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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기계적인 나라, 기계적인 사람들 (조아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2
조회
387

조아라/ 청년 칼럼니스트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은 이 물음에 답하려고 튜링 테스트를 개발했다. 채팅 프로그램에 컴퓨터를 참가시켜 심사위원과 대화를 하게 한다. 심사위원은 대화 상대가 컴퓨터인지 사람인지를 맞춰야 한다. 컴퓨터는 매뉴얼대로 묻고 답하므로 금방 컴퓨터라는 걸 들키고 만다. 가령 “어제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봤어?”라는 질문에 “봤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정말 예뻤지?”라고 되물을 수 없는 게 컴퓨터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기술과 경제 발전에 치우친 나머지 사람들이 ‘기계’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우려가 든다.

객관적 수치로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세계 237개 나라 가운데 경제규모는 15위권 안에 속한다. 문맹 비율은 1% 미만이고, 대학 입학자는 고교 졸업생의 80%를 웃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넘긴 사우디아라비아를 ‘선진국’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선진국을 평가할 때는 그 나라의 경제적 부유함 뿐 아니라 생활양식과 삶을 대하는 가치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존경하는 문화와 생활양식, 철학을 보여줄 때야말로 선진국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점점 더 ‘기계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국민에겐 “왜?”라는 물음이 없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답만 있을 뿐이다. 매뉴얼과 저장된 데이터를 충실히 따르는 컴퓨터처럼, 한국인은 ‘성공하는 법’에 대한 답은 잘 알지만 “왜 사느냐”는 물음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10억 원을 주면 1년 간 감옥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묻지 못한다. 대신 ‘엄친아’로 대표되는 성공 표본을 좇아 매뉴얼을 충실히 밟아간다. 19세에 고교를 졸업해 명문대에 입학, 취업한 뒤에는 ‘10억 원 모으기’에 도전하는 등 짜인 코스대로 걸어야 한다. 이탈하면 낙오자가 된다. 모두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한 가지 정답만 아는 컴퓨터 같은 사람들에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선진국이 되고 싶다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을 그대로 따라할 게 아니다. 오히려 “왜?” 라는 질문에 여러 대답이 가능한 유연한 사회 분위기가 먼저다.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상품을 ‘러브마크’라고 한다. 이성적 판단을 뛰어넘어 갖고 싶도록 만드는 힘이다. 기계는 완벽에 가까운 물건을 생산할지언정,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러브마크를 만들 수는 없다. 근로시간은 경제개발계획(OECD) 국가 중 3위(2012),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1위라는 지표는 아직 우리나라가 선망의 대상은 못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왜 사는지를 성찰하지 못하는 삶이 계속된다면 무미건조한 연산 처리만 하는 컴퓨터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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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


 

조아라씨는 교육과 언론에 관심을 갖고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실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