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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통해 바라본 대학생의 권리 - 장윤미/국민대 학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55
조회
332

장윤미/ 국민대 학생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해야 하는 데라는 생각을 반복하다가 문득 내가 경험한 알바 역사가 떠올랐다. 내 최초의 알바는 돈가스 서빙, 불행히도 첫 알바에서 돈을 떼였다. 가게는 문을 닫았고 다시는 사장을 볼 수 없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서 첫 알바를 한 곳은 여대 근처의 한 카페. 난 2005년 당시 시급 2500원으로 일했다. 사실 그게 잘못 됐는지 몰랐다. 그저 열심히 일하였다. 돈이 필요했으므로. 펜션청소알바라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사장은 내게, ‘넌 너무 말이 없다.’ ‘난 옆에서 얘기 많이 해주는 알바생이 좋더라’ 라고 하기에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난 속으로 궁시렁댔고, 심지어 ‘마사지 받은 경험에다 금액까지 상세히 설명하시며’ 날 불편하게 했다. 생각해보니 성희롱이 아니었을까나 싶다. 아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음 편히 공부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하기 싫은 알바를 해야 하는 날들이 취업 후에도 이어질까 하는 우려를 하는 내가 제일 싫었다. 그러나 어차피 오래 일할 것도 아니었기에 이 모든 것은 경험이다 위안하며 나는 꿋꿋이 알바를 찾아 전전한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알바는 생계 수단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등록금은 차치하고서라도 치솟는 물가로 인해 빠듯해진 생활비를 위해서 알바는 필수다. 한편으로 알바는 사회간접경험이라 한다. 모든 경험들이 갚지다곤 하지만 사실 이젠 알바가 대학생활의 유일한 사회간접경험이 될까봐 걱정이다. 사실 난, 학생으로서 좀 더 가치 있는 알바를 하며 만족을 얻고 더불어 생활비 부담도 덜고 싶다.
대학생에게도 학습권을 달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학생이란 신분으로 왜 우리가 학업 이상의 생계라는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하는가? 대학생들을 사회의 미래라 운운하고 대학생들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짖기만 하는 기득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에게 얼마나 학습권을 보장해 주었느냐고. 대학진학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모순적이게도 학습권은 없다. 학생으로서의 권리 말이다.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책에서 이 영은 ‘학업에 의사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일을 방지’ 해야 한다 말했다. 이러한 역할을 누가 해주어야 하는가? 이광택 교수의 표현처럼 교육이라는 ‘공공성이 물화’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주위 친구들 중에선 알바가 주인지 학업이 주인지 모르게 한 학기를 보내기도 하고,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조금이라도 등록금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전선에 뛰어든다. 다시 학교 돌아오기가 녹록치 않은 학생은 휴학을 하고 계속 돈을 벌기도 한다. 졸업하고서는 어떤가. 직장엘 들어가면 당분간은 학자금 대출을 갚는데 내 월급을 써야 한다. 불어난 이자와 함께. 그렇게 대학생들은 차분히 노동력을 생산하는 기계로서의 전철을 밟아 나간다. 빚을 지고 그걸 갚기 위해 나의 노동력은 담보로 잡힌다.

공공성의 보장은 국가의 책임 영역이다. 대학생들에게 책값과 생활비를 주고 학업 환경을 높여주는 건 국가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사회적인 투자이다. 그걸 아는 현명한 국가들은 등록금과 책값을 넘어 알바자리까지 구해주며 생활비까지 넉넉히 벌게 해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외계층이 되어버린 한국의 대학생들. 우리가 국가에 바라는 것이 없듯이 국가 역시 대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없는 걸까. 학생에겐, 대학생에겐, 제약 없이 학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라고 인식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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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생은 여전히 최저임금제 등에서 소외되어 있다(위 사진은 특정 업체와 관련 없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돈벌이’로서의 알바가 아니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알바

노동을 처음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알바가 단순히 생계나 수단으로서만 작용하는 것도 문제다. 최근 들어, 알바 최저시급문제, 성희롱 등 알바와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알바는 노동이다. 하지만 알바는 노동으로 인식되기보다 그냥 단순한 돈벌이로 인식됐기에 알바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점들이 묵인됐다. 알바를 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최저시급이 얼만지 노동권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노동시장으로 나아가 부닥친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노동권에 대해서 배웠을 리가 없다. 나의 노동을 통해 어떤 실현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기회도 없었다. 잠시만 돈 벌고 말 일이니까 치사하고 부당해도 그냥 참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사회전반의 노동들이 다 돈벌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계속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먹고 사는 문제야 정말 고귀한 것이지만 그게 굴레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노동에서부터 권리를 찾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고민들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또 그게 좀 더 농밀하게 사는 삶일 것이고, 그것은 노동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학생들의 ‘알바’ 를 살피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돈벌이’ 나 또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알바가 아니라 노동으로서 ‘자아실현’ 할 수 있고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하는데도 도움을 주는 알바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대학생 알바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다. 내 전공에 맞는 일을 해본다던가, 적성에 맞는 일들을 해본다던가. 이런 기회가 아주 운 좋은 몇몇 학생들에게만 돌아갈 것이 아닌 알바를 하길 원하는 대학생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또 사회 곳곳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맞벌이 하느라 아이 양육이 힘든 부부들, 특히 학원마저 방학할 때가 되면 어찌할 줄 몰라 한다. 예컨대 나라에서 공부방을 만들어 주고 그 곳에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할 기회를 얻는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유익할까. 지체장애인 분들의 활동보조를 하며 국가에서 일정 알바 비를 받는 대학생들을 만난 적도 있다. 이렇게 나의 노동을 통해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대학생들에게 생기면 좋겠다.

우리의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은 한에서 알바를 통해 노동권과 노동의 의미를 이뤄나가고, 그 보람과 함께 내가 원하는 것을 정당하게 얻었다는 보상을 얻어나가는 것. 청소년이든 대학생이든 그런 것을 배워나가는 것이 사회에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믿기에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국가는 학생들의 권리를 보살피고,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들을 만들어 나가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