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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뿐인 그대! -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48
조회
334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참 무덤덤한 사람이다 그는. 가볍게 조금 가볍게 그러면 한결 생기가 돌고 활력이 생길 터.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내가 서울에 가는 이유 중 십중팔구는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가는 것이다. 오늘도 난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간다. 


 약 석 달 만에 서울 가는 길은 벌거벗은 땅과 파헤쳐 허물어진 산들로 아비규환이다. 그 너머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바벨탑 같은 아파트와 빌딩들.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가 아프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데서 살 수 있을까? 숨은 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심란함이 결국 서울행에 대한 후회로 밀려든다. ‘에이 그냥 그가 청주에 내려올 때 만나면 될 걸 괜히 올라간다고 해가지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서울행 차를 탔을 때 습관처럼 드는 감정임을 새삼 발견했다.


 지난 3월 말경 이었다. 절친한 사람들과 나는 충주인근의 강변에서 낮술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놀고 있었다. 강변에서 물수제비뜨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때 전화가 왔다. “강의 좀 부탁해요. 충북경찰청하고 군부대 인권강의가 있는데 이국장이 참석해 주세요.” 순간 놀다 들킨 아이처럼(사실 놀고 있었음에도) 나는 짧게 “네 알았어요” 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저쪽에서는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후 커다란 숙제를 떠안은 기분과 함께 그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난 놀고 그는 활동하므로). 놀이의 흥은 깨어졌다. 한편으로는 ‘아니 난 백수인걸 아직도 나보고 이국장이라 부르네’ 하며 공연히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헛방질을 해대었다. 결국 그날 낮술에 취해 나는 청주까지 시체가 되어 실려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가 부탁한 강의 두건을 모두 하지 못했다. 나중에 담당자들과 다시 통화를 하며 일정을 확인한 결과 그 시기가 일 년 전에 예약을 해두었던 피정 기간과 겹쳐있었다. 피정은 보름동안 진행된다. 이렇게 되다보니 난 그에게 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정을 말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언제나처럼 그는 무덤덤하게 내 사정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으씨 아주 그냥... 혼자 좋은 거는 다 해요.”


 버스에서 들었던 후회감은 지하철을 탈 때면 여실하게 드러나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답답한 공기, 무표정한 많은 사람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때면 도시의 아주 작은 기계부품이 된 이물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서울 가는 길이 점점 길어지고 숨에 벅차다. 마침내! 그렇다 그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을 표현하기에 이 말이 딱 맞춤이다. “휴~마침내 왔군.” 몸도 무겁고 게다가 성치 않은 무릎으로 날마다 오가는 그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앞에 일이 한보따리 쌓여있었다. 소식지 발송 작업. 단순 반복 작업이 도를 닦는데 제일이다. 다행히 일은 거의 막바지였다. 운이 좋았다. 마무리에 살짝 손끝만 얹어 놓았을 뿐인데도 수고의 인사를 받아먹었다 흡족하게.


 차를 마시며 소식지를 펼쳐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전하는 활동소식을 알고 있음에도 오랜만에 만지는 종이소식지의 촉감이 좋다. “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아니! 책 나왔네!” 호들갑이다.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떡 하니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소식지 귀퉁이에 실린 기사가 참 반가웠다. 이어지는 나의 호들갑에 함께 소식지 작업을 했던 젊은 자원봉사자 친구들은 웃었다. 출판기념회 같은 거는 안하냐? 책은 많이 나가느냐? 또 책을 쓸 것인가? 소문을 많이 널리 내야겠다는 등 그가 맺은 열매를 사람들이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책을 선물로 받고 저녁식사도 맛나게 대접받은 후 우린 술을 마셨다. 근황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많이 피곤해 했다. 지쳐 있음이다. 십 육년을 줄곧 달려왔으니 지칠 법도 하다. 저렇게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것도 용하지 싶다. 그는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쉬라 권했다. 길게 살자며 쉬라고 했다. 좋은 거 혼자 할 수 없으니 같이 쉬자고 했다. 쉬면서 피정도 다니고, 하고 싶은 공부도 여유 있게 하라며. 쉼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헤어지며 그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서울에 올라 온 진짜 이유가 뭐냐며.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과 술 마시러 왔을 뿐이라며.


 청주로 향하는 심야 버스는 언제나처럼 가벼웠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생각했다. 내가 아는 오창익은 언제나 대한민국의 야만과 맞장을 뜨고 있다. 그의 감수성은 매우 여리며 오지랖이 넓다. 그래서 상처와 아픔 따위에 쉬이 동화된다. 함께 숨쉬기 때문이리라. 오창익은 열려있기에 그렇다. “대한민국 너도 사람다워져라.”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가 언제나 대한민국과 맞장을 뜨는 이유다.


 나는 벗이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잘 놀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활동이 노는 것이라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잘 놀고 푹 쉬는 것이 활동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오창익은 하나다. 나의 오랜 벗에게 실바람처럼 가볍고 편해지기를 권유한다. 그것이 당신의 오래된 권리이며 당장 실현해야만 하는 유일한 권리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