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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아니라 ‘CCTV’에 내가 나온다면 -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19
조회
332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전임연구원, 전임 간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과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헌법과 국민에 의해 확인받고 있지 않은 몇 개의 공화국이 존재한다. ‘공화국’이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역설적인 의미에서 많이 붙여 쓰곤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소위 ‘삼성공화국’ ‘부동산공화국’ ‘서울공화국’ ‘강남공화국’ 등이다. 어느 것 하나 공화국의 의미와는 먼 것들이다. 공화국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지만 이들 공화국은 그저 삼성, 부동산, 서울, 강남만이 주인공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대한민국에 그런 공화국이 또 있다. 바로 ‘CCTV공화국’이다. 범죄예방, 도난방지라는 명분을 가지고 태어난 CCTV는 목욕탕, 지하철, 엘리베이터, 사무실, 사업장, 은행, 병원, 상점, 길거리, 교도소, 공공기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기술 또한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쪽으로만 고정되어 있고 사람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화면은 이제 옛말이다. 360도 회전은 기본이고, 줌 기능에 음성녹음까지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떤 감독처럼 CCTV를 활용해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어도 될 정도다.

기술발전과 확대일로를 걷는 CCTV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우려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잇따르자 2007년 「공공기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CCTV 관련 조항을 신설해 공공기관에서의 CCTV 운영에 제한을 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동법 제4조의2 제1항에서는 CCTV의 설치를 “범죄예방 및 교통단속 등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고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사실 ‘공익’이라는 명분만 있으면 설치에 아무런 제약도 없다. 또한 제2항에서는 “설치목적 범위를 넘어 카메라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어서는 아니 되며, 녹음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회전과 줌 기능은 물론이고 음성녹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CCTV 설치 운영을 법으로 제한받고 있는 공공기관도 이런 상황인데, 관련 법률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민간분야에서의 오남용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대한민국은 ‘CCTV공화국’

문제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 CCTV가 정말이지 우후죽순처럼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CCTV가 안전과 보안에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이제 CCTV는 그야말로 프라이버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터와 공원까지 진출하려고 한다. 이는 경찰청이 아동과 부녀자 실종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놀이터에서도 옷매무새를 매만져야 하고, 공원에서의 낭만적 연애도 이제는 망설여질 것이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과학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2010년까지 초·중·고 70%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고스란히 대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만 예를 들어도 이미 기숙사 입구는 수위아저씨 대신 CCTV에게 안전을 맡긴 상태다. 도서관 또한 도난방지를 위한 CCTV 15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당국은 최근 이를 66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생활 침해가 잠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도서관 자치위원회는 “찬성 의견이 약 97%”에 이른다는 근거를 제시해 당위성을 제공했다. 그동안 대학생들이 지문인식, 스마트카드 학생증, 대학 게시판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노출에 대해 별다른 감수성을 보이지 않아 97%라는 찬성률은 새삼 놀랍지도 않다. 다만 CCTV를 학문의 전당인 도서관까지 끌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도난의 문제가 큰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CCTV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상력의 빈곤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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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CCTV 관제센터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CCTV는 사적인 영역을 무분별하게 감시하고 이를 화상이라는 형태의 기록으로 남기는 그 자체도 인권침해이지만, 또한 목적과는 다른 오남용을 통해 적극적 인권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이 더 문제다. 그리고 오남용의 내용 또한 설치목적에서 범죄예방, 교통단속, 도난방지 등을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즉, 불특정 다수를 지켜야 할 CCTV가 불특정 다수 또는 특정한 소수를 감시하는 역할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교통상황 체크나 주차단속용 CCTV가 ‘집회채증용’으로 활용되고, 도난방지를 위한다는 목욕탕 CCTV가 ‘음란물 배포’의 주범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디에선가 찍힌 내 모습이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인기게시물로 떠돌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겠다는 CCTV는 학생들의 숨통을 조일 것이고, 도난을 방지하겠다는 도서관 CCTV는 또 다른 음란물 또는 개그물로 떠돌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뿐만 아니라 CCTV는 절대로 예방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사후적 처리에 조금 도움이 될 뿐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이 CCTV 때문에 망설일까.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 마스크 등 훌륭한 수단이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전혀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투여되는 예산의 크기와 다수 대중의 인권을 침해하고 얻는 효과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만족할만한 수준인지 의심스럽다.
CCTV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CCTV는 이제 보편의 언어가 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오남용 대상이 바로 자신이 될 수 있음에도 별 문제의식을 갖지도 않는다. 우리는 나오고 싶은 텔레비전과는 달리 출연하지 않고는 하루를 넘길 수 없는 ‘CCTV공화국’에 살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안전’을 담보로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첨단기술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이 아니던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잘만 활용하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부러울 이유가 없다. ‘실용’을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에게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을 조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