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경계’를 생각하다 (이다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13
조회
339

이다솜/ 청년 칼럼니스트



가수 이승철이 독도에서 노래를 했다는 이유로 일본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알려졌다. 일본 공항 측은 이 씨의 과거 대마초 끽연 사실을 언급하며 독도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려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을 비난하는 목소리 역시 점차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가 되었고, 일본에 대한 욕설이 인터넷 사이트를 가득 채웠음은 물론이며, 외교부까지 움직였다. 외교부가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 이승철 입국거부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들끓는 비난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달래보려는 의도일까? 한겨레신문에서는 한국 역시도 지금껏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여러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거부해왔다는 기사를 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승철의 입국을 거부한 일본의 태도에 분노하기보다도, ‘우리 역시도 지금껏 그래왔다’고 이야기하기보다도, 실은 지금이야말로 일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재일코리안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이들은 ‘국경’이라는 것 때문에 늘상 고통을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재일코리안은 일본에 살고 있는 한인을 의미한다. 주로 남한 출신이 많으며, 크게 대한민국 국적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 그리고 조선적으로 나뉘어 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으로 바뀌었다. 이후 많은 한인들이 취업 혹은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200만 명의 한인이 일본에 있었지만 이들은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잃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생계나 정치적 문제, 또 불안한 한반도의 상황 때문에 일본에 남기를 택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에 제주 4.3 항쟁이 발발하면서 피바람을 피해 일본으로 밀입국한 이들도 생겨났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식민 지배와 냉전의 유산인 셈이다.

 

20141114000059_0.jpg
지난 8월 14일 이승철이 독도를 방문해 탈북청년합창단 위드유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세계일보


 

물론 요즘은 일본 국적을 가진 재일코리안들도 꽤 있다. 그러나 국적과 상관없이 이들의 상당수는 일본 사회에 퍼진 혐한 발언으로 고통 받고 있다. 도쿄 신문은 지난 8월 19일자 보도에서 “재일코리안의 78.2%가 자신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듣게 된 뒤 분노와 슬픔,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는 교제 중인 상대가 재일코리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헤어짐을 통보하거나 귀화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승철의 입국을 거부한 이유가 정말 독도에서 노래를 했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이 양국 정서의 ‘온도차’를 견디며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재일코리안의 삶의 무게는 과연 어떠할까.

이런 화두를 카메라에 담은 영화가 몇 편 있다. 최근 개봉한 <60만 번의 트라이>를 비롯하여 <우리 학교>, <그라운드의 이방인>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재일코리안을 담은 작품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양영희 감독의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이다. 양영희 감독은 제주 4.3 항쟁을 피해 오사카로 밀항한 한인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열성적인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간부였으며, 오빠들은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통해 평양으로 갔다. 그리고 그 자신은 일본에서 자라 나중에는 아버지가 그토록 반대하던 미국 유학을 하고, 남한 국적을 취득한, 그야말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시선으로 어루만진 재일코리안 가족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굵직한 주제를 따뜻하게 만져주는 다큐멘터리. 마치 부드러운 직선 같은 영화였고, 우리 역사의 굳은살을 슬슬 문질러 풀어주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유학, 남한 국적 취득을 원하는 딸과 그걸 반대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린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도 그렇지만, 평양에 살고 있는 오빠의 딸 선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굿바이 평양>은 왠지 모르지만 내게 더욱 각별했다.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통해 평양으로 간 오빠, 그리고 그 딸 선화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며 느끼는 고모의 정이 스크린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스크린은 언제나 ‘세계를 확장하는 관문’이 되어준다. 나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재일 디아스포라에 대해 한국어와 일본어로 출간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그 모임에서 나는 한국 역시도 재일코리안에 대해 ‘가해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재일코리안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 <우리 학교>를 보더라도, 민족학교에 전화를 걸어 재일코리안을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일본인이 등장한다. 반면, ‘우리’는 재일코리안에 대해 책임이 없을까? 재일코리안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일본에 돌을 던지기만 하는 ‘우리’는 정말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지 질문해봄직 하다.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동포’라는 이 로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교교육 무상화에서 민족학교를 배제한 일본 정부는 재일코리안 문제에 대해 수십 년을 침묵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재일코리안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압박을 가해 즉각적인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더라도, 최소한 그들을 ‘덜 외롭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50만 명의 재일코리안 중 약 40만 명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에 남게 된 이들의 자손이다. 물론 재일코리안의 발생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는 일본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재일코리안들이 ‘알아서 맞서 싸우도록’ 혹은 일본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수수방관하고 있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사실, 현재 일본 자민당의 보수적인 성향을 고려하면 상황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소수자로서의 삶을 버텨내는 이들에게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 등 재일코리안을 위해 일하는 단체가 있어서, 연령대별로 소모임을 조직하거나 영화 상영과 같은 문화행사를 여는 등 각종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세상에 고통만큼 보편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고통을 통해 ‘연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가능성은 빛난다고 믿는다. 굳이 ‘민족’이나 ‘동포’ 같은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라는 정서에 기대지 않고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바라기는, (사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재일코리안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장되어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에까지 시선이 가 닿기를 기원한다. 멀리 일본까지 갈 것도 없이, 사실은 한국 역시도 타자를 향한 혐오 발언으로 인터넷이 들끓고 있지 않은가? 보다 열린 마음으로 ‘타자를 환대하는’ 사회가 되어가기를 소망한다. 우리 안의 폭력과 불안을 약자를 통해 풀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사회를 향해가는 첫걸음으로, 멀고도 가까운 재일코리안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시기를 권한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또 국경을 넘어 인간 대 인간의 ‘연대’를 만들어가는 기쁨을 누려보시기를 권한다.

이다솜씨는 여성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