변전소가 있어 송전선로가 거미줄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정미면 사관리에서도 주민들의 암 발생이 증가했고, 가축이 기형인 새끼를 낳거나 유산하는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어디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밝혀내지 않았다. 발전소와 한전 모두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고압송전선로 아래에서 형광등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불이 켜지는 현상이 여러 차례 뉴스를 통해 보도됐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전자파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주민들은 전자레인지 속에 사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2013년 무렵 밀양에서 송전선로 반대 투쟁이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당시에 당진에서도 주민들의 송전선로 반대 투쟁이 있었고, 그 지난한 싸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석문면 교로리의 고압 송전선로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7월 12일, 신평면을 지나는 송전선로 구간의 마지막 송전탑이 건설되는 현장에서 공사 강행을 반대하던 우강면 주민 6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신평면 마지막 구간인 신당리에 송전탑이 건설되면 곧이어 우강지역으로 송전선로가 이어져 내려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송전선로를 지중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강지역 주민들이 소들섬에 철탑을 꽂는 가공송전선로(철탑을 이용해 공중으로 연결한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이유는 밀양이나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자파로 인한 주민 건강에 대한 염려, 지가 하락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도 포함되지만, 무엇보다도 소들섬을 지키기 위해서다.  소들섬은 삽교천 하구에 위치한 5만 평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유속의 흐름과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삽교천 하구에 자연스럽게 모래가 쌓이면서 생긴 하중도다.  오랜 세월 동안 이름도 없어 ‘무명섬’으로 불리다가 송전철탑이 섬에 꽂힐 위기에 놓이면서 주민들은 지난 2016년에 토론회를 열고 ‘소들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강지역의 너른 평야를 예로부터 조상들은 소들강문 또는 소들평야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들섬은 지역주민들의 오랜 삶터였다. 삽교호방조제가 막히기 전만 해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어장이었다. 썰물 때는 소들섬까지 이어지는 갯벌이 드러나 이곳에서 각종 조개와 민물장어 등이 잡혔다.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된 이후에는 최근 몇 년 전까지 농민들이 소들섬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제 호수가 된 이곳 주변에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온 낚시꾼과 캠핑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을이면 우거진 갈대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겨울이면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추는 곳이다.  생태적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높은 이곳에 철탑을 꽂겠다는 한전은 두어 달 뒤 수확을 앞둔 벼를 굴삭기로 깔아뭉개고 공사를 강행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이 맨몸으로 굴삭기를 막아섰지만, 경찰에서는 업무방해라며 주민들을 끌어내 연행했다. 주민들은 물이 첨벙대는 논에 빠져 홀딱 젖은 채로 사지가 붙들린 채 질질 끌려 나왔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 농민은 윗옷이 가슴까지 올라가 신체 일부가 노출되기도 했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던 평범한 농민들이 순식간에 악성 시위꾼, 범법자가 되어 경찰에 끌려갔다.  그리고 해당 뉴스를 전한 어느 기사에 “그냥 돈 더 달라고 하는 것”,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사람 몇 명 안 사는 동네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지중화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댓글이 달렸다.  해당 댓글을 단 사람들은 전기가 어디에서 생산돼서, 어디를 거쳐, 자신이 사는 곳까지 와서, 자신이 편리하게 전기를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감수돼야 하는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당진은 소비 대비 전기 생산량이 500% 이상이다. 당진에서 생산해 당진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불과 1/5도 되지 않는다. 당진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 중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서 도시민들의 삶을 밝히고 있다.  작은 시골 지역엔 몇 사람 살지 않으니까 해당 주민들은 국가를 위해, 또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절대다수의 소비자인 서울과 수도권, 대도시 주민들을 위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전기는 당진시민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적힌 어느 현수막의 문구가 지역주민들의 피눈물 맺힌 절규라는 것을 도시민들은 알고 있을까.
