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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국제연대활동의 반성 -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57
조회
305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지난 7월 14일, 민변을 포함한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가협 등 약 30여개 국내 인권단체들은 한국의 촛불상황에게 발생한 인권침해상황을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내 인권보호시스템인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를 이용하여 표현의 자유, 인권옹호자, 자의적 구금, 고문 등의 특별보고관과 워킹그룹에게 긴급청원(Urgent Appeal)을 하였다. 유엔 ‘특별절차’를 설명하면 유엔인권이사회내의 특별 기구로써 긴급하게 벌어지고 있는 특정국가의 인권침해사안에 대하여 당사국이나 주변국의 단체나 개인이 각 인권침해 사안에 대하여 주제별 특별보고관(18개), 실무그룹(Working Group, 4개), 독립전문가(4개), 특별대표(유엔사무총장지명, 4개), 나라별 독립전문가(5개), 특별대표(1개)에게 직접 관련 인권침해사안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서(Appeal 또는 Model Questionnaire)를 보내면 이를 접수받은 각 특별보고관 및 실무그룹은 각 인권침해사안을 직접 방문조사(Country Visit)또는 각 당사국 정부에 질의하여 사안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권고사항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는 유엔인권이사회에 한국 촛불집회 상황에서의 인권침해사안을 가져간다는 의미와 함께 국제사회에 이를 공론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엠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이나 아시아인권위원회(Asia Human Rights Committee)와 포럼아시아(Forum-Asia)로 부터의 각 조사관이 한국에 와서 조사한 결과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의제화 하는 것도 우리와 같은 유엔특별절차를 이용하기 위한 하나의 사전 조사 작업인 셈이다. 현재까지 민변을 포함한 30여개 국내인권단체들은 두 차례의 긴급청원을 보냈으며,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한국정부에 의한 인권침해사안이 계속 발생될 것이기에 꾸준히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절차를 이용하는 긴급청원은 계속될 것이고, 더불어 유엔인권이사회 차원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국제인권단체들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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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진행된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하지만 ‘특별절차’를 활용하여 한국의 인권침해사안을 유엔 및 국제여론에 알리고자 했을 때부터 주변의 지인으로 부터의 지적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인권을 자기중심적으로 혹시 보고 있지 않나’ 라는 조심스러우면서 복잡 미묘한(?) 반성의 지점이 생겼었다. 이는 소위 국제연대 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실상 한국의 인권침해사안이 발생했을 때 유엔이나 다른 국제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한국을 벗어난 다른 국가 및 지역에서의 인권침해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 또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대했던 경험에서 오는 후폭풍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인권이란 상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한국의 인권상황은 국제적으로 그리 낮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짧게나마 경험했던 중동의 국가들이나 아시아의 국가들의 예를 보면 한국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절차적 제도와 법을 통해 인권이 지켜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은 차치하더라도 그나마 그 법치국가로써의 외형을 갖춘 요르단의 경우에는 모든 정치적 집회는 불허이고 이를 어기고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가 있을 경우에는 모두 구속이 된다. 가장 최근의 정치시위였던 이라크 전쟁 시 요르단 대학 내의 학내 집회의 경우, 경찰이 학내로 들어와서 두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필리핀의 경우에는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활동가나 종교지도자들이 천명이 넘게 지속적으로 살해 및 암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민변에서 약 두 달간 인턴활동을 했던 스리랑카의 한 여성 변호사는 민변을 떠나면서 했던 말들 중에서 자신은 정치적으로 발언할 수 없고 사회 활동을 하고자 해도 생명의 불안을 느끼는 스리랑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이 글을 통해서 한국의 인권수준이 높으니 상대적으로 낮은 다른 국가의 사안을 먼저 챙겨야 하고 한국의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을 주저해야 한다는 식으로 반성하고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인권을 평가하는 기준은 분명 상대적일 수 있고, 인권 그 자체가 절대적 기준을 가질 수 없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인 하나의 도달해야 하는 그 어떤 과정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한국의 인권상황이나 다른 국가의 인권상황은 두 개의 인권상황이 같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 답일 것이다.

다만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그 어려운 일을 겪었던 사람의 느낌을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동안 그 도움을 청한 곳이 먼저 요청했던 도움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의 부끄러움과 반성이 남아 있고,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에 관련하여 스스로의 시야 확장이 꼭 필요하다는 결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찌 보면 국경이 있을 수 없는 인권의 영역에 경계선을 친 것은 그 곳에서 활동하고 경계선을 걷어내자고 소리친 나의 부끄럽고 편협한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의 촛불이 어디로 진화해 나아갈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다시금 내안의 경계를 허무는 촛불로 승화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