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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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거리를 걷다가 거리에서 걸인과 마주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지갑을 열 것인가? 도심 거리에서 쉽게 마주하는 이 풍경에 서게 되면 나는 늘 망설인다. 비단 거리의 걸인만이 아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저녁 술집에 앉아 있노라면, 비싼 가격의 껌 한통을 들이미는 손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성과는 그리 변변치 않은 듯하다. 늦은 밤거리에 놓인 바구니에 얼마간의 동전과 천원 지폐 몇 장이 전부인 것만 봐도 그렇다. ‘무관심’ 혹은 ‘무시’의 결과다. 그런데 이 무관심과 무시의 뒤에는 ‘합리적’이라 붙여진 ‘의심’이 동반된다. ‘구걸 하는 저이는 정말 배가 고파 구걸할까?’ ‘저와 같은 이들이 정작 잘산다는데’, ‘지하철에서 껌을 파는 저 아이의 뒤에는 그를 사주하는 배후가 있다던데’ 와 같은 의심의 결과다. 물론, 사실인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우리의 행동은 사실에 주목해 이뤄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확인하지 않고 푼돈이라도 얹어주는 행위는 동정심이든 연민이든 옳다. 눈앞의 곤란에 의심을 접어두고 자신을 내어 주는 것, 눈앞의 잘못에 계산 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 아쉬운 시대다. 한 개인의 곤란에 의심하는 ‘합리적 개인’들의 사회는 냉혹함이 집단화된 사회다. 그 집단의 냉혹은 곧바로 혹시 스스로가 될지 모르는 ‘작고 약한 개인’을 방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고 약한 개인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방관하는 사회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국민들을 참회와 화해로 이끈 대변자로서 알려진 마르틴 뇌밀러의 이 유명한 시를 어느 네티즌(러버)은 오늘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대체한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 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재일 조선인 학자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일본 어느 대학의 수업풍경을 소개햇다. ‘교육 현장 지도법’이라 이름 붙여진 수업에서 강사는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간략히 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자, 여러분이 그 시대의 독일인이었고 유대인을 벗으로 사귀고 있었다면 그 벗과의 관계를 유지하겠습니까, 아니면 끊겠습니까? 이 수업장면을 제자로부터 전해들은 서경식은 학생의 다수가 유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답변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그 ‘교과서적인 정답’의 실천이 실제로는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를, 인간이란 존재의 허약함과 어리석음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그 강사가 얘기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스스로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제자가 얘기해 준 학생들의 반응은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이수 학생 서른한 명 가운데 열아홉 명이 “내가 당시 독일인이었다면 유대인과의 교우 관계를 끊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월가를 점령하라’에서 ‘99%의 저항’으로 그들은 차례로 일어나서 당당하게 그 이유를 밝혔는데, “그런 상황에서 굳이 교우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자신과 유대인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그때 교우 관계를 다시 맺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학생들에게 2차대전 당시 죽음에 몰린 유대인은 ‘타자’의 처지일 뿐이다. 나아가 효율과 능력, 유불리에 대한 기준이 판단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곤란에 처한 개인과의 관계의 단절을 ‘옳은 일’로 당당히 밝히는 ‘냉혹’이 강의실의 지배적인 ‘이론’이 된 것이다. 이를 서경식 선생은 ‘보통 존재들의 폭력성’이라고 진단한다. ‘교과서적인 정의’조차 혹시 자신에게 도래할지 모르는 피해를 의식해 포기, 혹은 보류하는 사회의 그 개인들의 방관이 차별과 폭력의 재생산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걸인은 어느 시대나 존재해왔던 ‘타자’의 극단화된 상징이다. 그러나 그 ‘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풍요한 오늘 날에 더욱 예리한 형태로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하루에도 최소한 한 명의 노인이 자살하고 있다. 사는 게 어려워 30명이 매일같이 목숨을 놓고 있다. “살아서 공장 돌아가자”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사회적 학살’이다. 하지만, 이른바 생계형 자살은 사회현상으로 치부되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것이 매년 이어져도 22명이라는 숫자로만 표상화되는 느낌이다. 강정문제는 고통에 대한 관심보다는 단지 해결이 필요한 ‘사안’으로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고, 정작 타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강정마을로 달려온 개인들은 ‘외부세력’이 되고 만다. 7미터의 테트라포트 시멘트더미 아래로 추락했던 문정현 신부는 “누가 밀쳤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여, 왜 그 곳에 경찰들과 내가 있어야 했는지가 문제인 것이지”라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조차 추락사건을 조사한답시고, 상황론을 따지더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추락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강정의 현재다. 문신부는 퇴원 당일, 병실로 찾아온 해양경찰 관계자에게 "내가 떨어지길 천만 다행이야, 경찰이 추락했으면 어찌할 뻔했어?"라고 반문 한다. 문제의 근본을 볼 것을 다시 한 번 지적했던 것이다. 종교인다운 언행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 타자를 양산하는 구조를 알아차릴 때,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실은 모두가 타자이며 동시에 모두가 주체임을 일깨우는, 실로 오랜 세월을 고통의 현장에 섰던 노사제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작년 미국 월가를 달궜던 시위대의 표어는 ‘점령하라!’였다. 이 시위는 단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월가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양극화를 넘어 1% 대 99%라는 부의 집중을 양산한 ‘구조’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들은 “높은 생활수준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사상가 슬라보예 지젝은 이 시위의 연설에서 "지치고 피로한 노동자들과 사랑에 빠지라“면서도, ”월 스트리트 사람들과 그들의 태도를 비난하지 말자.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라 사람들을 부패하게 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일갈했다. 문제는 ”왜 그들과 내가 그 곳에 있어야 했는지“라던 문신부의 이야기와 철저히 닮아 있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든지 ‘추락할 수 있는 그 곳’에 서 있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해고 노동자가 될 수 있고, 강정마을의 고통이 될 수 있고, 누구든지 타자가 될 수 있다. 거리의 걸인을 그냥 지나쳐야 하는 ‘합리적 의심’이 옳은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또한, 동시대의 강정과 월가를 통해 현대의 합리적 개인들의 의심은 시스템(구조)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젝의 연설은 이어진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 우리는 여기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지요. 저는 여러분이 지금의 나날을 ‘아, 우리는 젊었고 그때는 좋았지’ 이렇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본 메시지가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월가의 시위 이전, 한국은 이미 수많은 ‘촛불’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작고 약한 개인’들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삶과 사회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각자가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왜 거리에 촛불을 밝혔었는지. 여전히 거리의 걸인을 의심하며 지나치는지. 혹시 점령해야 할 것은 작고 약하기만한 변명이나 합리성을 가장한 의심 따위는 아닌지를 말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0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또 터졌다. 이번에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다. 