2021-07-20 | hrights | 조회: 1121 | 추천: 10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창시절, 나로선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직업이 2개 있었다. 판사와 목사다. 둘 다 다른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죄를 묻고 단죄하고 교화시키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사람을 치유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한단 말인가. 더구나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고? 엄청난 사명감과 소명의식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 직업의 분들을 경외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를 하겠다 나선다면 좀 생각이 달라진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숙고하겠다”며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사표를 냈다.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사정기관의 수장이 본분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일었고 대통령도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퇴 전부터 대선후보로 거론됐고 그 자체로서 중립성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으니 ‘감사원장 수행이 부적절하다’는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궁금한 건, 어떤 지점에서 최 전 원장이 직접 정치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감사원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한 동료를 업어 등원시켰다거나 두 아들을 입양하는 등의 인간적 면모로 대중에 알려졌지만, 그는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지낸 것 외에 다른 정치적 경력이랄 건 없었고 굳이 정치판에 나설 이유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의 존재감이 드러난 건 월성원전 1호기 감사 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을 때다. 감사원 내부의 반발도 있었고 정부 부처의 비협조도 강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이 되고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신이 벽에 부딪히면 보통 끝까지 버티거나 미련 없이 물러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판을 갈아엎겠다는 결심까지 한 것 같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집권 연장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문제의식과도 닿아 보인다. 여하튼 검찰총장에 이어 감사원장까지 임명권자에게 등을 돌리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어색한, 정권으로선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헌법기관과 권력기관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갖지 못한 지 오래다. 사법부는 권위주의 군사정권 아래에선 권력의 시녀로 불렸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엔 정권과 거래하는 사법농단이 일어났다. 지금도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란 단어는 심하게 말하면 조직 이기주의와 보신주의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형 원장더러 당신만은 끝까지 임기를 지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라 말하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선거에 나설 수 있다.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도 아니다. 판검사 출신도 당연히 할 수 있다. 부족한 정치 경험이야 과외도 받고 대권 수업을 하면 된다. 머리 좋은 분들이니 습득도 빠를 것이다. 주위에 돕겠다는 인재들도 줄을 설 것이다. 여기에 강력한 정치적 동기까지 있으니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이 대통령에 도전 못 할 이유는 없다. 야당 후보로 나서든 여당 후보로 나서든 따질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왜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지,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법관, 법조인은 평생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원칙과 질서,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소명의식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원장도 이런 법과 양심의 발로에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대단히 소중하고 값진 문제의식이지만 나는 그 출발점이 위태로워 보인다. 법과 양심, 원칙은 가치로선 소중하지만 그걸 적용할 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원칙과 법과 상식, 공정, 정의가 얼마나 공허하고 내용이 없는 단어인가. 이 단어들이 의미를 갖고 가치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토론과 숙고와 합의와 절충과 양보와 이해와 에너지가 필요한가. 그런 노력을 생략한 채 단기속성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말리고 싶다. 집권자가 이런 가치를 섣불리 들이대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 민주주의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 법조인이 정치를 하려는 이유를 안티테제가 아닌 자신만의 비전과 생각을 좀 더 고민하고 다듬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그랜토리노’가 생각난다. 