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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청의 ‘거리로 등떠밀기’ (김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6
조회
281

김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영하를 밑도는 칼날 같은 날씨다. 눈도 심심찮게 내렸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 안에 앉아보면 이따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강남구청 대로변에서 몇 평짜리 돗자리를 깔고 매서운 바람에 몸을 부대끼며 인스턴트커피로 언 손을 녹인다. 벌써 여섯달 넘게 노숙농성을 했다는 그들은 가끔 가로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돗자리 근처에는 ‘엄동설한에 물 끊고 전기 끊고 화장실 막고 인근 세 군데 공중화장실 막고 물과 음식물 반입금지, 감금하고 고립시킨 악랄한 강남구청장은 사죄하고 삶의 터전을 돌려 달라’라는 피켓이 곳곳에 놓여 있다. 열 명 남짓인 이들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개포동 영동 5교 밑에서 넝마를 주우며 자활해오고 있던 넝마공동체 사람들이다. 화려한 도심의 어두운 단면은 이렇게 차디찬 강남구청 대로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7년 전, 빈민운동가 윤팔병 씨를 필두로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은 현재의 영동 5교 교량하부 터에 모여 넝마를 주우며 생계를 꾸려 왔다. 나라가 외면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16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집으로 삼아 공동체를 이뤘던 이들은 어느덧 노숙자가 아닌 자활 공동체가 되었고, 그 후 사업에 실패하거나 곤궁해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27년 간 3천 여명의 노숙인들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7월, 넝마공동체는 일방적인 철거통보와 함께 강제 철거를 당하면서 단전, 단수, 세간살이 파괴 등의 고초를 겪으며 다리 밑에서 내쫓겼다. 화재 위험과 불법시설물 설치가 철거단행의 이유였다. 현재 컨테이너 박스들은 뿌옇게 먼지에 쌓인 채 높은 펜스로 둘러싸여 있고 넝마공동체 일원들은 뿔뿔히 흩어져 봉은사 쉼터, 찜질방, 관악구 노숙자 쉼터 등을 오가며 거리를 전전하는 중이다. 넝마공동체 대표 김덕자 씨를 비롯한 열 댓명의 구성원들은 “강남구청을 마주하는 대로변에 돗자리를 깔고 지난해 6월부터 노숙농성을 계속해오고 있지만 강남구청 측은 그저 묵묵부답”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돗자리에 앉아 넝마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얘기할 때, 그들의 눈빛은 필사적으로 거리로 내몰린 열악한 상황을 알리고 싶어 하는 절박한 눈빛이었다. 집값이 천정부지고, 생계가 궁핍하거나 노숙인으로 전전하던 이들은 그저 ‘함께 잘 살기 위해’ 공동체를 꾸려나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27년간 3천여 명 노숙인들의 쉼터가 되고 자활을 장려해온 넝마공동체는 국가에 의해 하루아침에 붕괴됐다. 국가는 마땅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고, 구성원들은 다시 강제로 노숙인의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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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1월 15일 개포동 영동5교 다리 밑 넝마공동체 거주지를 강제 철거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강남구청 측은 넝마공동체가 불법시설물을 설치했기 때문에 철거 통보를 하고 철거를 시행했을 뿐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넝마공동체는 그러면 강남구 주민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마땅한 대답은 나오지 않은 채, 그렇게 끝이 났다. 순간 “강남구청은 우릴 강남구에 거주하는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부자 동네인 강남의 미관을 해치는 불법 거주자로 인식할 뿐이다”라는 윤팔병 씨의 한숨섞인 목소리가 떠올랐다.

덧붙여, 영동 5교 근처에서 조깅 중이던 한 강남구 주민에게도 넝마공동체에 대해 화두를 건네자마자 “불법인데 당연히 국가에서 철거해야지. 없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학생 집근처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가만히 있겠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작 “그렇다면 다리 밑에서 철거된 그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 줄 아는가”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며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양재천 근처로 내려오면서 영동 5교 아래, 넝마공동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흉물스러운 펜스를 보고 가슴이 갑갑해져 옴을 느꼈다. 부유한 강남일대에 자리 잡은 넝마공동체 사람들을 ‘옥의 티’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곤궁한 사람들을 거두고, 주운 넝마로 아름다운 가게나 구룡마을에 기부하며 상생의식을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자활공동체로 소박하게 살아가던 이들은 이제 다시 거리로 내쫓겼다. 넝마공동체가 강남구청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예전처럼 다시 자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거리미화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넝마공동체를 내쫓았을 뿐만 아니라 넝마공동체가 다시 자활하고자 찾아간 탄천운동장까지 쫓아가 단전, 단수를 해가며 고립시켰다. 이들은 이제 오갈 곳이 없을뿐더러 찬 대로변에 앉아 외롭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유한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단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김지영씨는 위안부, 쌍용차 노동자 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