탄생 때부터 이 정권의 도덕성에 어떠한 기대도 걸기는 어려웠지만, 이렇게 실정법은 물론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적인 가치까지 침해하는 이 정도 사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찰이 문제되었던 것은 이미 1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고, 그 내용은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충분히 알려졌으니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그 이후 정권의 대응이다. 증거인멸, 그리고 그 지시가 폭로되자 관련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 검찰을 동원한 사건의 축소․은폐, 이마저도 드러나자 이젠 민간인 사찰은 전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강변하고 나선다. 가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런 일들이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서글픈 것은 청와대의 이런 정치적 전술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여론의 악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역공으로 보이는 청와대의 폭로 이후,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반감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여론 조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러면 그렇지,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었구만,’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지. 힘없는 사람들이 조심해야지, 뭐.’ 이런 식의 반응이랄까. 총선은 이제 며칠 앞이고, 아무리 몇몇 언론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전 정권에서 작성된 80%의 문건은 정상적인 경찰의 감찰활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명을 해도 이런 인상을 다시 지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선 결과를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청와대의 전략은 멋지게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고양이 가면 쓴 시민들, 민간인 불법사찰 규탄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선거의 결과와 현 정권의 불법행위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안이다. 물론 선거결과에 따라서 이 문제를 조사할 국회의 청문회가 열릴 수 있는지, 또 특검은 진행될 수 있는지, 나아가 설령 어떤 식의 조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얼마나 충실하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만 조사의 방법론일 뿐, 이와 같이 중요한 사안을 반드시 조사해야 하고 책임을 밝혀야 하며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국회에서 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아니면 그 다음 국회에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감시는 권력의 한 속성이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의 생각과 행적을 밝혀내며, 나아가 혹 있을 수 있는 그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이런 모든 정보를 통해 정치적 비판의사를 통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시를 당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자 공포이다. 보통 누군가가 얼마 전에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을 때에도 뭔가 묘한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하물며 그 주체가 권력이라면 심정이 어떨까. 언제 어디서 불쑥 내 앞에 나타나, 혹은 내 뒤에서 갑자기 뒤통수라도 후려칠지 모르는 일이다. ‘당신, 언제 어디서 감히 어떤 분에 대해 이런 말을 했지’ 하면서 말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했다는 동향보고 사례를 보면 이런 일이 전혀 있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불법 사찰이 정치적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학생도 알 것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를 해 놓고도 이 정부는 ‘사죄’는 커녕 ‘사과’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지난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큰 소리를 친다. 하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자신들도 ‘불법’사찰임을 알았다는 것 아닌가. 하기는 그랬으니 그렇게 대포폰까지 동원해서 증거를 인멸하고 관련자에 대한 입막음을 위해 현금과 직장까지 제공하려 했을 것이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담당자는 우선 사건을 은폐시키려 한다. 경찰이 초동 수사를 잘못해도 상급자에게 보고는 며칠이 지나 이루어진다. 아무리 현대가 ‘위험 사회’라지만, 이 정도면 가히 ‘위험 은폐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위험과 잘못을 은폐하고 슬쩍 넘어가는 것이 자기 몸보신에 좋다는 것은 그 동안의 권력자들에게서 배운 것일까. 여당의 한 비대위원은 “이 사안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사과 정도로 끝날 수 있겠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이 비대위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것이 다만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몰랐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과 ‘동향’인 몇몇 탐관들이 조직의 기강도 무시하고 상급 수석실을 넘어 누군가에게 ‘직보’를 해댔으니 말이다. 만에 하나 알고 있었다면,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을 감시하는, 나아가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28 | 추천: 0
조광제/ 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그녀는 도대체 ‘어떤 비상한 일’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비상대책위원장인가? 국가와 국민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면 한나라당(=새누리당)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혹은 아니면 그녀 스스로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적어도 국가와 국민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불법 민간사찰이 현 정권의 강력한 비선조직의 네트워크에 의해 대대적으로 저질러진 것임이 폭로되면서 사회 정치적인 초미의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촛불정국을 기점으로 사찰과 감시라고 하는 파시즘적인 정치 수단을 악용하는 것이 암암리에 계속 문제가 되어 왔는데, 결국 기정사실로 정식화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절체절명의 국가적인 사태를 적법/불법의 잣대도 없이 이른바 ‘물타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신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 이것이 그녀가 국가와 국민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이명박 정권이 연이은 실정으로 국민들로부터 크게 외면을 받자, 정권을 도와 함께 영달을 누렸던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이라 이름을 바꾸고서는 정권을 순식간에, 사실은 겉으로만 배신했다. 대통령 이명박을 아예 희생양으로 삼아 모든 죄를 뒤집어 씌어 허허벌판의 사막으로 내쫓는 일종의 눈요기 제사를 지낸 셈이다. 실질적으로 이는 그녀의 추종자들 혹은 적어도 그녀 자신만큼은 이명박 정권의 대대적인 실정에 대해 원죄가 없음을 가상적으로 강변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범한 실정의 대강(大綱)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야만 적어도 99% 대다수의 국민들이 최대한 현실의 삶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99%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강제적으로 혹은 마지못해서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인가에 골몰했다는 것이다. 언론을 장악하여 선전을 해 대면 될 것 아닌가, 4대강 사업처럼 대대적인 전시 행정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의 군사적인 동맹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동맹마저 더욱 공고히 하면 될 것 아닌가, 정신적이거나 사상적인 이념 영역의 불필요한 확대를 원천봉쇄하면 될 것 아닌가, 세계적인 한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을 최대한 지원함으로써 금융팽창이든 뭐든 국내에 자본이 넘쳐나도록 하면 될 것 아닌가, 가능한 한 세계 수뇌부들이 모이는 회의를 많이 유치해서 겉으로 보기에 정권의 위신을 높이면 될 것 아닌가, 기타 등등. 말하자면, 기본 관점에서부터 전제 오류를 범한 것이다. 'MB정권보다도 더 후퇴할 위기 처한 경제민주화. 