한국전쟁 참전의 상처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고집불통의 노인 월트에게 새파랗게 젊은 신부가 찾아와 아내의 유언이라며 고해성사를 하라고 설득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공에게 애송이 신부의 설교는 가당치도 않았다. 이 옹고집 노인의 마음을 연 것은 사명감과 소명으로 충만한 신부의 설교가 아니라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던 아시아 소수 민족 타오 남매의 삶과 고통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었다. 어려움에 빠진 타오 남매를 돕고 그들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월트는 자신의 무시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과 타오 남매를 돕는 젊은 신부를 다시 보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이웃 남매를 위해 내놓는 월트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 영화는 끝난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행동의 이유가 된다. 말씀만으로는 이 세상을 구할 수도 없고 한 인간의 마음을 열 수도 없다. 정치나 권력은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니만큼 그 힘을 가지고 싶은 이들은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 개입의 책임 그리고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 명백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1-06-30 | hrights | 조회: 1864 | 추천: 16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뭔가 덜 행복해지고 더 기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말처럼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 고집스러워지고 바뀐 현실에 덜 귀 기울이는 이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늙은이는 곧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도 옛날 논농사 짓던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자주 든다. 오늘 만난 한 지인한테서 “아버지와 사이가 꽤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이유는 “원래부터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나라에는 ‘어른’이라고 할만한 분들이 많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문익환, 리영희, 김대중 같은 이들은 더이상 없다. 종족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영훈은 말할 것도 없고 김종인 같은 이들도 능력 있는 건 알겠는데 존경심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한편에선 사회원로라는 말 자체도 인플레이션이다. ‘이코노미조선’이 올해 신년기획으로 사회원로 7명의 조언을 들었다는데 등장인물들이 총리나 장관 등 한 자리씩 차지하며 잘나갔던 분들인 건 알겠는데 나이 많은 것 말고 원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도대체 모르겠다. 물론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처럼 특별교부세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물건인지 장관 자리를 걸고 국민들에게 알려주신 게 업적이라면 업적인 분도 있겠다.  “나 때는 말이야”는 말은 농담이나 단순한 경험담으로는 들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궁서체 느낌이 나는 순간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50~60년대생은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려고 해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고, 게다가 극장 구경도 제대로 못 해본 사람이 태반이었던 후진국에서 자랐다. 반대로 80~90년대생은 성장기에도 선진국 문턱이었고 지금은 말 그대로 선진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는 건 평생 벼를 키운 중국인 농부와 평생 말을 키운 몽골인 유목민만큼이나 아득하게 먼 느낌일 것이다. 하긴 1970년대에는 공무원들이 필리핀으로 해외 우수사례 견학을 갔고 2021년에는 해외 각지에 있는 공무원들이 한국으로 견학을 오는 마당이니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대화를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신기한 해외여행 얘기도 아닌 바에야 ‘라떼’ 시리즈를 교훈으로 쓰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일 테니까.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은 그냥 조용히 입 닥치고 지낼 일도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연륜은 언제나 힘이 있다.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오래 잘 묵힌 김치로 끓인 김치찌개만큼이나 사람을 잡아끄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나 때는 말이야’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보여주는 방대한 데이터 저장소 같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가 내 부실한 뇌세포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영화 ‘인턴’은 그런 모습을 꽤나 실감 나게 묘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70세 노인이 하필이면 그 전화번호부 회사가 있던 사무실에 입주한 온라인 여성 의류 판매 기업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남들이 노트북을 켜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일할 때 007가방에서 전자계산기 같은 오래된 물건을 꺼낸다. 