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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감수성’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김 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43
조회
871
‘인권 감수성’이란 말을 우리는 종종 접하며 인권 감수성의 개발은 인권교육의 기본이자 목표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자극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서 흥분하기 쉬운 상태 또는 성질”을 ‘감수성’ 혹은 ‘민감성’이라 할 때, ‘인권 감수성’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하여 매우 작은 요소에서도 인권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부연하자면, ‘인권 감수성’이란 “인권문제가 재개되어 있는 특정상황에서 그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며, 그 상황에서 가능한 행동이 다른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는 심리과정,” 즉,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인권을 옹호하는 행동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과정”이기 때문이다.(국가인권위원회 사이버인권배움터 참조). 대학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필자 역시 학생들에게 ‘인권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떠한 것을 예로 들면 좋을지를 늘 생각하는데, 다음의  세 가지를 자주 원용하곤 한다.

첫째는, 주부 내지 어머니의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에서 언급되듯, “모든 인간은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갖는다.” 주부습진과 함께 유달리 우리나라의 주부들에게 많은 병이 울화병이라 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은 장년의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신 질환이며,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데, 가슴이 답답하며, 불면증, 거식증, 성기능 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아울러, 화병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질환이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는 1996년에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는데, 이 질환을 영어로 'hwa-byu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의 주부들은 곧 아내이자 어머니이다. 이들에게도 행복추구권과 휴식의 권리가 있음은 당연하다. 아마도, “나도 주말엔 쉬고 싶다. 친구들과 영화 한편이라도 보고 싶고, 책방에도 가보고 싶고, 부엌도 한주에 한번이라도 휴업하고 싶다. 방 한 칸을 따로 갖진 못한다면 마음속에라도 방 한 칸 갖고 싶다. 주부이기 전에 나도 인권이 있는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다”라고 아주 조용하게라도 때로는 절규하고 싶진 않을까?

둘째는, 정신지체장애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성(性)에 대한 권리이다. 강의 시간에 “그들의 사랑할 권리--정신지체인의 성(性)과 결혼”이라는 다큐스페셜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때, 필자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미소와 함께 인권 의식이 생겨남을 읽는다. 그 TV 프로는, 그에 대한 소개 기사대로, “흔히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상인도 잘 살기 힘든 세상에, 정신지체인 끼리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일반이 장애인에 지니는 편견과 무관심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했는지 살펴본다. 행복하게 사는 정신지체 부부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사랑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생각한다.”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를 이유로 한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갖는다”(세계인권선언 제16조 1항)는 것은 이들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의 그러한 인권은 혹여 금기시 되거나 논외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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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핑크팰리스’ 사진 출처 - 네이버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권도 비슷한 같은 맥락 아닐까? 이들 역시도 행복추구권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 의해 홀대 당하거나 방치되기 일쑤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는 일생을 간다 한다. 사랑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은 병상에서 접하는 위로와 미소, 더 나아가 임종의 순간에 눈을 감겨주는 손끝까지 아닐까? 외로운 노년, 특히 홀로 남은 노인들의 경우 그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싶고 더 나아가 사랑하고 싶은지 우리는 헤아려 보았는가? 홀로 남겨진 노인들은 홀로 살다가야만 하는가? 그들에게 이러한 인권은 시효가 이미 지났는가?

셋째로, 몇 년 전에 TV에서 ‘태조 왕건’을 보면서 철원에서 나주로 왔다 갔다 하는 왕건을 보면서, 더욱이 말을 탄 왕건이 발이 불편할 군화와 녹슨 창 하나 들고 마라톤을 해야 하는 수많은 보병들을 이끌고 가면서 “빨리 가자”고 외치며 말을 달릴 때, 필자는 그 보병들에게 눈을 돌리곤 했다. 그들에게 과연 그 전쟁은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을까?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온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배 굶으며 죽음의 공포에도 사로잡힌 채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며 달리는 가엾은 그 병사들도 왕건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들 아닌가? 칼과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무명의 병사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그 약속과 기다림과 절망도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함께 읽어야하진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TV 드라마는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텍스트라 하겠다. 주인공에게만 주목하는 우리들은 이젠 장군이나 미남, 미녀가 아닌 주변의 등장인물의 처지에서 드라마를 거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수많은 영화와 아이들의 동화 역시도 속속들이 인권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주와 왕자가 아닌, 임금과 장군이 아닌, 게다가 선남선녀가 아닌 이들까지 모두가 전 인류에 보편적인 인권의 주인공들이다.

이렇듯, 인권 감수성은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여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과 낮은 곳에 눈을 돌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감수성이 있는 이들은 남들이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에서 자주 슬퍼하고 자주 기뻐한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인권 감수성’이라는 기차는 우리를 기다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거리이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은 못해보는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 우리를 초대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인 가을에 이런 기차여행은 어떨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