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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모를’ 훌리아 파스트라나, 프릭에서 표본으로 (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0-06 16:39
조회
1109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는 매우 못생긴 여성이다. 사실 티나의 정체는 북유럽의 울창한 숲속에 산다고 전해오는 전설의 존재 트롤이다. 『경계선』은 태어나자마자 꼬리를 제거당하고 인간 사회에 섞여 살게 된 트롤 티나가 자신과 같은 트롤인 보레를 만나 사랑하고 변화하는 이야기다. 티나는 뛰어난 후각을 활용해 마약 밀수를 적발하는 세관원으로 일하는 성실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였지만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혐오스런 외모 때문에 늘 움츠리고 숨어야 했다. 집이 필요해 그녀에게 얹혀살고 있는 에뤼는 티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난 너랑 완전히 똑같지만 외모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에뤼의 말에 티나는 크게 상처받는다. 가시로 뒤덮인 자신만의 고치 속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어야 했다. “그녀의 몸은 감옥이라기보다는 작은 우리 같았다. 안에 앉을 수도, 서거나 누울 수도 없는 우리.”


내 몸이 나를 옴짝 못하게 가두는 느낌, 타인의 시선에 내 외모가 끊임없이 평가받는 낯뜨거움, 그래서 숨고 싶은 심정, 친밀한 사이에서 더 가혹하게 들리는 외모 평가. 훌리아 파스트라나(Julia Pastrana)도 틀림없이 티나와 같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여성”이라 불렸던 파스트라나는 실존 인물이다. 선천성 기형으로 잇몸이 돌출되고 얼굴과 몸에 털이 뒤덮인 채 태어난 파스트라나는 프릭쇼 무대라는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의 몸이라는 좁은 우리에 먼저 갇혔다.


 파스트라나는 태평양에 면한 멕시코 시날로아 주에서 1834년에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인 1854년 흥행사 시오도어 렌트(Theodore Lent)에게 이끌려 고향을 떠나 미국 전역에서 프릭쇼(freak show) 무대에 올랐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통이 아닌 이상한 몸을 보여주는 프릭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파스트라나의 키는 1.35m, 몸무게는 54kg 정도였다고 한다. 시날로아 주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 산맥 어딘가의 동굴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인간이 틀림없는 어머니에게 안겨 있었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루트 디거 인디언(Root-Digger Indians)이라 불리는 원주민 출신이라고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프릭쇼가 돈벌이가 되는 이유는 관람자의 응시가 하나의 서사를 생산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응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찬찬히 뜯어 보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거나 말을 건네고 말을 듣는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응시는 관람자의 자기성찰을 수반한다. 경이와 매혹, 당혹과 불편을 함께 자아내는 프릭을 응시하면서 주체는 나를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프릭쇼를 함께 보는 경험은 관람자들 사이에 가상의 동질성을 만들고 ‘우리’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프릭쇼 선전 포스터와 팸플릿에서 파스트라나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혼종 인디언(Hybrid Indian)’, ‘곰 여인(Bear Woman)’, ‘개코원숭이 부인(Baboon Lady)’, ‘원숭이 여인(Ape Woman)’, ‘수염 난 여자(a bearded woman)’, ‘정체 모를 존재(Nondescript)’ 등이 그녀를 묘사하는 수식어들이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파스트라나의 경우는 극단적인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사례였다. 선천성 다모증과 잇몸 과다 발육증이 병명이었다. 그러나 프릭쇼는 그녀를 인간과 동물 사이의 존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존재로 부각해 관람자의 호기심을 극대화했다. 이런 문구들은 이를 위한 전략적 레토릭이었다.


 파스트라나를 응시하는 프릭쇼 관람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녀가 무대에 오르면 관중들은 놀라서 큰 숨을 몰아쉬었고, 비명을 지르거나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지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한다. 좀 더 꼼꼼하게 보려는 관찰자들은 그녀의 털과 수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유심히 들여다 보기도 했다. 보통의 여자에게 털과 수염을 붙여 가짜 원숭이 여인을 만든 건 아닌지 검열하는 시선도 있었을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체를 가려내기 원하는 관객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아예 ‘무엇일까(What is it)’라는 별명으로 불린 지프(Zip)라는 프릭쇼 주인공도 있었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진화론이 기성 세계관에 충격을 주었던 무렵, 진화가 암시하는 원숭이와 인간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찾기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었다. 인간과 유인원의 진화는 이미 몇 만년 전에 가지가 갈라졌기 때문에 잃어버린 고리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하지만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고, 목적을 향해가는 직선상의 상향 운동으로 진화를 이해하는 속류 다윈주의의 영향 속에서 잃어버린 고리라는 상상력은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파스트라나를 ‘원숭이 여인’으로 수식하는 표현은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다윈은 파스트라나를 본 적도 없고,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다음과 같은 짧은 언급을 남겼다고 한다. “보통보다 많은 치아 때문에 입이 튀어나왔고, 얼굴은 고릴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프릭쇼에서 파스트라나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는 그녀의 몸이었다. 잘록한 허리와 부풀어 오른 가슴을 강조하는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영낙없는 작고 귀여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영국의 자연학자 프랜시스 T. 버클랜드(Francis T. Buckland)는 살아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그녀를 직접 보았는데, 아름다운 숙녀와 털복숭이 괴물의 혼종이라고 묘사하며, “그녀는 선량하고 우아했다. 특히 작은 발과 미끈한 발목은 완벽 그 자체였다”라고 썼다. 여성적인 몸과 대조적으로 얼굴에는 턱수염, 콧수염, 구레나룻이 나 있었고 길고 윤기나는 털이 목과 팔까지 덮고 있었다. 자웅동체(hermaphrodite), 즉 암수 한몸은 당시 프릭쇼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장미꽃, 리본, 작은 모자, 러시안 댄서 드레스 같은 여성성의 표식을 부착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남성적인 얼굴은 프릭쇼 주인공으로서 그녀의 가치를 극대화시켰다. 여성에게 수염이 난다는 것은 젠더의 경계 넘기 행위로 여겨졌다. 턱수염 난 여자는 여자인 주제에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위험하고 불온한 존재이기 때문에 망신주고 조롱해야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여자가 남자 같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자연의 실수’인지를 파스트라나를 통해 확인했던 것이다.