주인공 벤이 ‘나때는 말이야’라면서 정장과 가방 얘길 했다면 회사 직원들은 그저 70년을 살았고 이제 자기들 눈앞에서 빨리 사라져주면 좋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 같다. 하지만 벤이 풍부한 경험과 연륜으로 동료들과 어울리고 헌신적이고도 사려깊은 자세로 경영자의 신뢰를 얻자 그의 오래된 물건들은 ‘클래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정장 복장은 믿음직한 사람의 표식처럼 비친다. ‘경험이란 결코 늙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요새 젊은것들’ 소리가 조선시대와 고대 그리스, 심지어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적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세상 모든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특별하게 느끼고, 윗세대와는 다른 좀 더 진화한 생명체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특히나 ‘저런 꼰대와 우린 다르다’는, 구별을 짓고 싶은 마음은 이러저러한 세대론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게다가 나이가 곧 계급이고 신분인 한국 문화에선 나이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기도 하겠다.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이광수도 공자왈 맹자왈 하던 윗세대와 신학문을 배운 자기 세대는 질적으로 다른 ‘세대’라고 강조했다고 하고, 해방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심지어 지금 40대도 한때는 ‘새 세대’라며 언론의 주목을 한껏 받았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자신들이야말로 ‘낀 세대’이고 그 때문에 윗세대보다 손해를 더 본다고 인식하는 것도 오랜 역사가 있다. 1993년 한겨레, 1995년 동아일보, 1997년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30대를 ‘감각적인 신세대와 옛 세대 사이에 낀, 활자와 비디오 사이에 낀 세대’로 묘사하는데 당시 “샌드위치 세대”라는 30대가 바로 지금은 꼰대의 대표주자처럼 놀림받는 86세대다. 1997년 동아일보에는 “이기적이고 타인과 현실정치에는 무관심한 신세대”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 신세대가 지금 가장 정치참여에 적극적이라는 40대다. 2005년 경향신문과 노컷뉴스,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효를 하는 마지막 세대’라며 당시 50대를 낀 세대로 표현하는데 이들이 지금은 60대다. 2005년 동아일보에는 58년 개띠를 낀 세대로 분석한 기사도 있다. 이쯤 되면 ‘끼여서 손해 보는 세대’가 아닌 세대가 고대 이집트 이래로 한 번이라도 있었나 싶어진다.  요즘 MZ세대 얘기가 한참이다. 세대론이란 언제나 뭔가 새로운, 그래서 이러니저러니 갖다 붙이기 좋은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세대론을 확산시키고 이러저러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건 언제나 세대론을 통해 ‘옛 세대’로 규정되는 세대라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386세대”도 그랬고 “X세대”도 그랬다. ‘모래시계 세대’니 ‘신세대’니 ‘Z세대’니 각종 세대론이 쉴 틈 없이 이어지며 약을 파는 모양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정체불명인 “새정치”가 울고 갈 정도다. 과연 요즘 한참 잘나가는 ‘MZ세대 담론’은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06-23 | hrights | 조회: 1068 | 추천: 4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21대 국회를 향한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소리가 갈수록 드높아지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았냐는 낙관론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지난해 15인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국가보안법 제7조를 삭제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고 지난 5월 19일에는 단 열흘 만에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10만 국민동의 입법청원이 성사되었으며, 국민들의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염원하는 뜻을 반영한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 법률안도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열망과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분단 냉전의 장막은 한 치의 파열구도 허용치 않고 있다. 북 지도자의 자서전 출간에 대해 국가보안법 탄압이 횡행하는 단 하나의 사실만 보더라도 총체적 파시즘 체제에서 탈주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한국 민중의 힘이 파시즘 악법 국가보안법을 능가할 정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안이하고 섣부른,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주관적 국가보안법 폐지 낙관론에서 벗어나 국가보안법에 의해 거세당한 민중의 저항력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 계기로써 21대 국회를 향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야, 2004년 ‘하마터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뻔했다’는 식의 추억 바라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북에 대한 미군 주둔과 북에 대한 적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도구다. 반제국주의 평화운동, 북과의 평화공존, 자주적 평화통일을 가로막아 한국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차단한다. 친북 성향이라는 이유로, 동족인 북과 화해하고 연대해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었다. 