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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용(無用之用)의 인문학(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9-29 14:01
조회
331

오인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일 1논란’이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언행(言行)이 문제인 사람이 있다.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리는 행동은 버릇이거니 하고 넘어간다고 척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는 그냥 봐주기 어렵다.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쩍벌남’ 자세 그대로다. 국민의 선택(/심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공중 앞에서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나 행동거지를 조심할 법도 한데, 내 사전에 그런 법 따위는 없다는 식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민폐가 될 수 있는 행동을 공개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안하무인. 사석에서 우연히라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언행 가운데 볼썽사납기로는 ‘언(言)’이 더하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도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등, 그가 내뱉은 해괴한 주장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가 9월 13일 경상북도 소재 국립안동대에서 대학생들을 만나서 했다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천학비재(淺學菲材)이지만 그래도 근 30년 인문학 서당에서 풍월을 읊으며 살아온 처지에서 ‘인문학 부수론’을 그냥 실언이나 망언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일단 발언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려고 당시 영상을 찾아봤다.


 문제의 발언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실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라는 주장 다음에 나온다. “인문학의 중요성이라는 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립서비스’(왜냐면,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까!)를 한 뒤 “그러나 인문학을, 여러분이 무슨 지금 세상에서는 공학이라든가 이런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고 일자리를 찾는 데 굉장히 필요한데, 기업이 그걸 원하니까, 그러면 인문학이라는 거는, 그런 걸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학생을 갖다가, 4년 뭐 대학원 과정까지 그렇게, 그건 소수면 되는 거지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느냐, 그래서 그런, 기업 필요에 따라서 학과의 재조정도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교육 당국이 추진하려고 그러면 반발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생각의 두서도, 마침표도 없는 그의 말을 분절하면 이렇다. 1) 대학의 역할은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 유용한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다. 2) 기업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3) 인문학은 취업에 유용한 공부를 하다가 짬이 날 때 부차적으로 하면 된다. 4) 그러므로 인문학 공부라는 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할 필요가 없다. 5) 인문학은 소수의 전공자만으로도 충분하다. 6) 기존의 인문 분야 학과들은 기업의 요구에 맞춰 통폐합해야 한다. 7) 그러나 내부 반발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


아, 이렇게 쪼개놓고 보니 그의 ‘인문학 부수론’ 발언을 접했을 때의 찜찜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겠다. 그가 인문학을 슬렁슬렁해도 되는 취미-교양이나 어쩌다 짬 나면 접하는 특강쯤으로 경시하는 이유는,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라고 영역하고도 무탈하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가까이서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9년 동안 인문학 관련 책 따위와는 아예 담을 쌓고 고시 낭인으로 지낸 세월 때문도 아니었겠다. 인문학을 오로지 경제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단 인문학만이 아니다. 대학과 학문 일반의 존재 이유까지도 “기업의 필요”에서 찾는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려주면 그네들 생각이 바뀔까? 인문학(Humanities)은 종교,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고고학, 고전학, 인류학 등의 분야로 구성된다.(법학도 광의의 인문학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이토록 광활한 인문학의 세계를 많은 사람이 따로,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것은 인문학에 무지한 사람의 생각인 동시에 편견을 지닌 사람의 생각이다. 무지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범하기 쉽다. 자기기만과 편견은 아예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마녀사냥은 마녀로 인해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 마녀를 식별할 줄 안다고 과신한 자들이 저지른 범죄였다.


 기만이나 착각과 같은 잘못된 생각-앎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 대표적인 인문학의 철인(哲人)이 ‘테스 형’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없는 지식 채우기’가 아니라 ‘잘못된 지식 비우기’였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실제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칠 때, 비로소 거짓된 앎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도록 도왔다. 그렇다! 올바른 생각(앎-지식)은 ‘깨달은 사람’이 안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철부지(哲不知)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교습(敎習)하는 게 인문학인데, 이런 게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다가 잠시 들려서 엿본다고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 경제적 효용가치로 보면 인문학은 정치적 출세, 경제적 성공,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은 바로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고(故) 김현 선생의 사유에 기생하여 말하자면, 통속적으로 유용한 것들-돈, 권력, 힘 등은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세계에는 인간을 억누르는 것이 있고, 그것들은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적 유용성의 눈으로만 사람과 사물과 세계를 재단할 때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물화(物化)된 의식에 사로잡힌 시장 전체주의자(market totalitarian)의 무지와 편견을 깨닫게 해준다. 남이야 피눈물을 흘리건 말건 끝없이 권세와 부를 쫓는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