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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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문화, 이번엔 바꿔야 한다(경향신문, 2021.08.2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8-24 11:27
조회
543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늘 비슷한 대응이 뒤따른다. 정권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달라지는 건 대응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2005년 6월19일, 28사단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당 차원에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6월27일 출범했다. 8명이 죽고 4명이 다친 사건이었으니,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별개로 7월에는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를 민관군 합동으로 구성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 활동을 통해 군대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피해자 구조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고, 독일식 국방 옴부즈맨에서 그 답을 찾았다. 국방부 차관보를 독일에 파견해 실제 운영사례를 배워오기도 했다. 하지만 변한 건 별로 없었다.


2014년 4월, 이번에도 28사단이었다. ‘윤일병 사건’이라 불리게 된 고문살인 사건이 터졌다. 국회는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행정권과 사법권을 함께 가진 조직은 군이 유일하다며 군사법원 폐지를 권고하고,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판사가 아닌 사람을 관할관이란 이름으로 재판관을 시키거나 지휘관이 형의 3분의 1을 깎아줄 수 있는 ‘확인조치권’ 등도 폐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없었다.


2021년 5월, 성추행 피해자 공군 부사관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방식은 같은데, 다만 위원회 이름이 좀 더 길어졌다. ‘정의와 인권을 위해 강하고 신뢰받는 군대 육성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6월28일에 출범한 이 위원회도 국방부에선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라고 부른다.


위원회 출범에도 불구하고 공군 부사관 사건과 아주 비슷한 사건이 해군에서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격노’했다고 했다. 일종의 비상사태 국면인데도 여군을 상대로 한 성추행 범죄가 반복되는 건 격노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대통령의 격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긴급 소집된 지난 17일의 위원회 회의에서 수사 중이라며 사건 경위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어도 3명의 위원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거나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며 사퇴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위원회는 또 어떤 결론을 내고 마무리될지 모르겠다. 당장 겪고 있는 파행을 잘 헤쳐나갈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군에서 젊은이들이 죽을 때마다 비슷한 위원회를 만들어 똑같은 대책을 마련하고 그 대책이 제대로 실현되는지 살피지도 않고 또 새로운 비극을 겪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답은 대체로 나와 있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군사법원법을 폐지하는 거다. 문제점 검토나 대안 마련 등은 이미 다 끝냈다. 벌써 공청회만 20년째다. 군사법원은 폐지하고 정 필요하다면 가정법원, 행정법원, 특허법원처럼 사법부에 군사법원을 만들면 된다. 군검찰과 군사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의 한 부서가 군대 관련 업무를 맡아서 다루면 된다. 수사, 기소, 재판을 부대장이 좌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면, 비로소 신뢰가 생기게 된다. 공정한 사법절차를 기대할 수 없으니 자꾸만 구석으로 몰리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군대만 감시하는 전문 감시기구도 절실하다. 흔히 국방 옴부즈맨이라 부르는 이 기구를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정도에 맡겨둘 일은 아니다. 군대의 제반 활동을 감시하고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며 피해자를 돕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독립적 기관이 필요하다.


부사관들이 잇따라 죽어가고 있다. 부사관의 자살률은 병사보다 3배쯤 많다. 그만큼 힘들고 고단하다는 거다.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에도 불구하고 낮은 계급이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좀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상급자가 범죄적 일탈마저 서슴지 않는 것은 하위 계급 군인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직장이라면 노동조합이 있어서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일들이 군대에서 반복되는 거다. 그러니 군대도 노조를 생각해봐야 한다. 노조가 너무 낯설다면, 다른 직역의 공무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해서 노조로 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새로 만들고 고치는 등의 구조적 접근을 해야만 ‘병영문화’도 고칠 수 있다. 지금 급한 건 군인들에게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주는 거다. 이런 식으로 군인들의 죽음을 방치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