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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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폐지’가 간과한 여성인권(경향신문, 2021.07.2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7-28 16:46
조회
627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몇몇 정치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까지 합세했다. 정치적 속내가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 소수자인 여성들을 위한 핵심 부서를 없애자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몇몇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남성 청소년이나 청년 중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반응은 여성혐오로도 연결되곤 한다. 남성도 살기 힘든데, 왜 여성만 챙겨주냐는 볼멘소리, 여성만 챙겨주는 부서가 있다는 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란 말도 자주 들린다. 여성들이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왜 특혜를 주냐는 거다. 이런 푸념은 먹고사는 문제와 얽혀 제법 큰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한번 따져보자.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통계를 여럿 갖고 있다. 자살률에 대한 여러 통계가 그렇고, 노동시간,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 등이 여전히 세계 일등이다. 성별 임금 격차도 제일 심각하다. 2019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남성은 월평균 369만원을 벌고 여성은 237만원을 번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2% 수준이다. 스웨덴이나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격차가 모두 10% 미만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13% 남짓일 뿐이다. 임금 격차가 크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훨씬 더 심각하게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건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심각하다. 정규직은 월평균 361만원, 비정규직은 164만원을 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급여는 45.4%. 절반도 안 된다. 그러니 여성 비정규직이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할 고통은 한둘이 아니다.


고통은 심각하지만 이를 넘어서기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다.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의 19%밖에 안 된다. 광역단체장은 17명 전원이 남성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부끄러울 지경이다. 기초단체장은 226명 중에 겨우 8명만이 여성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가는 여성과 비정규직을 위해 보다 역동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남성이나 정규직은 아무래도 좋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쪽을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자, 소수자의 지위에 있다. 그러니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바로 그런 일을 한다. 여성 정책을 기획·종합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등 여성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주무 부서다.


세상은 그저 ‘각자도생’의 원리로 돌아갈 뿐이니, 여성들은 먹고살려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여성들이 공무원, 교사 등 그나마 차별이 덜한 공공부문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리직 등 높은 자리로 올라가긴 힘들겠지만, 그나마 숨통 트고 일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영기업은 사뭇 다르다. 여성은 아예 뽑지 않는 곳도 많고,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뽑는 곳도 많다. 여성에겐 아예 승진할 기회를 주지 않는 곳도 너무 많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먹고사는 문제에서도 여성들은 약자, 소수자일 뿐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세계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여성에게는 먹고살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성가족부가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부서 폐지는 그저 엉뚱한 소리일 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거나 온갖 성 착취와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주무 부처를 없애자는 건 마치 노동자의 지위가 나아졌다며 노동조합을 해체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긴 어떤 야당 정치인은 귀족노조를 없애야 청년이 산다는 섬뜩한 선동도 서슴지않고 있다.


선거가 다가온 때문인지,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선동이 자주 들린다. 문제는 이런 뻔한 선동에 넘어가는 청소년,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먹고사는 문제 등 당장 풀리지 않는 문제와 힘겹게 씨름하다 보니, 강렬한 선동일수록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야당 일부 인사들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여성을 그저 남성의 하위 파트너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망언일 뿐이다. 여성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구호가 여성혐오로까지 연결되는 상황에도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극단적 정치인들의 활동 공간을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