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소개 > 인권연대란?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연변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지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4-03 10:40
조회
301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작년에 ‘선을 넘어 생각한다’라는 책을 내고 나서 몇 차례 강연요청을 받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다가 프레젠테이션 첫머리에 집어넣은게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였다. 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14세기 조선 초기 별자리 지도를 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식 별자리 지도와 비교해보자. 한국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 있는 국자 모양을 한 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선을 그은 뒤 ‘북두칠성’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유럽 사람이라면 큰곰자리를 구성하는 꼬리와 등뼈 부분으로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얘기하면 선 같은건 없다.


 우리는 밤하늘을 보면서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하는 별자리를 생각하며 별과 별 사이에 선을 잇는다. 하지만 우리가 별자리를 기준으로 별을 인식하는 건 별자리를 잇는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니 하며 연결하는 선이란 그저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혹은 외우기 쉽도록 상상력을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28수,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같은 별자리를 만들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일단 별자리를 그리고 나면 그 별자리가 우리 인식을 규정해 버린다.


 우리는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한다. 별과 별자리 지도의 관계를 현실과 프레임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임이란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이 심어놓은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길 원하신다’는 생각의 씨앗이 자라고 자라서 아버지가 물려준 거대기업을 제 손으로 해체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치다. 선과 선을 잇고 특정한 틀 안에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지도(地圖)’야말로 그런 효과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지도에 매혹 당했다.



메르카토르 지도의 크기 왜곡 문제를 없앤 피터스 도법 세계 지도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지도가 만들어내는 생각의 ‘틀’


 주변에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를 대략 유럽만한 크기를 가진, 북아메리카보다는 훨씬 작은 대륙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는 ‘메르카토르 도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든 지도가 워낙 널리 퍼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 1569년 네덜란드 사림인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가 발명했다는 이 지도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실제보다 훨씬 더 커보이게 하는 정치적 효과까지 덤으로 거둔다.


 그럼 독일사람 아르노 피터스가 만들었다는 피터스 지도는 어떤가. 세계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표시한다는 이 지도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기괴하기까지 할 정도로 낯설다. 이 지도를 통해서야 우리는 아프리카가 미국과 중국, 인도는 물론 동유럽과 영국, 프랑스, 독일을 모두 우겨넣은 것보다도 더 큰 땅덩어리라는 걸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지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틀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 지도를 통해 세상을 더 지혜롭게 인식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의 틀을 깨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지도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계속해서 메르카토르 지도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할까. 짐작하건데, 메르카토르 지도가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에 훨씬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익숙한 걸 편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불편한 진실’이란 말은 틀렸다. 진실이란 원래 불편한 게 아닐까. 점심시간마다 서울시내에 울려 퍼지는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 수사 촉구’ 집회와 ‘트럼프 대통령님, 피로써 지킨 대한민국을 지켜주세요’ 현수막을 보면서 틀을 깨고, 선을 넘어 생각해보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노릇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