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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예비 경쟁에 대한 소회(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8-19 17:34
조회
66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대선을 앞둔 최근의 예비 경선, 예비 후보 등의 말로 드러나는 바를 보자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여당과 야당들의 인사들을 합쳐 언뜻 추산해도 스무 명은 족히 넘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검증 등의 절차에서 알 수 있듯이 되는 과정도 워낙 어렵거니와, 되고 난 뒤에도 속된 말로 잘 하면 본전이고 욕을 먹기 예사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죽을 맛을 볼 수밖에 없어 보이는 일을 기꺼이 맡아 헌신해 보겠다고 하니, 한편으로 참으로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어렵고 궂은일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 일을 맡아 하게 되었으나,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누구는 국민에게 쫓겨 야반도주하듯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구는 잠시 대통령의 자리를 유지하다 마치 자신의 무능력이 군부 쿠데타의 빌미가 된 것인 양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구는 자신의 정적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일방적인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고 하다가 자신이 가장 신임한다 여겼던 부하에게 총격으로 사살되었다. 총격 사살된 자를 ‘모범’으로 삼아 역시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고 대통령 자리를 국민으로부터 강압적으로 빼앗았던 두 인물은 국민에 의해 사형 또는 수십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곤욕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그야말로 민주화를 내세워 국민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시피 했던 이른바 문민정부를 연 대통령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을 치렀다. 또 누구는 놀랍고 신선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 뒤 두 인물은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다만, 현재의 대통령만이 큰 문제 없이 대통령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으나, 반대쪽에서 나라를 다 망친 자, 나라를 팔아먹은 자, 도저히 용납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자, 심지어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극언을 듣고 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오롯이 산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정치란, 더욱이 대통령으로서 통치 행위를 수행하다 보면, 반드시 적이 있게 마련이고, 그 적들에 의해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핑계를 대고 본래 정치란 건 그런 게 아니냐, 하고서 넘어갈 수준의 역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 어느 인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임 대통령의 잘못이 있더라도 통치 행위에 대한 법적 수용성 범위를 넓혀 인정하기에 보복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조차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은 있지 않겠느냐는 토를 달았다.


 이렇듯 누가 보아도 이른바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이미 원죄를 뒤집어쓰는 일인 양,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벌써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이 심지어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적임자라고 외치며 나서니 고마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대통령 다음의 두 번째 지위인 국무총리를 했으니 이제 대통령이 되어 국가와 민족에 헌신해 보겠다는 뜻이겠고, 또 어떤 이들은 도지사를 했으니 나 또한 더 큰 뜻을 펼쳐 국가에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뜻이겠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 그동안 오랜 세월 나라를 위해 여러모로 헌신해 왔으니, 이제 그 헌신의 뜻과 힘을 더 크게 세워 나라를 책임지고 헌신하겠다는 뜻이겠다. 어떤 이는 장관을 했으니, 또 어떤 이는 검찰총장을 했으니, 또 어떤 이는 감사원장을 했으니, 이제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뜻인 모양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라는 각오를 피력하지 않는 이 없으나, 그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선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쉽게 단정하듯 자기 일신의 최고의 영달을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오히려 아주 쉽다. 그것은 능동과 수동의 분간이다.


 주체적으로 새로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행위는 능동이고, 새로운 긍정적인 삶을 형성하고자 하는 능동의 행위를 방해하거나 파괴하고자 하는 행위는 수동이다. 이 수동은 달리 말해 반동이라고 한다. 능동적인 삶은 주체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이다. 수동 또는 반동적인 삶은 남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타인의 능동적인 삶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방해하고 파괴하는 것 외에 자신이 능동적으로 새로운 일을 창조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능력도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능동의 삶을 살지 않은 자가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맡아 국민 모두의 삶을 책임지게 되면, 국민 모두의 삶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민 각자는 자신이 알아서 삶을 살면 될 일이지, 국가가 국민 각자를 위해 할 일이 특별히 없다고 강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거대 집단의 공동의 삶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주어지고 실제로 현실화될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국가는 보편적인 공동체다. 국가는 개인들이 모여 마치 군중을 이루는 것과 같은 양적인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각자 개인으로서는 생성되지 않는 보편적인 가치를 설정하고 구현하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인격체다. 개인 말고 법인이 하나의 통일된 법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아 활동하듯이, 국가는 거대한 보편적인 법적인 인격체로서 살아 움직인다. 국가는 개인으로서는 결코 상상하거나 추구할 수 없는 가치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현한다. 그 보편적인 공동의 가치를 생각해 보지 않은 자는 국가를 통치해 나갈 적임자가 될 수 없다.


 각자 개인들이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다른 개인들을 이용하고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는 것이 국가 운용의 최선책이라 생각하는 자는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가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설사 그러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를 누가 알 수 있느냐고 강변할 것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서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그 창조의 대상이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를 통해 상상되고 기획되고 실현되는 가치임을 안다. 다시 말하거니와, 어떤 처지의 어떤 상황에 놓였다 할지라도 그런 각자의 삶은 그 자신의 몫이며 각자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자는 결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 자에게 대통령직은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에 의해 획득한 자기 개인만의 배타적인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자는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만이 상상하여 실현할 수 있는 가치를 어떻게든 특히 허구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방식이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반동의 삶이다.


 사회적으로 힘든 처지에 놓인 많은 사람이 자기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그 처지에서 벗어날 희망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 그 길을 열어줄 힘은 오로지 보편적인 국가에서만 나온다. 국가는 개인들이 개인만의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손쉽게는 사회 인프라의 구축이란 말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서로 돕는 행위가 함께 모여 공동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통일된 상위의 한 보편적인 인격으로 형성된 것이 국가, 특히 민주주의-공화주의 국가다.


 그렇다면, 특히 중차대한 국가 통치의 행위를 놓고서 누가 능동이고 누가 반동인가는 그가 과연 국가를 통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도모하는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개인의 삶과 그 삶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분서주 기회를 엿보며 여기저기 왔다 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밀리에 탈법적이거나 탈도덕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일도양단의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완전무결한 자는 있을 수 없기에, 적절함의 상대적인 우열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주인이자 국가의 주체인 국민 된 의무로 각종 신뢰할만한 여론의 매체를 활용하면서 최대한 현명한 판단력을 발휘하여 저 어렵고 힘든 일을 기염을 토하듯 자임하고 나서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선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