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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지역화폐’의 미래가 궁금하다(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8-25 16:12
조회
603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요즘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읽고 있는 책이 있다. 「K를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코리아를 일컫는 알파벳이 아닌 대문자 ‘K-’가 쓰였을 때 느껴지는 특별함, 예를 들어 ‘K-POP’ 같은 현상을 분석한 젊은 인문학자의 글이 익숙한 듯 신선하다. X세대로 호명됐던 나의 입장에선 MZ세대의 인식을 살짝 훔쳐보는 재미도 크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세대론은 너무 안일한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K-’ 현상이 확산되는 기본 바탕을 이렇게 정리했다. 직접 인용해본다.


 “사회를 일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이들을 서열화하는 위계성, 그 피라미드 속에서 어떻게든 위계를 거부하고 상승하고자 하는 상향심, 모든 이들이 표준적 대세를 따르고자 하고 남들도 대세에 따르게 만들고 싶어 하는 적극적 집단주의, 국가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 모순적 국가관, 도덕을 통해서 발언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보다도 세속적 상향을 원하는 이중적 심리. 아마 한국문화의 이런 요소가 세계화, 정보화라는 변화를 맞닥뜨려 이 사회에 무언가 유별난 결과물을 만들어내 이 사회를 ‘미래’로 끌고 간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사진 출처 - yes24


 고개를 끄떡이게 하기도, 갸웃거리게도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역화폐‘와 연계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법률적 용어로는 ‘지역사랑상품권’, 경기도를 중심으로 많이 쓰이는 ‘지역화폐’가 20여 년 전 우리나라 사회에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대안화폐’란 명칭으로 불렸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공동체’를 표방하였고, 여기서 돈은 법정화폐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자도, 축적도 없이 화폐 본연의 가치만 가지며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공동체에서 순환하는 그런 돈을 지향했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3,000개의 지역화폐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위와 같은 목적으로 소규모 지역사회 커뮤니티 또는 특정 공동체를 중심으로 스스로 만든 돈을 유휴노동력 및 자원의 교환을 위해 사용하는 공동체형 지역화폐를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 모범사례로 불리는 영국의 브리스톨 파운드나, 스위스의 위어 같은, 법정화폐와 교환가능 한 지역화폐는 매우 적다.


 우리나라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한 것은 지난 1996년부터이다. 충북 괴산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데, 난 가끔 그 당시 이를 추진했던 공무원에게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왜 시작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추측건대, 이웃 일본 등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로컬 커런시(local currency)를 참조하여 말 그대로 지역사랑을 실천하는 상품권을 생각했을 것으로 상상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이 먼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 선을 보였던 후발주자이다.


 여하튼 지난 2018년까지 약 65개 정도 지자체에서 활성화된 지역인 성남, 포항, 양구 등을 제외하고 명맥만 유지하던 지역사랑상품권은 2019년, 2020년을 거쳐 현재 거의 모든 지자체(얼마 전 드디어 울릉군에서도 지역사랑상품권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가 도입을 하였으며, 행안부는 2021년 올해 전체 발행액 규모를 20조 원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 주도의 지역화폐가 자리 잡게 된 것은 법정화폐와 동일한 가치로 교환(환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많은 소비처(가맹점)이 동참을 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등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예산을 들여 제공하는 구매 인센티브가 있어 역시 동참하는 기제가 작동했다. 그리고 폭발적인 발행유통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2021년 20조 원이라는 발행유통량은 정부가 8%를 지원하는 10% 구매할인 인센티브와 각종 지원금을 지역화폐에 태우는 정책발행 덕분이다. 각 지역마다 외부로 유출되는 소비의 부가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 내에서 보다 많이 잠기고 순환되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엄청난 발행유통량에 따라 더 많은 소비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대기업상권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던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지역화폐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웬만하면 다 쓸 수 있는 소비쿠폰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3년간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한 우리나라의 지역사랑상품권, 지역화폐는 앞서 말한 ‘K-’ 현상과 유사하다. ‘K-지역화폐’로 명명해도 될 정도이다.(실제로 경기도는 2020년 기본소득박람회를 개최하며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의 혁신을 강조했다)


 그런데 ‘K-지역화폐’ 역시 이 사회만의 무언가 유별난 결과물이 되어 이 사회를 ‘미래’로 끌고 가게 될까? 여러 변수들이 있다. 저변에서 일어나 커뮤니티의 문화로 성장한 것이라기보다 행정에 의해 단기간 성과를 위한 인위적인 인센티브로 일으켜 세운 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역화폐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운영이 되어야 도입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가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K를 생각한다」에서는 ‘K-’ 현상에 대한 또 다른 분석이 있다. 전문을 인용한다.


 “K의 특성은 그 자체로 명확하게 이해되기보다는 어지러움을 더한다는 점에서 혼란한 이 시대에 아주 적합한 듯하다. 그리고 K에 함축되어 있는 상향의식, 위계의식, 속도지상주의, 강력한 국가 역량 같은 것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류가 빚어낸 오늘날의 세계에 아주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지역화폐의 현실을 분석한 또 다른 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