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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을 제정하라! - 후배 C를 응원하며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20
조회
481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C는 나의 대학 후배다. 학생회관 5층 동아리 방에서 혼자 낯선 기도를 하거나 책을 뒤적일 때 슬며시 들어와 “형 뭐해?” 하고 옆구리를 찌르던 친구다. 목련이 지고 벚꽃이 한창이던 사월부터는 꽃향기에 실려 최루탄 냄새도 또아리를 틀던 시절도 있었다. 정문 옆, 병원 영안실 아래 초라한 자취방에 저녁이면 모여들던 후배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라면 몇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문을 열며 실없는 웃음 짓던 이가 C였다. 그가 광명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는 오래전에 들었다. 역시 벚꽃 활짝 피고 지던 어느 해 오월 즈음 동아리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수줍게 인사하던 간호학과 S를 꼬드겨 연애를 하고 신혼방을 차린 곳이 그곳이었으니까. 광명 시민신문 대표를 했고 광명 아이쿱 생협 이사를 맡았다. 그 외에도 그는 지역의 현안이 있는 곳에 서슴없이 들어가 아픈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단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현재 직함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공동대표다.


“2011년 6월 나래가 기침이 심했어요. 단순 감기 증상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한두 달 동안 증상이 지속되어 의심하고 있었죠. 그러다 호흡이 몹시 빨라지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되었어요. 서둘러 한밤중에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의사가 ‘급하다, 치료를 장담 못 한다. 그동안 10명 중에 6명이 같은 증상이었는데 죽었다. 치료법도 없다’. 라고 말하더라고요. 결국 ‘원인미상 간질성 폐렴’으로 진단받고 입원했지요. 그전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이미 임산부들이 같은 증상으로 죽고 언론에 많이 알려진 상태였어요. 나래도 이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입니다. 다행히 나래는 살아났지만 폐가 섬유화되고 손상당했어요. 지금도 감기에 걸리면 폐렴, 천식이 와요. 그 당시 폐가 약해져서……. 사실 우리 나래는 예외적인 케이스예요.”(2015.10 이슈in 아이쿱 인터뷰 중)


C의 딸 나래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아마 2011년 겨울 즈음 술자리에서 였을 터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이 시판된 2001년 이후 첫 피해사례가 발표된 2002년부터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역학조사 결과 발표가 있기까지 무려 53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그중 146명이 사망(2015.5 환경부 2차 조사 결과) 했다는 얘기는 해를 넘겨 간간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를 보도하는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럴 때마다 C는 뉴스의 한쪽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광화문이나 정부기관 앞에 있었고 국회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 회사 또는 판매매장 일 때도 있었다. 정부의 대응이라는 게 고작 2011년 역학조사 발표 당시 해당 제품의 구매와 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권고’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애초 그들에게 어떤 대책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4년을 이 사건에 매달렸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품을 외국 기업과 국내 대기업들이 앞 다퉈 18년간 20여종을 팔았고 국민 800만 명이 사용해왔다는 사실이. 2011년 정부가 긴급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나 학계, 언론 심지어 환경단체 어느 곳 한 군데에서도 안전상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로 인해 현재까지 사망자만 무려 142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다 되도록 가해 기업이 일언반구 피해 대책은커녕 사과 한마디 안 한다는 사실이.”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환경보건학 박사(2015.5.29. 한겨레 토요판 르포 중)


2015년 5월 나래가 아빠 일행을 따라 런던 외곽의 슬라우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 본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놈의 회사는 자기들이 만들어 판 물건 때문에 아픈 가슴 쥐고 먼 길을 날아온 어린 소녀에게 화장실도 내어주지 않았다. 일행은 볼일이 있을 때는 20분을 걸어서 슬라우 시립도서관 화장실까지 가야만 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 시위를, 나 몰라라 기업이 피해자를 영국까지 내몰았다고 보도했다. 나래는 땡볕 내리치는 이국의 낯선 거리에서의 고단한 일정을 불평 한마디 없이 소화해 냈다.


00532359301_20150530.JPG나래 어린이가 2015년 5월 영국 런던 근교 슬라우의 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촛불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해결된 게 하나도 없어요. 레킷벤키저는 영국의 100년 된 생활용품기업이에요. 국내 레킷벤키저는 본사가 아닌 지점이기 때문에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단체 도움을 받아 일주일 동안 영국 본사 앞에서 시위하고 영국 국회 앞에서 투쟁하고 알리고 했던 거예요. 영국 가디언에도 보도가 됐지만 해결은 안 되었어요. 그들을 세 차례 만나서 공식 사과하고 피해 보상해라고 했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자기네는 ‘오로지 소송으로 할 거다’라고만 말하는 거죠.”(2015.10 이슈in 아이쿱 인터뷰 중)


지난해 메르스 이후 한국을 휩쓸었던 ‘데톨’이라는 손 세정제도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이었다는 것도 그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옥시레킷벤키저의 전직 대표이사가 소환되었다.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관련 업체들이 사과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넋 놓고 있던 방송들도 연일 새로운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진정성을 확신할 길이 없으니 답답한 일이나 일단은 환영할만하다. C는 지금 검찰의 더 정확한 조사와 처벌, 가습기 살균제 국회 청문회 추진과 특별법 제정의 한복판에 서있다.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없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따라서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피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가 확인되더라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하지만 특별법이 제정되면 공소시효가 해결된다.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보내는 관심이 부러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정부나 국회, 우리 사회가 소홀히 다뤘던 지난 시간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특별법 제정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국민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안방의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관심이 부러웠다는 C의 말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오랜 시간을 만나왔으면서도 그가 분노를 토했던 저녁 술잔에 잔 한번 부어 주지 못 했다. 젊은 날 아픈 이들과 함께하며 예수 살이를 했던, 몸소 아픈 이가 되어있는 그에게 응원의 한마디 전하지 못 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5월 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