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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탐욕스러운가? -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31
조회
245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새해 벽두부터 언론에 연속으로 얻어맞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다. 현대자동차노조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은 언론의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조그만 사실을 부풀리는 건 기본이고 없던 사실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일치단결해서 ‘탐욕의 화신’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의 주장만 듣다보면 지난 IMF 경제 위기를 불러 온 책임도 현대자동차노조에 있고 앞으로 불거질 위기 또한 그들의 책임인 것처럼 들린다.
1월 3일 시무식 무산 사태만 해도 원인은 사측이 관례적으로 지급해 오던 150%의 상여금 가운데 50%를 떼먹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세간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엄청난 고임금을 받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들만큼 일을 많이 하는 노동자들도 없을 것이다. 자동차 업계가 몇 년간 호황을 유지해 온 덕에 잔업, 휴일 특근이 연중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 요량으로 쉬지 않고 일하다보니 평균 주 50시간을 근무하고 있는 처지다. 그들은 일한만큼 더 받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상여금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현대자동차 경영진은 내버려 둔 채 이번 사태의 책임을 온통 현대자동차노조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이런 파상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가 단지 ‘상여금 50%를 더 줄 것이냐, 안 줄 것이냐’에 한정되지 않는, 전체 노동계와 재계 사이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쟁점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자동차노조가 민주노총이 주도한 정치파업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34시간가량의 생산 손실이 빚어졌고 이 때문에 생산목표를 98%밖에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삭감해서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노조와 회사 측 사이에는 단체협약 내용을 둘러싼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그동안 관례적으로 연말 150%의 상여금을 생산목표에 관계없이 받아왔던 것은 명백하며 지난 해 단체협상 과정에서 윤여철 사장 또한 이를 인정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지난 해 현대자동차는 1조 2천억 가까운 순이익을 남겼다.
더욱 교활하게도 현대자동차와 언론은 현대자동차노조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개악법안, 한·미 FTA 반대 파업 등 정치파업에 ‘개근’한 것을 계속 문제 삼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이러한 공세를 펼치는 목적은 상여금 삭감이라는 직접적 손실을 입을 조합원들에게 ‘노동자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파업해서는 안 되고 잦은 파업은 나에게 불리할 뿐’이라는 생각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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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올라온 현대자동차 노조원과 금속산업노련 소속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몽구 회장이 노사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동안 정부와 언론은 현대자동차노조를 비롯한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를 끊임없이 비난해 왔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노조가 참여했던 정치파업이야말로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는 비정규직 개악법안, 한·미 FTA를 좌절시키기 위한 사회적 연대였다. 비록 파업이 전국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전개되지 못해 비정규직 개악안 등을 막아내지 못했지만 현대차 노동자들은 1인당 30만 원 정도의 임금 손실을 무릅쓰면서도 이 같은 정치 파업에 참여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상여금 50%(조합원 1인당 100여만 원)를 아까와 하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어떠했는가? 경영권을 아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회사공금 수천억을 횡령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 증여 행각을 벌이다가 발각이 되어 구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처벌에 의해 두 세달 만에 풀려났고 곧 사면될 거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쓴 변호사 비용만도 4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물 쓰 듯 써대는 돈은 바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을 쥐어짜서 얻은 것들이다.
특히나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그룹 산하에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거 채워지면서 그 수가 1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밖에 안되고 생산라인이 폐쇄되면 언제든지 해고되는 등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다. 심지어 근로기준법에 주어진 연, 월차 휴가마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 전,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실형을 살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한 분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와 함께 상고이유서를 보내왔다. 지난해 7월 13일 현대자동차로부터 법원의 “출입금지가처분명령을 위반”했다며 고소를 당해 1심에서 실형 8월을 선고받았고 11월 10일 항소심마저 기각돼 대전교도소에서 꼼짝없이 징역을 살고 있는 전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부지회장 권수정씨였다. 그녀를 포함해 해고자 신분인 세 명의 전직 비정규직 간부가 모두 같은 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건으로 실형을 살아야 하는지 의아스럽기만 했는데 읽다보니 더욱 분노가 치민다.

2003년 3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는 의장라인 하청 노동자였던 송성훈 씨가 월차를 쓰겠다고 했다가 관리자에게 칼로 아킬레스건을 절단당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적어도 근로기준법에도 보장된 월차를 쓰다가 칼에 찔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금속노조 산하)를 만들었고 그녀는 부지회장이 되었다.
2004년 초 사내하청지회는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노동부에 고소하였고, 2004년 10월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공장이 ‘파견근로’가 허용되지 않는 업종임에도 1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고용해왔다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판정해도 현대자동차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도 그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오히려 회사는 노조 간부들을 대량해고 하고 법원에 출입금지 가처분을 신 청해서 공장 출입마저 가로막았다.
그러던 중 2005년 9월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었던 류기혁씨가 사측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아산 비정규직지회는 연대파업에 돌입했고, 9월 7일 공장안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그 때 회사는 백주 대낮에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권수정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을 납치해서 봉고차에 태우고 30여 분이 넘게 돌아다니다가 외딴 산골 논바닥에 유기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와 용역깡패들을 모두 고소했지만 검찰은 “출입금지 가처분 명령을 받은 자가 회사 안에서 업무방해 하는 것이 인정되므로 납치해서 내다버린 회사의 폭력 또한 이유가 이해된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회사로부터 고소·고발당한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은 줄줄이 경찰에 소환되어 ‘업무방해’,‘공무상 표시무효’등의 혐의로 잇달아 구속되고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녀만 해도 세 차례나 구속을 당해야 했고 이번엔 끝내 실형을 살게 되었다.
검찰은 최근 현대자동차가 저지른 “불법파견”에 대해 기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에 고용된 1만 여명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바로 세계 시장에서 현대 자동차가 가지는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요, 기업 대물림을 이루는데 필요한 불법 자금의 돈줄이 되어 왔다. 때문에 현대자동차로서는 불법으로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법도 정부도 그들을 강제하지 못한다. 이런 현대자동차가 이제는 정규직 노조의 정치파업을 문제 삼으면서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상여금마저 깎으려 하고 있으니 만일 여기에 노조가 굴복하게 된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현대자동차 계열사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지금보다 더욱 후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현대자동차노조의 이번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언론은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라! 기업 위기의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돌려지고 기업 성장의 과실은 “배부른” 기업주들이 몽땅 챙겨가는 현실에서 ‘희생과 양보의 미덕’을 실천해야 할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