위장된 복지 공약과 이미지의 정치를 벗겨내야'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명박 정권이 이렇게 기본 관점에서부터 전제 오류를 범하면서도 정치권력의 지형에서 자신감을 넘어서서 철저히 오만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 여당이 그들의 정권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사안들이 거대 여당의 일방적인 독주에 의해 형식적인 법 절차를 거쳐 마무리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정착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거대 여당의 중심에 바로 박근혜 위원장이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명박 정권이 비상한 상황을 돌파하여 원하는 바대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할 때마다 그 지지 기반의 중심에 바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있었던 것이다. 99% 대다수의 국민들이 최대한 현실의 삶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국가 통치에서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이념이다. 현실과 이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이념을 함부로 폄하하는 인물은 통치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념은 공염불에 불과하지만, 이념이 없는 현실 위주의 정치는 권력일변도일 수밖에 없고, 임기응변적일 수밖에 없고, 집단이기주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념은 곧 현실의 삶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대다수 국민들이 삶의 이념을 잃고서 방황한다면, 그 국민들에게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가능하면 서로가 평등하게 소통을 하면서 사회 정치적인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어야 한다. 왜 가능하면 개인적인 삶이나 국가적인 삶이 최대한 자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일러주어야 한다. 왜 가능하면 재벌 대기업들의 이윤일변도의 행태를 국가적으로 강력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일러주어야 한다. 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는지를 원리적으로 설명하고 그 근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파악하여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어떤 정치적인 불이익이 있더라도 대국민적인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의 각 영역의 지배층들이 설사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형성한다고 할지라도, 그 지배층들의 본능적인 이기심들을 법적 ‧ 제도적으로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이념의 문제고 이념의 현실화의 문제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명함에서 ‘비상대책’에 과연 이러한 이념과 이념의 현실화에 대한 진정성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정치 및 통치의 이러한 이념에 대한 진정성에 있어서 그녀는 대통령 이명박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는가? 비단 ‘이념을 좇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라고 운운하는 것을 증거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서 이러한 진정성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치 민주화에 이은 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화에 의거한 사회적 삶의 민주화, 사회적 삶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적 삶의 자주화 등이 그녀에게는 모두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허무는 이른바 이념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42 | 추천: 0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근심 마오. 인민의 조국 소비에트 앞에 나는 아무 죄진 일이 없소.”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가 1937년 비밀경찰에 끌려갈 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개척자로 활약했던 조명희가 소련으로 망명한 것은 1928년, 그러니까 「낙동강」을 발표하고 일 년여 후다. 어렸을 적 해방된 북녘의 교과서에서 처음 「낙동강」을 배웠다는 소설가 최인훈은 장편소설 『화두』에서 조명희와 「낙동강」을 계속 씨줄 삼아 쓴다. 중학 시절 독후감 과제였던 「낙동강」, 문학에의 첫 걸음이었던 조명희, 스탈린문학상 수상자였던 그를 둘러싸고 북녘에서 떠돌던 소문 등― 그러나 러시아로까지 최인훈을 끌고 간 것은 1990년대 초에야 전해졌던 조명희의 최후에 대한 기록이다. 1940년대 초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던 조명희가 실은 1938년 5월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알려졌기 때문이다. 조명희가 남긴 “근심 마오.”를 전하면서 최인훈은 익숙한 기시감 또한 전달한다. 조명희는 망명 후 “인민이 자유롭게 호흡하는 소련에 들어온 감개무량한 기쁨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소련작가동맹의 맹원으로 원동작가동맹위원회 조선문학부를 책임지고 있었고, 체포될 당시 조선인 학교인 육성농민청년학교 조선어문학 담당 교사로 있었다. 식민지 조국을 벗어나 자유와 보람의 나날을 살던 조명희에게 소련은 굳건한 신뢰의 대상이었을 것이며, 그것은 일반적인 정조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명희가 진심으로 “근심 마오.”라며 아내를 위로했듯 처형당하는 그 순간까지 소비에트의 이상을 믿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터이다. 최인훈은 조명희가 처형당할 무렵 있었던 ‘모스크바 재판’을 떠올리면서 소리 높여 유죄를 인정했던 피고들과 재판을 지지했던 지식인들을 상기한다. 전(前) 혁명 전사들이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제 죄를 고백했고, 고리끼와 솔로호프, 로맹 롤랑과 루이 아라공 같은 국내외 작가들이 고발과 단죄에 앞장섰었다는 사실을. 단편집<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는 모스크바 재판이 조작된 것이었다고 폭로한다. 스탈린을 암살하고 소련 체제를 전복하려 기도했다고 고발당했던 피고들 대부분은 고문을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피고들이 마치 사형을 청원하는 듯했던 장면은 조작만으론 해명되지 않는다. 그들, 재판의 연루자들은 자기 자신의 희생을 목도하면서도 소비에트의 정당성을 믿었다. 그것이 최인훈의 해석이다. 국외자들로선 말할 나위도 없다. “설사 피고들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밝히는 것은, 더 큰 대의, 역사 자신의 큰 줄기의 이익에 대해 해가 될 염려가 있었다.” 소비에트는 악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는 나라였으므로. 악이 너무나 명백하고 위력적이어서, 그에 맞서는 축을 정당화하고도 남았으므로. 조명희의 죽음이나 모스크바 재판은 멀리는 제 1차 대전 이후, 가까이는 제 2차 대전 이후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진영 논리’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이편의 도덕성이 절로 보장되던 시절을. 옳은 편을 지켜야 한다는 동기가 다급하여 ‘정의’나 ‘정당성’ 같은 말을 무지나 한가의 소산으로 치부케 했던 시대를. 소련과 미국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탈린주의와 매카시즘으로 경쟁했던 체제의 중심으로 보는 건, 너무 많은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겠지만, 차라리 그런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인권’을 앞세운 제국의 개입은 뿌리부터 의심스럽다. 같은 제국이 남미의 독재 정권을 후원하고 민중 봉기를 짓밟았으므로. ‘인권’을 내세워 북조선 체제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미심쩍긴 마찬가지다. 그 목소리가 과연 동등하게 내부의 인권을 향하는지. 보편적 주제를 다룰 때조차 속내를 헤아려야 하는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보편 자체를, 그 용법을 의심했던 습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절은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자주 떠오르곤 한다. 타도해야 할 적이 있고, 상대의 불의가 내 정당성을 보장하며, 그 밖의 문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론 ‘숙청’의 고리를 끊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조명희는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소비에트를 신뢰했고, 어쩌면 처형장에서조차 제 목숨보다 소비에트의 빛나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더 큰 대의, 역사 자신의 큰 줄기의 이익”이 어쩔 수 없이 억울한 희생도 수반하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그런 숭고가 다시 빛나기 위해서라도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를 쌓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2017-07-21 | hrights | 조회: 304 | 추천: 0
