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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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고 각 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리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이 하나로 통합된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그 권력은 남용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을 국민이 선출하여 구성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법부의 구성원은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 법관으로 구성된다. 법관을 선거로 선출하지 않는 이유는 입법부는 다수결에 의해 선임되고 다수에 대해 책임지는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수의 의사를 입법으로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사법부는 법의 원리를 규명하고 법이 무엇인지 선언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다수의 요구와 관심에 반드시 부응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대중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된 법관이 재판을 담당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사에 의존하고 다수의 의사를 대변하는 입법과 행정은 소수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정치권력)로부터 독립된 사법이야말로 소수의 이해와 권리를 보장하기에 가장 적합한 기관이다. 다수가 될 수 없거나, 다수와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사람들, 공동체의 집단적 목표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법부야 말로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법이 과연 이러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지난 주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두건의 판결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용산참사의 1심 판결에서 법원은 진압현장에 있었던 철거민 피고인들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여 법질서를 유린한 행위는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사람들도 있다. 용산 참사의 피고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재개발이라는 다수의 이해관계 속에서 권리를 침해받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길이 없는 소수자들이다. 다수가 만든 법률에 그들의 권리는 누락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이 경찰 특공대의 진압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사망하였다면, 피고인들이 그 사망자의 아들이고 이웃이라면, 그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면, 더구나 범죄사실의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들이 수천페이지의 수사기록을 고의로 제출하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면, 이런 사건에서 사법부가 5-6년의 중형을 선고하여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하지 않았어야 옳다. 많은 사람들이 판결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 그로 인해 발생한 참혹한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오로지 힘없는 피고인들에게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개정 방송법 등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 대한 심의 모습 사진 출처 -노컷뉴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마찬가지이다. 헌법재판소는 표결과정에서의 위법을 모두 지적하면서도 국회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법률이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다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포기한 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잘못은 했지만 결과물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알아서 고쳐라’고 점잖게 훈계하고 끝내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인가?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미디어법을 통과시킨 다수가 과연 자율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고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인가? 사법부의 존재 근거는 소수의 이해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고, 다수를 등에 업은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은 단순히 다수가 만들었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그런 차원의 법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도덕적이며 형평성을 갖춘 법을 말한다. 민주적인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사법부가 독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정치권력의 의사에 휘둘리고 눈치를 보며 앞장서 정치권력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법부라면 더 이상 독립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는 사법부의 정치적인 독립을 위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선거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95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21 기자 기자가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권력자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본다. 예외가 없지 않지만 드물다. 좋은 기자도 그만큼 희귀하다. 언론사에 들어가면, 첫 6개월을 ‘수습 기자’로 지낸다. 경찰서 3~4곳을 맡아 기자 훈련을 시작한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후반의 신참 기자는 경찰서장과 ‘대당’한다. 수습 기자의 첫 임무는 서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일이라는 우스개가 이 바닥에 있다. 서장을 당당히 대할 수 있어야 ‘출입처’인 경찰서를 장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 기자들에겐 있다. ‘원론적으로’ 경찰 취재 경험은 좋은 기자의 자양분이 된다. 힘 있는 자는 경찰서에 가지 않는다. 힘없는 자들이 피해자 또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앞에 줄지어 선다. 10여 년 전 겨울, 수습 기자가 되어 처음 경찰서 형사과를 찾은 날을 잊을 수 없다. 중년 남자가 팬티 차림으로 유치장 창살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만취 상태였다. 형사인가 싶어 말을 건 양복 신사는 알고 보니 사기 피의자였고, 이런 자가 조폭이구나 싶은 험상궂은 남자가 실은 경찰이었다. 퇴학당한 중학생들이 공사장에서 돌려 마신 본드 냄새, 그러잖아도 팍팍한 직장생활의 우울한 퇴근길에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샐러리맨의 피냄새, 이 사건에 관해 할 말이 무지하게 많지만 배운 게 없어 두서없이 머리만 조아리는 퇴학생 보호자들의 술 냄새. 그 모든 것이 뒤섞인 비릿하고 습습한 공기가 경찰서 전체에 스멀거리고 있었다.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경찰서는 악다구니의 집합소다. 서민과 권력이 서로 갈등하는 최전선이다. 그런 경찰 취재를 통해 수습 기자는 대학의 온실에서 서민의 뻘밭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경찰이 ‘법과 질서’의 눈으로 ‘사건’을 다룰 때, 기자는 ‘인간과 정의’의 눈으로 ‘사람’을 만난다. 거기서 기사를 길어 올린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실제 진행되는 일은 사뭇 다르다. 사람을 만나려면 사건을 취급하는 경찰과 친해져야 한다. 어울리는 일이 잦아진다. 피의자의 처지보다 경찰의 고충에 공명하는 일이 많아진다. 서장·과장 등 간부들이 기자에게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은 승진에 목을 매고 있고, 기자들이 함부로 휘두르는 펜 끝에 식구들의 생계가 끝장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경찰 간부의 눈으로’ 세상 보는 법을 기자들에게 전염시킨다. 이 과정은 이후 기자 생활 내내 반복된다. 검찰, 법원, 행정부, 국회, 청와대 등에서 거듭 된다. 언론의 ‘출입처 시스템’은 감시견 역할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권력자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민사회의 대표를 ‘자임’한 기자는 권력 기관에 스스로를 ‘파견’시킨다. 시민의 눈으로 권력의 부패와 전횡을 감시한다. 기사로 폭로하여 경종을 울린다. 결과적으로 ‘출입처 시스템’은 특종 보도에도 도움이 된다. 권력기관은 고급 정보가 오가는 길목이다. 비밀스런 문서와 음험한 이야기들이 횡행한다. 