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새해엔 다들 안녕하신가요?” (박정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3
조회
244

박정훈/ 청년 칼럼니스트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대학원에서의 네 번째 학기가 지났다. 학업에 치이고 과제에 치이며, 엄격한 상대평가에 ‘혹시라도 내가 바닥을 깔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또 그렇게 전쟁터 같았던 한 학기를 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맞이하면 일주일에서 열흘은 아무 것도 안하고 폐인처럼 지낸다. 몇 개월간 유지하던 긴장의 끈이 한 순간에 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제야 조금 ‘안녕’하려는 찰나에 받게 된 이 물음 탓에 마냥 ‘안녕’할 수 없게 됐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교수, 회사원, 청소노동자, 성노동자, 대학교수,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대자보 행렬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걸 보니, 나처럼 불편한 사람이 많았나보다. 다들 김남주의 시 <어떤 관료>에 등장하는 관료처럼, ‘내가 맡은 일에만 성실하면 된다’고, ‘나 살기 위해 조그만 마음의 거리낌 정도는 묻어두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다가, ‘그래서 안녕하냐’는 직격탄에 가슴이 뚫린 것이다. 대학 여기저기에 나붙은 대자보엔 도로시 데이의 <고백>처럼, 세상의 고통에 예를 갖추는 글귀들로 채워져 있다.

어릴 적에 이웃에 살던 감리교 집안의 행복한 평화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그 행복은 세상의 고통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내 비록 거리낌 없이 대학이라는 데를 다니고 있지만, 상점과 공장에서 젊음을 바치고 그 후로는 같은 공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남자들과 결혼할 수밖에 없는 내 또래의 소녀들을 생각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이 구호, 내게 이보다 더 피 끓는 함성은 없는 것 같았다.

-도로시 데이, 『고백』 중에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 시시각각 마음을 조여오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극히 개인화된 일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안녕하냐는 한 학생의 질문은 사람들의 이타적 감수성을 깨우는 촉발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안녕들”의 다양한 변주가 유행처럼 한철에 지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파문 때처럼 말이다. 물어보는 사람이 있기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동조자들이 있기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물론 그 조차도 어려워하는 이들이 다수이지만). 그러나 매순간 스스로에게 ‘안녕’한지 자문하는 것, 그리고 내가 주모자가 되어 행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고,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눈앞에 성적, 취업 문제가 급하다 보니, 그러한 관심은 7순위 내지는 8순위 정도로 밀려난다. “지금도 제 앞가림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나중에 무얼 할 수 있겠냐”는 물음엔, “아무 것도 아닌 학생 때 행동하는 것보다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가진 후 행동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은 닥치고 공부하는 최선”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친구들은 “안녕들”이 이슈화되고, 여기저기 대자보가 나붙는 상황에 공감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를 한다. 그렇게 잠깐 스마트폰을 만지작만지작 하고는 다시 공부에 열중한다. 그 정도면 불편한 마음이 ‘안녕’해지는 걸까. 과연 마음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걸까.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답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를 비난할 수도 없다.

 

l_2013122801004593100344751.jpg
지난 12월 28일 오후,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 등은 서울광장에서 ‘1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는 철도 민영화를 중단하고 민주노총 폭력 침탈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원고를 쓰기 위해 학교 PC실에 앉아있는 순간에도 앞뒤에 앉은 학생들은 동영상 강의를 보고,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과연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문한다. 매 순간의 삶이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다만 매일매일 소박하게 다짐해본다. 언제이건 ‘스스로’ ‘안녕’한지를 묻고 성찰할만한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견지하겠노라고 말이다.

지난 12월 29일 밤, 여야 대표와 노조지도부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철도파업은 일단락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절정을 이루었던 국민들의 대규모집회 역시, 무엇이 합의되었는지 모를 ‘합의문’의 발표와 함께 시들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철도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확실하게 매듭되지 않은 상태이고, 파업철회 이후 철도노조 간부에 대한 수사 역시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파업기간 중 투입된 대체인력에 대한 처리문제도 남아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는 오랜 시간을 끌었지만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후속조치에 대한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논란도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어느덧 갑오년 새해가 밝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과 함께 덕담이 오고간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지만, 해가 바뀌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은 새해인사를 해본다.

“새해엔 다들 안녕하신가요?”

박정훈씨는 노동과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