이은규/ 인권연대 '숨' 사무국장 여백은 끔찍하다. 무슨 말이냐고? 원고 마감이 코앞에 닥쳐서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노라니 빈 문서의 여백이 끔찍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하다. 점 하나만 찍어볼까? 참으로 난감하다. 한자 한자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두서없는 생각들이 주저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뭉게뭉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이 마구 밀려드는 시간이다. 애시 당초 거절했어야 했다. 글보다 말이 앞서는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형벌이다. 재미있는 것은 말은 앞서지만 행동은 글보다 더디다는 것이다. 생각이 앞서고 말이 그를 따르고 어찌 어찌 쥐어짜다보면 글이 말을 따르지만 행동은 참으로 더디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미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말과 글들이 참으로 많다. “거봐 내 이럴 줄 알았어. 또 자기고백으로 흘러가잖아. 뭐 어쩌겠어 이것이 내 세계인 것을.” 나는 민주적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생각과 말, 그리고 글 따위들로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민주주의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실현되어야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범이지만 나는 민주적이지 않다. 특별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들은 무조건 나의 말과 행동, 생각을 지지하여야만 하는 사람들이며 그렇지 않을 때 나는 가차 없이 그들을 심판한다. 경험에 따르면 심판은 때에 따라 수위가 다르다. 삐침이 있고 냉정한 침묵이 있고 그리고 결별 따위의 수순을 밟는 것 같다. 하지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민주주의자이다. 사진 출처 - NAVER 나는 인권적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감수성만으로는 최고의 인권적 감성을 가졌다 자부하지만 삶을 통해 맺어진 관계 안에서 차별과 배제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이 또한 특별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아빠니까, 가장이니까, 아들이니까 그리고 친하니까 적당하게 둘러대고 을러대며 나만의 방식을 지혜롭게 구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담장 안에서 일어나는 가정사를 알리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감수성이 철철 넘쳐흐르는 인권적 사람이다. 나는 진보적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진보! 진보! 저마다 진보임을 자처하는 이 세태를 두고 참 지랄 맞다 여기며 진보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지만 삶의 방식은 구태의연한 자본주의와 권력의 프레임에 갇혀 사는 사십 육세의 소심한 국민(!)일 뿐이다. “아 나는 커서 우리 아빠 같은 꼰대가 되지 않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를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독재자들은 데모하는 젊은이들을 탄압했을까? 그냥 그들이 나이가 들기를 바라면 되었을 것을. 아무튼 굳이 행세를 하지 않지만 말과 글로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의 삼위일체가 사람됨의 삶이라 가정한다면 아직 나는 사람됨이 부족하다. 아주 허약한 체질인 셈이다. 일상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매우 친밀한 사람들에게조차 민주적이지도 인권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가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허약한 체질을 가졌음에도 민주주의와 인권과 진보적 가치들을 포기 하지 않았다. 더디게 진전되고 한순간에 거꾸로 퇴행하는 현실들에 실망하지만 나의 삶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어지는 흐뭇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의 보이지 않는 혹은 알려지지 않은 삶의 여백에 사람됨의 가치들이 촘촘히 채워질 때 그것이야말로 흐뭇한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웃음이 머무는 시간이다. 어찌 어찌 주절이다 보니 여백이 나름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군데군데 숭숭 구멍이 나있지만 뭐 어쩌랴. 나는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삶에서 많은 억지를 부리고 사는 사람이다. 해서 노력할게 많은 참 부족한 사람이다. 행복하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3 | 추천: 0
신하영옥/ 전 여성단체 활동가 내일은 엄마의 팔십 몇 번 째 생신이다. 올 초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져 자녀들을 초 긴장상태에 몰아넣으셨던 엄마는 다행히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 몇 년 간 떨어져 지내던 내 가족(남편과 나와 딸)이 살림살이와 구성원을 합치게 돼 집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집도 옮겼겠다, 그동안 무던히도 엄마 속 긁어놓았던 딸이 딸을 낳고 키워 형성된 엄마에 대한 아주 조금의 이해가 원인이었는지 엄마 생신을 내 집에서 내 손으로 차려드리고 싶었다. 그보다는 집도 이사했으니 한 번 놀러오시라는 말이 생신을 치르는 것으로 와전 혹은 확대된 것이라 하겠다. 여튼 걸음이 불편하신 엄마를 고향에서 모시고 올라오니 좀 지친다. 솔직히 많이...그래서 저녁을 나가서 먹고 싶었다. 가족들이 나가서 먹는 사이 얼른 이 글도 마치고, 홀가분하게 술도 한잔하고, 무엇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씻는 것이 귀찮아서였다. 그러나 엄마는 거절하신다. 아무래도 외식비용에 부담이 크신 듯하다. 자녀들이 얼마씩 부담하여 그 정도 외식은 충분히 가능함에도 그러하다. 자신을 위해 돈 한 푼 쓰는 것이 아까웠던 엄마는,-그러한 엄마의 모습이 궁상스럽고 때론 지겹기까지 했던 우리들이건만- 여전히 아끼고 아끼는 엄마는 여전히 우리를 약간 질리게 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당신을 위해 소비되어야 할 돈에 대한 미련, 내일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어려운가보다. 이는 살아있는 자로서의 당연한 본성일지도 모른다. 항구적인 삶에 대한 희망과 불안은.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그 희망과 불안의 대상이 돈임은 당연할지 모른다. 엄마를 모시고 같이 올라온 언니는 50대 중반이다. 안정적이고 비교적 실력을 인정받던 교사생활을 청산하고 야인처럼 살아온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교사직을 그만두고자 할 때 많은 이들이 걱정 혹은 반대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직장까지 그만두면 ‘무엇을 해 먹고 살 것’ 이며, ‘누가 데려가느냐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여성일수록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돈은 단지 필요조건일뿐이고, 자율과 정당함을 충분조건이라 여겼던 언니는 과감히 교사직과 더불어 부당함과 차별, 권위를 버렸다. 그 뒤로 제도와 비제도 혹은 탈제도 교육을 넘나들면서 생계와 자유를 꾸리고 누리고 있다. 때로 결혼제도 밖의 언니는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훌쩍 떠나고, 훌쩍 돌아오고, 자신의 해방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시간과 에너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움이었다. 한꺼번에 수 개의 일을 동시 처리해야하고, 오늘처럼 하루 종일 운전하고 녹초가 되어서도 집에 와선 다시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서둘러야 하고, 또 이처럼 원고도 마감해보내야 하는 나로서는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언니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이는 대개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가지는 부러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성과 언니의 다른 점은 대체로 남성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우미가 곁에 있다. 엄마든, 아내이든, 딸이든 아니면 공적인 가사노동서비스를 소비하든... 그리고 그것이 항상 여성보다 우월한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당연히 그러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싸우고, 요구하고, 혹은 더러워서 죽자고 혼자 감당해내는 그런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살바도르 달리 作,1945 언니에 대한 부러움 뒤에는 비혼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구조적인 억압와 소외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돌보기 위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돌파해내야 했다. 생물하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선 가끔 훌쩍 떠나고 돌아오는 자유는 그렇게 치열하게 생존하는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이자 휴식, 즉 그 또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언니는 당당하다.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다. 그리고 넉넉하다. 그럼에도 노년을 앞두고 건강에 불안해한다. 그동안 주변의 말처럼, 돈도 빽도 없는 비혼여성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라는 걱정이 현실로 닥치면 어쩔까 하는 불안감이다. 