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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자신의 권리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상실한 시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3-22 16:30
조회
501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20만 여표로 당락이 결정된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성인이 된 뒤 수차례 대통령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이래, 이번 선거만큼 막막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1992년 작고하신 백기완 민중후보 개표 방송을 보다가, ‘민중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이것밖에 안되나’며 좌절했던 때도 이번 선거 같진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제게 가장 기뻤던 선거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었습니다. 득표율 13.1%, 국회의원 10명이 원내에 진출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할 환희의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진보정치세력도 원내에 진출했으니 내가 중년이 되면 어엿한 진보정당으로 자리잡겠지, 란 희망으로 가득찬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2022년에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진보정당은 휠씰 줄어든 득표율을 얻고 있는 형편입니다.


정치적 팬덤에 기초한 ‘진보’라는 착시 현상


 되돌이켜 보면 2002년 ‘노사모’와 ‘촛불시위’로 시작된 국면은 기회인 동시에 실험대였던 것 같습니다. 보수정당간의 경쟁은 ‘진보 대 보수’ 식 정치적 대립을 장기화시켰으며 정치적 팬덤에 기초한 ‘진보’라는 착시 현상이 지속되고 이들의 집권에 의한 ‘국가개혁’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사이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크게 변화해 버린 한국 사회에는 불안정 노동자의 수가 늘게 되고 민주노조의 조직율은 급격하게 하락하게 됩니다. 변화한 노동시장내 소수자들을 적절하게 보호할 대책을 조직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민주노총은 보수양당에 의해 ‘강성노조’의 상징처럼 불리게 되었고, 점차 진보정당과 노동자들 간의 연계는 약화되어 갔습니다. 더불어 노동조합조차 조직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지금부터 5년 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국정농단 탄핵 촛불시위를 경험하며 또 한 번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적폐청산으로 상징되는 ‘촛불시위’는 이에 동의하는 가장 많은 이들이 결집한 ‘최대민주화연합’이 1987년 이후 다시 만들어지는 모양새를 띄었습니다. 촛불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무기력했던 야당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었지만 정치개혁은 보수양당의 위성정당 담합으로 유산되었고,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지켜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유예되었으며 2016년 촛불이후 밝혀진 여성주의는 잇따른 정치권, 온라인과 공론장에서 성폭력과 혐오의 반복으로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왜 소수자는 진보에 투표하지 않나?


 1990년대에 던졌던 질문이 ‘왜 노동자는 진보정당에 투표하지 않나’였다면, 2010년대 이후 오늘까지 이어지는 질문은 ‘왜 소수자는 진보에 투표하지 않나? 로 이어진 셈입니다. 이번 선거 내내 후보들이 말한 집단지성이란 단어의 실체는 보수양당이 지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적폐청산이란 결로 읽어내기 어려운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내내 공중파와 SNS를 뒤덮은 줄리, 적폐, 검찰권력 등 단어들 속에서 탈원전, 기후위기, 여성,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사안은 좌충우돌하거나 언급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청년들의 불안정한 직장, 결혼, 그리고 주거가 언급되었지만, 오랜 박탈감 속에서 그네들이 명품 등 문화자본에 끌리는 동시에 생태적 일상, 일상적 권리의식에 대해 앞 세대보다 엄격하게 된 변화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최근 발간된 <소년문화탐방기>란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 스마트폰, 인터넷 공간 등 소년들만의 세계, 남녀 간 역할 등에서 이전 세대와 매우 다른 경험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소년들이 어느 순간 기득권자나 가해자로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란 투표장에서 한 표로 끝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은 공동체와 일상에서 많은 경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의 공정이나 합리적 경쟁에 대한 몰입의 뒤에 존재하는 변화해버린 생애 과정, 라이프 스타일, 의사소통 수단 그리고 의식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사진 출처 - yes24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줄 정당을 찾지 못해


 저는 앞 세대보다 보다 높아진 권리의식을 지닌 새로운 그룹이 특정 집단이나 소수자에 대해 이유 없는 반감이나 혐오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줄, 그들과 대화할 정당을 아직도 찾고 있지 못한 것이 2022년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노무현이나 노회찬을 불러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불안정한 삶과 노동, 목전에 온 기후생태위기, 2000년대 이후 크게 변한 남녀관계, 온라인공간에서 넘쳐나는 혐오 표현 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자기 이야기를 지닌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등장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로 ‘2016년 촛불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 제가 민주노동당이 내세웠던 ‘거대한 소수’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은, 촛불을 넘어서는 새로운 감각과 정체성에 입각한 사회운동과 정치를 통해 새롭게 열어가는 과제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소개한 <소년문화탐방기>의 작가 지현님이 이야기한 “소년들을 위한 사회적 뒷배”를 만들어 나아가야할 시간, 이대남이나 반페미 등 ‘말’이 아닌, 공론장에서 이들과 대화할 뒷배를 긴 시간동안 인내를 갖고 만들어 가야할 ‘그런 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현작가의 말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리는 온라인 세계에서 길을 잃은 소년들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그렇지만 묵묵히 그들의 곁에 서 있는 것으로 그들의 세상에 개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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