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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홈리스들의 자립 지원을 위해 필요한 질문(전예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1-17 10:18
조회
212

전예원 /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올해로 스물두 번째 해를 맞은 이번 추모제에는 지난해 집 없이 죽음을 맞은 432명을 기리기 위한 인파들이 몰렸다.



출처 - 저자


432명의 이름이 적힌 천막 뒤로, 화려한 빛을 내는 고층의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건물 상단에 표식된 문구가 똑똑히 기억난다. “We work”. “우리는 일한다”고 말하고 있는 문장에 괴리감을 느꼈다. 추모제가 이루어지는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 탓이다.


 

“일하다”는 동사와 “홈리스”를 나란히 두었을 때 느낀 괴리감이 어디에 기인했는가를 따져보니, 그 답은 홈리스를 규정짓는 무의식에 있었다. ‘홈리스 = 일하지 않는 사람’ 으로 도식화하는 오랜 사회적 편견과 정책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홈리스는 어떻게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노숙인을 복지서비스의 대상으로 삼는 노숙인복지법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대한 법률)이 제정된 2011년 이전까지, 홈리스는 도시 안전과 미관을 해치는 ‘부랑인’으로 비쳐졌다. 도시에서 거소를 갖는데 ‘실패’한 7-80년대의 부랑인들은 불심검문을 당하거나 감호시설로 보내지는 등 형벌화 조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부는 적정 주거지가 부재한 원인을 개인의 무능에서 찾았고, 그들을 관리와 규율의 대상으로 고정시켰다. 홈리스를 대하는 정책들이 철저히 그들을 ‘관리하는’ 주체, 즉 정부의 시각에 기반한 것이다.


 

노숙인 복지법 역시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대한 법률’은 그 명칭이 말하듯 ‘자립지원’에 강조점을 둔 법률이다. 이 정책은 일차적으로 홈리스들을 시설로 수용한다. 시설을 벗어나 주거공간을 갖기 위해서는 단계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정기적으로 노동능력과 자립의지를 평가받고 경제활동 실적을 증명해야 한다. 홈리스들의 ‘자립지원’은 그들을 ‘일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문제적인 까닭은 홈리스에게 사실상 두 가지의 선택지- ‘시설로 수용될 것인가?’와 ‘경제활동에 참여할 것인가’- 만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일할 수 없고, 동시에 시설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 이들의 존재는 고려되지 않는다. 탈시설 논의가 본격화 됨에 따라 이러한 상황에 문제 제기를 하는 움직임도 있으나, 정책은 여전히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여 홈리스들이 어떤 이유로 거리에 놓였는지를 묻지 않는다. 생존에 필수적인 ‘집’을 담보로 하여 ‘일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정책은 홈리스를 집과 같은 제반조건이 갖춰지지 않고도 언제든지 일할 수 있는 존재로 전제한다. 자립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홈리스에 대한 혐오적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홈리스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은 “어떤 이들을 집에 살게 할 것인가”가 아닌, “이들을 어떻게 집에 살게 할 것인가”이다. 전자의 질문이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승인하는 정부의 시각을 대변한다면, 후자의 질문은 보다 홈리스의 시각을 아우르는 질문이다. 안정적인 ‘집에서 산다는 것’을 체감할 수 없는 이들에게, 바로 그 집을 살 것을 조건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하는 것을 ‘자립을 지원’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근로를 통한 경제활동을 조건으로 주거를 제공할 것이 아닌, 경제활동과 근로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한 제반조건으로서 주거가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거 우선 원칙 (Housing first)은 주거를 먼저 지원하고, 자활을 돕는 방식을 제안한다. ‘선자립 후주거’의 패러다임을 ‘선주거 후자립’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OECD에서도 이러한 주거우선의 원칙이 수용가능한 방식임을 천명하고 있으며, 이 원칙이 가장 먼저 제시된 미국에서는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홈리스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많은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목적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는가. 이 방식에 홈리스를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짓는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하여 운영되는 정책들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조건들에 대한 얼마만큼의 고민을 동반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