그래도 언니는 말한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그것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는 것도 옳지만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돈을 넘어서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보는 것, 즉 자본주의적 불안을 인정은 하지만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이 필요치 않을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나의 노년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 ‘정말 100세까지 살면 어떡하지?’ 그렇다 100세까지 사는 것은 누군가에겐 대책 없는 희망이다. 딸아이도 요즘 몇 달간 불안을 말하며 때론 집을 ‘귀곡산장’으로 만들고 있다. 어젯밤도 그랬다. 긴 방학 끝에 개학 후 첫 등교한 날이었던지라 안 그래도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학교생활이 어땠을까 살짝 묻기도 하고 눈치로 때려잡기도 하던 중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불안에 젖어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낯빛으로 때 아닌 산책을 간다고 하여 간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화...불안의 실체를 모르는 불안감이다. 실체를 모르는 불안감은 온종일 아이를 넋 잃은 사람처럼 만들고 일상에 전념치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게 하고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사춘기 탓이라고만 하기엔 그 불안감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작년 하반기부터 그 불안이 시작되었다. 그 때의 불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미래를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타협한 듯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오로지 공부만 요구하고 공부에 순종하는 아이들을 대면함으로써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했으나 그 선택이 완벽히 내 맘을 그리고 학교가 원하는 대답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혼자있을 때는 1% 부족한 것 같이 보이던 결정이 학교라는 현실로 돌아가자 99% 모자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뭔가 뒤로 밀리는 불안감이다. 누구는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20시간씩 공부해도 불안해하는데 자신은 더 불안해야 정상인 듯한 것이다. 그저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더 불안으로 빠뜨리는 것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은 그렇게 청춘을 시작하는 아이의 삶도 불안으로 빠뜨리고 있다. 요즘 백수생활로 인해 TV를 자주 보게 된다. 다양한 광고가 나오지만 단연 으뜸은 보험상품이다. 누구나 다 암과 뇌질환에 걸릴 것이라는 암시,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어쩔 거냐는 협박, 죽음마저 상품화하여 상조회라도 가입하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는 단죄, 이 모든 보험상품광고들을 보면서 ‘정말 100세까지 살면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존엄성보다는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느냐로 가치를 가지는 세상, 내가 사는 옷이 나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세상, 보고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아도 보고 써야만 하는 소수재벌들의 상품들... 이 모든 것들은 끊임없는 소비의 가치를 강조하고, 그리고 그 소비의 가치를 가지라고 유혹한다. 그리하여 그렇지 못한 자는 도태될 것이라 경고하면서 항구적으로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 사회이다. 그리하여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불안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잠시라도 일상에서 이러한 불안을 내려놓고 맘껏 먹고, 마시고, 나누고, 떠나고 즐길 수 있기 위해 내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개인의 내공이 사회의 구조와 긍정적으로 조우할 수 있을 때 선한 사회가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생산수단이자 소비의 수단의 되지 않는 사회, 다음 선거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이다. 누가 이러한 비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해낼 수 있으려나? 난 그러나 아직은 뉴스를 안 보고 싶다. 당분간 안 볼란다. 사회와 조우할 내안의 공과 더 많이 놀란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38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 탐사보도팀장 나는 김어준을 좋아한다. 특히 그가 만든 <딴지일보>를 좋아한다. <딴지일보> 최고의 기사는 ‘허경영 연쇄 인터뷰’다. 줄기차게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허경영은 ‘정신나간 군소 대선후보’였다. 기성 언론의 엄숙주의·엄밀주의에 입각하면, 이런 정치인은 아예 보도하지 않고 무시해야 옳다. 그래야 독자들의 합리적 판단에 혼란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딴지일보>는 줄기차게 허경영에 매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허경영의 과대망상과 박정희의 독재정치 사이에 가공할 친연성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진지한 얼굴로 정치를 말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허경영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은근히 비꼬며 질문했다. 박정희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허경영의 과대망상은 현대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파토스이자 로고스다. 그 실정을 우리는 2012년에도 목도하고 있다. <나꼼수>는 <딴지일보>의 어떤 진화다. 김어준의 2000년대 프로젝트가 <딴지일보>라면 2010년대 프로젝트가 <나꼼수>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나꼼수>를 청취한 적이 없다.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딴지일보>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곤 했던 나에게 왜 <나꼼수>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비유하자면, <나꼼수>는 정치전문지다. 올해 총선·대선 일정과 맞물리는 특수매체다. 한국의 종합일간지는 삼라만상을 종합하는 게 아니라, 주로 청와대·정당·기업·법조 등 권력기관의 동향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즉 ’종합뉴스’를 내걸지만, 실제로는 ‘권력자 관련 전문 뉴스’를 다뤄왔다. <나꼼수>의 영역과 기성 언론의 영역은 서로 겹친다. <나꼼수> 애청자로부터 간간이 “이런 이야기를 <나꼼수>가 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대부분은 현직 기자인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세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반면 <딴지일보> 콘텐츠의 거의 전부는 현직 기자인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이었다. <나꼼수> 열풍은 바로 이 상황에서 비롯한다. 기자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꼼수>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로 잡았다. <나꼼수>에 대한 기성 언론의 불편한 심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 <딴지일보>를 경계하거나 냉소한 기성 언론은 없었다. 반면 <나꼼수>는 끊임없이 기성 언론을 성가시게 한다. 기성 언론이 독점적으로 다뤄온 이슈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치 뉴스가 과잉 생산되고 있다”고 기자들은 오해 또는 착각한다.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40대 이상 중산층 남성에게만 정치 뉴스는 과잉 공급된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권력자·명망가·권위자를 만나는 뉴스 생산자, 즉 기자들은 최고 권력 사이에 벌어지는 ‘파워 게임’의 구도로 기사를 써왔다. 매일 아침 신문 들고 화장실 가는 사람, 밤 9시만 되면 꼬박꼬박 뉴스를 챙겨보는 사람이 그런 기사를 소비한다. 이들은 연령대로는 40~60대,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이상 집단이다. 이들은 분명 정치 뉴스를 과잉소비한다.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30대 이하로 내려가면 사태가 달라진다. 10~30대에 이르는 청년층은 아침마다 신문 들고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이들은 인터넷에 기초한 정보습득에 길들여졌다. 또한 그들은 생존경쟁에 몰입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화두는 정치 담론이 아니라 스펙 관리다. 취향·기호는 학습·경험에 기초한다.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를 즐긴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신문을 정독한 적이 없고, 방송뉴스를 챙겨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한국은 ‘정치 뉴스의 과잉’이 아니라 ‘정치 뉴스의 부재’가 지배하는 시공간이다. 