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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께 드리는 편지 -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33
조회
289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세상의 흐름을 읽는 열린 리더십”, “상생의 메신저”, “‘투쟁보다 일자리’라는 한마디로 수백만 구직자와 가족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바로 위원장님에게 쏟아지는 보수언론의 찬사입니다. 위원장님이 이처럼 재계와 언론으로부터 한국의 어떤 노동운동 지도자도 들을 수 없었던 상찬을 받는 데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9월 11일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노사관계 로드맵”을 처리한 후 위원장님의 파격적인 행보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일본, 미국, 유럽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셨고 최근에는 세계적 신용평가업체 무디스 대표단을 불러 그들의 “송곳”같은 시험문제에 답하시느라 “진땀”깨나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원장님의 이런 노력은 아마 어떤 외교통상부 관료나 대기업체 CEO 못지않은 활약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는 아둔해서 그런지 위원장님이 보여주신 “파격적인” 행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가 더 궁금했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단순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인데 위원장님이 혹 현장 감각을 잃어버리신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위원장님은 국가 이미지 개선으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 기업 수익이 커지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권익도 향상 될 거라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경제성장 도미노 이론’을 그대로 재생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수도 없이 강조돼왔고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그런 과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도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위원장님은 금융노조에 계셨기 때문에 론스타 같은 “먹튀 자본”의 폐해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위원장님께서 유치해야 한다고 보는 해외자본도 이런 투기성 자본이 아니라 건실한 산업투자 자본을 의미하시겠지만 그 둘은 칼같이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한국노총을 방문한 무디스 대표단은 위원장님에게 한국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경직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형용모순에 가까운 말을 하고 갔을까요? 그들의 관심사가 바로 그곳, 여전히 강력한 노조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대기업·공공부문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위원장님은 이 질문에 노조 조직률 10%와 영세 중소노동자를 예로 들며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답변하셨는데 이것은 그들에게는 동문서답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어쨌든 위원장님의 노력 덕분에 건실한 외국인 투자가 많이 이루어진다 해도 노동자들의 권익은 그다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해고된 채 300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하이닉스·메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 한라·라파즈 사내하청인 우진산업 노동자의 사례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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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을 방문한 무디스 대표단과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들이 해외에서는 어떻게 했을지 모르나 한국에 와서는 국내 기업들과 똑같이 정규직 이 아닌 비정규직들을 많이 고용하고,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대량해고 시켰습니다. 노동부,노동위원회가 나서서 ‘부당해고’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위원장님은 너는 “전투적 조합주의”신봉자지, 민주노총 똘마니지? 라고 추궁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지도 않고 감옥에 있는 구속노동자들을 옥바라지 하는 작은 인권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는 민주노총 , 한국노총 조합원, 이주노동자, 한국노동자 가리지 않고 노동운동, 정치 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노동자들이라면 조직과 정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글이 조금 길어지고 있지만 정말로 제가 진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부터입니다.

영등포구치소에는 지난 9월 19일 한국노총 사무실로 위원장님을 방문했다가 구속된 8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중 5명은 한국노총 조합원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9월 11일 위원장님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정부와 재계와 손을 잡고 “노사관계 로드맵”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켰을 때 누구보다 분노했던 노동자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대부분 버스, 택시 등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어용노조”를 혁파해 보려다 미운털이 박혀 해고된 노동자들입니다. 해고로 인해 생계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민주노조”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풍찬노숙하며 복직 투쟁을 전개해왔습니다. 위원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노사관계 로드맵”에 명시된 “복수노조 3년유예”, “해고자 금전보상제” 규정은 바로 이들 해고노동자들에게 “핵폭탄”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9월 11일 위원장님은 합의안에 서명한 후 당당히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을 걸어 나오며 항의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향해 “야합 같은 거 안한다.”며 거칠게 맞대응을 하셨습니다. 이렇게도 당당했던 위원장님의 태도를 보면서 위원장님과 한국노총 간부들의 확고한 소신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사안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조합원, 더 나아가 1,500만 노동자들의 이해가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 중에서도 위원장님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구속된 해고노동자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노총이 민주적인 노동조합이라면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열어놓고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원장님과 한국노총 간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9월 19일 해고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시도하려 하자, 곧장 경찰을 불렀고 해머와 야구방망이를 동원해서 벽을 부수고 노동자들을 7층 난간으로 내몰았습니다.

무려 네 번이나 구속된 경험이 있는 강성철씨는 “개인적으로는 악질 자본에 의해서 몇 번의 구속 경험이 있긴 했어도 이렇게 슬프고 원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노동조합 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1심 판사들은 8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조직적, 계획적, 지능적”으로 쇠파이프와 신나통을 가지고 한국노총 건물을 방화하려 했다며 1년에서 1년6월까지 실형을 선고해 놓고 있습니다. 두명의 노동자는 집행유예 기간이기 때문에 항소시에서 실형이 확정되면 곱징역을 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구속된 노동자들은 편지에서 “조합원의 피눈물로 지은 사무실 벽을 해머와 야구방망이 등으로 부수고 들어오는” 경찰과 한국노총 간부들을 보면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노동자들이 과연 판사의 말처럼 “계획적, 조직적, 지능적”으로 방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당시 농성장은 7층이었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불을 부친다면 그들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위원장님은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재계를 향해 “법률에만 기대지 말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실천해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많이 대립되는 사용자들에게 이토록 자애로우신 위원장님께서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활동했던 옛 동지들은 법에 따라 “응징”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과 한국노총이 나아가고 있는 길이 진정 우리 사회 다수인 노동자, 서민들을 위한 길이라면 노선이 다른 노동자들일지라도 포용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노동운동 내부의 의견 충돌에서 빚어진 사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국가 권력에게 내맡겨 일단의 노동자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도록 강요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의 결단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