문서를 건네줄 내부 제보자와 친밀해지기만 한다면, 특종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이 방식은 기자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느 기자가 첫 기사를 썼는지, 시민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기자 사회의 평판과 관련이 있다. 묻혀진 진실을 캐낸다는 특종의 ‘원론적’ 의미는 출입처 경쟁에서 이겨 직업적 성공을 거두려는 기자의 ‘실용적’ 가치로 종종 격하된다. 언론의 존재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날 서린 비판의 눈으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기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의 아홉은 ‘감시견’ 대신 ‘반려견’이 되어 간다. 드물게 비판기사를 쓴다 해도 권력자들의 언어로 보도한다. 그들이 쓰는 기사에서 세상은 권력자, 명망가, 권위자, 유력자의 각축장이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는 없다. 진보건 보수건 ‘파워 게임’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 결정적 부패 보도조차 “그 놈이 그 놈”이라 생각하는 필부들의 상식에 지푸라기 하나 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기자의 뿌리에 해당하는 서민들이 감동하거나 분노하지 않아도 큰 상관은 없다. 기자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스스로 파워 게임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신문이 대통령을 만들었던가?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대통령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별처럼 많았다는 이야기다. KBS <다큐 3일>의 민생르포, MBC <PD수첩>의 탐사고발은 한국 언론이 빚어낸 최고의 성취였다 사진 출처 - KBS, MBC 출입처 시스템이 파워 게임의 링으로 변질되어 가는 동안, 그 링에 오르지도 못한 언론인 집단이 있었다. PD들이다. 공중파 방송의 ‘시사교양국’에 둥지를 튼 이들은 ‘교양’에서 ‘시사’로 진화를 거듭했으나, 끝내 출입처 시스템에 편입하지는 못했다. 같은 방송국의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매일처럼 고위 관료와 얼굴을 맞댈 때, 이들은 인터뷰 요청서를 수없이 보내다 마침내 거절당하는 일을 밥 먹듯이 겪었다. 대신 PD들은 골목과 거리로 떠밀렸다. 고위 당국자가 은밀히 전하는 문서 한 장이면 해결될 일을 그들은 골목의 서민과 거리의 군중을 수없이 만나 확인했다. 해고자 대표의 한 마디와 노동부 장관의 한 마디를 평등하게 다루는 ‘객관주의 저널리즘’ 대신 해고자들의 사연을 일일이 파고들어 소개하는 ‘뉴 저널리즘’을 택했다. 기자보다 성실하거나 탁월해서가 아니라, 기자와는 ‘다른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그들이 권력을 만들었던가? 전혀 아니다. 대신 그들은 권력자, 명망가, 권위자, 유력자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했다. 황우석 박사가 자신의 농장에 각 언론사 기자들을 초청해 견학시킬 때, 초대받지 못한 PD들은 황 박사가 거느린 연구자와 그에게서 시술받은 환자들을 만났다. 재경부 출입 기자들이 FTA의 외국 사례를 분석한 여러 문서를 들고 우왕좌왕할 때, PD들은 FTA에 신음하는 멕시코의 서민들을 직접 만났다. MBC <PD수첩>의 탐사고발, KBS <다큐 3일>의 민생르포는 한국 언론이 빚어낸 최고의 성취였다. 그걸 PD들이 개척했으니 흔히 일러 ‘PD 저널리즘’이라 하지만, 실은 탐사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몰카를 쓴다고? ‘고위 소식통’을 익명인용하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기자들보다 낫다. 반론을 충분히 싣지 않는다고? 기계적 객관주의로 사안의 본질을 비틀어버리는 기자들보다 낫다. 이슈를 선정적으로 다룬다고? 노조원에게 전기총을 쏘는 경찰의 선정적 진압 작전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단신 처리하는 기자들보다 훨씬 낫다. 시민의 눈으로, 시민들의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권력을 향해 따져 묻는 탐사·기획·심층 보도는 원래 기자들의 몫이었다. ‘반려견’이 되어버린 기자들이 그 임무를 망각했을 뿐이다. 방송에 대한 탄압이 이들 시사교양 PD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초창기 KBS <다큐3일>은 찜질방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민주 정부 집권 이후에도 왜 하층민들의 삶이 여전히 고단한지 물었다. 요즘 <다큐 3일>은 한일 민간 교류 행사 따위에 주목한다. 세상은 그저 평온하다. MBC는 시사교양프로를 통폐합하라는 압력에 처했다. “거기서 거기인 프로를 왜 여러 개 만드느냐”는 핀잔을 듣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거기서 거기인 3개 보수신문이 멀쩡히 발행되는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언론은 1분짜리 리포트의 총합이다. 캐묻지 말고 파고들지 말고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야 선진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심층탐사 PD들의 입에 재갈이 씌워지고 있다. 이미 이빨이 뽑혀 반려견이 된 기자들에겐 그 일이 강 건너 불구경 같을 것이다. 저널리즘 전체가 궁형에 처해지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모른다. 그러고도 기자 맞나.
2017-07-20 | hrights | 조회: 373 | 추천: 0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필자는 현재 '연구년'(창조를 위한 재충전이 아니라 집중연구와 생산력을 강조하는 요즘 한국의 대학가에서는 '안식년'이라는 낭만적인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을 맞아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다. 교내외 기관의 지원을 받는 연구과제 2개를 수행하며 국가기관이 후원하는 해외한국학 파견교수 자격으로 이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때로는 다소 쓸쓸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해외체류근무(?)를 고맙고 소중하게 체험하고 있다. 조그만 대학촌에 정착한지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오늘은 그동안 내가 단편적으로나마 관찰했던 우리 업계(대학/인문학) 이야기를 몇 가지 해 보려고 한다. 첫째, 소위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적 상황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혹은 최소한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닌) 현상인 것 같다. 내가 방문한 대학에서도 수강생이 적거나 인기 없는 인문학 분야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작년에 40여 명의 교수들이 직장을 잃었고 수업과목도 많이 축소되었다. 관련 연구소들도 시장경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이슬람국제연구원은 폐쇄되었고 나의 공식초청기관인〈동양학국제연구원(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Asian Studies)〉도 얼마 전 좀 더 협소한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옛 빌딩에서 혼자 연구실을 사용하던 호사를 누렸던 나는 다른 방문교수와 함께 연구실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그 불똥이 나에게도 튀긴 것일까. 둘째, 네덜란드 동업자 교수들은 좀 더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교육조교의 도움에 많이 의존하는 한국의 대부분 대학교수들과 달리 이곳 교수들은 온갖 잡무와 행정업무를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개강 전에 학과사무실에 들러 출석부를 얻고, 필요한 참고서적을 도서관에 예약하고, 수업자료를 복사하여, 행정실에서 해당 강의실 열쇠를 수령하고서야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연봉 외에는 부수입원이 원천적으로 거의 없다. 다른 대학에서의 특강은 품앗이 형태로 진행되었고 일반인 대상 교외 강연은 지식인 사회봉사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이름 날리는' 일부 교수들이 대기업 '자문/고문역'과 '사외이사' 등과 같은 빛나는 명함을 새겨 정규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는 횡재는 이곳에서 불가능하다. 같은 역사업계에 종사하는 네덜란드 동료학자는 "우리는 한국처럼 (영어)논문 아무리 많이 발표해도 보너스 한 푼 없다"고 푸념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교수들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막스 웨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조건 없는 헌신이야말로 그들이 일용하는 양식인가.   네덜란드 라이덴 시의 모습 사진 출처 - Discover Leiden 셋째, 한국과 비교하면 네덜란드에 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은 좀 더 보편적인 평등권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에 따른 금전적, 신분적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의대입학생들을 일정한 시험을 통과한 후보자들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전문교육이 개인적인 부와 특권의 밑천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묘책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입학도 어렵지 않고 대학별로 전체 순위가 있다기보다는 각 단과대학별로 다른 전통과 특징을 가질 뿐이다. 