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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대한민국, ‘살인의 추억’ -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30
조회
292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감옥에 있는 조선남 시인이 우리 단체로 스무 편 가량의 시를 보내왔다. 침침한 불빛아래서 볼펜으로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정성스런 원고, 시인의 피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번진 이 의지의 덩어리를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여기에 소개하기로 하였다.

조선남은 누구인가. 본명은 조기현. 건설 일용직 목수로 전국의 건설현장을 오가며 일했고

1989년부터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시 쓰기를 시작했다. 제1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고 『희망수첩』 등 몇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다. 그의 시에는 땀에 찌든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있고, 노동자·민중이 바라는 ‘해방세상’의 밑그림이 새겨져 있다.

대구경북건설노조 위원장이었던 그는 지난 6월 “불법파업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구속 돼 1심에서 3년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선고공판이 있는 날 새벽 4시 일어나 가슴을 친다/ 나의 미욱한 싸움은 수많은 동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평생 일 밖에 몰랐던 동지들이/ 폭도로 몰려 줄줄이 잡혀와 중형을 선고 받았고/ 또 오늘 저들의 법정에 죄인이 되어 선다” (『우리가 다음에는』)

그는 “밤새 가슴을 쮜어 뜯으며”“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미친듯이” 부른다고 했다. (『미친듯이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신혼여행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마석 모란공원을 둘러보았고/ 초겨울 전국노동자 대회 전야제에 첫아이 핏덩이를 엎고 따라나서던 아내”(『아내의 사랑』중에서)도 있고 “가족들도 생각해야지....”하며 “안타까운 눈빛”“간절함”으로 “가슴을 찌르는 비수”같은 “처가 식구들”도 있다.(『천형의 길』중에서)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손톱이 다 닳도록” 비좁은 독거방 벽에 “그리움의 피”로 새기는 이름은 동지들이다.(『벽』중에서)

“모래 바닥에 혀를 묻고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노가다 밥 먹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맹세를 하면서도/ 죽지 못해 다시 새벽에 현장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절망보다 무거웠던 생의 피울음으로 살아”(『형산강 다리,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중에서)온 건설일용직 노동자들.

그들은 “차별없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미친듯이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더니/ 우리 가슴팎에 대못을 꽝꽝” 박았다.(『비둘기』중에서)

그러더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포스코 자본의 70%가 넘는 외국인 주주를 위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라”며 “살인명령”을 내렸다.

“전국에서 불러들인 수백,수천의 전투경찰들은/ 집회를 하고 있는 일당쟁이 건설노동자들을 포위했다”(『살인명령』중에서)

그들은 “함정을 파고, 덫을 놓고, 언론까지 대기 시켜놓고/ 토끼몰이를 하듯, 해산명령도 없이 굶주린 이리떼처럼 덤벼들었다”(『우리가 다음에는』에서)

7월 16일. 하중근 열사는 경찰의 “방패에 찍혀, 뒤통수를 내리치는 소화기에 맞아/ 두개골이 깨어지고/ 진압봉과 군화발에 밟혀/ 갈비뼈가 부러졌다”(『살인명령』중에서)

시인은 이 땅의 깨어 있는 모든 양심들을 향해 부르짖는다.

“살해당한 하중근 동지의 넋은 끝내 형산강 다리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살인자도, 살인교사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나지 않은 부상당한 동지들은 다리를 절며 병원을 오가고, 다친 상처보다/ 피가 솟구치는 분노를 삭일 수 없는 먹먹한 가슴이 더욱 아픕니다/ 세상의 밝은 빛 한번 보지 못한/ 우리 아가의 영혼은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 이대로 끝나는가?/ 참혹한 투쟁의 상처는 아직 피가 흐르는데/ 무장한 경비대에 가로막혀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출근을 저지당해 일자리를 빼앗긴 동지들/ 노동조합 탈퇴를 조건으로 취업하라는/ 굴욕과 모멸 속에 얼마나 더 서럽게 울어야 하는가/ 밤마다 포스코 높은 굴뚝에 불기둥이 솟는데/ 끌려간 동지들은 쇠창살을 부여잡고/ 이 밤 피울음을 토해내고 있는가/ 연락이 끊긴 애비가 구속된 줄도 모르고/ 울면서 애비를 찾는 착한 딸 아이의/ 서러운 흐느낌이 가슴을 저려오는데/ 우리의 투쟁은 여기서 끝났는가/ 동지여!”(『형산강 다리,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중에서)

다음은 시인의 결론이다.

“그날/ 아! / 그날의 함성과 만세소리/ 목이 찢어져라 부를 동지의 이름 기억하며/ 오늘의 모멸과 매질을 견뎌내자/ 감옥의 무거운 철문에 동지의 이름을 새겨 넣듯 노동자의 가슴에 해방의 이름을 새겨 넣자/ 형산강 다리/ 건설노동자의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 오늘을 잊지 말자!/ 동지여!”(『형산강 다리,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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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고 하중근 열사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출처 - 프레시안



국가인권위원회는 11월 27일, 하중근 열사가 사망한 지 119일 만에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지난 2006.7.16 포항 형산로터리 노조 집회와 관련하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제출한 진정사건을 조사한 결과 경찰의 금지통고 남용, 과잉진압 행위 등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하중근 씨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수사의뢰, 과잉진압 등에 대해서는 현장지휘관인 포항남부경찰서장을 징계, 서울지방경찰청 특수기동대장을 경고 조치할 것 등을 권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회주의적인 국가인권위원회 관료들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비겁한 결정문이었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당시 집회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은 인정되나 이것 때문에 하중근 열사가 사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경찰 현장 책임자에게만 과잉진압 책임을 물어 적당히 징계할 것을 권고하며 사망원인은 검찰이 알아서 잘 밝혀 주기를...’ 과연 검찰이 하중근 열사를 죽인 살인범을 잡아낼 수 있을까?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포항건설노조 구속 노동자 한 분이 11월 13일, 검찰의 항소이유서 사본과 함께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9월 25일 대구지법 포항지원(1심)은 포스코 점거농성으로 구속된 노동자 58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하고, 그 중 27명에게는 1년 6월에서 3년 6월까지 실형을 선고했다. 노무현 정권 들어 최대의 ‘옥사’였고 가장 가혹한 실형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지경 포항건설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17명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내린 판결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삶의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건 파업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쇳가루 한번 뒤짚어 쓰지 않고도 한해 6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챙겨가는 포스코의 대주주들을 위해서 건설노조의 파업을 “포항지역 최대의 불법집단 행동”으로 둔갑시켜 놓았고, 조합원들을 “소요죄에 상당하는 사회적 위험을 야기 시킨 자들”이라고 비약시키며, “집단 흉기 등 감금”“집단 흉기 등 폭행” 등 다섯가지나 되는 ‘폭처법’ 죄목으로 단단히 엮고 있다. 검찰은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쟁취를 위해 법질서를 파괴”했다며 “법의 준엄한 심판”을 요구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2만 5천명이나 되는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포스코의 불법대체인력 투입을 도왔고, 평화스런 집회 시위현장을 폭력으로 유린하며 하중근 열사와 임산부의 뱃속에 든 태아까지 살해했다. 경찰, 지역 언론과 포항시장, 지역 유지들은 합세해서 건설노조를 고립시키고 경찰폭력을 부추겼다.

진정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파괴한 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을 단죄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하중근 열사가 생겨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중근 사망사건”을 또 다른 ‘살인의 추억’으로 남겨놓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