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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박상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10 09:47
조회
162

동네를 한 바퀴 돌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추억-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시작은 만둣집이었다. 동네 한 바퀴 돌아보자고 생각한 것은.



1.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만둣집, 찜통에서는 늘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두세 명이 앉을 만한 가게 안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는 사람보다는, 뜨거운 만두를 봉투에 담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집이었다.


출처 - 브런치스토리


아주 오래된 만둣집이었다. 처음은 서툴러 보이던 아주머니의 장사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단골도 생기고, 어느 날은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나갈 정도로 번창(?)했다. 수줍어하던 웃음이 이제는 여유가 느껴졌고, 뜨거운 찜통에서 만두를 꺼내는 손놀림은 더욱 능숙했다. 늦은 시간 가게 문을 닫을 때면 혼자서도 밖에 내놓은 찜통 위에 덮개를 덮고 주변을 정리할 정도로 씩씩하였다. 아주머니의 만둣집은 그렇게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 여름에도 변함없이,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 주었다.


그렇게 지나치던 만둣집이 문을 닫았다. 밖에 놓여 있던 화덕이며 찜통이 모두 사라졌다. 셔터가 내려진 입구에는 “이제 가게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간결한 인사말이 붙어 있었다. 그 인사를 보는 순간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처음 열었을 때며,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며,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고 달려가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2.


만둣집에 앞서 문을 닫은 것은 철물점이었다. 만물상 같은 철물점은 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를 전기상회에서 구할 전구들, 자물쇠, 경첩 등 온갖 자질구레한 것부터 건축에 필요한 온갖 공구까지 철물점에 가면 없는 게 없었다. 젊은 시절을 거쳐 초로의 나이에 들어서서도 아저씨는 철물점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한 번 아니 몇 년 만에 한 번 가는 철물점이 있어 소소하게 필요한 것을 찾아 먼 대형 마트까지 가거나 인터넷을 뒤지지 않아도 되었다.


출처 - 브런치


그 철물점 주인아저씨는 급하고 욱하는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과 곧잘 다투곤 하여 쌈쟁이로 통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쪽 팔과 다리를 잘 못 쓰는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순정남이기도 하였다. 하도 오래전부터 있어서였을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철물점이 철거되고 3층 건물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아이들의 영어 학원이 들어섰다. 마치 오랜 친구가 이역만리로 떠나 생전에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서운한 감정이 내내 그 주변을 겉돌게 하였다.



3.


찻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면 마당이 넓은 단층집이 있었다. 주변의 집들이 2층, 3층을 올려도 그 집은 그냥 단층집으로 있었다. 그 마당에는 고목인 목련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봄날 저녁이면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곤 하였다. 꽃 구경을 하려고 일부러 그 집 앞에서 서성이거나 담장 아래 떨어진 꽃잎으로 풍선을 불기도 하였다.


출처 - 도시건축


주변의 집들이 헐리고 빌라가 들어서도 목련나무 집은 봄이면 목련꽃을 피워 냈다. 그렇게 요지부동이던 집이 지난해 헐리고 올 봄에는 10층이 넘는 홀로 아파트가 들어섰다. 밤에 본 그 아파트는 아직 불이 들어오는 곳이 없다.



4.


찻길 건너 골목길을 따라 죽 내려가다 보면 맛나기로 소문난 오래된 중국집이 있었다. 어쩌다 주문해 먹는 짜장면은 정말 ‘진짜 짜장면’ 맛이 났다. 원래 그 중국집은 철물점 주변에 있다가 이사를 갔는데 ‘자금성’에서 ‘금룡’으로 상호가 바뀌었을 뿐, 맛은 동네 사람들이 인정하는 데였다. 자금성 주인은 중국인으로 오래전에 타계하였는데, 그이한테 주방일을 배운 금룡의 주인이 그 맛을 이어받은 것이다.


출처 - 연합뉴스


조그만 가게보다는 배달이 주인지라 배달 앱이 만능인 시절에도 중국집 앞에는 여러 대의 배달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곤 했다. 전화번호만 기억하면 주문할 수 있어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였다. 그런 중국집이 문을 닫았다. 유리문에는 “임대문의 000-0000-0000”이 적힌 글자가 불빛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짜장면’은 어디 가야 먹을 수 있을까?


출처 - 헝그리보더


짜장면 맞은편에는 옷가게가 있었다. 가게 안팎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사서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옷가게가 있을 만한 데가 아닌 골목에 옷가게가 있으니 처음에는 떴다방인가 싶었다. 그런 옷가게가 한 해 두 해 10여 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장사를 하였다. 오늘 들어선 카페가 불과 몇 달 뒤에 문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10여 년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신통방통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던 옷가게가 문을 닫았다. 언제 그랬지? 그동안 왜 몰랐지?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개발에 밀리고 경제에 밀려 전혀 다른 일상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오래된 동네에 오래된 일상이 없다. 값싼 새로움에 전통은 자리 잡을 수 없는 세상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