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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주면 좋은 사람, 안 해주면 나쁜 사람”- 한 방송 피디의 ‘직업병’에 대한 유쾌한 고백 (이재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1:55
조회
396

요즘 나는 시사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매일 저녁에 두 시간씩 우리사회의 다양한 현안들을 다룬다.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핵심은, 어떤 사안을 다룰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인터뷰를 해서 이 사안을 전달할 것인가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템을 선정하는 시간보다는 섭외에 매달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일단 섭외만 되면 그날 방송준비는 거의 다 한 셈이다.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진행자의 역량이 많이 좌우하는 ‘부차적인 문제’다.


 시사프로그램을 오래하다 보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게 있어 그 기준은 그 사람이 보수냐 진보냐, 꼴통이냐 아니냐,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느냐 마느냐 하는 그런 고상한 것은 아니다. 아주 단순하다. ‘인터뷰 해주는 사람=좋은 놈, 인터뷰 안 해주는 사람=나쁜 놈’ 이런 식이다.

 

이 세상엔 두 가지의 사람만 있다

예를 들어, 거침없는 달변에다가 화끈하게 ‘뉴스거리’까지 만들어 주는 사람은 아주 좋아한다. 반대로 별별 아부 다해가며 어렵게 섭외했는데 막상 방송에선 선문답을 하거나 미꾸라지처럼 요리 빼고 조리 빼는 사람은 그야말로 ‘짜증 지대로’다.

그런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죽어도 인터뷰 안한다는 사람들이다. 섭외를 하다보면 글이나 논문을 통해서 얘기하지 방송인터뷰는 안한다는 분들이 꽤 있다. ‘말재주가 없다면 글로 쓴 거 그냥 읽기라도 하지, 그게 뭐 어렵다고 빼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내 사정이고 그 분의 소신이 그렇다니 이해는 하지만 용서가 안 되는 경우다. 왜? 방송에 도움이 안 되니까!(이런 내 기준이 너무 편협하다고 욕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게 다 직업병이려니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기 바란다.)

최근에도 내 직업병을 도지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바로 작년 6월부터 파행을 겪어온  <시사저널> 사태다. 발단은 삼성관련 기사를 인쇄단계에서 발행인인 금창태 사장이 삭제를 지시한 것이다. 편집국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사가 삭제되자 항의차원에서 사표를 냈고 회사는 신속하게 수리했다고 한다.

항의하는 기자들에게는 무더기 징계가 내려졌다. 편집권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대화로 풀리지 않자 노조는 지난 12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사측은 22일 직장폐쇄 결정을 내렸다. 시사저널 사태를 비판한 서명숙 전 편집국장, 고재열 기자 등에 대해 사측은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내가 몸담고 있는 CBS도 지난 2000년 사장퇴진 문제로 9개월간 파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없었다곤 말 못하지만 나의 개인사정과 별개로 <시사저널> 사태는 언론계의 중요한 이슈이기에 당연히 인터뷰를 해야 할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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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노조원 20여명은 지난 1월 22일 오후 1시 정동 사옥 앞에서 사측의 직장폐쇄 조치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스스로도 놀라는 ‘투철한 직업정신’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인터뷰를 추진함에 있어서 ‘사건의 발단이 된 삼성관련 기사삭제가 발행인의 당연한 권한 행사였는지, 기사내용이 사실 확인이나 증거확보 없이 일부의 주장만 담아 기사 가치가 없어 삭제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장의 지시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징계하는 것이 기강확립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는지, 회사를 비방하는 노조에 대해 직장폐쇄조치를 내린 것이 사용자의 정당한 권한 행사였는지, <시사저널>의 정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중앙일보 출신들을 편집위원으로 새로 채용한 건지 아니면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것인지, 노조의 편집권 독립요구가 과연 정당한 건지’ 등의 문제는 괜히 복잡하기만 할뿐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자들 없이 발행된 시사저널이 ‘짝퉁 시사저널’인지 ‘사장저널’인지 구별하는 것도 내 소관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 사태가 언론에 대한 통제가 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그리하여 한국 언론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인가의 문제는 내게는 너무 거창한, 그리하여 ‘부차적인 문제’였다. 중요한 건 이 문제에 대해서 ‘누가 인터뷰를 해줬는지, 누가 안 해줬는지’의 여부다.(이런 나를 속 좁다고 욕하지 마라. 나도 가끔씩 나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여튼 이번 사안에 있어서는 당사자의 의견과 입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니 만큼 우리 제작팀에선 노조와 사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노조는 응했다. 그런데 사측엔 두 차례의 인터뷰 요청에도 안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회사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안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어렵게 입수한 금창태 사장 개인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했을 때도 “사장님……인터뷰 안 한답니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나의 투철한 직업 정신에 비춰볼 때 일단 ‘인터뷰 안 한답니다’라는 말에서부터 감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건 ‘왜 안한다’는 건지 설명이 안 될 때이다. ‘할 말이 없어서 안 합니다’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 안 합니다’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니어서 ‘하기 싫어서 안 할래요’도 아니고 그냥 ‘안 한다’라는 답변만 되돌아 올 때 그 막막함이란….

거듭 말하지만 나의 기준은 단순 명쾌하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