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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호] 숭배 애도 적대 – 자살과 한국의 죽음 정치에 대한 7편의 하드보일드 에세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2-21 15:19
조회
431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교수


1. 향년 27세, 김인혁과 잼미의 죽음


 부동의 세계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은 그치지 않는다. 2022년 2월 초, 꽤 유명한 20대의 젊은이 두 사람이 잇달아 자살했다.


 한 사람은 남자 프로 배구선수 김인혁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트위치 여성 스트리머 잼미였다. 김인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일부 네티즌이 “경기 때마다 수많은 DM(다이렉트 메시지), 악플” 등을 보내 괴롭혔던 사실을 공개하며 고통을 호소했었다 한다. 동성애자라든가 AV 배우를 했다든가 하는 ‘소문’이 잔인한 악플과 조롱의 이유였다. 여성 스트리머 잼미의 우울증과 자살은 ‘페미’라는 이유로 남성 네티즌들에게 ‘좌표’를 찍혀 오랫동안 심한 악플을 받았던 것이 이유가 되었다. 그녀는 악플에 굴복해 두 차례나 “불쾌감을 드려 죄송하다”고 공개사과했으나 ‘뻑가’ 같은 남자들에게 영향력 있는 유튜버들이 공개 저격하면서 오히려 더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한다.


 두 사건에서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과 그것을 가능하게한 문화정치의 구조가 공통된다. 흔히 ‘악플’로 표출되는 폭력의 내용은 오늘날 한국의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며, 그 폭력의 도구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다. 이 미디어를 움직이는 두 원리도 중요하다. 그것은 첫째 거의 아무런 규제가 없는 미디어-자유주의며, 다른 하나는 혐오든 논란이든 관심을 끌고 클릭수를 높여 굴러가는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동력이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루는 거대한 체계와 문화의 중축의 하나다.


 2022년 2월 김인혁이나 잼미 같은 20대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최진실이나 설리 같은 연예인들이 그렇게 한 이유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어딘가에서 지금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청소년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여성혐오나 성차별, 그리고 잔인하고 상업적인 인터넷 미디어 문화와 ‘댓글’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정서적 심층에는 타자를 향한 분노와 사회화된 정치적 잔인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조롱과 조리돌림에 너나 할 것 없고 너무 둔감해져 있다. ‘악플’을 다는 일이나 받는 일도 거의 일상화돼 있다. 이에 대한 성찰도 둔화돼 있다.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는 없다. 지금과 같은 미디어 산업의 환경을 배경으로, ‘진영정치’와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상대를 절멸시켜야 끝날 듯한 대결과 잔인함과 보복을 조장하는 정치와, 태어날 때부터 너무 명백한 불평등이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잔인함과 폭력성은 사이버 공간의 무차별한 익명성과 악용된 기술 때문에 증폭돼왔던 것이다. 그같은 위험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다른 목적으로 ‘관심’에 의존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 위험하다. 오늘날 유투버, 스트리머 등은 새로운 직업이며 새로운 존재양식이다. 그들과 함께 이른바 ‘관심경제’가 넷 공간에 완전히 정착했는데 ‘관심경제’는 넷공간의 폭력성과 자아의 전시상의 피폐함을 증대시킨다. ‘관심경제’는 단순히 ‘인기가 돈이 된다’는 연예산업과 자본주의의 일반적 차원을 넘어 서고 있다.



사진 출처 - yes24


2. 가세연의 돈벌이 방식


 이번 대선 정국의 초기에 민주당이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가 철회한 조동연 교수 사건을 통해 새삼 사람들은 가세연이라는 이 시대의 악(惡) 때문에 몸서리쳤다. 극우 유튜브 가세연은 조동연 씨의 자녀 신상 공개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 언론인에 대한 사생활 공개 등 명예훼손, 혐오차별 발언 등의 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 등이 구글코리아에 항의하고 조치를 촉구했다. 그러자 구글코리아는 가세연에 겨우 일주일 업로드 중단 제재를 결정했다.


 너무 가볍고 너무 늦은 조치였다. 필자는 가세연 하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과 지금도 끝나지 않은 그 정치적 후과가 생각난다. 박원순 시장의 사망일에 가세연의 유튜버들이 희희덕대며 정적이었던 사자의 죽음의 현장을 찾아가서 조회수를 올리던 때로부터,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요청한 최소한의 필요한 침묵과 성찰의 기회는 날아갔다. 여권이 분노하자 문제는 진영정치로 비화돼서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2020년 7월 16일, ‘고소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가세연 운영자는 또 한 차례 이 사건의 ‘플레이어’로 나섰다. 네 사람의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들을 성추행 방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로 고발한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인 김주명 전 비서실장은 가세연을 맞고소했다. 소송 과정은 서울시청 동료였던 박원순의 비서들 사이에 큰 고통과 갈등을 불러오게 했다 한다.


 가세연은 소위 ‘보수’ 쪽 유튜브 채널 중에서도 가장 돈을 많이 벌고 가장 많은 ‘가짜뉴스’와 논란을 생산하는 방송의 하나다. 혐오와 ‘증오의 정치’가 돈도 되고 권력도 된다는 점을 어느 매체보다 잘 보여준다. 이런 매체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 영향력이 돈이 되는 한, 이 나라의 정치는 지금과 같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 이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필자의 책 ⌈숭배 애도 적대 - 자살과 한국의 죽음정치에 대한 7편의 하드보일드 에세이⌋(서해문집, 2021)가 다루는 것이 이런 상황이다. 이 책은 ⌈자살론-고통과 해석 사이에서⌋(문학동네, 2013)에 이어진 한국 자살 연구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은 특히 한국의 정치가,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이 함께 연루된 구조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을 다룬다.


 그 체계의 수레바퀴 또는 톱니가 하도 날카로워 사람들이 자주 희생을 당한다. 반복컨대 잔인성의 체계의 바깥 고리는 한국식 진영정치와 증오와 복수의 감정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안쪽 고리들에는 직장과 학교 그리고 일상의 문화가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문화의 깊은 곳을 점거하고 모든 세대와 일상인을 쉽게 가해자나 피해자로 만든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자살예방법 제정(2012) 이후 한국사회는 자살을 유발하는 사회적 원인에 대해 대체로 알고 있고, 자살예방을 위한 노력을 좀 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살을 야기하는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를 근원적으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자살률을 낮추지도, 또 그로 인한 부가적 고통도 줄이지 못하고 있다.


 관료나 정치인의 자살을 유발해왔던 보복과 증오의 정치도, 무리하고 반인권적인 수사로 수십명의 자살원인을 제공했던 검찰에 대한 개혁도, 연예인과 체육인의 자살을 유발하는 미디어 문화도, 그리고 청소년의 자살과 자해현상을 불러일으키는 학교교육의 체계와, 20-30대 여성과 청년 자살자를 크게 늘리고 있는 젠더 구조의 모순도 그대로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정치 탓을 하면 거대 양당 중 하나는 애매하고도 위선적인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유지하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혐오와 포퓰리즘이 ‘보수’인양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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