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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 그러나 마르고 싶다 ‘무엇이 여성의 몸을 전쟁터로 만드는가?’ - 장윤미/국민대 학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46
조회
574

장윤미/ 국민대 학생




나는 오늘도 빵을 고르면서 습관적으로 봉지를 뒤집어 칼로리를 확인했다. 저녁 7시 이후에 야식을 먹을 때면 죄의식을 느낀다. 그렇다고 이런 자기 규율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여주는 건 아니다. 금지할수록 욕망은 더욱 커지고 음식과 마주하는 매 순간 내 의지와 독함을 시험해야 한다. 시기에 따라 강도가 다를 뿐 나는 늘 다이어트 중이다.

이 시대를 사는 ‘정상적’인 특히 젊은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다이어트를 생각했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그리고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는 광고에서 마주치는 늘씬한 몸매의 모델들 앞에서 ‘나는 왜 자꾸만 작아지는가’. 더불어 얼마나 고마운가. 매 순간 살아갈 의지를 준다. 하면 된다. 아자 다이어트. 몸매를 가꾸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더라.
다이어트는 정치적이다

흔히 다이어트를 개인의 문제라고 여긴다. 내 극복의지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욕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욕망을 넘어 강박관념이 되어 버린 다이어트가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일까. 우리 주위에는 온통 다이어트 하라는 침묵의 강요들로 넘쳐 난다. 또 외모와 몸매는 이미 사회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회의를 느낀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제 몸을 날씬하게 관리하지 않는 건 반사회적 행위로 취급받는다.

단순히 배고픔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은 음식은 라이프스타일이자 훌륭한 돈벌이의 대상이다. 음식산업은 거대하다. 그리고 그만큼 ‘다이어트 산업’ 역시 어마한 규모로 커가고 있다. 음식은 여성에게 욕망의 대상이자 거세의 대상이다.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자본주의는 다이어트 산업의 무궁무진함을 사랑한다. 다이어트 산업은 해마다 50%의 성장률을 보이며 다이어트 시설, 약품, 패션, 성형 등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에 대한 신뢰를 주면서 과학적 증거도 없는 물품들로 소비를 자극해 이익을 취한다. 이에 질세라 광고는 평균 몸매도 안 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뿌리며 다이어트 욕망에 불을 지핀다.

필요이상의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 외모와 몸매를 여성을 평가하는 필수로 보는 사회. 그러기에 다이어트는 충분히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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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체중보다 25% 덜 나가는 모델과 배우의 이미지로 도배하는 미디어 산업이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의류매장에서 66 사이즈 이상의 여성 옷을 찾기가 힘들다. 대충매체에선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을 인간승리라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성신문은 "다이어트와 바디이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의료 산업, 평균체중보다 25% 덜 나가는 모델과 배우의 이미지로 도배하는 미디어 산업, 그리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이어트 산업" (여성신문 '다이어트에 관한 진실 알려주는 북미의 안티다이어트 캠페인')이라며 날씬한 몸에 대한 압력을 비판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여성들의 건강 위협

사회적 비만의 기준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다이어트는 만족을 모른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마른 몸의 이미지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몸을 사랑하기를 끊임없이 유예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 퉁퉁 부으니까 불쾌해져서 그날 하루를 완전히 망치는 거야. 기분이 너무 안 좋고. 그러니까 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너무 없어지는 거죠. 옷 같은 것도 살이 빠질 때에는 막 입고 다니구, 밖에 나가구 싶고 막 이러다가도 그렇게 갑자기 살이 찌면 내 자신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게 되잖아요. (다이어트의 성정치학(한서설아 지음) 중 사례C에서 발췌)

이렇게 여성의 욕망 자체가 다이어트에 맞춰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살을 빼기 위해서 국토대장정을 간다는 친구의 농담 아닌 농담을 듣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무리한 다이어트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거다.

흔히 주위 여대생들이 운동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살을 빼려 한다고 생각한다. 몸을 '건강'이 아닌 '다이어트의 대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려는 강박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그 스트레스는 거식증과 폭식증과 같은 몸의 거부 현상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현재 시중엔 검증되지도 않은 다이어트 약품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이는 우울증과 골다공증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다이어트의 배후세력을 잡아라

구토를 안 했으면 좋겠구요. 안토하잖아요? 그러면 살이 쪄요. 진짜 쪄요. 아무래도 먹으니까 살이 찌고. 안토했으면 좋겠구, 또 하나의 나의 이런 강박관념 자체가 없도록 살이 빠졌으면 좋겠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예... (같은 책 p.122-123)

확실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날이야말로 힘든 다이어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 아이러니.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는 끝없는 숙제이고 전쟁이다.

그러니까 말인데 요즘 배후세력이란 말이 심심찮게 소비되고 있다. 이참에 다이어트의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는 게 좋겠다. 청소년들을 선동하는 촛불세력의 배후세력을 잡는다 뭐다 할 게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소리 없이 잠식하는 정교, 교묘한 권력들이 아닌가. 주먹질 하듯 노출돼 있는 날씬한 이미지들 앞에서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이 다이어트 하든 안하든 그건 미국산 쇠고기 먹듯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줄자로 몸의 치수 재듯 외모와 몸매로 평가하는 사회의 시선은 어쩌고?

지난해 9월 스페인에선 체질량지수(BMI) 18 미만인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또 프랑스는 지난 4월 거식증유발처벌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거식증적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죽음의 메시지'라며 “여성의 건강과 신체 이미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랐다”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거식증 환자가 4만 명을 넘는 프랑스가 먼저 이거 진짜 심한문제야 라고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도 거식증 환자가 1만 명이라 한다. 잠재적 거식증 환자는 셀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들이다. 프랑스의 예처럼 더 늦기 전에 여성의 몸에 강요되는 문제들을 담론화해야할 때다.

한번쯤 네이버 지식인에 거식증 걸리는 법을 쳐보라. 거식증 걸리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기겁할 질문이 많다. '저도 몸에 해로운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알려주세요. 제발부탁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요...' 라는 한 여학생의 간곡한 부탁.

진짜 무서운 배후세력이란 바로 이런 거다. 왜 우리는 다이어트의 신화에 목숨을 거는가. 욕망의 배치와 작동원리를 곰곰이 따져 볼 때다. 왜. 적어도 나의 자존감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여기'서 나의 몸을 사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