예를 들면, 한국(어)학과 일본(어)학 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네덜란드에서 라이덴 대학이 유일하다. 예술체육대 등 모든 학과를 총망라해서 특정대학만이 최우수대학으로 선망되는 한국 실정과는 아주 다르다. 내 수업에 등록한 수강생들도 상호 경쟁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과목을 느긋하게 배우겠다는 것이 기본태도이다. 학생참여와 토론을 장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발표하면 보너스 점수를 부여 하겠다"고 공지했는데 신청자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한국에서의 경우에는 거의 80% 이상의 학생들이 다투어 발표신청을 한다. 상대평가에 따른 성적시스템 때문에 다른 학생이 받는 보너스 점수는 내 점수를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상 유래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대부분 대학생들이 이런 '제로섬 게임'의 악몽에 시달리는 반면, (대학원 진학 계획이 없는) 많은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낙제를 면하는 65점 이상 성적에 만족한다고 한다. 나쁜 학점이 좋은 직장을 구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느냐고 되짚어 물어보니까, 너무 높은 학점 소유자는 학창시절에 사교활동이 부족했던 부적합한 직장후보생으로 찍힐 우려가 있다고 한다. ㅎㅎㅎ 오호라, 교수들은 '생기는 것 없이' 온갖 잡무와 업무에 시달리고 대학생들은 우등생 되기에 목숨 걸지 않고 평균적으로 빈둥거린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누가 이끌고 책임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처지 네 대학 네 나라 걱정이나 제대로 해라'이다. 다소 속물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네덜란드는 노벨상 수상자를 15명이나 배출한 세계 TOP 10 안에 손꼽히는 인재국가이다. 도대체 무슨 특별한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의 비밀이 있단 말인가. 혹시 이곳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교실에서 은밀히 주고받는 것은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질문(question)'이 아닐까. 결국 이상적인 선진대학은 네가 떨어져야 내가 붙는 겁나는 취업사관학교가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현실과 세상만사에 대한 '의심(doubt)의 숙성공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당신 정말 유럽역사 전공자 맞아? 네덜란드에 대해서 쥐뿔도 확실하게 아는 게 없잖아! 그렇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모든 잘못과 어려움의 근원은 분수도 모르고 불평 많고 비판만 일삼는 나 같은 삼류 사이비 역사가(인문학 교수)들이다. 그러므로 되풀이 경고하건대, 허튼 생각 말고 "철자법 맞는 논문이나 열심히 써라 이 철밥통들아."
2017-07-20 | hrights | 조회: 460 | 추천: 0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9월에 검찰이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이유로 박아무개를 기소하였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띤다. 우선 이런 종류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다인종‧다문화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생각할 바가 많다. 발언자가 특별히 폭력행위를 준비했던지 그렇지 않던 간에 발언 자체가 갖는 부정적인 상승 작용 때문에 인종차별적 발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도 인종차별적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인종차별적 발언에 담긴 세상은 이질적인 집단들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다원적 질서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단순히 개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인종 범죄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통상 사회적 약자 집단을 향한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을 증오적 발언(hate speech)이라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증오적 발언은 인종, 성, 연령, 민족, 국적, 종교, 성적 지향, 성정체성, 장애, 언어능력, 사회경제적 계급, 장애, 도덕적 또는 정치적 견해, 직업, 외모(신장, 체중, 머리색), 정신적 능력, 여타 구별요소에 기초하여 사람이나 사람들의 집단을 비하하거나 위협하거나 폭력과 편견에 찬 행동을 선동할 의도에서 이루어진 발언을 의미한다. 어쩌면 인간을 구별하는 특정징표에 의존하여 이루어진 비신사적인 발언이 모두 증오적 발언에 해당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는 그 중에서 특히 인종에 입각한 차별적 발언을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규제옹호론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증오적 발언이 저질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적 행동이라고 한다. 이들은 알포트(G. Allport)의 편견의 단계이론을 좋은 근거로 원용한다. 알포트는 유대인 집단살해 과정을 심리적으로 다섯 단계로 설명하였다(The Nature of Prejudice, 1954). 처음에는 특정집단(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단순히 표출하는 부정적 발언(antilocution)의 단계에서, 이러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피(avoidance)하는 단계,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discrimination)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다음에는 그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physical attack)을 가하는 단계로 상승하고, 마지막에는 집단 전체에 대한 절멸(extermination)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증오적 표현은 제1단계인 부정적 발언에 해당하고, 첫 단계에서 방치하면 증오의 감정이 팽배하게 되어 위기의 상황에서 타인종, 소수민족, 외국인에 대한 폭력 범죄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역 대로에 홀로 서 있는 후세인. 한국인의 차별 속에 외롭게 서 있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물론 일상에서는 인종차별적 의도 하에서 공격적 발언을 일삼는 혈통파나 네오나치와 같은 부류들도 있지만, 특별한 공격의도 없이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발언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언의 상대방은 사회적 인종적 약자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을 느끼게 된다는 점만큼은 보편적 진실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역사가 앞서 말한 유대인 학살, 아파르트헤이트, 흑인노예제 등을 수반했던 나라들의 역사와 다르다거나 우리 민족은 외국인에 대해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전반적으로 동의하기도 어렵거니와, 있다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자본주의와 인종주의는 깊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근대자본주의는 인종을 착취 활용하였으며, 인종적 우열의 논리를 통해서 자본주의는 심화되어 왔다. '순혈' 한국인들과 유럽인종이나 일본인들, '순혈' 한국인들과 주변부의 어두운 피부의 사람들의 관계를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생각해 보면 친절과 적의가 본질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지배질서에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종주의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의 내면이고, 경제적 억압과 착취의 심리적 표현에 가깝다. 전후 세계질서는 이와 같은 가학적 세계관과 이를 조장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였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로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제20조 제2항). 인종차별철폐협약은 직접적인 폭력행동뿐만 아니라 인종주의를 전파하거나, 인종적 증오를 고취하거나, 특정인종에 대한 폭력행동을 선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제4조). 르완다 국제법정은 증오적 표현을 국제관습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면서 전쟁범죄의 일종으로 다루었다. 증오적 발언이 단순한 언어적 표출이 아니라 공격, 지배, 살육의 과정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증오적 발언, 즉 인종차별적 발언, 장애차별적 발언, 성차별적 발언, 반인도범죄의 희생자에 대한 모욕적 발언 등이 가지는 가학적 성격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는 바로 세계관에 대한 세계관의 힘겨운 싸움이다. 그러나 이를 형벌로 간단하게 해결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형벌이 세계관을 바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50 | 추천: 0
