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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점지한 삼신할머니 각성하라” -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49
조회
375

- 저항은 즐겁고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촛불을 드는 시민의 수는 늘어가고, 학생들은 교실을 벗어나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제자들이 동맹휴업으로 길을 트면 교수들은 시국선언으로 화답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월차로 촛불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촛불집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예 여름휴가를 시청광장에 텐트치고 보내겠다는 농담도 들려온다.

6·10항쟁 21돌을 맞은 10일은 전국이 들썩였다. 서울에서는 50만의 시민이 촛불행렬에 동참했다. 물론 정확한 참석인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50만은 주최 측 주장이고, 경찰은 8만이라고 한다.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그냥 50만이라고 하자. 촛불을 든 사람만 참석자인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던 그 시간대 광화문 일대에 걸음을 서성이고 있던 시민 모두가 참석자다. 집에서 현장생중계를 보며, 뉴스 검색을 하며 마음은 광화문에 있었던 소위 ‘재택촛불’도 참석자다. 그들을 모두 합치면 50만이 아니라 최소 500만은 될 거다. 뻥이 좀 있으면 어떤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해대는 정부에 비하면 이정도 뻥은 뻥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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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 촛불시위 현장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광주에서도 5만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서울에서는 탄핵시국이 있었지만 광주에서 5만 시민이 금남로에 모인 것은 그야말로 87년 6월 항쟁 이후 21년만이라고 한다. 고사리 손에 촛불을 든 아이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까지 금남로가 간만에 ‘시민광장’이 되었다. 연등을 든 스님들과 피켓을 든 수녀님들, 학생, 노동자, 주부, 상인, 농민 할 것 없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금남로에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자유발언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주먹밥을 나눠주는 이들도 받아든 이들도, 모금함을 돌리는 이들도 돈을 내는 이들도 즐겁기는 매 한가지였다. 초등학생의 ‘과격한 발언’에 웃고, 고등학생의 집단 ‘땡땡이’를 격려하고, 개사한 진도아리랑에 흥겨웠다. 어른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한 비보이 공연도, ‘프리 허그’도 광장에서는 좋은 볼거리다. 한 상인이 생수 1,000개를 내놓았다는 소식이나 즉석모금이 900여 만 원이라는 소식에는 5월 광주가 오버랩 된다.

아마 이날의 금남로는 시민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권력 앞에 무기력한 시민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과 맞서는 시민으로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시민광장을 만든 금남로에서 다시금 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항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회가 즐거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말들의 잔치’ 때문이다. 촛불집회를 거듭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업그레이드되는 문구와 구호는 언어의 유희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명박 OUT’ ‘고시철회’ ‘너나 먹어 미친소’ 등은 단체 제작하는 피켓의 단골메뉴일 뿐이다. 시민들 개인이, 소규모 그룹이 자체 제작하는 피켓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나쁜 머슴 이명박! 넌 해고다’ ‘닥치고 재협상’ ‘2MB 넌 틀렸어 틀려, 2MB 쓰거브네’라는 직접적인 표현에서부터 ‘소탐대실(소를 탐하면 대통령을 잃는다)’이라는 경고도 보인다. 여기엔 조롱도 함께 한다. ‘이름은 명박, 관상은 쥐박, 개념은 외박, 경제는 쪽박, …언행은 경박.’ 국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고백에 대해서는 ‘소통하기? 개뿔! 소유통하기’로 응수한다. 애꿎지만 삼신할머니도 피해가지 못한다. ‘2MB 점지한 삼신할머니 각성하라.’ 또 ‘백일 됐다. 헤어지자.’는 고백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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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
사진 출처 - 필자


온 국민을 무식한 사람으로 만든 주한미국대사에 대해서는 ‘과학 좋아하는 버시바우! 주한미군 10년 먹여 과학적으로 검증하자’고 따진다. 가수 안치환이 촛불집회에서 새롭게 발표한 노래 ‘유언’의 내용도 벌써 피켓에 담겼다. ‘미친소 먹고 민영의료보험으로 돈 없어 죽거든 대운하에 뿌려다오.’ 광우병 괴담과 관련해 한 시민이 현수막에 적은 문구는 간담이 서늘하다. ‘진짜 괴담은 이명박 임기가 4년 9달 남은 거다.’ 즐거운 자리에 기발한 아이디어의 말들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날 금남로 집회에 백미를 이뤘던 것으로 문학적 표현이 압권인 전라도식 욕을 소개한다. “한여름에 염병 걸려 땀도 못 내고 죽을 ○○○” “간에 옴 걸려 긁지도 못하고 죽을 ○○○.” 웃자. 광장의 웃음이 정권에게는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