지금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주한미군의 철수와 관련된 문제다. 국가보안법의 파시스트적 영향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반미 반제국주의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고,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진보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과정에서 남북은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 과정은 제국주의의 동북아 정치 군사개입을 영구 배제함으로써 미군기지가 없는 동북아 평화를 만드는 길과 연계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치안유지법>이 해방과 함께 폐지되었으나, 국가보안법은 치안유지법을 답습하여 형법이 만들어진 1953년보다 훨씬 앞선 1948년 12월 1일 친미반공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제정되었고 국가보안법의 유년기는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그에 이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였던 통일애국세력을 고문·학살하는 반공, 반통일, 반민중적 성격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기였다.  국가보안법은 반공법 제정 후에는 반공법과 함께, 나중에는 반공법을 흡수한 비대해진 몸으로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로 성장하며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군사독재정권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억압하고 군사정권을 연장, 강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 반외세 민중민주 운동과 자주통일운동을 좌경용공세력으로 몰아 고문·학살하는 법적 근간이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중장년기, 노년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한국 민중을 위한 선진 사상과 선진 정책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절대무기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이웃하는 동족의 사상과 체제와 정책은 금기시되고 비방과 폄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북맹과 허위의 우월의식으로 우리 민중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극우보수세력의 절대무기로 진보정당을 해산시키고 극우보수세력의 집권과 정권유지에 악용되었고, 지금도 극우보수세력의 재집권을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게 느끼도록 세뇌당하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민중의 저항력을 상실시켜 왔을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폐지되기 전에는 어디에서도 사문화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민중의 투쟁에 의해 국가보안법의 악폐성에 대한 저항력과 견제력이 커질 때 파시스트적 독성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는 있으나 그도 잠시일 뿐 호시탐탐 자주적 평화통일운동과 진보적 민중운동을 겨냥하고 한국 민중을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분단냉전체제에 길들이며 반민중적 파시즘 체제에 안주하게 하려고 분주히 작동해 왔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저항이 있는 곳에 탄압이 있듯 만약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된 듯이 보인다면 민중의 저항력이 거세되었기 때문이기에 이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국가보안법의 파시스트적 악폐성은 차고 넘친다.  국가보안법은 평화통일의 대등한 동반자로 신뢰증진의 대상으로 존중하여야 할 동족인 북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북의 사상과 이념, 체제와 제도 일체를 붕괴시키거나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비방하고 적대시한다.  국가보안법은 1991년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을 무색하게 만들며 유엔의 정식 가입국인 북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 중 유독 동족인 북의 국가성을 부인하며 반국가단체(내란단체)로 규정하여 북의 지도자, 간부, 북의 민중들 모두를 반국가단체(내란단체)의 구성죄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반국가단체인 북과 같은 주장과 정견을 개진하거나 한국 정부의 허가 없이 북 주민을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을 처벌 통제하며 심지어 북의 인터넷 사이트조차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며 형사처벌을 한다.  특히 미군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물론 남북이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로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방안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하는 것까지 형사처벌한다. 평화적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안한 북에 대하여 적화통일방안이라고 비방하는 적반하장의 논리가 득세하는 비정상의 극치다. 외세와 야합하여 북 사회주의 붕괴를 노리며 자본주의로 흡수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셈은 휴전 후 정전협정에 근거하여 일관되게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 북에 대하여 한사코 대화와 협상을 회피하고 거부하며 북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노리고 온갖 핵 전략자산을 동원한 가공할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북의 무력통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해준다는 구실로 방어적 훈련이라며 위장하여 북 지도자 참수, 북 정권 격멸 및 평양점령 훈련을 자행하는 것과 똑같다.  