이광조/ CBS PD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높이 평가하는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셨다... 대통령의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지난 8월 23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한승수 총리가 읽은 영결사의 한 구절이다. 고인에 대한 평가는 출신지역과 연령, 정치적 성향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겠지만 고인과 정치적 경쟁・갈등 관계에 있던 정권이 내린 평가니만큼 최소한 과장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유족 간에 소소한 의견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모습에 장례도 순조롭게 치러졌다. 그런데 무덤에 떼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고인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 앞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몇몇 보수단체 회원들이 고인의 묘를 파헤치겠다며 곡괭이와 낫을 들고 몰려왔다가 입장을 제지당하자 현충원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이를 보고 옆에서 말리던 시민들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며칠 뒤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현충원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의 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이들의 행동은 실제 불상사로 이어지진 않았다. 국립현충원에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묘역에 대한 경비를 강화했고 언론에서는 일부 극소수 극우단체 회원들의 돌출행동 정도로 지나치는 듯하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정말이지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망자에 대한 금기와 예의가 두터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9월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안장식에서 유해가 장지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직 대통령의 묘를 파헤치겠다는 이런 폭력적인 행동의 밑바닥에는 고인에게 덧씌워졌던 ‘빨갱이’라는 저주가 도사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73년과 29년 전인 1980년에 이미 두 차례나 고인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그 저주가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고인에게 천형처럼 따라다니던 ‘빨갱이’라는 낙인은 정적을 제거하려는 독재 권력의 악의적인 왜곡과 폭력으로 덧씌워진 것이었고 이는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선택을 통해, 또 과거 고인에게 덧씌워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을 통해 입증되었다. 거기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문까지. 고인을 평생 동안 괴롭힌 저주를 벗어던지기에 이것으로 부족한가? 불행하게도 부족한 것 같다.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 증오와 폭력을 우리사회에서 추방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또 다른 것이 필요한 듯하다. 그게 뭘까? 내 짧은 소견에는 우선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성을 요구하고 싶다. 왜냐고? 적어도 국회의원 정도 되면 고인에게 덧씌워진 ‘빨갱이’라는 혐의가 악의적인 저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그 저주를 때로는 선동하고 때로는 방조하며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친북좌파 빨갱이에, 노벨상 매수에, 100억 원이 넘는 비자금에... 고인에게 덧씌워진 마타도어들을 열거하자면 책을 써도 모자랄 판이다. 내 고향 경상도에는 지금도 고인이 엄청난 비자금을 은닉해 두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왜곡과 오해, 저주와 증오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는데 한 축이 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누군가를 ‘빨갱이’로 낙인찍기만 하면 그의 혐의가 사실인지와는 관계없이 그를 공격하고 저주하는 것이 애국으로 통하는 이 비정상적인 사회현상과 관련해 한나라당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명예훼손이 될까? 물론 이 모든 것의 책임을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게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나는 우리사회가 냉전의 광기를 이미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애국’을 앞세운 독선적인 폭력을 공권력이 묵인하고 방관한다면 냉전의 광기는 언제라도 우리 앞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에 지난 날 고인에게 퍼부었던 비난과 저주를 소리 내어 반성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 정부가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한 고인에 대한 이 끔찍한 저주와 무례를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 마음속으로 한번 깊이 반성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 대표든 대통령이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이런 폭력적인 행태에 유감이라도 표시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내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57 | 추천: 0
압둘 사타르 카셈/ 팔레스타인 알 나자 대학 정치학 교수 이번주 수요산책은 Abdul Sattar Kassem (팔레스타인 알 나자 대학 정치학 교수)이 보내온 기고문을 홍미정 교수가 전해왔습니다. 이 기고문의 번역을 위해 홍미정 교수와 자원활동가이신 손우정씨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다음의 입장을 반복해왔습니다. 그와 같은 행동은 평화에 대한 장애물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수많은 미국 대통령들과 행정부로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건설을 계속했고, 미국은 이스라엘을 단념시키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입으로는 정착촌 반대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이스라엘과 전략적인 협력을 강화한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미국의 조치들 90년대 부시 대통령만이 그런 정착촌 건설의 움직임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재정적인 지원을 거부했지만, 그것도 이스라엘을 멈추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건설을 계속했고 미국의 저지 수단은 사라졌으며,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모든 분야로부터 탄원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랍세력은 늘 불만을 토로했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것을 주문했지만 진정하라는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아마 미국은 진심으로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이 평화의 장애물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장애물은 입으로만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한 정도의 가치 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이스라엘과 협력해야하는 분야의 극히 중요한 이익에 비교하면 그 장애물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지요. 확실히 미국은 이스라엘과 전략적인 분야에 대한 협력을 우선시하며, 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킴으로써 평화를 성취하는 것을 주요한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패배자인 아랍 체제는 매우 무능하고 스스로 일을 해낼 의지가 없으며, 미국이 이스라엘에 반대하도록 만들만큼 강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럴 힘이 있었다면 미국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았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힘으로 몰아낼 수도 있었겠지요. 아랍은 무능하고, 미국에게 안보, 경제,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에게 언제든지 마음 놓고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함으로써 유대인 지구를 확대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 말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미국은 한 번도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을 한 적이 없으며, 여론 외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적,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진지하게 노력했더라면,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였겠지요. 