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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와 안전, 그리고 경찰(황문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1-07 19:02
조회
206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지난 7월 발생한 신림역 칼부림 사건 등 묻지마 범죄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범죄로부터의) 안전’이다. 묻지마 범죄를 접한 시민들은 ‘언제든 나도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에 사로잡혔고, 이에 경찰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경찰장갑차와 경찰특공대까지 배치하는 초강경 대응의 자세를 보였다. 정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대응하겠다며 ‘살인예고’ 글 게재자 구속수사,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추진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강한 치안’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정책에 반영된 것이다. 이는 범죄로부터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위험한 사람들을 국가가 통제해 주기를 바라는 최근의 현상에 대한 결과이자 반응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잠재적 위험 중에서 특히 범죄로부터의 위해가 정치적 반응의 대상물로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세계일보


여기에는 물론 범죄의 미디어화와 그를 통한 대중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즉, 끔찍하다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쏟아붓는 범죄 보도를 통해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고, 이와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을 사회화하는 미디어의 묘사를 통해 시민들이 범죄를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이로써 범죄를 개인적 주제가 아니라 사회적 주제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순간 범죄위험에 불안한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안전을 책임지라고 아우성치고, 투표권으로 선거에 민감한 정치인과 입법자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그리하여 정치적 견해에 관계없이 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라는 한 목소리만이 존재하게 되고, 이는 정부의 안전정책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게 된다. 이러한 점은 비단 최근의 현상에 대한 반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난 18대 대선 당시 사회이슈가 되었던 묻지마 범죄에 대해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한결같이 강한 치안을 내세우면서 경찰력을 대폭 늘리겠다고 공약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신림역 사건 이후 강남역에 배치된 경찰특공대와 장갑차> 출처: 연합뉴스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미래와 생존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폭제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개인에게는 미래나 생존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는 확실하게 포착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반면, 범죄는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강한 치안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문제로 착각하기 쉬운 영역으로 간주된다. 안전사회에 대한 논의가 쉽게 범죄로부터의 안전에 집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강조하면 할수록 국가는 안전을 과시함으로써 안전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는 최근 정부의 대응에서 보듯이 대개 경찰의 역할 강화 요구로 이어진다. 여기서 경찰은 범죄가 발생한 이후 사후적인 진압·수사보다, 범죄위험을 최대한 조기에 인식하고 이를 사전에 제거 또는 차단하는 사전예방적 기능을 강조하게 된다. 사전예방적 기능의 강조는 경찰권이 발동되기 위한 문턱을 낮추고, 안전을 위한 경찰의 대응을 그만큼 사전영역으로 확장하게 만든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지난 9월 2일 묻지마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관의 불심검문 요건을 완화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경찰관의 직무수행으로 인한 형의 감면·면제 범위를 현행 ‘살인, 강간, 강도, 가정폭력 등 특정 범죄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을 때’에서 ‘범죄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을 때’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문제는 문턱이 낮아지는 만큼 경찰권 발동을 제한하는 장치(요건)도 완화되어 자칫 경찰권의 손쉬운(또는 덜 신중한) 발동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제한하는 경찰권 발동의 한계기능을 약화시키면서도 경찰의 활동영역은 그만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결국 이러한 경찰의 역할 강화는 안전한 사회 조성에는 긍정적이겠지만, 시민사회에는 하나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이 오히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이는 모순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안전’ 또는 ‘안전한 사회’는 국가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면, 그에 수반되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치경찰제처럼 경찰권의 분산을 통한 경찰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 토비아스 징엘슈타인/피어 슈톨레(윤재왕 역), 안전사회: 21세기의 사회통제,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