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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 새벽의 당신께 <두 개의 문>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김은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3:32
조회
301

김은성/ 청년 칼럼니스트



우리는 그 전갈을 동시에 들었습니다.
“용산에서 여섯 명이 죽었답니다.”
이 신새벽부터 누가 누구를 죽인 것일까. 우리는 동시에 궁금해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이리저리 뒤져 보았지만 세상은 말끔하고 고요했습니다. 물을 곳 없어 황망한 나와 달리, 당신은 물을 곳이 많았나 봅니다. 이내, 여러 사람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지지직, 특공대 여섯.”
“지지직, 시위대 여섯.”
“지지직, 유언비어랍니다.”

그 시각 용산 주변을 달리고 있던 택시기사들은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자처럼 흥분해 있었습니다. 농성자와 특공대의 죽음이 한 데 뒤섞여 ‘어쨌든 여섯 명’이 되었고요. 누군가의 점잖은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거, 아직 자세히 모른다네요. 우리 기사님들, 함부로 욕 좀 하지 맙시다.”
한참을 조용하던 당신은 전달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호기롭게 심판을 내려 주었습니다.
“개새끼들, 쌩난리를 치더니 기어코 경찰을 죽였구만!”
침묵 속에서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거스름돈을 건네던 당신은 혼잣말인 듯 당부인 듯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위꾼을 조심해야 해.”

영화 <두 개의 문>을 보고 나오는 길, 황폐해진 마음을 추스리며 그 새벽을 떠올렸습니다. 캄캄한 극장에서 그보다 더욱 캄캄한 화면을 당신과 나란히 앉아 볼 수 있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문을 나오며 당신은 뭐라고 말했을런지요. 여전히 툭, 내뱉을까요. “개새끼들.” 하고.
당신 대신 내 친구가 말했습니다.
“개새끼들.”
감상이 고작 그거냐는 내 물음에 그가 답했습니다.
“할 말이 있겠냐. 개새끼들. 아, 진짜 나쁜 새끼들.”
그 말들만 저도 열심히 따라했습니다. 슬프다, 화가 난다, 증오한다, 억울하다, 황망하다, 분하다. 어쩐지 그 어떤 동사도 형용사도 가져다 붙일 수가 없어서요. ‘사람이 저토록 아파도 되는 것일까’ 두 시간 내내 그 문장만 떠올랐어요. 사실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마치 ‘건조한 보고서’ 같은 영화 앞에서, 울 것이 두려워 가져간 티슈는 부끄러워졌고 우리는 말을 잃었습니다. 눈물을 쏟지 못해 온몸이 아프니 욕을 할 수 밖에요. 당신과 셋이서 욕을 뱉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잠시 또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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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내 아버지 이야기

당신에게도 당연히 아버지가 있을 테지요. 제게도 물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2주 전 불에 탄 아버지를 떠올릴 수밖엔 없었어요. 놀라지 마세요. 화장 이야기니까. 매장 후 십여 년이 지나면 화장해 나무에 뿌린다네요? 가족이 모두 모여 그 일을 했습니다. 아무리 묘 자리가 나빠도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는데, 어른들 말씀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시신은 땅 속에서 고스란히 유지돼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온몸이 떨렸지만 할 일을 바쁘게 해야 했습니다. 뼈를 추슬러 담으려던 작은 차는 돌려보낸 뒤 시신을 실을 큰 차를 찾느라 동분서주했고, 서울에는 마땅한 화장터가 없어 지방까지 내려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시신이 화장터에 들어간 2시간 동안 우리는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습니다. ‘어서 타라, 어서 타, 완벽하게 사라져 버려라’ 이승을 떠나지 못한 아버지의 사정을 알 수 없어, 그의 아내와 아들과 딸은 열심히 빌기만 했습니다. 그의 근심과 염려와 아쉬움과 억울함이 모두 타 버리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아버지의 몸은 사망 후 12년이 지나고서야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차가운 분노, 지속적인 저항

제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어 아버지 이야기를 빌려 왔습니다. 어서 보내고 싶지만 한편으론 영영 보내기도 싫어서 고통과 불안으로 떨고 있던 화장터에서의 2시간을 고스란히 되새기는 듯했습니다. 도망쳐 버리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제 고통이 모래알처럼 느껴지더군요.

2009년 1월 20일, 우리가 차에 있던 그 새벽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한 무리의 철거민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망루도 사람도 검게 타 버렸습니다.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가족과 친구를 망루에 올려보낸 사람들은 그날 저녁 무렵 덜컥 시신 다섯 구의 부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시신 한 구의 부검은 2시간이 걸린다는데, 용산의 다섯 시신은 총 2시간 안에 부검되었습니다. 시신에는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부검에는 가족들의 동의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땠을 것 같나요? 저라면 누구의 말도 믿지 않고 아버지를 찾아 헤맸을 것 같습니다. ‘기어코 살아 나왔을 것이다. 내가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집념에 사로잡혀 도시를 구석구석 뒤졌을 것 같습니다. 유영숙 유족도 처음엔 남편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신 확인소에서 그녀는 그을린 남편의 얼굴을 알아보게 됩니다. 불에 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남편 고(故) 윤용현씨는 ‘맞아서 죽었’습니다.

“남편의 몸에는 그을음만 묻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가슴뼈는 쪼개어졌고 배에 감긴 붕대에는 혈흔이 선명했습니다. 고통으로 이는 앙다물어져 있었습니다.”

윤용현 씨 뿐 아니라 시신들의 상태는 참혹했습니다. 갈라진 두개골, 파열된 장, 도구에 의해 잘린 손. 경찰은 이들의 사망원인을 ‘화재에 의한 질식사. 구타 흔적은 없음’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믿을 수 있었을까요.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강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는 참사 현장을 다루는 방송뉴스보다도 절제돼 있었습니다. 유족들의 울부짖음이라던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현장은 관객의 상상에 맡길 뿐입니다. ‘필요한 것은 순간적인 분노와 어쩔 수 없는 망각이 아니라 차가운 분노와 지속적인 저항’이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 증오와 분노, 억울함, 당혹감, 그 모든 감정의 결말에는 슬픔이 자리잡는다지요. 끝의 끝의 끝에 가 닿으면 기어코 사람은 슬퍼진다고요. 하지만 용산 사람들은 슬퍼할 권리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목 놓아 울 만한 곳 한 평도 그 국민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분들에게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드리고 싶다는 것, 하루 빨리 고통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용산 참사에 대해 정확한 통계도 주장도 보탤 수 없는 저의 초라한 감상문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아버지, 남편, 친구의 시신을 ‘제대로’ 태우지 못했기 때문에. 화도 아쉬움도 다시 태워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이 아직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이 이렇게 아파도 되는 것일까요.

그 분들이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이제 좀 차가워져야겠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 한 명과 동행해 한 번 더 보려고요. 은폐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이 차가운 분노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의 “개새끼들”하는 소리가 당신 귀에 가 닿을까요.

그 날처럼 당신과 나란히 앉아 이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