이런 미국의 정책은 소위 분리장벽이라는 것이 고려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분리 장벽을 쌓기 전에 협의를 했을 것이며,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이스라엘이 분리 장벽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리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자 미국은 경계선 수정작업을 맡았습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들의 불만에 부딪혔고,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가능한 한 최소화 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소위, 분리장벽 건설을 통한 이스라엘 안보 유지의 필요성을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툴카렘 근처의 바까 앗 샤르끼야 마을과 라말라 근처 땅의 1평방킬로미터를 내 주기로 한 이유입니다.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오바마 이제 정착촌 건설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카이로 연설에서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의 명백히 밝혔고 이스라엘이 평화의 길로 가기를 부탁했습니다. 처음 오바마가 정착촌 건설에 반대했을 때 그는 건설 자체를 금지할 방법을 언급했으나 지금 그는 일시적인 동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공고한 말은 흔들리고 있으며 수많은 전임 대통령들처럼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랍과 이스라엘 관계의 정상화와 정착촌 건설 동결을 연계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정착촌 건설을 동결하기 위해서는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인들과 관계를 정상화해야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바마는 아랍 정부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오래 전에 이미 사실상 정상화시켜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오바마는 아랍 정부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공표하고, 낮은 단계부터 잘 조직된 정상화 계획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튀니지,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레이트 정부들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이미 정상화해 왔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조차도 이스라엘과 외교적으로 협력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랍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정상화 과정에 반대합니다. 그래서 아랍 정부들은 이제까지 공공연하게 은밀하게 진행시켜왔던 이스라엘과의 협력관계를 공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인종차별 반대”━“오바마는 무슬림” 14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연설한 텔아비브의 베긴-사다트전략연구소 앞에서 ‘죽음의 신’으로 분장한 미국 시민운동가가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의 담벼락에 이스라엘 극우파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아랍인으로 묘사하며 ‘유대인 혐오자’ 라고 비난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오바마는 단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억압하면서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아랍정부들이 본받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는 아랍 정부가 솔직하고 진실하게 국민들을 대할 용기가 있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오바마는 아랍 정부들에게 이스라엘을 아랍-이슬람 지역의 자연스런 일부로서 수용하는 것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어떤 조치를 취해서, 아랍 정부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향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성취해 온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면, 아랍 정부들은 관계 정상화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게 주문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갈구하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잠시 동안 조금만 용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바마의 주요 문제는 아랍이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을 승인해야하며, 아랍은 그 보답으로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이 확신하는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평가에 따르면, 아랍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운다는 허풍으로 시작했고, 이제는 서안 지구에 정착촌 건설을 멈추라는 요구로 끝냅니다. 그래서 전반적인 오바마의 쇼는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아랍 정부들의 주장을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쇼에 봉착한 장애물 이주와 관련하여 오바마가 봉착한 몇 가지 이슈를 정리합니다. 1. 현 이스라엘 수상은 내부적 이유로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념에 따른 연합을 할 것이며, 어떤 일탈도 정부를 흔들리게 할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은 미 행정부의 입김에 맞설 정도로 강합니다. 미 의회에는 잘 조직된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들이 있고 미국인의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3. 아랍 정부들은 정상화를 향한 공개적인 조치들을 감히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 아랍 지역이 힘의 균형의 이동에 따른 새로운 세력 구도의 발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랍-이스라엘-미국의 비공식 동맹은 이스라엘-시리아-헤즈볼라 축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고, 아랍 정부들은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위협에 직면할 것입니다. 4.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아랍인들은 미 행정부에 압력을 넣을 위치가 아닙니다. 심지어 일부 안보문제로 인해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을 입장도 아닙니다. 5. 팔레스타인은 너무 약해서 그들의 민족의 권리와 높은 연봉과 새로운 자동차와 같은 개인의 특권들과 바꾸려 합니다. 그들은 오바마를 난처하게 하거나 미국에서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능력도 없습니다. 6. 오바마는 아랍 정부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단순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들이 자국민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는 독재정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이런 독재 정권은 불안정하며, 국민들을 억압하는 가혹한 조치들을 취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 없습니다. 벤야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의 조치들 네타냐후는 자신이 자유로운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의 세계에 있는 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영리하고 현혹시키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는 새로운 정착촌의 일시적 동결과 같은 모호한 약속을 조건으로 수백 개의 새 주택 건설을 승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결의 시기에 건설될 새로운 정착촌 주택 건설을 허락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6개월간 새 건축을 동결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이주나 새 집을 짓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쪽이 약하고 도전적이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정책은 살아남을 것이고 서안을 조금씩 갉아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바마의 주요한 문제는 이스라엘인들이 강경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랍 정부들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94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한가롭게 떠 있다. 지난 해 가을에는 서울 거리의 가로수를 보며 가을을 느꼈는데, 올해는 들판에 나가 누워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다행이다. 