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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주거안정’이라는 질문(전예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2-01 11:27
조회
288

전예원 / 회원 칼럼니스트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 살던 집은 볕이 들지 않는 반 지하로, 벽지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베란다가 없어 방안에 빨래를 널면 방안 가득 습한 기운이 들어 섬유유연제로 가려지지 않는 꿉꿉한 냄새가 났다. 같은 자습실을 쓰던 학생들에게 옷에서 나는 냄새를 지적받고 자습 공간을 옮길 때, 볕이 잘 드는 집에서 사는 일이 부러운 일임을 알았다. 서울에 살게 된 이상 볕이 잘 드는 집을 구하는 일이 멀고도 요원한 것이라는 사실도.


 

<출처 - 국민일보>


 

사람에게 있어 ‘집’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 모두는 ‘주거 안정’을 요구하지만, ‘주거 안정’이 의미하는 바는 제각기 다르다. 상경한 이후 내게 ‘집’을 갖는다는 것은 가능한 임대료에서 가장 그럴듯한 조건을 갖춘 것을 찾는 것, 즉, 임대의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재개발 소식에 쫓겨나듯 이사 나가거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고, 임대료 인상을 염려하여 갱신일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대체로 ‘그럴듯한’ 집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곰팡이가 슨 벽이나, 녹물이 흐르는 수도 같은 것은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렸다. ‘내 집 마련’이 먼일처럼 느껴지는 임차인으로서 집을 갖는다는 것, 바꿔 말해 ‘주거안정’의 의미는 적절한 임대료와 보증금 내에서 안심할 수 있을 만큼의 임대기간을 보장받는 것으로 생각되곤 했다. ‘안정적인 임대 상황’을 ‘주거안정’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임대가 보장되는 것만으로 볕이 들지 않고 녹물이 흐르는 집에 사는 것을 안정된 주거상황이라 볼 수 있을까. 높은 임대료를 피해 반지하나 옥탑으로 가거나, 신식 수도관이나 자동화된 소방시설들을 포기하는 것은 다른 방향에서 주거 안정을 해친다. 예기치 않은 폭염이나 폭우, 그 밖의 재난이 일어났을 때, 제반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는 집에 사는 것이 재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집에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떤 비용과 방식으로 안정적인 거소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거 안정’이란 안정적인 거소를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환경을 갖춘 집에 살 권리를 폭넓게 아우르는 개념이다. UN 해비타트는 주거권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보장을 넘어서, 안전하고 평온하며 인간으로서 존엄이 보장되는 공간의 보장’으로 정의하며, 우리나라 주택법에서도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제3조 1호)을 정부의 의무로 규정한다.


 

그러나 ‘주거안정’에 접근하는 정부의 태도는 ‘내집 마련’에 방점을 두어, 주거 공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지난 8월 정부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통해 ‘주거불안’에 대한 진단으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해온 자의 상실감 확산을 들었다. ‘주거 안정’을 패러다임으로 내세우면서도 공공임대주택 분야에 투입되는 예산 5조 7천억을 삭감하고 공공임대주택 목표 물량을 17만 채에서 10만 5천 채로 줄였다. 이에 반대하는 일부 여당인사들은 지난 달 22일 공공임대주택 예산삭감 저지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 공공임대주택의 예산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내 집 마련’과 ‘임대주택의 물량 확보’는 주거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방식들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하나, 이 과정에는 ‘어떤 집에 살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동반되어야 한다. ‘주거 안정’의 함의가 ‘집을 공급하는’ 양적 측면에 그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위험한 까닭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집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야가 촉각을 세우는 ‘주거안정’의 의미는 얼마만큼의 질문들을 동반하고 있을까.


 

‘주거 안정’이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재개발 소식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의 밤이나, 샤워기의 녹물 필터를 갈아 끼거나 내벽에 스민 곰팡이를 닦아내는 사람의 일상을. 지하에는 물이 들어차고 옥탑에는 폭염이 들이닥치는 사람의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