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응답하라, 안녕하지 못한 그대들 (이현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4
조회
284

이현정/ 청년 칼럼니스트



12월의 어느 날, 한 대학생이 학교에 대자보 하나를 붙였다. 안녕들 하시냐고 묻던 그 대자보는 그저 안부를 묻는 내용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대들 정말 괜찮겠는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의 분노와 먹먹함을 담은 진심이 묻어났던 것이었던 걸까, 이 대자보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대학에서 고교를 거쳐 길에도 나붙었다. 청년은 물론 청소년과 기성세대까지도 여기에 응답하고 있다.

초기에 있었던 엄청난 반향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었다. 청년 실업, 스펙 쌓기, 학점 경쟁이라는 판옵티콘(원형감옥)에 갇혀 감시받던 청년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반향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취업에 발목이 잡혀서 연예 뉴스나 스포츠 뉴스나 보면서 잠시 사회와 접했던 사람들이 철도 민영화를, 쌍용차 문제를, 밀양의 소식 등을 한 번쯤 들여다보게 했다.

3포 세대, 무한 경쟁 시대에서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세대, 민주주의와 자유를 너무 당연시 하여 그 소중함조차 모른다는 배은망덕한 세대라는 평가를 받아 왔던 우리 청년들. 이 청년들이 응답하기 시작하자 각계각층에서도 응답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공감을 이끌어 냈듯이 이 응답도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것이 단순 재생산 되는 것에만 그친다면 그 서운함을 감출 수 없을 것 같다.

무관심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안녕치 못하다던 청년들이 집회 현장에 나타나고, 철도 민영화에 대해 검색해 보고,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시사 문제를 먼저 누르는 이 모습은 생소하지만 우리가 바랐던 청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논한다면 어떨까?

기자회견, 집회 시위 등으로 점철된 사회 운동의 당위성과 효과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집회는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불끈 쥐었던 주먹은 촛불로 변모해 왔다. 그렇다 해도 많은 시민들에게 이 모습은 때로는 공감보다는 무관심으로, 또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다양한 사회적 상황과 더불어 언론의 보도도 한 몫을 한다. 현대차 희망 버스, 밀양 희망 버스, 농민 대회, 대한문 앞 분향소, 철도 노동자 파업 등 안녕하지 못한 청년들이 말하고 있는 이 문제를 일부 언론은 어떻게 비춰왔던가. 희망 버스는 절망 버스로, 분향소는 시민의 통행권을 침해하는 장애물로, 철도 노동자 파업은 단순히 그들의 밥줄 정도만 걱정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YTN 뉴스는 농민 대회가 왜 일어났는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고, 울산 MBC 라디오는 현대차 희망 버스가 도착하던 그 날, 교통 체증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세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말 안 듣는 불통 시민으로, 밀양의 주민들은 님비주의자 쯤으로 치부했다. 먹고 살기에 지치고 바빴던 사람들은, 그냥 그런 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그런 줄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이 일이 점점 모두의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응답하지 못한, 그리고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12월 19일, 독재 대통령 당선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 광장에 모인 3만 명의 시민들이 단순히 숫자로만 보고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하의 추위에, 얼음판 위에 앉아서, 그 자리도 모자라 도로로 밀려 나면서 그래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수많은 시민들은 그냥 3만 명이 아니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마음을 담아 모인 민중이었다.

그러나 이 민중을 다시금 떠나게 하지 않으려면 각자가 응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집회 시위의 방식이나 기자회견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집회에 참여하지만 자리를 메워 주는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대자보를 붙이며 자기 이름을 종이 위에 새기는 것처럼 그 현장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40114web01.jpg
사진 출처 - 필자



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나도 주인공이 되고, 나도 당사자가 된다는 점에서 바로 '안녕들 하십니까'가 시민들의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더욱 더 많이 응답할 수 있는 자리나 매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캠페인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기는 하다. 바로,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대국민 죄송 쓰레기 줍기' 캠페인이라는 것인데, 국정원, 군 사이버 사령부, 보훈처 등의 복장을 한 채로 매주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댓글만 단 것에 대해 사죄한다는 컨셉이다.

직접 사회 문제에 관해서 행동하고 싶었던 청년들이 모여서 '청연'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첫 캠페인이 이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열심히 홍보도 하고, 주변에 많이 알려 다 같이 쓰레기를 주우면서 또 주변 사람들이 모이고, 길을 가던 시민들도 함께 한다는 거창한 것을 생각하며 기획했지만 추위를 비롯한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다. 그래도 거리에 나가면 먼저 와서 말을 붙이시거나, 직접 와서 유인물을 받아 가는 시민들이 있어서 사회에 대해 시민들이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 캠페인은 아직 10명 이내로 진행되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이 시대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제는 직접 행동하기를 바란다.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이미 느껴 보지 않았는가. 이제 안녕하지 못하다고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움직여야 한다. 응답하라, 안녕하지 못한 그대들이여!

이현정씨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