어제 신문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DJ의 묘를 파헤치겠다고 국립현충원으로 달려간 상황이 보도되었다. 최소한 죽음 앞에서 허허로운 관용이나 최소한 혼란스러워 할 줄 아는 인간의 심성마저 똑부러진 살기(殺氣)아래 파묻고 있다. 어쭙잖은 이념이 인간의 예의를 추월했다. 기실,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고통스럽게 견뎌왔던 학살과 증오가 오늘 날에 재생되는 느낌이다. “노무현의 시신을 북으로 보내라”했던 경악스러운 망언의 기억과 다를 것 없는 맥락이다. 그런가 하면, 국가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얘기가 터져 나오고, 경찰은 ‘과업’으로 ‘촛불’, ‘2MB'따위 키워드가 들어간 글이 자동으로 수집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 편린들 건너,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습관처럼 이어 온 ‘투표’가 부정당했다. 도지사 소환투표 날, 투표장에 갔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완장’에 감시당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특히, 아무리 새벽 밭일이 분주해도, 투표는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왔던 행위자체를 부정당한 촌로들은 인생의 끝물에서 알 수 없는 자기분열을 겪어야 했다. 제주시 어느 동에 사는 한 여성은 몇 번이고 투표하러 갈려고 했는데, 그 때마다 직면하는 눈초리와 무언의 억눌림으로 결국 포기해야 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심정을 모멸감이라 표현했다. 올 여름, 8월 26일 제주도 전역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된 8월2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한겨레 투표장은 발길이 뜸했고, 그나마 있던 발길은 제지당했으며, 그래도 투표에 나선 4만 6천의 제주 주민들마저 싸늘함과 불안한 두려움으로 긴장했다. 투표가 폭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니. DJ 서거 후 읽은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1967년 국회의원 선거와 71년 대선 등의 분위기가 이와 같았다. 학살과 증오를 배경으로 한, 검열과 분류의 암울한 과거 시스템이 재생된다면 철저히 이렇구나 하는 느낌, 참혹했다. DJ서거를 애도하는 신문광고를 전면에 싣고는 그의 생전 얼굴 밑에 “투표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버젓이 적어놓은 그들은, DJ의 묘를 파헤치겠다는 광기어린 반항만큼, 사실은 과거의 암울한 질서를 파헤쳐 재생시켜놓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읽은 두 편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상은 결코 한 쪽만을 허락하지는 않는다는. 현기영이 10년 만에 발표한 ‘누란’ 속의 허무성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늘 현실 속에 재생되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한 달간의 노숙생활을 거쳐 지리산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좀 더 오래 전, 죽음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보다 오래된, 다름 아닌 한국 근대 학살의 기억에 대응함으로써 결국 자신을 통해 재생되는 가까운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다. 근본부터 다시 파헤치러 떠난 것이다. 멸망과정이 아닌, 멸망 이후 폐허의 세상 위를 표류하는 부자(父子)의 행보를 그린 ‘더 로드(THE ROAD)'는 철저히 세상은 한 쪽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은, 그 폐허란 ‘다시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를 폐하고,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된’ 새로운 지도를 비로소 생성(재생)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 그와 같다고 하면, 세상은 틀림없이 다른 한 쪽을 숨겨놓고 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73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넷에서 고식지계(姑息之計)를 검색하면 “한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임시로 둘러맞추어 처리하거나 이리저리 주선하여 꾸며 내는 계책”이라고 나온다. 많이 쓰이는 말로 ‘눈 가리고 아웅’일터인데, 찾아보니 유사한 고사성어가 꽤 있다.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면 남들이 자신을 보는 줄도 모르고 속이려든다는 것(柯葉遮眼, 가엽차안)이나, 귀 막고 방울도둑질 한다 - 즉 방울 소리가 제 귀에 들리지 않으면 남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엄이도령(掩耳盜鈴) 역시 비슷한 뜻이다. 타조가 도망가다가 힘들면 모래 속에 머리만 박는다는 타조 머리 감추기(鸵鸟政策, 타조정책) 역시 이웃사촌 쯤 되겠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눈 가리고 아웅’해야 할 일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11,4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노동부의 [사업체 기간제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2009년 9월 4일)를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라고 덮을 수 있을까?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지난해부터 100만 대란설을 주장하며 “7월 이후 해고되는 비정규직 연인원이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또한 2009년 7월 발간된 노동부의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비정규직법이 정규직 전환법이라는 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이 되면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다. 정부가 실직자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고용대란만 강조했다는 것도 오해이다. 왜냐하면 법 개정이 비정규직 실직을 막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라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해고대란은 사실무근이다. 실태조사 결과 넓은 의미의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10명중 6명 내지 7명이기 때문이다. 계약종료 된 3, 4명의 경우도 자발적 이직인지, 해고인지 아니면 기업의 경영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비정규직 법 때문에 해고된 경우는 발표된 수치보다 적을 수 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회원과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기획해고’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만약 정규직 전환 지원 대책이 마련되었다면, 해고대란만 조장하지 않았다면, 기업의 권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오해와 진실’과 같은 노동부의 안내서만 아니었다면 정규직 전환 수치는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최소한 해고 규모 과장과 관련,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이다. 하지만 장관의 발언과 지시 때문에 계약종료가 늘었다 해도 그 책임을 질 방법이 있을까. 이미 해고된 사람을 원직복직 시킬 수 있는가. 목숨줄인 밥줄을 끊은 책임을 무엇으로 질 것인가. 더군다나 노동부가 나서서 실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조사할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해고대란 문제에 대해 보도자료는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며 세 가지 근거를 들어 피해간다. 그런데 그 이유 중 두 가지는 매우 이상하다. 하나는 2년 이상 근속자 중 법 적용대상자만을 파악한 결과이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100만 해고대란설에는 법 적용대상자가 아닌 자들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법 적용 이전에 2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감소한 것이 원인이란다. 그리고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전월대비’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줄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가끔 “선수끼리 이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해당 자료가 그러하다. 보도자료에는 빠뜨렸지만 전월대비 대신 전년동월대비 자료를 살펴보면, 2009년 1월부터 6월까지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다만 7월만 감소하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공공기관에서의 기간제 계약종료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공공기관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공공기관에서의 계약종료는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경쟁압박을 받는 민간기업 대신 공공기관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OECD 국가들과 달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부터 사람을 자른다. 심지어 정규직을 기간제로 바꾸고 싶어 한다. 올 초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 4년이 넘은 정규직 신분인 필자에게 갑자기 2년짜리 고용계약서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말문이 막혀 필자의 신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회사의 대표는 “기간제”라고 답하였다. 만약 전 직원이 아무 말 없이 고용계약서를 썼다면 100% 기간제로 이루어진 최초의 공공기관이 탄생할 뻔 했다. 노동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100% 기간제를 꿈꾸는 기업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계약이 끝나면 사람을 자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나 정규직 전환지원금은 없다는 언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에 동참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 기간제를 만들겠다는 꿈은 그래서 ‘꿈’이겠지만 밥줄이 달려있는 근로자들은 가끔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100%가 아니라 10%라도 그 대상이 자신일 수 있기 때문에.
