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평화를 그리워하는 시위 (정다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4:41
조회
277

정다운/ 청년 칼럼니스트



덥고, 습하다. 푹푹 지친다. 여기는 아주 이상한 공간이다. 빌딩 숲 사이의 옛 궁궐도 묘한데, 나는 그 앞에 쳐 놓은 직사각형 텐트 안에 들어앉아 있다. 바로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이다. 텐트 내부는 더 희한하다. 난데없이 스물 둘이나 되는 고인들을 위한 향이 피워져 있다. 그 영전 앞에는 곰보빵이 쌓여있다.

한달 전쯤, 광장에서 그곳을 바라보다가 묵념을 한 적이 있다. 스물 둘이나 되는 목숨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니…… 트위터에 140자짜리 글을 몇 개 올렸다. 오늘 여기에 왔는데, 어떻더라 하는 짧은 감상. 그리고 빨리 누군가가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한탄. 곧 몇 개의 답장을 받았다. “안타깝지만 애초에 사태를 그렇게까지 키운 건 폭력적인 시위대 아닌가?”, “억울한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건물 점거하거나 화염병 만드는 건 좀 아닌 듯” 나는 곧장 답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폭력적인 공권력이 더 문제다” 용산 참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이런 식으로 밖엔 설명하지 못했다. 게다가 마음 한 구석엔 같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시위가 조금 더 이성적인 방법이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촛불집회처럼 평화시위를 했다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진 않았을까?’

한달 전과 달리 오늘은 이 공간 안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한참 머무른다. 나는 이 분향소가 평화롭고 효과적인 농성방법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진 않은 듯 하다. 이 희한한 광경에 여러 사람이 눈살을 찌푸린다. 외국인도 많이 오는데 창피하게 뭐 하는 짓이냐고 성내는 사람도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자랑스런 역사적 유물 앞에 ‘분향소’라는 암울한 광경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몇 달 전 레이디 가가의 내한콘서트가 떠올랐다. 콘서트장 주변으로 몇몇 보수•종교단체들이 동성애자 반대 시위를 했다. 그들은 무력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 시위가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평화시위란 무엇일까? 폭력시위란 또 무엇일까? 촛불을 들고 조용히 걸으면 평화시위이고,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을 휘두르면 폭력시위인 것일까?

 

l_2012052201002251500218181.jpg
▲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 놓여진 미술작품과 꽃.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언제부터인가 잘못 학습되었다. 애초에 시위의 방법을 가지고 평화롭네, 폭력적이네 논하는 것은 분쟁을 바라보는 핵심이 아니다. 비폭력 평화시위는 옳고, 폭력시위는 나쁘다는 이분법은 시위의 본질을 가린다. 폭력의 기준도 애매하거니와, 그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정하는 것 또한 권력이다. 질서를 해치거나, 소란스러운 시위가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다면, 4.19와 6.10항쟁부터 다시 심판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세력이 결정권을 쥔 세력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시위이다.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상식과 정의의 잣대로 맞춰보아야 한다. 그러면 SKY(쌍용, 강정, 용산)의 농성자들은 한낱 이기적인 시위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쟁구도와 강대국의 패권다툼에서 탁!하면 억!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희생자들이다. 그 속에서 울분을 억누르고 평화롭게, 모두 간디 같은 시위자가 되라는 요구는 권력층의 욕심일 뿐이다.

맞은편에 재능교육이 보인다. 옆에 국가인권위도 보인다. 괜히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이 솟구친다. 오늘따라 분향소에 눈길을 두는 사람이 많이 없다. 벌써 100일이 넘었다 보니, 올 사람은 거의 다 왔다고 봐야 한단다.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교대식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사람들이 그쪽으로만 몰려가니까 괜히 더 심통이 난다. 곰보빵이 새로 도착했다. 전태삼 선생이었다. 형인 고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노동자는 늘 배고프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매일같이 곰보빵을 사다 스물둘 아까운 목숨들의 영전 앞에 놓아주고 계셨다. 전날 가져온 빵을 나누어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폭력의 역사를 몸소 겪어온 그분은 나의 성토에 오히려 미소만 지으셨다.

“옛날처럼 자는 사람 머리에 검은 봉지 씌워서 납치하진 않지만, 그래도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야”

“그냥 니가 왜 이런 곳에 이끌려 왔는지 생각해 봐라. 그리움이다. 그거면 된 거 아니니? 마음이 시키는 곳으로 가서 힘을 보태면 되는 거야”

그래! 오늘도 나는 다시 한번 눈을 감는다. 눈앞에 보이는 촛불이나 화염병을 잠시 잊고, 왜 여기에 서있는가를 생각한다. 사람의 귀중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는 자리인지. 소수의 안정이 아니라 다수의 평화를 위한 투쟁이 깃든 곳인지를 느껴본다. 평화시위인지 폭력시위인지 가리기 보단, 평화를 위한 싸움인지, 싸움을 위한 싸움인지를 가려낸다. 덥고 습하고 푹푹 지치는 날씨지만 미소가 지어진다. 나의 그리움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더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