국가보안법은 한국 민중을 분단 냉전체제의 어두운 장막 안에 가두어두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매카시즘보다 더 악랄한 암흑의 장막을 뒤집어씌운 채 북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로지 북에 대해 비방하고 적대감을 고취할 자유만을 우리 민중에게 강요하며 동족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동족과 민족단결을 추구하며 반미자주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한국 민중의 요구를 철저하게 짓밟는 파쇼악법으로 작동하고 있다.  북에 우호적이거나 미국을 반대하는 일체의 활동이 불온시 되고 형사 처벌당하는 국가보안법의 위협과 억압 앞에 우리는 모두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무고한 형사처벌을 받았던 양심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양심수는 국가보안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에 맞서 저항하였으므로 오히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로 볼 수 없다. 한국 민중 모두가 누구나 기나긴 국가보안법의 악행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본능적으로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야만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진실과 정의가 뒤바뀌고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뀐 사회가 되었다. 한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포는 북이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광기의 폭력에 가위눌린 것이다. 한국민은 국가보안법의 위력 앞에 공포감을 느끼며 사는 트라우마의 피해자이다. 한국민은 누구나 외세와 극우 보수세력의 광기의 폭력 앞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는 트라우마에 익숙해진 나머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다 국가폭력에 희생당하는 길보다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언제나 미국은 동맹, 북은 적이란 허위의 틀로 스스로를 검열하고 재단하기 십상이다.  동족만을 적대시하고 동족을 붕괴시킬 목적의 국가보안법은 반통일, 반민중 악법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등 남북 정상의 합의를 이행하는 데 걸림돌이다. 한반도 종전선언 및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적대관계를 끝내야 하므로 북을 처벌하고 붕괴시킬 대상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선결적으로 폐지되어야 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하는 최우선의 최고의 과제다.  일본 제국의 통치질서의 핵심 도구였던 치안유지법이 일제의 패망과 함께 비로소 폐지되었던 것처럼 국가보안법 폐지도 어쩌면 제2의 해방을 이뤄야 가능할 최후의 과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1-06-16 | hrights | 조회: 1440 | 추천: 7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진시황(秦始皇). 중국 천하를 처음 통일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은 흔히 진시황이 중국 천하를 처음 통일했으나 아방궁을 짓는 등 방만한 재정 낭비로 반란을 초래했으며 그 결과 진나라는 30년도 안 되어 멸망했다고 한다. 나는 진시황의 ‘낭비’에 대한 도덕적 힐난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다른 가설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이 광대한 땅과 숱한 인민들에게서 얼마를 거두어야 할지 그는 아직 몰랐을 거라고. 같은 시기의 자료를 보다 갖게 된 감이 있어서이다.  당시 못 살겠다고 봉기한 군중 중에 항우와 유방이 있었다. 둘은 나란히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했다. 항우의 군대가 점령군답게 금은보화를 차지하고 방화와 파괴에 몰두했을 때, 유방의 제1참모로 나중에 재상이 되었던 소하(蕭何)는 지도와 문서를 챙겼다. 그는 항우에게 핍박당해 파촉으로 쫓겨가 있을 때 이 문서를 연구했다. 지도는 경지를 포함한 천하의 땅에 대한 정보였고, 문서는 인민에 대한 정보였다. 얼마를 거두고 누구를 동원할지 따져보았을 것이다. 인민과 생산물에 대한 파악, 국가가 맨 먼저 하는 일이다. 그것을 실패하면 국가가 될 수 없거나, 망한다.  국가만 공무원 조직을 동원해 인민을 관찰하는 게 아니다. 인민들도 정책과 관리를 통해 국가를 들여다본다. 조선 시대처럼 강력한 지식인 집단이 국가가 하는 일에 참여하고 국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요즘처럼 시민들이 정보공개를 통해 국정을 들여다보고 드러내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정보에 접근하는 기술이 달라 그 방식은 차이가 있다. 민주, 민본의 역량은 인민들이 국가가 하는 일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드러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산림청의 벌목사업을 조사한 환경운동가 최병성은 이렇게 물었다. “최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흉물스러운 싹쓸이 벌목 현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왜 이렇게 참혹한 벌목이 전국에서 행해지는 것일까?”(오마이뉴스, 최병성 리포트, 2021년 6월 2일.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6월호도 참고) 사진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의 “과도한 벌목의 진실이 무엇이냐? 국유림이냐?”는 질문에, 최병암 산림청장은 “사유림이다. 개인 재산이다. 