2017-07-20 | hrights | 조회: 391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글을 쓴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버렸다. 결혼 전까지 내 일기장이 열 몇 권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초등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방학일기를 몰아 쓰면서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아마도 책 읽은 후의 감상문을 써오라던 숙제도 한몫했지 싶다. 게다가 매월 언니가 사다준 ‘계림문고’의 소년소녀 명작동화 시리즈도 단단히 한몫 했을 터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이 가져다 준 감동과 상상력을 드러내어 남기고 싶었고, 그리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 저녁 어스름이 지면 이집 저집 불러대던 아이들의 이름들...그 이름을 메아리로 남기고 뿔뿔이 흩어지는 동무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 야릇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나도 어김없이 엄마의 부르심에 집으로 끌려가듯 들어가야 했지만... 산이 주던 감동, 들판의 향기, 코스모스의 하늘거림과 그 냄새, 저녁 답의 애잔한 노을, 해거름의 알 듯 모를 듯 했던 쓸쓸함... 하루 동안 접했던 그 모든 감동과 느낌과 활동들을 내 언어가 닿는 한 가능한 표현해내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그 글을 통해 누구와 무엇과 소통하고 싶었을까? 여튼 그렇게 열심히 썼던 일기장이 두툼한 노트로 열 몇 권이 되었다. 그러나 소위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글은 점점 더 멀어지고,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성명서나 기자회견문 종류로 한정되어 버리고, 사고마저도 그 틀에 갇혀 버리면서, 자연과 동무/사람이 주는 감동을 예전처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편이, 불안과 강박증을 가진 감동 불감 증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물을 흘러보아 넘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일상의 감각이 무디어질 때, 일상은 매너리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일상이 새로운 것이 될 때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같은 일상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을 때 일상은 항상 변화무쌍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일상을 색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힘을 글을 씀으로써 회복할 수 있는 듯하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버스와 전철과 마을버스를 교대로 타야 하는 나지만, 버스 운전기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호박스 같은 곳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월요일이었다. 아마도 여기 이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곰곰이 일상을 두리번거렸었나 보다. 버스기사에 대한 폭행이 많았다는 뉴스를 언젠가 본 것은 같아 곧바로 추리를 해본다. 아마도 버스승객들의 폭행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가 보다. 그럼에도 왠지 안쓰러웠다. 물론 운전 내내 좌석을 떠나기는 힘들지만, 보호대라는 경계로 승객들과 단절된 기사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까?,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의 안전은 안전인가? 속박인가? 뭐 이런... 그러다가 얼마 전 대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떠올랐다. 다세대 주택의 복도나 계단도 주민들의 허가 없이 들어오면 불법침입이 된다는... 물론 단서는 안전과 범죄 예방의 효과라는 것. 이제는 지인의 집이 다세대 주택이면, 지인이 집에 있음을 확인하고 가거나,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 공동복도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뉴스를 보면서 순간 ‘뭐 이런 0같은..?’ 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올라야 했다. 그런저런 경계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사랑이 결혼을 하면 전쟁이 되는 레퍼토리... 아이가 생기면 더 강해지는 전쟁, 그 안에는 여전히 여자와 남자는 다르고, 아이는 여자의 몫이고, 돈 적게 버는 일/여성운동은 소일거리 이거나 취미이거나 이기적인 활동이라는 사고의 경계가 도사리고 있다. 그 경계로 인해 소통의 단절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따라서 단절은 지속된다는 결혼한 여성 활동가라면 한번은 경험했을 법한 그 뻔한 레퍼토리가 오늘 아침, 십 수 년 전의 내 경험과 꼭 같은 것에, 그 반복에 진저리치게 만들었었다. 내 딸은 달라질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며칠 전 여성단체들이 모여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광안리를 지척에 두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토론은 무슨 토론?’, '이런 장소에서 정책을 논의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등등... 들썩이는 엉덩이와 궁시렁대는 입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진행되자 모두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뭐 모든 시민사회운동영역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일고 있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성운동영역도 마찬가지이고 그 대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위 대중, 여성들과의 소통의 방향과 방법,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자세와 방법, 정권으로부터의 위기 대처방법, 그리고 여성운동들/단체들 및 제 시민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여성운동 안에서의 경계와 단절을 허물고 새로운 연대를 통해 힘을 집결해보자는 것이다. 여성운동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름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다르게 접근하면서 그 안에서의 경계들이 만들어져 왔었다. 그리고 그 경계는 허물지 못할 공고한 벽으로 굳어 단절을 유래하기도 했다. 소통의 거부와 소통할 방식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진 벽들이었다. 이제 그 벽을 새로이 허물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허물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벽을 허물기를 원하는가? 왜 허물려고 하고 허물어야 하는가? 가 먼저 질문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일한 대오를 만들고 대중들이 수용할 적절한 이슈를 선택하면 그것이 곧 연대가 되고, 광풍이 되어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사진출처 - 한겨레 갑자기 일터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던 동료이자 친구와의 갈등이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 이 정도는 니가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기억하는 너랑 다를까? 배신감 드네..’ 이런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에서 출발했음이 보인다. ‘적어도 친구라면..’ 혹은 ‘여성운동 한다면..’ 이런 자기기대에 기반한 전제들이 실망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만이 옳다는 닫힌 사고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좋아는 하지만 다름을 안다. 그리고 가끔 그 다름이 불편하기는 하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 뭐 너니까!’, ‘흠, 나는 아닌데... 너는 그럴 수도 있겠지..’ 