이로부터 <나꼼수>가 착안한 시장이 생겨났다. 엄숙주의에 “똥침을 날리겠다”며 등장한 <딴지일보>가 기성 언론의 틈새 시장을 노린 반면, <나꼼수>는 본격 정치 뉴스·논평·비평의 주류에 뛰어들었다. 정치 뉴스에 제대로 노출된 적 없는 10~30대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한국 정치에 대해 궁금하다면 <나꼼수>를 봐야 한다는 평판이야말로 그들이 정확히 의도한 목표다. <나꼼수> 열풍의 핵심은 그들이 본격 정치 뉴스를 다룬다는 사실에 있다. 30대 이하에게 <나꼼수>는 <월간조선>이다. <월간조선>은 ‘탐사·심층 보도’라는 기치를 내걸고, 실제로는 맥락, 배후, 욕망, 그리고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사건의 주인공들이 어떤 연관을 서로 맺어 어떤 욕망을 위해 무슨 일을 벌였는지 폭로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생산해왔다. <월간조선>을 읽고 나면, “신문·방송 보도에 나오지 않은 더 큰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쾌감을 위해 지속적으로 월간지를 소비하게 된다. 지루하고 복잡한 정치 뉴스를 주무기 삼은 월간지가 그토록 오랫동안 충성독자를 거느린 ‘장수 매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나꼼수>가 극우 월간지와 똑같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월간조선>과 <나꼼수> 모두, 기성언론의 기계적·중립적 정치보도에 기갈난 대중에게 △뒷이야기 △주요 (배후)인물 △사건 사이의 큰 맥락 △맥락을 파악할 비평적 관점 △더 나아가 진위, 선악, 흑백을 분명히 하는 ‘정파적 관점’까지 제공하면서 독창적인 정치 보도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두 프로젝트는 보수와 개혁, 노년층과 청년층, 두꺼운 활자매체와 기동력있는 팟캐스트 등으로 구분되지만, 각각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확인이 미흡하여 정치 선동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두 매체(<나꼼수>와 <월간조선>)의 한계와 위험은 엄연하다. 실제로 <월간조선>은 맥락을 드러내는 일 대신 정치 선동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변화(또는 퇴화)해왔다. <나꼼수> 역시 그 위험한 유혹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치보도의 정수는 주요 행위자를 잇는 복잡한 고리를 규명하여 풍부한 맥락과 함께 날카로운 비평을 함께 제공하는 데 있다는 점을 두 매체는 반세기를 격차로 하여 거듭 입증해 보였다. 그 목표를 ‘완벽하고도 탁월하게’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보도 방식이 신문·방송에 비해 깊은 울림을 준다는 점만큼은 웅변해 보였다. 특히 기성 매체가 “신문은커녕 책도 안 읽는다”며 가볍게 여겼던 30대 이하 청년 세대에게도 이런 본격 정치보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꼼수>는 완벽하게 입증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정치적 잠재의식을 꿰뚫어보면서, 이면·맥락·관점을 동시에 제공하는 역동적 정치 보도를 내놓았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취재하는 기성 언론의 기자는 ‘권력자의 눈으로’ 사건을 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권력자의 ‘음험한 욕망’을 눈치채지만, 기성 언론에서 훈련받은 바, 이른바 ‘객관보도’의 규준에 따라 ‘이 권력자와 저 권력자’를 동등하게 배치하여 뉴스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짜 맥락은 종종 자취를 감추고, 비평적 관점이 형성될만한 핵심 사실은 희미해진다. 독자·시청자가 기성 언론에서 갈증을 느끼는 것의 핵심은 “뉴스를 읽고(보고) 나서도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반면 <나꼼수>는 누구의 무슨 잘못인지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그 뒤에 작동하는 권력의 숨은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어 비꼰다. 뉴스 소비의 ‘쾌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꼼수> 열풍에 대해 기성 언론 기자들 사이에 냉담과 냉소가 번져 있다. “‘객관보도의 규준’에서 한참 빗나간, 기초적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함부로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다”는 평판이 없지 않다. 여기서 한국 기자들이 신봉하는 ‘객관보도 규준’의 한계에 대해 상술하진 않겠다. 그들이 과연 ‘객관보도의 규준’이나마 충실했는지도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객관보도의 규준은 어디까지나 기자들 사이의 암묵적 규칙일 뿐, 뉴스 소비자에겐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짚어야겠다. 독자가 보기에는 ‘객관보도의 규준에 충실했기 때문에 좋은 기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어떤 규준이 놓여있건, 하나의 텍스트가 온전히 진실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혀지는(보여지는) 것이 좋은 기사’다. <나꼼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김어준은 ‘(기계적) 객관보도 규준’에 묶여 어떤 카타르시스도 제공하지 못하는 기성 언론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고, 자신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매스미디어가 바로 그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했다. <나꼼수>를 향해 언론의 규준, 윤리의 잣대 등을 들이대는 것에 대해 김어준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보도가 필요하다면 신문을 봐라, 윤리적 취재·보도가 아쉽다면 방송을 봐라. 우리는 정치권력을 속시원하게 비판할 때 생성되는 카타르시스만 제공한다.…” 아마 김어준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꼼수>의 영향력이 앞으로 쇠퇴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 ‘쇠퇴’를 계획했다. 총선·대선까지 운영하다 접겠다는 것이 김어준의 뜻이다. 다만 그것이 제공하는 ‘카타르시스’의 강도가 앞으로 어찌 변할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카타르시스는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폭로’를 내놓거나, 더 강력한 ‘비평의 레토릭’을 활용해야 할텐데, 더 강한 카타르시스를 의도할수록 위험도 커질 것이다. 이 점에 한해 <나꼼수> 열풍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나의 이슈, 하나의 관점을 밀고 나가면 밀도 높은 정치적 대중을 거느릴 수 있다. 다만 그 이슈와 관점이 붕괴하면, 그 대중은 쉽게 흩어지거나 고립감에 기초한 광기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를 우리는 황우석 사태에서 확인했다. 과학·의학·윤리의 문제를 뭉뚱그려 황우석 개인에게 열광했던 한국의 대중은 일체의 관심을 모두 잃어버렸다. 극소수만 남아 지금까지도 황우석을 지지하고 있다. 정치 뉴스는 감정적·정서적으로만 소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이성과 감성이 혼융된 영역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선 직관-열광과 함께 분석-냉정이 필요하다. 정치를 ‘카타르시스’의 도구로만 활용하는 대중은 정치냉소-광기정치의 양 극단을 오갈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 덧붙일 일이 남았다. 앞서 밝혔듯이 <나꼼수>는 길어야 1년 정도 유지되다가 스스로 퇴장할, 기성 언론 외곽의 해적 미디어다. 그 미디어가 모든 중대 사안이 아닌 특정 사안에 몰입하고, 모든 관점이 아닌 특정 관점을 제공하며, 냉철한 공중이 아닌 열광적 대중을 잠시 동안 생산한다고 하여, 과연 그것이 그토록 잘못일까. 정파적 이익에 입각한 왜곡 보도,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편향적 비평으로 해방 이후 한국 사회 기성 언론을 지배한 <조선일보>가 엄연히 ‘엄숙한 언론’을 대표하고, 정권이 바뀔때마다 부침을 거듭하며 나팔수 방송만 거듭하는 <KBS>가 (사실상) 국내 유일의 공영방송인 현실에서, <나꼼수>가 한 1년쯤 난장을 벌인다고 하여, 과연 그것이 한국 언론에 그토록 창피한 일일까. 아마도 그 반대일 것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9 | 추천: 0
이광조/ CBS PD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지구 온난화가 발생한다는 것은 허구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광합성이 증대되고 결과적으로 농업생산성이 향상된다. 흡연으로 인해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인 태도다. 자연환경은 결코 발암물질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의 산소조차도 방사선 유발 암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이 허위 경보를 울린 탓에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고통스럽고 종종 치명적인 말라리아로 고생하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첼 카슨이다.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저) 때문에 DDT 사용이 금지되어 수백만의 아프리카인이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위에서 인용한 주장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과학적 연구와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구축된 상식에 반하는 생뚱맞은 주장 같은가, 아니면 우리의 상식에 도전하는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 같은가. 