 흥행사 렌트는 파스트라나를 데리고 미국 전역을 순회했을 뿐 아니라 런던, 비엔나, 뮌헨, 모스크바에서 까지 갔다. 공연은 성공을 거두었고 렌트는 큰 돈을 벌었다. 렌트는 파스트라나를 붙잡아 두기 위해 결혼을 했다. 곧 임신한 파스트라나는 1860년 3월 20일 사내 아이를 출산했다. 아기도 파스트라나를 닮은 기형이었고, 태어난 지 35시간 만에 사망했다. 5일 후에 산모도 사망했다. 죽은 후 파스트라나와 이름도 없는 사내아이의 운명은 더 가혹했다. 렌트는 모자가 사망한 지 36시간 만에 모스크바 대학 해부학 교수 수클로프(Sukolov)에게 시신의 해부와 박제를 허락했다. 수클로프는 모자를 방부처리하고 박제해 미라로 만들었고, 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의학지 『랜싯(Lancet)』에 발표했다. 미라는 모스크바대학 해부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수클로프의 의학적 시선은 몸의 내부로 들어가 파스트라나와 아기를 검시했다. 이제 그녀는 프릭에서 표본이 되었다. 프릭쇼 무대에서 해부학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에게는 비정상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선천성 다모증과 잇몸 과다 발육증을 앓는 유전성 질병 환자가 그녀에게 주어진 최종적인 분류의 자리였다. 병리학은 혼종성을 비정상성으로 만들고, 프릭을 표본으로 만들었다. 프릭쇼 선전물에서 보이는 선정적 표현은 사라졌지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병명이 정상인과 그녀를 갈라 놓았다. 프릭쇼가 인간과 동물, 문명과 미개의 경계선에 파스트라나를 서게 했다면, 의학은 그 경계를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질병의 이분법으로 바꿔놓았을 뿐이다.


 두 시신을 500파운드에 팔았던 렌트는 정교하게 제작된 미라의 상업성을 확인하고는 미국 영사가 발행해준 결혼 증명서를 내밀며 수클로포에게 반환 요청을 했고 결국 800파운드에 미라를 되샀다. 1862년 미라가 된 파스트라나와 아이는 런던에서 대중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박제 솜씨에 버클랜드도 감동했다고 한다. 이후 모자 미라는 영국, 독일, 스웨덴을 떠돌며 1970년대까지 박람회장에서 대중에게 전시되었다. 도난을 당해 사라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오슬로 대학 의학사 박물관이었다.


 박제된 채 약 110년간 유럽을 떠돌던 파스트라나의 유해는 2013년 멕시코로 귀환했다. 멕시코 출신 미국 아티스트 라우라 앤더슨 바르바타(Laura Anderson Barbata)가 2005년부터 오슬로 대학에 청원해온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파스트라나가 몸을 누인 하얀 관 위에는 “훌리아 파스트라나 1834-1860 국제적 활동으로 인정받은 시날로아 주 출신 아티스트.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멕시코 시날로아로 귀환하여 2013년 2월 12일 묻힘. 훌리아 파스트라나 평안히 잠드소서. 시날로아 주정부 시날로아 시의회”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아티스트’라는 호명이 낯설다. 프릭쇼 무대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한 건 맞지만 그녀가 그 일을 좋아했는지 알 수 없고, 노래와 춤을 익히게 된 것은 인간 전시를 금지하는 도시에서 법망을 피하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따라서 파스트라나에게 아티스트가 적절한 호칭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파스트라나는 ‘원숭이 여인’도, ‘곰 여인’도, ‘정체 모를 존재’도, 프릭도, 아티스트도 아닌 그냥 파스트라나일 뿐이 아닐까? 죽은 지 백 년이 넘어서야 영면에 든 파스트라나가 부디 자신의 몸과 화해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