혹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나도 그도 쉽게 된 것은 아니라 본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만남이 오면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도 못한다. 그러나 한계 속에서나마 갈등을 그나마 극복하게 한 것은 갈등을 숨기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한 수많은 부딪힘, 자기성찰 이런 것들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버스기사의 보호부스, 공용주택 복도와 계단의 외부인 차단, 남편과 아내의 소통의 벽, 그리고 여성운동들 안의 차이, 그로인한 경계들... 둘러보면 우린 너무 외롭다. 경계(boundary)는 곧 그 경계만큼 행동하게 하며 그 경계를 중심으로 각각의 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차이로서 경계는 필요하며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경계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만 유용하다. 경계가 벽이 될 때 차이는 곧 단절이 된다. 사람간의 단절은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게 하지 못한다. 사물이나 객관화 시킨 대상이 된다. 기사와 승객의 단절은 그 사이에 기사와 승객의 책임과 권한의 다툼만이 존재한다. 오늘아침 기사의 기분이 어땠는지? 승객은 어땠는지? 같은 맥락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도 각각의 역할과 의무와 권리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외롭고 외톨이이고 항상 경계하는 존재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지 않되 단절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연대하고 또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경계를 인정하는 것, 경계를 넘되 내 것으로 남의 것을 채우려 하지 말 것, 혹은 그 반대. 경계란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등이 아닐까. 연대는 그래서 경계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계를 보고 인정한다는 것은 단일한 관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을 포기할 때, 역지사지를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을 때, 나나 너나 스스로 말하게 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왜,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같음이 발견될 것임으로. 경계심을 유발하는 사회에서 경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위험사회를 인정하는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절을 위한 경계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경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경계는 이미 그 안에 소통과 교류와 성숙을 포함하고 있다. 경계가 성숙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인적 조직적 성찰과 논의/소통이 또 필요하다. 때문에 그것은 삶이자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경계를 성찰하는 삶은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란 그래서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 방식 등 과정에 관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다 똑같으니 제발 남도 좀 생각하며 살자구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구요. 그리고 집단으로서 가장 큰 덩어리인 성별경계에서 볼 때, 남성여러분 제발 여성들의 경험과 입장을 생각해 보시라구요. 그리고 다 같이 행복한 게 뭔지 같이 고민해 보자구요.”
2017-07-20 | hrights | 조회: 399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군보안사령부(약칭 보안사)라는 곳이 있었다. 1980년대에 안기부와 함께 공안 사건에서 악명이 드높던 기관이다. 원래 보안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과 군인들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내의 정보수사기관이지만, 한때는 공공연히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도 했었다.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보안사라는 기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잘 나타나 있다. 수사권한도 없는 기관에서 민간인들을 불법으로 연행해서 수 십 일간 구금하고(불법체포. 감금죄), 잠을 안 재우고, 거꾸로 달아매고, 각목으로 기절할 정도로 구타하는 등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해서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내고(특가법상의 독직폭행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안기부 수사관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수사서류를 만들기도 했다(공문서 위조죄). 보안사에서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동안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권도 없는 보안사의 민간인 수사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이 정도면 기소할 요건이 성립되었다”고 법률검토까지 해 주었다. 보안사가 수사권한도 없이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보안대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지도 잘 몰랐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절대 꾸며낸 말이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민간인들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권한을 행사하던 보안사는 1990년대까지도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하게 야당정치인 등 민간인을 사찰하다가, 윤석양이라는 청년의 양심선언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지자 다시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약칭 기무사)로 바꾸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씨(가운데)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몰래 찍은 동영상(오른쪽)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최근 기무사가 다시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민주노동당의 당직자와 가족까지 미행하고 촬영을 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수구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외치더니 드디어 20년 전으로 돌아갔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후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틀이 정착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기관이 버젓이 법을 어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1년 만에 이 정부는 온갖 불법이 난무하던 2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버렸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수구언론이나 청와대, 여당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뻔 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냄비근성의 국민들이니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문제는 절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한 사건이다. 87년 국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이후에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오던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간인 사찰에서 시작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간인을 수사하고,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건국 이후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그 사건들 중에는 보안사의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참을 수 없는 공안본능을 조기에 잠재우지 못한다면,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 속도로 보아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순식간일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미행하고, 나의 사생활이 낱낱이 군 수사기관에 보고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창살이 없다 뿐 그것이 감옥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보안사의 민간인에 대한 고문 수사 이야기를 먼 옛날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1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