최근에 읽은 아주 흥미진진한 책, <의혹을 팝니다, 담배 산업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M. 콘웨이 저, 유강은 역, 미지북스)에는 미국의 핵개발에 참여하면서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소수의 과학자들이 기업과 보수적인 정치집단, 언론과의 연계 속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포함한 여러 환경 이슈들에서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흠집을 내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직적으로 확산시켜온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과학에 수반되는 어쩔 수 없는 불확실성을 파고들어 회의론을 유포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지금처럼 계속 개발해도 별 문제 없다, 담배 핀다고 다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다, 이런 논리다. 과학의 불확실성과 관련해서는 담배의 예를 들면 쉬울 것 같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는 담배에 수많은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으며 담배가 폐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모두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다. 그럼 결국 모든 게 개개인의 운에 달린 건가? 흡연자들은 이런 논리에 유혹을 느낄 법도 하다. 담배가 건강에 해로운 건 사실이지만, 나는 운 좋게도 별 탈 없이 천수를 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흡연자들의 이런 기대 섞인 생각과는 별개로 담배의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며, 요즘은 업계도 이를 받아들여 담배 갑에 섬뜩한 경고문구와 사진을 넣고 있다. 문제는 담배의 이런 유해성이 이미 오래전에 입증되고 담배회사들도 내부적으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담배업계와 그들의 지원을 받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해 줄기차게 물 타기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와 DDT 사용 금지 등 다양한 환경 이슈들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저자들은 과학자들의 공동체가 합의에 이른 이런 사안들에 대한 공격이 여론에 호소력을 지니고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로 국가의 규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불신, 업계와 보수적인 정치권력의 지원, 그리고 균형 보도라는 명목으로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을 비중 있게 다뤄주는 언론의 관행을 꼽고 있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부의 환경규제를 공격하는 이들은 기업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이며, 이들은 환경론자들을 기업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려는 ‘뿌리가 뻘건 초록나무’로 여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책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우리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한창 논란일 때에는 방조제를 쌓아도 시간이 지나면 방조제 바깥에 새로운 갯벌이 형성될 거라고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흐르는 물을 가두어서 수질이 좋아지겠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에 대해 수량이 많아지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단순한 논리부터 배가 다니면 산소가 발생해 수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기발한 논리까지 동원되었고 이제 사업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와중에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강물이 맑아지고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4대강 추진본부 관계자의 글을 둘러싸고 진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될 거라는 주장에는 여전히 쉽게 수긍이 안 되지만 본류 사업 준공을 눈앞에 둔 지금 나는 4대강 사업을 지지했던 분들의 예측과 논리가 사실로 입증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4대강 사업을 지지하고 추진했던 사람들이나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던 사람들이나, 이유는 다르겠지만 각자가 져야할 책임이 너무 무겁고 크지 않겠는가.
2017-07-21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0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제주의 세계 7대 경관 선정과 관련한 논란이 한창이다. 이를 주관한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 재단 실체에 대한 신뢰성 문제, 재단과 제주도와의 불공정 계약 문제, 7대 경관 선정을 위해 투입된 예산 씀씀이의 문제, 선정 추진 과정의 공무원 동원 문제 등이 그것이다. 제주도내의 시민단체들은 의혹들을 밝히기 위해 정보공개운동을 벌여오다, 지난 주 감사원 감사청구와 더불어 법률적 대응을 천명했다. 7대 경관 선정을 위한 릴레이 광고운동까지 벌이던 제주도내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판기사 실기에 주력하는 인상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지난 2월 3일 제주세계7대경관범국민추진위 위원장을 맡았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급기야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1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7대 경관을 둘러싼 논란이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이의 중단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공무원 동원문제에 대해 “과도한 것"이라고 유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입장은 “문제없다"이다. 제주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가가 필요했다"며 나름 의도의 순수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다 앞선 9일, 도내 행정시를 돌며 펼쳐 놓은 언사에는 이 논란의 확산으로 인한 위기감 또한 역력히 읽힌다. “아주 끝내주는 일을 했다"며 강력한 어조의 자찬을 내놓는가 하면, “저를 싫어하는 몇 명이 잡음을 내고 있다"며 “도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권력자의 경고’도 거침없이 구사한다. 그러나 80억대의 예비비 사용 논란이나 전화투표를 위해 쓰여진 200억대의 행정예산의 타당성 문제 등은 분명히 가려져야 할 대목으로 논란의 확산을 부추길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제주아트센터에서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실시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음을 선포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7대 경관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얼마나 진실을 길어 올릴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정작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왜 7대 경관이어야 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세계 7대 경관 도전, 그 이면에 자리하는 ‘발상’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7대 경관 선정 추진은 제주자연에 대한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꼭 세계 7대 경관이라는 서열구조 안에서야 제주의 풍경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제주의 아름다움이 외국 어느 기업의 이벤트에 돈 주고 참여해야 인정되는 것인지, 제주 자연의 고유성과 독자성은 투표참여를 위한 동원 정도가 결정하는 것인지 자괴감마저 찾아들었다. 수많은 제주의 주민들은 어땠을까? 하루에 30통, 100통 하는 투표 전화에 매달려야 했던 공무원들의 마음속에 제주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으로 각인되었을까? 그 전화 한 통, 한 통에 성실과 열의는 실제로 얼마나 작동되고 있었던 걸까?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봤을 것이다. 해안 언덕 너머로 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아득함을, 저녁노을이 번지는 바다 위의 반짝이는 것들을. 중산간 어느 오름 기슭 작은 길을 따라 번지던 들꽃들의 반짝임을. 제주의 어느 곳이든, 오름이든, 곶자왈이든, 심지어 한라산이든,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모두가 반짝이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아니, 제주 자체가 반짝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지 않았던가. 그것을 꼭 수백억 돈 들이며, 왜 그들에게 확인받으려 했을까? 유네스코에 의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2002), 세계자연유산(2007), 람사르습지지역(2006, 2008), 세계지질공원(2010)이라는 그 어떤 것보다 공인된 브랜드가 있는데, 또 어떤 글로벌 브랜드가 필요했던 걸까? 200억대의 행정비용이라면, 오히려 세계자연유산, 지질공원 등이 제대로 관리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7대 경관 투표참여를 위한 홍보비로 20억이 책정될 때, 지질공원 관리비로 고작 3천만 원이 예정됐던 것이 벌써 작년 초의 이야기다. 