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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의 과거사가 또 다시 판친다 -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21
조회
229

체험학습 허락이 성추행보다 더 나쁜 한국 사회를 고발한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16일 오후,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7명의 교사에게 파면·해임을 최종 통보했다. 그리고 학교 교장들이 17일부터는 학교에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학생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없는 빈 교실에서 쓸쓸히 겨울방학을 맞이해야만 한다.

지난주에 서울시교육청 앞을 두 번 갔었다.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이 ‘일제고사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던 7명의 교사들에게 파면·해임 중징계를 내린 후, 교육청 앞에 철야농성장이 마련되었다. 매서운 겨울 날씨 속에 새벽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천막을 설치할 수 없어 이동용 난로, 은박지 깔개, 무릎 위 침낭이 전부였다. 파면·해임의 찬바람 속에서 관련 교사들은 다시 한 번 겨울의 칼바람과 싸우고 있었다.

7명의 교사 중 2명의 교사를 알고 지냈다. 이 중 한 여교사는 나와 목소리가 비슷해 형, 동생 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일요일, 이 교사의 제자들이 찾아왔다.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한 손에는 직접 제작한 ‘표현의 자유권’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교육청 앞에서 함께 농성장을 지켰다. 얼마 후, 선생님이 서대문역까지 아이들을 바래다주었다.

“오늘 추운데, 와줘서 고마워~”
“...”

아이들이 말을 잘 잇지 못한다. 그리고 슬픈 목소리로 말을 해본다.

“선생님~ 또 올게요~”

여교사는 아이들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서로 침묵의 포옹을 한다.

“부모님 걱정하시고, 날씨도 추우니까 집에 빨리 들어가야 돼~”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서로 손을 흔든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마음이 아팠다.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는 선생님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 파면·해임이 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꿈을 꾸며 살 수 있을까? 이 아이들에게 ‘정의’를 말하는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두려움이 앞선다.

다시 교육청 농성장 바닥에 앉았다.

“OOO쌤~ 안 추워?”
“모자 쓰고 있으니까 안 추워~”

방한용 토끼모자를 쓰고 있는 OOO 선생님이 환하게 웃는다.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처음에는 화를 내셨지.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많이 추우니까 따뜻한 옷 사 입으라고 돈도 주셨어~ 하하하”

오랜만에 엄마가 주신 용돈(?)에 밝게 웃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어제 스무 분이 넘는 학부모님들이 모임을 하셨고, 날 초대했어. 그리고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더라~” 말하는 동안 OOO 교사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계속 이어졌다. 차가운 아스팔트와 매서운 겨울바람의 추위도 잊혀진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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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0월 실시된 초·중학교 '일제고사' 당시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락한
전교조 소속 공립교사 7명에 대해 중징계(3명 파면, 4명 해임)를 결정한 가운데, 지난11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열린 징계 철회 및 공정택 교육감 퇴진 촉구 기자회견에서 파면통보를
받은 정상용 교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7월 선거에서 선거비의 약 80% 가량인 18억여 원을 학원 및 사학 관계자, 급식업자 등에게서 빌리거나 후원받았다. 그러함에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아웅식 수사만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 서울시교육청이 이전에 성추행 및 촌지 교사에게는 3개월 정직 및 감봉이라는 경징계만 내렸는데, 이번 파면·해임과는 형평성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결국 이번 중징계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의 날인 12월 10일에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현 정권 비판에 따른 보복성징계를 내린 암울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었다.

암울한 한국사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민들 잘 살게 해주는 정책이라고 하며 부자 감세·대기업 규제 완화 등의 꼼수정책 구현, 건국60주년 기념 영상에 ‘4.19데모’ 라고 헌법 유린, 일본 우익의 교과서 개악의 논리와 똑같이 근현대사 왜곡·강제 집행, 대운하 준비단계인 4대강 사업 예산 증액 등의 2009년도 예산안 단독 처리, 남북관계 파탄, 언론 통제 등 헤아릴 수 없는 위기이다. 최근에 현대리서치와 경향신문의 설문에 의하면 63%가 민주주의가 후퇴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25%), 정부(22%), 한나라당(14%), 야당(8%) 순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결국 20여 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쌓아왔던 절차적 민주주의는 다시금 후퇴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기관이 저질러왔던 잘못을 밝히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과 보상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올 해 아직 많은 과거사가 해결되지도 못한 채 여러 과거사위원회가 폐지되었고, 이명박 정부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와 위기가 드러났다. 이는 결국 훗날 불편한 진실의 또 다른 과거사를 양산한 것이다. 2008년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내일의 또 다른 과거사로 판을 치고 있다. 몇 년 후, 혹은 몇 십 년 후에 우리는 또 다시 오늘의 어두운 민주주의의 후퇴를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할지 모른다.

지난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과 관련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를 향하여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도덕적 용기와 자기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이제 곧 파면·해임교사들의 소청심사 청구와 행정소송이 진행될 전망이다. 더불어 다가오는 23일에도 학부모, 청소년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교사들이 이를 허락하고자 하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관련 교사들을 중징계한다고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과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았다. 이명박 권위주의 정부의 전교조 교사 파면·해임의 보복성 징계라는 불편한 진실이 훗날 과거사 청산으로 등장하지 않는 판결을 기대해본다. 더 이상 과거사로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미래사가 생겨서는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