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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아저씨 꼭 일어나셔야 돼요! -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34
조회
26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끝내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고 말았다. ‘뚝심의 정치인’ 노무현의 리더쉽은 다시 한번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지층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권의 “능력부족”과 “좌파 논리” 때문에 ‘실패한 정권’이라고 규정하던 주류 보수 언론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노무현을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우며 용비어천가를 쏟아내고 있다. 한미FTA가 새마을 운동, 서울 올림픽과 함께 한국의 “국가 수준을 끌어 올린” “건국 이후 최대의 치적” 가운데 하나라나.

하지만 한편에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수많은 민초들의 통곡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4월 1일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협상이 열리던 하이야트 호텔 앞에서 택시 노동자 허세욱(54)씨가 온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는 온몸이 장작처럼 활활 타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한미 FTA 반대 구호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무정한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져 구호를 외치던 목구멍까지 태우고 그의 뇌 속에서 의식을 빼앗아 갔다. 숯덩이로 변한 그의 육신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그 언덕길엔 달랑 동전 몇 개 떨어져 있었다.

허세욱씨는 노동운동, 시민운동의 지도적인 인사도 아니었고, 언변이 출중한 선동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빠듯한 월급을 쪼개 여러 시민단체 회원이 되었고 민주노동당 평당원으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집회 현장을 지켰다.

그와 절친했던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반전 집회, 노동자 집회, 촛불시위... 각종 시국 집회 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3월 30일, 그가 분신을 결행하기 이틀 전 나는 광화문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시한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알고 보니 이것도 쇼였지만) 광화문 열린 시민공원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하던 범국본 농성단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청운동 동사무소 앞으로 이동하려 하자 수천 명의 전경들이 달려 나와 곳곳을 에워 쌓다. 처음에는 공원 입구를 봉쇄하더니 인도와 지하도까지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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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저녁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던 시위대가 '한미 FTA 중단'을 외치며 서울 을지로, 안국동을 거쳐 청와대로 진출하려했으나 광화문 앞에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각종 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허세욱 아저씨

삼삼오오 이동하던 대열이 광화문 일대 지하도를 틀어막은 전경들 때문에 30분 넘게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히게 되었다. 전경들은 몸자보를 두른 농성단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의 통행까지도 차단하고 있었다. 경찰의 막가파식 인권 침해에 일반 시민들까지 나서서 목이 터져라 항의해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경찰은 주권자인 평범한 국민들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상사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그들은 우리들의 인권을 감금했다. 허세욱씨는 나와 함께 그곳에 갇혀 있었다. 열이 받쳤다. 그들 말대로 “불법 집회”를 한 것도 아닌데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인도를 지나가겠다는 건데 그것까지 가로막다니...

감금상태에서 풀려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숱한 항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무전기를 든 채 느물느물 웃고만 있던 전경부대 중대장 앞으로 달려갔다. 그에게 소속이 어디냐고 물었고, 경찰이 이렇게 불법을 저질러도 되냐고 따졌다. 그는 여전히 이죽거리며 “서울 경찰”이라고만 답변했다. 옆에 있던 허세욱씨는 나보다 더 화가 나 있었다.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경찰에게 달려들었고 주변 사람들이 간신히 뜯어 말렸다. 우리는 결국 몸자보를 벗고 일반 시민처럼 위장(?)하고 나서야 전경들 없는 골목길을 따라 청운동 사무소 앞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허세욱 이름 석자를 알지 못했다. 그때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절벽 앞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자유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다수 민중의 생존권과 자유를 마음대로 농단하고 있는 파렴치한 독재권력 앞에 순간 떠밀릴 수밖에 없는 저항하는 소수의 정당한 울분.

어떤 사람이 택시노동자가 한미FTA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 분신까지 하느냐며 악플을 달았다고 한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갖추지 않은 그가 밉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죽음의 방법으로서 가장 처절한 자살을 선택해야 했다면 그가 왜 그런 길을 선택했는지, 결단의 순간에 그가 던졌을 실존적 물음은 무엇이었는지 반추해 보는 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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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타결 된 지난 2일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시민들이
허세욱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한미 FTA 원천무효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더 미운 것은 진실을 호도한 채 엄청난 광고와 물량 공세로 대중에게 한미 FTA가 ‘대한민국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라며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있는 노무현 정권과 보수 언론이다. 그들의 입에서 잠시 눈을 뗀 다음 냉철한 이성으로 협상 과정과 내용을 들여다보라! 그들이 말하는 “경제 체질 개선”이 다 무엇인가? 한국의 경제와 사회제도 전반을 신자유주의 첨단국가인 미국을 본 따(글로벌 스탠다드)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경제위기 과정에서 보았듯이 기업 구조조정의 고통은 노동자, 서민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한국 경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지 않기 위해 세계 최대 시장 미국과 서둘러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겨가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진짜 “샌드위치”가 되는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서로 피 튀기며 경쟁해야 하는 기업체의 노동자들이다. 저들은 그 고통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있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논리다. 미제 골프채, 미제 승용차 값이 조금 싸진다 해도 한 달 백만 원 안팎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것을 구입할 능력도 없고 사용할 일도 없다. 치솟을 약값 때문에 몸이 아파도 치료받지 못할 일이 더 걱정이다. 광우병 의심나는 쇠고기, 몸에 해로운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비싼 국산 농산물을 대신해서 먹게 되는 게 혜택일 수 있을까? 한미 FTA를 밀어붙인 정부 관료와 기업주들은 이런 음식물은 먹지 않을 것이다.
허세욱 아저씨, 살아만 계셔 주십시오!

허세욱씨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가족도 없이 16년째 택시 운전을 하며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의 삶은 나의 형, 삼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더욱 착잡하고 분통이 터진다. 한미 FTA가 파괴하는 것은 평범한 우리 모두의 삶인데 우리가 세운 대통령과 국회는 우리와 한마디 상의도 없었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공장을 멈추고, 생업을 멈추고 거리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노무현은 한미FTA 체결로 전경련, 경총 등 대한민국 대주주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혹자의 말대로 그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노동자, 민중에게 영웅 따위는 필요 없다. 허세욱씨 처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새롭게 투쟁 대열에 합류하고 묵묵히 실천할 때만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백사람의 노무현 보다는 한 사람의 허세욱이 더욱 소중하다. 허세욱 아저씨, 당신이 그립습니다. 제발 살아만 계셔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