필자 또한 지정 신청 실무위원으로 참여했던 생물권보전지역만 하더라도,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앞선 사례처럼 이를 브랜드로 활용하자는 전략까지 세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 그 계획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들어간 전화비의 1/3만 거기에 쓰였어도 굳이 7대 경관이니 하는 ‘생소한 도전'에 나서야 했을까? 아니, 세간에 떠도는 말처럼, 그 돈을 가지고 뉴욕 메디슨 스퀘어 광장에 제주를 알리는 홍보판을 개설하고, 국제 유력지나 관광 매거진 편집진들을 대거 초청했으면 제주를 제대로 설명하고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생물권보전지역 되더니, 이의 관리는 제쳐놓고 세계자연유산 도전하고, 또 다시 세계지질 공원이란 타이틀을 얻으면서 ‘트리플 크라운', ‘3관왕' 운운하던 도정. 이후 새로운 도정은 다시 7대 경관이란 새로운 타이틀을 따냈다. 이제 또 어떤 타이틀을 따내야만 할까? 7대 경관이란, 혹시 골프장과 같은 각종 개발 -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 - 국제자유도시 개발 등을 잇는 신종의 정치적 실적주의의 산물은 아닐까?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지난 해 초겨울의 아침, ‘제주, 세계인의 보물 됐다!’, ‘제주, 세계의 보물로 우뚝 서다’와 같은 환호의 문구들이 그 날 도내 모든 언론들의 머리글로 굵게 새겨졌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혹시 ‘보물’이란, 이름도 생소하고 국적도 생소한 어느 상업회사의 ‘마케팅'이 빚어낸 ‘헛것’은 아닌지. 그 추상의 ‘보물’이, 7대 경관이라는 그 이름이, 지금껏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짝여왔던 제주의 자연들, 풍경들에게 혹시 또 다른 상처가 되었던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기지건설 공사에도 아직 살아 있다면, 그래서 돌아올 봄에 다시 피어난다면, 생물권보전지역 강정마을 구럼비 작은 오솔길에 반짝이고 있었던 하얀 찔레꽃에게 물어보고 싶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62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지난달 19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제1심 선고가 이루어졌다. 잘 알려진 대로 재판의 결과는 벌금 3천만 원. 함께 기소되었던 강경선 교수와 박명기 교수에게는 각각 벌금 2천만원과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피고인 간에 다소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 이런 선고결과는, 아마도 박명기 교수가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직을 사퇴하는 대가로 처음부터 금전을 요구하고 또 이후에 계속해서 대화를 녹음하는 등 위법한 방법으로 급부의 이행을 압박해온 행위들이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더욱 불법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즉, 책임이 큰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현 교육감은 일단 업무에 복귀하였다. 교육행정의 현안이 간단치 않은 마당에 교육감의 복귀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이 판결이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결국 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되고 말 것이다. 재판의 쟁점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후보직 사퇴의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한 ‘사전합의’가 있었는가. 그리고 둘째, 지급된 2억 원의 돈은 이러한 사퇴의 대가로 지급된 것인가, 아니면 곽노현과 강경선, 두 피고인의 주장대로 ‘선의의 부조’였는가. 나는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공판정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언론의 보도로 그 과정에서 진술된 증언들의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얼개나마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10년 6월 지방 선거가 있기 약 1달 전인 5월 중순경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의 회계책임자가 서로 만나 단일화 협상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박명기 후보의 사퇴에 대한 대가로 5억 원을 건네기로 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사실은 박명기 후보에게는 즉각 보고가 된 반면, 곽노현 후보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곽 후보측의 보증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시 선거본부장이었던 최 모교수가, 어차피 곽 후보는 이를 승인하지 않을 테니 비밀로 하도록 지시한 때문이었다. 여하튼 합의 다음날 박 후보는 사퇴하고 곽 후보는 마침내 선거에서 승리하여 교육감이 되었지만, 금액을 지급하기로 한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2010년 10월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과도한 빚에 시달리던 박 교수의 사정을 알게 된 교육감이 그의 오랜 동료이던 강 교수에게 박 교수를 만나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된 강 교수는 교육감에게 사전합의와는 별개로 박 교수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 때까지 이미 여러차례 박 교수에 대한 부조를 거절했던 교육감은 평소 그 인품을 잘 알고 있던 강 교수의 말에 따라 마침내 2억 원을 건네기로 하였고, 이를 강 교수가 박 교수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석방된 뒤 업무에 복귀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재판부는 이러한 증언들에 의해 ‘사전합의’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좀 더 정확히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교육감이 알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해당 조항, 그러니까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의 위반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위 조항의 제1호와의 관계에 비추어 제2호의 경우에도 사전에 금품제공의 약속과 같은 부정행위를 한 경우에만 적용이 된다는 변호인들과 몇몇 법학교수들의 주장을 충분한 설명 없이 부인한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재판부는 재판이 시작될 무렵,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 이러한 해석(즉, 사전합의의 존재여부는 제2호와 무관하다)이 있다는 점을 공지하면서 그러나 법원이 반드시 이러한 입장을 따르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여, 이 조항의 전향적인 해석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판결문에 나타난 재판부의 생각에 따르면, 결국 쟁점은 1가지로 좁혀진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지급된 돈에 ‘대가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 재판부는 우선 후보직의 사퇴와 금전의 지급 사이에는 사퇴한 후보와 금품제공자와의 관계, 사퇴로 인해 금품제공자가 이익을 얻었는지 여부, 금품의 다과, 금품제공의 시기와 경위 등에 비추어 객관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대가성을 피고인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했었는가 하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진술과 여러 정황을 들어 세 피고인이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재판부는 곽노현, 강경선, 두 피고인에 대해서는 ‘대가의 지급’ 이외에 다른 행위의 동기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사퇴한 박명기 교수가 겪고 있었던 극심한 경제적 곤궁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 내지 진보진영의 유력한 교육계 인사의 어려움을 못 본채 할 수 없다는 ‘이타적 동기’가 그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 사건이 문제되었던 맨 처음부터 교육감 측의 일관된 주장이었는데, “건네진 2억원은 ‘선의’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것이 없고, 이에 대한 국민과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노라고 한 교육감의 말은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을 터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모두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러한 동기와 함께 지급된 돈의 대가성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범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적인 상급법원의 성격을 고려하면 유죄의 판단을 번복시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 아니 대한민국의 교육행정은 여전히 위기 상태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