산림청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산주인은 채산성 때문에 벌목을 할 이유가 없고, 심지어 산주인의 동의 없이 벌목이 이뤄지기도 하며 그 비율은 무려 51%에 이른다는 것이다.  또 산림청이 5월 25일 낸 해명자료에서 “어린나무를 베지 않으며, 이산화탄소 순흡수량과 저장량을 함께 관리한다”라고 한 말도 말장난이라고 지적했다. 산림청은 침엽수의 경우 30세, 활엽수의 경우 20세의 나무를 베고 있으며, 이는 수백 년에 달하는 나무의 수명을 감안할 때, 아주 어린 나무라는 것이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싹쓸이 벌목이 벌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산림조합! 산림조합이 산주인들을 찾아다니며 산지의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위임장을 요청한다. 거기에는 ‘나무 벌목과 조림과 조림지 풀베기’(조림 완료일로부터 3년), ‘어린나무 가꾸기 사업’(조림 완료일로부터 10년 이내) 및 관련 사업비 집행, 보조금 수령 등 일체 행위를 위임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산림조합의 이익률은 15%에서 23.1%로 늘어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8년~2012년까지 5년 동안 숲 가꾸기와 묘목을 심는 조림비용이 총 3조 1,301억 원이라고 한다. 산림청의 2020년 조림비용 고시문에는 이윤이 ‘노무비+경비+일반경비의 15%’라고 했으니, 3조 1,301억 원의 15%, 약 4700억 원이 산림조합에 돌아갔다는 말이다. 산림사업 시장이 모두 정부 예산에서 이루어지면서 각종 예산 부풀리기를 통한 비자금 조성, 공무원 뇌물 등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보면 산림조합은 막대한 이득을 보고, 산림청은 숲을 가꾼다는 미명 아래 국가 예산을 퍼부은 셈이다.  헌데 사태가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드러나면 해결방안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여기에 붙어서 부당이득을 취하던 자들의 발버둥일 뿐이다. 20~30년생을 대상으로 나무 베는 나이를 최소 60~70년으로 늘려 쓸모 있는 큰 나무를 생산해야 하며, '벌목 중심'에서 '보전 중심'으로 산림 정책을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현 정부에서 계획하는 30억 그루 심기가 산림조합 돈벌이가 아닌 국민이 누리는 숲,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림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산림 정책에서 고려할 두 가지 역사적 경험만 참고로 덧붙이고 싶다. 왕정 시대부터 국가가 보는 산림은 곧 목재와 같은 말이었다. 전함이나 궁궐 짓는 데 쓰는 목재의 생산지였다. 가축 사료로 쓰거나 지붕 이는 데 쓸 나뭇잎, 사람이나 가축의 식량이 되는 칡이나 열매, 노끈으로 쓰는 칡 줄기, 약재나 식용으로 쓰는 나무껍질이나 약초, 송진 같은 수액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근대 국가의 ‘과학적 조림’은 산림에 대한 단순화, 조작을 가속화했다. 산림의 상업적 착취를 목표로 한 다양성의 최소화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한 산림은 생물학적으로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양 사이클이 망가진 숲의 침엽수는 20~30%의 생산 손실로 이어졌다. 그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100년이 걸렸다.(제임스 C. 스콧 저, 전상인 옮김, 《국가처럼 보기》, 에코, 2010)  다음으로 사유림 대신 공유지를 확대하는 과제이다.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으로 동양척식회사가 차지한 국유 농경지 면적이 13만 7천 정보였다. 동척 소유가 된 ‘미개간지’의 면적은 120만 정보였다. 농경지의 10배였다. 즉 ‘공유지로 볼 수 있는 토지’가 불과 10여 년 사이에 ‘총독부에 의해 처분 가능한 국유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연히 이 중 대부분이 임야였다. 총독부는 공유지를 개인이 개발하여 사유하도록 조장했다. 제어할 정치세력이 없는 총독부가 주도한 공유지의 사유화였다. 이 과정은 더 연구가 필요한데,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국유림 비율이 70% 이상인 데 비해, 거꾸로 한국은 사유림이 70%인 역사적 이유이다. 방치된 사유지를 공유지로 바꾸는 것, 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부조리, 부패, 부정이 가려져 있으면 그런 게 자행되는 줄도 모르고, 따라서 해결할 길이 없다. 근래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민낯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은 그나마 쓰던 수사학도 내 던진 지 오래되었고, 검찰과 언론은 이미 어그러진 모습을 뻔뻔하게 드러낼 대로 드러내어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한 행태를 식상하게 바라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분들은 타락이라면서 걱정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타락이 아니라 실상이 노출되는 것뿐이다.  가깝게는 LH 직원들의 투기 사건이 그렇다. 공공기관이 토지와 주택의 매매라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순간 이미 예상되었고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며칠 전 공군과 해병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은 어떤가. 그동안 없었던 일이겠는가. 아니다.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다. 최병성 목사가 제기하는 산림청과 산림조합의 짬짜미 의혹도 그 연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뭘 하는지 시민들이 나서서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힘,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민본주의라고 믿는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1-06-09 | hrights | 조회: 1338 | 추천: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